-
-
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을 살아가면서 바쁘다는 이런 저런 이유로 우리는 때로 인간에게서 가장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애틋한 그리움이나 따뜻함이 솜털처럼 간직된 사랑과 같은 진한 감정의 손길을 애써 외면하거나 등한시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쉽게 끊어지지 않을 것 같은 질긴 우리의 인연은 어제도 내 곁에 있었고 오늘도 말없이 그 자리에 그렇게 있었기에 내일도 눈을 뜨면 마치 손을 뻗어 언제라도 만져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세상의 일이란 것은 생각해보면 언제나 우리의 마음과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가끔씩 잊어버리고 사는 것인지 때때로 그리고 곰곰이 스스로를 돌아 볼 일이다.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는 거대한 밀림과 같은 것이고 우리는 그 안에 자리한 소소한 나무와 같은 인생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을 돌이켜 지그시 눈을 감고 돌아보면 누구나 한두 번 쯤은 짊어진 삶의 무게에 짓눌려 버둥거리고 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보게 되거나, 아무도 나를 돌아봐주지 않는 어둠과 같은 적막감에 홀로 갇혀 있는 자신의 발견할 때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아마도 우리의 그러한 고독하고 초라할 것만 같은 슬픈 모습에서 점점 더 알 수없는 깊은 곳으로 자신을 침잠시켜 가기보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해 갈지에 대한 나 자신을 포함한 바로 우리 가족 그리고 우리 친구나 이웃들의 소박한 삶의 이야기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다시금 눈을 떠보게 하는 그리하여 얼어붙은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랑하는 아이와 남편을 우연한 사고로 잃어버리게 된 후, 삶에 대해 더 이상 살아갈 의욕과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 덧없는 시간만을 흘려보내고 있는 주인공인 나는, 남편이 조그마한 출판사를 운영하다 미처 정산하지 못한 인세의 빚을 계기로 불륜의 덧에 걸려 이혼을 하고 홀로 살고 있는 소설가 이정섭과 뜻하지 않은 목포로의 동행을 하게 되지만 곧 어떤 특별한 이유도 없이 짧은 만남으로 끝나고 만다. 마땅히 거처 할 곳이 없어져 버린 나는 그곳 목포에서 영란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힘겨운 삶을 다시 시작하게 되고, 잠시나마 나에게 관심을 가졌던 소설가 정섭은 상경하였다가 새로운 책을 낸다는 핑계로 영란을 찾기 위해 목포로 내려오게 된다. 영란은 새로 정착한 목포라는 생소한 곳에서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슬픔과 고독의 삶을 영위하는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통해 그 동안 자신을 지배했던 슬픈 상처의 기억을 벗어나 또 다른 삶을 살기위한 눈을 뜨게 계기를 얻게 된다. 한편 목포로 다시 내려온 소설가 이정섭 역시도 그의 친구와 후배를 통해 자신의 뼈아픈 과거에 함몰되어 자책하며 살아가는, 겉보기와는 달리 이면에 숨겨진 애틋한 삶을 가슴에 품고 오늘의 현실을 보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통해 세상사에 잠시 비껴서있는 자신을 조금씩 바로 잡아가게 된다.
이 책에는 항구도시 목포 특유의 구수한 사투리와 모진 세파에도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살아가는 일반 서민들의 애환이 정겹고도 애틋하게 잘 그려져 있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을 자연스럽게 책 속으로 녹아내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중간 중간 나타나는 평소에는 아무런 느낌 없이 넘겨 버렸던 유행가 가사의 내용이나 목포 유달산을 배경 삼아 가진 것이 비록 풍족하지 않아도 도란도란 정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의 투박한 인생 여정의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가 때로 슬프고 힘든 삶을 살아가게 되는 때, 그것을 지렛대로 삼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금 깊게 생각해보면 세상 그 누구의 삶도 우리가 의도적으로 가치 없는 삶으로 매도하거나 폄하 하려는 인식이 존재할 뿐, 하찮거나 쓸모없이 여겨질 정도의 그야말로 가치 없는 인생이란 없는 듯하다. 도저히 헤어 날수 없을 것만 같은 슬픔이 오거나 더 이상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은 끔찍한 좌절의 순간이 온다 해도, 스스로 아픔에 떨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진정 볼 수만 있다면 아마 우리는 또 다시 살아갈 새로운 마음의 눈을 뜰 수 있을지 모른다. 슬픔에 크게 노여워하지 말고 상실의 아픔에 긴 시간을 고독해 하지말자. 그럴수록 우리 영혼은 메말라져 고통스럽고 더욱 비참해질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