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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약육강식이라는 큰 틀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듯하다. 그것은 다른 어떤 나라도 예외 없이 적용되는 듯하고 국제 사회의 흐름 역시도 그러한 보이지 않는 룰에 의거하여 이제껏 작동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진행 될 것으로 본다. 결국 경쟁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생존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우리 스스로 강해져야 하고 강해지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경주 해야만 한다. 승리와 패배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승부의 세계에는 단 한순간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고 그 어떠한 아량도 베풀어지지 않는 것이며, 강한 자만이 중심에 서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약한 자는 결코 제외될 수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 그 자체만 존재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권모와 술수가 동원된 정당하고 진정한 승부였는지 아니었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따져 볼 일이지만 이미 결정나버린 결과에 대해 이를 정정해 다시 거꾸로 시간을 되돌려 원상태로 만들 수 는 없는 것이어서 결국 운명적으로 받아들 수밖에는 없는 노릇이다. 누구에게나 무엇이 되었든 언젠가는 승부를 결정지어야만 하는 일은 생기게 마련이고, 그 도전 앞에 섰을 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 만큼 치열하게 승부를 펼쳐야 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때로 비정하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현실을 두고 우리는 진정한 승부를 펼치기보다 이를 부인하거나 회피하려 했던 적은 없었는지, 혹은 어떠한 응전에도 이를 이겨 낼 수 있는 충분한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기는 한 것인지 스스로를 한번 돌이켜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우리와 마주하고 있는 승부의 대상은 우리 내부의 보이지 않는 자신일 수도 있고 승부를 걸만 한 충분한 가치 있는 다른 어떤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승부가 결정 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다는 것이고 패배로 인한 모든 책임은 오로지 자신 스스로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밀림무정’ 이 책은 한 남자의 절대 절명한 고독한 승부의 세계를 다룬 책으로 마초적 성격이 짙게 풍기는 작품으로 여겨지기는 하지만, 일종의 서사적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착각이 들만큼 스릴과 긴장감이 적절하게 잘 배합된 그러면서도 뚜렷한 하나의 목표를 두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쫓고 쫓기는 처절하고 혹독한 사투의 과정을 통해 치열한 경쟁 속에 오늘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그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1930년대 일제치하 속의 암울한 시대를 배경으로 주인공 산은 평생을 백두산 포수로 살아온 아버지 웅의 뒤를 이어 개마고원 최고의 포수가 된다. 그는 아버지의 목숨과 동생 수의 두 팔을 앗아간 흰머리 호랑이 왕대를 잡기위한 복수의 칼날을 갈지만, 왕대 역시 그들에 의해 자신의 새끼를 잃어버린 후 산을 포함해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인간들을 무참히 응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 둘의 숙명적인 7년간의 대결에 어느 날 야생 맹수를 포획을 목적으로 한 해수격멸대라는 일본군이 개입 하면서 새로운 인물인 일본 군관 히데오와 동물학자 주홍이 등장하게 되는데, 왕대를 추적 하는 과정에서 이들의 묘한 삼각관계의 분위기가 형성 되고 마침내 산에 의해 백두산에서 포획된 왕대를 경성으로 이송하면서 진정한 승부를 벌이려는 산과, 왕대를 죽여 자신의 미래를 보장 받으려는 히데오, 그리고 냉정 하지만 순박한 인간미를 지닌 산을 가슴깊이 사랑하게 되면서 산을 현실적인 세계로 이끌어 가려는 주홍 등, 이들 등장인물들이 펼쳐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아마도 독자들의 호기심은 물론 독서의 재미를 주는데 있어 충분하고도 남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다.
작가의 호쾌하고도 활기 넘치는 필력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이 책은 우리민족의 명산이 백두산의 장엄 하고도 광활한 무대를 배경으로 박진감과 스릴 넘치는 긴장 그리고 주인공 산과 주홍과의 애절한 로맨스는 물론 인간과 야생 짐승의 냉혹하고도 진정한 승부의 세계가 사실적이고도 서사적으로 잘 그려져 있어 오랜만에 멋진 작품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사사로운 감정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로지 목표를 향하여 자신의 목숨을 걸 정도로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주어진 자신의 운명에 맞설 수 있다면 그것 자체로 우리에게는 무척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다가오는 위기를 위기라 인식하지 못하고 조금의 어려움에도 쉽게 무너지고 마는 우리의 나약하고 심성이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이 책은 우리에게 오늘을 살아가는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인간 본연의 철학적 물음을 되새겨 보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자신의 운명은 능동적으로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수동적으로 숙명처럼 언제까지나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받아야만 하는 숙명과 같은 것이 존재 한다면 이를 회피하기보다는 담대하게 맞서 비겁하거나 굴욕적인 삶에 예속되어 살아가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이 책 주인공 산의 삶에서 보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