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창고 살인사건
알프레드 코마렉 지음, 진일상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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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을 선호하기는 해도 그 동안 그와 관련한 많은 도서의 경험은 그리 많지 않았기에 나의 경우 간혹 추리소설을 접할 때면 늘 반가운 마음이 앞서 설렘을 안고 책을 보게 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대체적으로 추리물을 읽으면 중간에 끊어지는 시간을 두지 않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라도 그 흐름이 끓기지 않으려 애써 노력하는데 비해, 사실 이 책은 애초 내가 생각했던 의도와는 조금은 다른 경향을 보인 책이다. 다시 말해 의문의 살인사건을 두고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힘들고 그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하기가 쉽지 않은, 길고 긴 의혹의 시간과 싸워야 했던 소설이 아닌가 싶다. 이야기의 배경이나 전개과정에서의 여러 부분이 국내의 정서와는 다른 점이 있기나 했으나 책을 읽은 후 이 작품에서 내가 문득 느꼈던 것은 예전에 국내에서 방영 되었던 수사반장과 같은 고전 추리물을 한편 보았다고나 해야 할까 싶기도 하고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안타까운 마음에 애잔함의 여운이 길게 감돌았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포도를 재배하여 그 열매를 숙성시켜 와인을 만드는 것을 생업으로 삼는 오스트리아의 어느 시골 마을에 알베르트 하안은 자신의 창고에서 싸늘한 시체로 그의 가까운 이웃에게 발견되어 경찰에 알려진다. 사인은 와인 발효 시 발생 하는 가스에 의한 질식사이며 이 사건을 담당하게 된 시몬 폴트 형사는 마치 자살처럼 보이는 이 죽음이 타인에 의한 의도적인 살인일 것이라는 판단 하에 탐문 조사를 시작 한다. 그러나 피살자가 평소 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악행을 일삼았던 관계로 마을 사람들은 이 피살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에 냉담하게 반응을 하며 비협조적인 자세를 보임은 물론 당연이 죽어야 할 사람이 죽었다는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한다. 결국 경찰은 수사에서 사건에 대한 어떠한 확실한 단서나 증거를 찾지 못한 채 미궁 속에 빠지는 듯 했으나, 어느 날 시몬 폴트 형사에게 협박 비슷한 쪽지가 발견됨으로서 서서히 수사는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이후 조사에서 밝혀진 그 동안의 여러 가지 정황과 피살자가 남긴 유서 비슷한 편지 한통, 그리고 피살자와의 원한관계에 있었던 몇몇 인물들에 의해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들을 확보하게 되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마을 사람들이 서로 범인임을 자백하는 묘한 상황이 연출되면서 수사의 혼선을 빚게 되기에 이른다.

일반적으로 많은 추리물들이 다루는 이야기 안에는 어떤 트릭이나 반전과 같은 독자의 흥미를 이끌 수 있는 요소들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이 책의 내용에는 이와 같은 특징적인 내용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게다가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의혹적인 미스터리만 자주 나타나는 상황이어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어디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야 할지에 대한 당혹스러움만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의 추리물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독자들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즉 무언가 사건이 쉽게 해결 될 것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논리적으로 보면 앞뒤를 맞추기가 참으로 애매모호한 흐름이 작품 전반에 나타나 있다는 것이고, 누군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기도 하다가 돌이켜 사건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전혀 관련 없는 사람으로 순간 변해버리는 통에 마치 심증은 있으나 그걸 확신할 수 있는 물증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 않는, 그리하여 독자를 책 속으로 자꾸만 빠져 들게 하는 은근한 유혹이 내재된 책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마치 와인을 먹으면서 이젠 그만 마셔야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와인이 주는 달콤함에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또 한잔의 와인을 입속으로 들이 부어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속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사건의 내용은 그리 복잡할 것도 없고 그렇다고 무언가 잔득 긴장되고 흥미진진한 요소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 책의 내용에서 깊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이야기 속 피살자는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마땅히 처절하게 응징 받아야 할 교활하고 악랄한 캐릭터임에도 법과 사회적인 제도만으로 그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경우, 누군가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에게 단죄를 내렸다고 한다면 과연 그가 가해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법이라는 명목 하에 가두고 처벌하는 것만이 진정 옳은 처사일까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것이 정당화 될 수도 없고 정당화 되어서도 아니 될 것이지만 아마도 작가는 이 작품을 쓰면서 이야기 속에 그 범죄 대상을 찾는데 있어서만큼은 독자 스스로의 몫으로 남겨둔 것인지도 모른다. 여타의 추리물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느낌이 들게 하는 이 책의 내용을 두고 만약 당신이라면 어떤 판단과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그것이 이제는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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