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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붓다
한승원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0년 10월
평점 :
오랜만에 좋은 책을 한권 읽었다고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이 책은 내 한쪽 가슴이 찡할 정도로 무언가 예리한 것으로 쿡 찔러 놓고 간 느낌이 들게 하는 책이다. 또한 이 한권의 책을 읽으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그 무슨 가치를 위해 이 험난한 세상 속에 이전투구 하며 살아가는 것일까를 생각해 본 것 같기도 하다. 누구는 말하기를 인생은 한번 살아 볼만 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말의 어떤 의미에서 그렇다고 동의를 해줘야 할지 마땅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음은, 아마도 이 시대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과 이를 평가하는 우리의 시선들이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건데 그 동안 책에서 우리가 배운 대로 세상이 그렇게 흘러온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제대로 배웠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어느새 그걸 잊고 세상을 잘못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책의 겉표지를 보면서 나대니얼 호손의 큰 바위 얼굴에 관한 이야기가 있어 문득 생각났던 건, 자연의 조화로 우연하게 만들어진 하나의 바위를 두고 전해 내려오는 전설의 이야기 속에서 권력이나 명예 그리고 돈을 위한 삶이 아닌, 주어진 자신의 운명에 겸손하며 항상 낮은 자세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가슴으로 온화하게 품고 묵묵하게 노력하며 살아가려 했던 주인공의 어렴풋한 모습 이었다. 물론 이 책에서 전개되는 내용은 사뭇 다르지만 큰 틀에서 본다면 작가가 다루고자 했던 이야기의 핵심은 호손의 그것과 그리 크게 빗나가지 않을듯해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서두에서 이 소설의 중심 소재인 억불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간략하게 설명해놓으면서 고향에 대한 애착 그리고 지나온 자신의 삶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왔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들추어 이 한권의 책에 묶어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주인공 상호는 혼혈인으로 태어나 자신을 버린 부모를 대신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내성적인 성격의 고등학교 입시생이다. 그는 온전치 못한 한쪽다리와 한때 장학관과 교장을 지낸 할아버지가 홀로 말년에 쓸쓸하게 염장이로 지내는 가난한 집안 배경의 이유로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하지만, 획일적이고 기계적인 학교와 사회의 제도에 스스로 얽매이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이 꿈꾸고 희망하는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이에 할아버지는 그에게 집에서 훤하게 내다보이는 억불산의 억불이 의미하는 뜻을 알려주며 소소한 것에 개의치 말고 앞으로 그가 갈구하고 희망하는 인생을 살아가라는 가르침에 따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 한편 퇴임교장인 할아버지는 자신의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거노인과 부모를 잃은 학생들의 위해 남몰래 후원금을 전하면서 마치 살아 있는 억불처럼 말년의 인생을 가치 있는 삶으로 채워가며 살아간다.
작가는 이 책의 이야기에서 할아버지와 그의 손자인 상호와의 교묘한 결합을 통해 나약하고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가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 그리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려고 것은 아닐까 싶다. 체면 때문에 자신을 감추고 권력 앞에서 쉽게 무릎 꿇고 굴복해버리는 비굴한 삶보다는 어느 것이 되었던 옳고 의미 있는 일이라면 주위의 무시와 핍박이 있을지라도 이를 극복하고 부단히 노력해가는 삶이 바로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때로 가치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일에 서로 얼굴을 붉히고 싸우며 마침내 이를 취하여서는 그것이 마치 무슨 대단한 것처럼 착각하고 의기양양해 하며 살아 갈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이 어리석었고 바보 같았음을 깨닫게 되는 일은 결코 오래 걸리지 않으며, 그때 가서야 알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를 더러 보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 가볍게만 느껴지지 않는 많은 물음들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자유를 가르치고 말하면서도 통념상 제도의 틀 안으로 집어넣으려는 오늘 우리의 사회와 더불어 살아가기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이익 앞에는 눈이 멀어 버리는 지극히 합리적인 개인들만이 득실거리는 우리의 현실에서 작가는 그릇된 우리의 인식과 잘못 이끌려져 가는 오늘의 슬픈 현상들이 안타까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 속 억불산에서 조용히 들려오는 삶의 가르침, 그리고 이를 묵묵히 실천 할아버지와 상호의 모습에서 이제 우리도 이쯤에서 우리의 내면에 잠재해있는 양심의 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도록 귀를 열고 생각에만 머무르지 않는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