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서커스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 했던 것 그리고 좋아 했던 것, 그래서 애틋한 감정을 품었던 것들이 어느 날 우리의 가슴속에서 홀연히 사라져 버렸을 때, 우리는 그 깊은 상실감에 온갖 세상의 것들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그래서 심장을 예리한 칼로 도려내는 아픔 보다 더 큰 아픔을 느끼며, 결국 앞으로의 삶이 덧없음을 자신으로 하여금 강하게 밀어 붙이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서, 우리는 내 육체에서 혼이 빠져나가 버린 것 같은, 마치 진공의 상태와 같은 현실 속에, 한 동안 머물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에게서 죽음, 이별, 상실과 같은 극한적 사실은, 과연 어떤 하나의 가치를 지니며, 우리의 일상적 생활에서 어떤 색깔의 모습으로 남아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건 그와 같은 아픔이 왜 하필 나에게 다가 왔을까 하는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순간부터 그 가치가 시작되며. 우리의 기억 속에 도무지 알 수 없는 환상의 빛으로 이미 온통 채색되어져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은 죽음을 매개로한 우리의 일상생활 모습을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체로 애잔하고 담담하게 그려나간, 4개의 중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식의 소설이다. 4개의 작품 속에는 모두 죽음, 즉 자신의 가장 가까운 곳에 영원히 살아 머물러 있을 것이라 생각 했던 존재들이, 어느 한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렸을 때, 자신의 가슴속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 함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사실로 인정해야만 하는,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애절 하고도 삶을 관조하는 자세로, 아름다운 몽상적 색깔이 짙게 그려져 있다.

각각의 작품에는 저마다의 이유 있는 소재들이 이야기 속에 때로 생생하게 살아 있으면서도, 은밀하게 감추어져 있기도 하다가 어느새 돌연 사라지는 것을 반복 하며, 독자의 가슴속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자리하게 만든다. 특히 이야기 속의 전개에 따른 치밀한 구성은 마치 독자가 한편의 아름다운 영상을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차분하면서도 사실적으로 잘 그려져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가난과 고통이 굴절된 삶속에서 사랑과 행복을 느끼게 했던 남편의 죽음, 기억하기 싫은 배우자의 배신감을 대신하여 자신의 한 가닥 의지의 대상이었던 어느 이혼녀 아들의 죽음, 우연한 기회에 친구로부터 들은 과거 학창 시절 친근감을 느꼈던 친구의 죽음, 어렸을 적 친구로 지냈던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 이야기 속에는 이 모든 죽음의 이유는 뚜렷이 나타나 있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이 죽음들의 의미를 두고 우리의 보편적 삶에서 오는 무기력한 우리의 자신을 선명하게 대비 시켜, 각자의 삶을 반추 해보게 하는 시간을 갖게 한다. 더구나 죽음의 이야기를 다루고서도 그것이 쓸쓸함과 허무함을 넘어, 아름다운 추억의 조각으로 감상하게 하는 작가의 특유한 상상력과, 그에 어울리는 화려하고 서정적인 언어의 표현들은 실로 대단한 느낌마저 준다.

놓아 줄듯 놓을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기억들과, 또 당연히 버려야 한다고 생각 하면서도 감히 쉽게 떨쳐 버리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한 감정의 미련들은, 인간 누구에게나 한번 쯤 경험하며 지니고 있는 사실들 일 것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우리의 오늘의 모습은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하는 세상 속에 살고 있으면서도, 때로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멀리 있다고 착각하고 사는 건 아닐까 싶다. 또한 어느 누군가의 죽음으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동기부여를 받고, 삶의 새로운 이정표를 그려나갈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작게 그리고 너무 안이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삶과 죽음의 범위를 넘나들며 수없는 독백과 자신에게로의 물음으로, 인생의 살아가는 의미를 깊이 느끼게 하는 이 소설의 재미는 다른 그 어떤 소설의 내용만큼이나 진지하고 현란 하고 아름답다. 무엇보다 이 책속의 작품 중 환상의 빛 이야기는 우리가 왜 소설을 읽는가에 질문의 대답을 대신 할 만큼, 그 문학의 깊이와 품위가 느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나에게 있어서 이 책은 정말 오래간만에 읽어보는 문학 소설의 참맛을 느끼게 했으며, 또한 이 아름다운 한권의 책은, 다른 몇 편의 영화를 본 것과 같은 효과를 내게 주었다고 해야겠다. 그리하여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부터 작가의 이름을 꼭 기억해 두었다가, 빠른 시일 내에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뒤적거려 봐야 할 느낌이, 지금까지도 강하게 나를 압박함에도 불구하고, 전혀 불편 하지 않음은 무슨 조화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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