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넌 누구냐? - 색깔 있는 술, 막걸리의 모든 것
허시명 지음 / 예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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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주 어렸을 적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꼬깃꼬깃한 지폐 한 장을 들고 노란 주전자에, 막걸리 반 되를 받아 오라는 심부름의 기억이 있다. 점방이라 불리 우는 그곳에 가면 언제나 웃는 얼굴로 나의 빈 주전자에 막걸리를 채워주던 아주머니의 모습과, 막걸리를 흘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해서 골목길을 돌아오던 오래전 추억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아마도 나는 그 당시 심부름의 대가로 막걸리 값으로 치룬 나머지 잔돈의 일부로, 커다란 알사탕 하나를 먹을 수 있다는 행복에서인지, 사실 막걸리를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어른들이 마시는 술, 그 정도가 전부 아니었나 싶다.  


내가 처음으로 막걸리를 입에 댄 것은 대학 입시를 막 치루고 난 다음날이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시던 큰 아버님의 전화를 받고서 불려간 큰댁에서, 난생처음으로 술을 그것도 막걸리를 마신 것이다. 이제 대학에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자의든 타의든 술과 친해질 터인데, 술은 어른에게 배워야 한다며 나를 위해 일부러 큰 아버님이 마련한 자리였다. 무릎을 꿇고 잔을 들어 대접에 한 가득 받아든 누런 막걸리의 첫 맛은, 약간 시큼한 그러면서도 시원했던 느낌을 주는 그리 싫지만은 아닌 맛으로, 술에 대한 나의 첫 경험으로 남아 있다.

 막 걸러내어 만든 술이라는 의미에서의 막걸리는, 격식을 차리지 않고도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마실 수 있는, 한때 우리 일반 서민들을 대표하는 술로 인식되어 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막걸리는 서서히 우리의 주위에서 사라지고 그 자리에 맥주와 와인이 그 공간을 차지 해 버림으로서, 우리밀이 외국 수입산 밀에 밀려난 것과 같이, 막걸리 역시 그와 비슷한 과정을 겪으며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로 남아 있는 듯해서, 사실 많은 안타까움이 있었다. 그러나 웰빙 시대에 맞추어 이제 다시금 세계에서 각광받는 주류로 거듭난다니, 이는 두 손 들고 환영해 주어야 할 일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막걸리를 마시고 나면 뒤끝(?) 그러니까 격한 냄새 때문에 마시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하고, 누군가는 품위 없고 싸구려 술이란 이유로 막걸리를 멀리한다. 하지만 막걸리만큼 그 제조과정이 섬세하고 정성이 깃든 술이 있을까 싶다. 막걸리의 그 성분 내용은 또 어떤가, 풍부한 유산균과 필수 아미노산이 고르게 들어 있는 말이 필요 없는 건강 음료이며, 성인이면 누구나 부담 없이 어디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진정한 국민의 술이 아닐까.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한류 열풍이 불기 시작 하면서, 우리의 문화도 이젠 세계 속의 당당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하지만 그 문화의 내용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음악이나 영화 같은 일부 대중문화에 편중되어 그 지속성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아직도 미지수이며,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국제적인 마케팅 역시 여전이 미미한 수준에 이르고 있어, 한때의 단편적인 붐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우려감이, 이제는 점차 가시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요즈음 건강식품으로 세계인들로 하여금 이제 막 주목 받기 시작한 우리의 전통주 막걸리의 열풍은, 침체되어가는 우리의 문화에 대해 새로운 자극적 역할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 된다. 이는 우리의 일부 편중적인 문화의 수출에서 벗어나, 좀 더 다양한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에도 부합되며, 더구나 세계의 음식문화에 다소 뒤떨어져 있던 우리의 먹거리 문화가 비로소 널리 알려진다는 의미에서도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단순한 방식과 주먹구구식의 어설프고 즉흥적인 방법들은 분명 제고되어야 한다. 이제는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왜 우리의 것이 좋은지, 왜 우리의 것이어야만 하는지에 대한 심층적이고도 다양한 방법의 모색과 더불어, 국가의 재정적 지원도 확대 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이 책은 그 동안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 왔던, 우리 고유의 전통곡주 막걸리 역사에 대한 많은 내용과, 앞으로 막걸리 문화가 세계 문화 속에 널리 알려지기 위해, 어떻게 진행 되어야 할지를 고민 해놓은 마치 막걸리의 교과서와도 같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의 말대로 막걸리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술 이상의 의미를 갖는 소중한 우리의 민족 문화 유산이다. 그러나 내용과 깊이를 생각하지 않는 사대주의적인 우리의 잘못된 문화의식과, 세계화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우리 본연의 전통들을 경시하거나 외면하는 우리의 자세는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 따라서 오랜 세월 동안 외세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하고 숨죽여 왔던, 우리의 막걸리가 이제라도 서서히 그 진가가 발휘되는데 우리 모두는 힘을 보태야 하지 않을까 싶다. 또한 서민의 애환을 넘어 이제는 우리민족의 깊은 고유의 정서가 되어버린 막걸리에 대해, 앞으로 우리는 그 종주국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세계 속으로 거침없이 힘차게 뻗어가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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