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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선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
공상임 지음, 이정재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9월
평점 :
현대의 사회가 산업의 발달에 힘입어, 예전보다는 훨씬 다양하고 활발한 문화예술의 내용들이 오늘날 여러 곳에서 행해지고 있으며, 우리들 역시 그런 문화예술의 내용들을 직접 보고 체험 하면서, 정서적 기쁨을 최대한 만끽하기도 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사실, 내가 희곡에 대한 내용을 접해본 기억이라고는, 학교 교과서를 통해 반 강제적(?)으로 읽어본 것이 아마 전부 일듯 싶다. 그 이유는 매일 손쉽게 접 할 수 있는 TV드라마나 영화 또는 연극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 중 희곡에 관한 책이 별로 없거나 해서, 관심 있게 찾아보지 않은 일종의 나의 무관심에 기인 한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제목을 처음 보고 희곡이라는 장르에 대해, 한번 읽어 봐야겠다는 호기심의 발로에서였다.
우리나라의 희곡은 자연 발생적인데다가, 유교적 이념에 의해 대부분 신분이 천하게 여겨졌던 광대들에 의해 다루어져있어, 그것이 기록문학으로 전승되어 내려오지 않고, 구비문학의 형태로 전해져 막과 장의 어떤 형식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나마 문학형식을 갖춘 희곡은 192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중국의 희곡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송·원 시대부터 시작 하여 명·청 시대에 상당히 활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책은 모두 44막으로 구성 되어 있는데, 중국희곡의 특징인 극중 배우들의 시, 노래 산문 등 다양한 분야의 장르가 모두 이 하나의 작품 속에 녹아 있어서, 독자의 입장에서는 꽤 흥미 있는 볼거리를 제공해 주는 책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다. 다만 노래나 시의 대부분의 내용이, 주로 명의 멸망으로 인해 나라를 잃은 슬픔과, 어지러운 속세를 한탄하며, 초야에 은거하며 살자는 노자의 무위사상 같은 내용들이 많은데다가, 중국 한시에 대해 약간의 거부감이 있는 독자들은, 선뜻 다가서기에는 다소 껄끄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희곡의 배경은 명의 마지막황제 승정제의 서거로 인해, 명나라의 끝자락이라 할 수 있는 남명 왕조의 흥망을 다룬 역사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당시 명나라는 부패한 관리들의 득세로 민심이 흉흉해지고, 게다가 이자성이 이끄는 농민군의 반란과, 후금에서 성장한 청나라의 계속적인 침략으로 인해 수도가 함락 되면서, 남명 왕조로 다시 시작하며 명의 부활을 꾀하던 시기였다. 이 책의 저자 공상임은 청나라 시대의 사람이지만, 그의 선친들은 명나라에서 벼슬을 해오며, 청나라에 대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그 역시 이 희곡을 통해 명나라를 그리워하는 마음과, 명의 멸망에 안타까움을 내포하는 마음의 표현을, 간접적으로나마 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더구나 내가 이 책을 보면서 좀 놀라웠던 점은, 공상임이 이 한편의 희곡을 위해, 20여 년 동안의 오랜 시간을 거쳐, 작품의 사실적 표현과 그 정확성을 통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교정에 교정을 거듭하며, 하나의 서사적 장편이 탄생하기 까지, 그의 헌신적인 노력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것이다.
도화선이란 이 희곡은, 후덕한 젊은 선비 후방역과 남경의 빼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기생 이향군을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서, 이 두 남녀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라는 극의 전개를 통해서, 남명시대의 혼란스러운 사회상과, 간신들의 권력을 조소하며, 나라에 대한 충과 그리고 사람이 지켜야할 도리로서의 예, 아녀자로서 간직해야 할 여인의 절개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의 교훈적이며 도덕적인 내용들이 모두 담고 있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 도화선이 된 연유는, 주인공인 후방역과 이향군의 백년가약을 맺으면서 서로 징표로 부채를 하나 만들었는데, 이향군이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어수선한 사회에서 한동안 낭군과 헤어져 있을 당시, 재물과 권력으로 자신을 탐하려 하는 관리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그녀가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수절을 마다하고, 자결하기 위해 머리를 땅에 깨어 버릴 때, 그녀의 선혈로 부채가 흥건하게 젖어 버리자, 그녀를 후방역에게 중매했던 양문총이 선혈로 덥힌 부채위에 붓으로 복사꽃을 그렸다 하여 명명되어진 이름이다.
이 책은 저자 공상임이 범례에서 밝혔듯이, 극의 재미를 위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긴 했으나, 가급적 시대의 상황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허구적인 것을 피하고 일부 관리나 귀족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기 위해, 일반인이 쉽게 익히고 즐길 수 있는 희곡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희곡으로서의 의미를 잘 살리기 위해, 배우나 관객간의 서로 감정 이입이 될 수 있도록, 노래의 구절구절에 여운의 요소까지 생각해서 만들었다 하니, 수 백 년 동안 이 희곡이 전해져 내려오면서, 중국인들에게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명작으로 남아 있는 이유 중, 그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 이다.
도화선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은 고전적인 문학작품들이 존재 하기는 하지만, 그러한 고전 중에서도 훌륭한 희곡 작품이 몇몇 정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문학, 사회과학 인문 등 많은 책을 접하면서도, 이러한 희곡문학은 사실 처음 마주하는 터라, 다소 생소하긴 했어도, 한편의 고전 뮤지컬을 보는듯한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마음 한가득 흡족한 기분은, 나의 오랜 기억으로 남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문학작품에 관심 있는 많은 이들에게도 흥미진진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한번 권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