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7대 사건을 보다 - 세상을 뒤바꾼 세계사 7대 코드, 그 비밀의 문을 열다
박찬영.정호일 지음 / 리베르스쿨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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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책을 좋아 한다. 좁은 공간에서 갑갑함을 느끼면서 무엇을 생각하기 보다는 산, 들, 숲, 나무, 산, 공기, 새 등을 보면서 사색을 하면 정말 잘된다. 자연을 통해 얻는 영감이 너무 많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색을 하면서 철학을 하고, 철학의 새 시대를 여는 인물이 되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깊은 영감을 산책에서 오는 것 같다. 동질감을 느껴 참 뿌듯하다.

 

이 책은 인류의 역사를 7개의 사전으로 요약하고 있다. 아니 7개의 가정으로 정리 하고 있다. 선택, 필연, 우연, 흐름, 위치, 인과, 종합이 그것이다. 즉 이 일곱 개의 단어로 7개의 중요한 사건을 정리하면서 모든 사건들은 다 이 7개의 단어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도 이 7개의 단어로 사건들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이 7 단어를 접목해 보고 어디에 적용할 것인지 생각하여 다음에 어떤 일이 연결되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예측하라는 것이다. 참으로 참신한 발상이다. 창의적으로 역사를 보고 있다는 면에서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 7대 사전을 정리해 보자. 1) 선택은 콘스탄디누스 1세의 기독교를 선택한 것이다. 콘스탄티누스의 기독교를 선택함으로 종교의 다양성이 막혔고, 결국 인류 발전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2)필연은 나이팅게일이다. 나이팅게일이 헌신적인 간호가 현대의 의술의 정신을, 적십자사 등을 조직하는데 촉발하였고, 인류가 의술로 더 오래 살고, 더 이상 미신에 의지 않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3)우연은 제 1차 세계대전을 만들게 된 사라예보 사건이라는 것이다. 우연히 암살 모의 청년들이 실패를 하고 찻집에 들어가 차를 마시던 중에 오스트리아-헝가리 황태자 부부를 태운 차가 병원을 찾다가 길을 잃고 배회하는 중에 마침 찻집 근처를 지나게 되고, 청년들이 발견하여 암살하게 된다. 이 암살이 결국 세계 1차 대전을 촉발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렇게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결국 인류의 초비극을 만들게된 사건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주위에는 이런 우연히 빚어지는 것들이 널려져 있다. 4)흐름은 인류 역사의 흐름에 큰 획을 그은 단군 조선이다. 중화 문명보다 앞선 러오허 문명이 한반도로 흘러 들어오고 단군 조선을 건국하고 개국의 중심 사상을 ‘홍익인간’으로 하였다는 것이다.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정신으로 국가를 형성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전까지 어떤 국가도 이런 사상을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이전의 국가들은 동물들처럼 서로 물고 물리는, 싸움터로만 생각했지만 이런 동물적 기질을 벗고 참 인간으로서의 건국 정신을 비로소 단군 왕검이 건국이념으로 채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민으로서 자긍심을 느끼게 해줘서 기쁘다. 5)위치는 사라미스 해전이 승리로 장식될 수 있었던 것은 위치의 잇점이라는 것이다. 해전에서 위치는 대단히 중요한데 살라미스의 좁은 해협을 이용하여 적군을 물리치는 대승을 거두게 된다. 이처럼 위치가 중요하다. 6)인과는 유럽지도가 형성되게 된 인과의 법칙이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의 이동으로 유럽지역의 민족들이 모이게 되고, 지금의 유럽의 지형과 민족들이 함께 협력하는 형태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뭔가가 이뤄진 것은 인과 없이는 안되었다는 것이다.

 

두 가지만 생각해 보겠다. 첫째,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선택함으로 다양성이 상실되어 인류 발전에 지장이 되고, 결국 중세가 암흑기로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부 동의하지만 이것은 유럽 지역의 역사에 불과하다. 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는 다양한 종교가 이미 있었고, 발전하고 있었다. 지역적인 것은 전체적으로 보는 것은 무리가 아닌가? 또한 기독교라는 종교 속에서 발전한 사상들과 역사적 의미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독교의 박애정신(나이팅게일도 이 박애 정신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나이팅게일에 의해서 적십자가 탄생되었다고 하는데 어디에서 나온 정신인가? 십자가, 즉 기독교 정신이 아닌가? 지나친 강요에 의한 십자군 전쟁과 같은 불상사도 많았지만 그 기본 정신이 사랑과 희생의 정신은 전 세계를 지금도 움직이는 내면의 힘이라 생각된다.

 

둘째, 단군이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을 채택함으로 인간이 동물로서의 탈을 벗고 진화된 인간의 모습을 찾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이라 했다.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하여 동물이 된들 역시 인간의 조상은 동물인데 우리의 조상인 동물들을 무시하고, 천시하면서 지금의 진화된 인간들만 우수하다고 하면 마치 우리 조상들은 못났으니 다 버리고, 지금의 우리만 잘났다고 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닌가? 논리가 맞지 않는다. 인간이 어찌 동물이 변하여 인간이 되었다고 믿을 수 있는가? 이렇게 탁월하게 인류 역사는 보는 학자가 이런 인간답지 못한 생각을 할 수 있는가? 이런 탁월한 유추는 오직 만물의 영장인 인간만이 할 수 있다. 저자의 참 인간됨을 인정한다.

 

결국 인간에게 달려있다. 즉 인간의 뇌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뇌가 사고로 고장나면 어떻게 되는가? 또한 아예 망가지면 어떻게 되는가? 또한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더 이상 뇌는 기능 상실이다. 결국 인간의 뇌에 불과하다. 뇌가 인간인가? 뇌가 전부인가? 인간은 뇌 이상의 존재이다. 뇌나 생각을 넘어선 존재이다. 영적 존재이다. 따라서 영적인 것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 영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의 한계는 인간의 한계다. 영을 다스리는 것은 신만이 한다. 저자는 인간이 뇌로 영적 존재가 되고, 결국 신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원론으로 돌아가서 뇌가 다치거나, 뇌가 죽으면 다 죽고 마는가? 영도 죽고 마는가? 그것은 영이 아니라 영이 곳 뇌이다. 뇌는 뇌고, 영은 영이다.

 

인간이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 좋은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것을 좋은 패턴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좋은 결과도 이뤄진다. 그러나 인간이 성공을 한다고 신적존재까지 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결국 모순이다. 인간이 신이 되고 싶은 욕망에 불과하다. 인간이 신이 되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신인 인간이 결국 이런 패턴 하나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살고 인생을 마친다고 하면 그 또한 모순이다. 그냥 인간은 인간이 좋다. 신은 신으로 존재해야 인간은 더 편하지 않을까? 인간이 너무 욕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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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 - 생각 의지 운명을 뛰어넘는 인생의 공식
커비 서프라이즈 지음, 박지훈 옮김 / 쌤앤파커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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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들의 친구 집안은 거의 다 의사다. 부부가 의사, 큰아버지, 할아버지, 작은 할아버지 의사 집안이다. 그래서 아들 친구도 의사지망생이다. 의사 지망생 답게 공부를 잘한다. 어떻게 의사 집안의 아이가 공부도 잘하고 의사를 꿈꾸고 있을까? 이 아이는 집안의 내력, 다른 말로 하면 패턴을 익힌 것이 아닐까?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패턴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어떻게 패턴이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우리는 그런 패턴을 만들 수 있는가? 이 책은 그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은 “당신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로 시작하고 있다. 패턴을 익히기 전에 인간 자신이 놀라운 능력이 있음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한다. 사람은 생각의 동물이다. 무슨 생각이든 떠오른다. 그러나 떠오른다고 다 맞는 것은 아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믿지 말라. 패턴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따라서 패턴을 익히고 패턴에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실행해야 성공한다. 인간의 감정도 에너지다. 믿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프레임을 바꾸면 완전히 다른 현실을 경험할 수 있다. 생각하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을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두뇌가 현실을 창조한다. 따라서 두뇌가 무슨 생각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생각나는대로 생각하지 말고, 패턴에 따라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무한한 능력을 생각해야 한다. 내 속에서 저절로 생각되는 부정적인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려라. 그리고 좋은 생각을 해야 한다. 모든 정신활동이 상념체를 만든다. 감정의 에너지를 모으면 상념체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좋은 감정을 가지도록 만들어라. 모든 생각과 감정은 화학적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생각과 감정을 절대적으로 패턴에 따라 해야 한다. 먼저 패턴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어떤 말을 듣거나, 집안 분위기가 그러면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패턴을 익히고 결국 그렇게 된다. 의미를 부여하면 감정 에너지가 솟아오른다. 내 자신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결국 인간에게 달려있다. 즉 인간의 뇌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인간의 뇌가 사고로 고장나면 어떻게 되는가? 또한 아예 망가지면 어떻게 되는가? 또한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더 이상 뇌는 기능 상실이다. 결국 인간의 뇌에 불과하다. 뇌가 인간인가? 뇌가 전부인가? 인간은 뇌 이상의 존재이다. 뇌나 생각을 넘어선 존재이다. 영적 존재이다. 따라서 영적인 것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 영은 스스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영의 한계는 인간의 한계다. 영을 다스리는 것은 신만이 한다. 저자는 인간이 뇌로 영적 존재가 되고, 결국 신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원론으로 돌아가서 뇌가 다치거나, 뇌가 죽으면 다 죽고 마는가? 영도 죽고 마는가? 그것은 영이 아니라 영이 곳 뇌이다. 뇌는 뇌고, 영은 영이다.

 

인간이 성공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인간이 성공하기 위해 좋은 생각을 하고,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것을 좋은 패턴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면 좋은 결과도 이뤄진다. 그러나 인간이 성공을 한다고 신적존재까지 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결국 모순이다. 인간이 신이 되고 싶은 욕망에 불과하다. 인간이 신이 되면 무슨 유익이 있는가? 신인 인간이 결국 이런 패턴 하나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살고 인생을 마친다고 하면 그 또한 모순이다. 그냥 인간은 인간이 좋다. 신은 신으로 존재해야 인간은 더 편하지 않을까? 인간이 너무 욕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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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 경지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사는 법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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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착각에 산다. 내가 뭔가 특별한 것으로 오해하고 살아 왔다. 나는 직관을 좋아 한다. 뭔가 정형적인 것은 불편하다. 나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좋아 한다. 말이 안통하면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스스로 고수라고 생각하는 참으로 신기루 속에 살아 왔다. 이 책을 보면서 더욱 더 확실하게 내가 고수가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고 책을 덮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고수의 길을 갈 것인가? 내가 고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제대로 고수가 되는 길을 가 보아야 겠다.

 

저자는 고수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말한다. 첫째, 고수로 가는 길, 둘째, 고수, 그들이 사는 방식, 셋째, 고수의 마음 관리, 넷째, 고수의 생각법, 다섯째, 고수, 사람을 얻다. 고수의 길에 있어서 나의 부족한 점을 중심으로 회초리를 들어 보겠다.

 

고수는 다작한다.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중이다. 한가할 때 주로 쓰는데 고수는 바쁠 때도 쓰라고 권면한다. 특히 시를 쓰는데 시는 조용한 시간에 떠오름이 없이는 잘 안 된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하루에 한 편씩 써보기로 다짐해 본다.

 

고수는 안정을 추구하지 않는다. 빵 중에 가장 맛있는 빵이 ‘안전빵’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公)자 들어간 직장을 최고로 친다. 신의 직장이라 부러워한다. 일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주는 직장, 대충 일해도 짤릴 염려가 없는 직장, 들어가긴 어렵지만 들어가는 순간 평생이 보장되는 직장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고수가 탄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런 곳은 장기적으로 보자면 신의 직장이 아니라 신이 저주한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말로 공감한다. 두 개의 화살을 갖지말라. 두 번째 화살이 있으면 첫 번째 화살에 집중하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술에 취하는 것과 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다. 고수는 혼자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조직의 힘으로 살아간다. 조직 안에서는 폼을 잡지만 조직을 떠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40중반에 책 읽기에 도전했고, 첼로에 도전할 것이다. 50에 베드민턴에 도전했다. 70이 넘어서는 방송에 도전할 것이다. 50대 중반에는 학교를 운영할 것이다. 끝없는 도전이 나의 좌우명이다.

 

축척의 힘을 믿어야 한다. 피카소가 2만점이 넘는 작품, 아인슈타인은 240편의 논문, 바흐는 매주 한 편씩 칸타타를 작곡했고, 에디슨은 무려 1,039개의 특허를 신청했다. 고수들은 좋은 작품 못지 않게 형편없는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웰컴 투 동막골의 음악감독을 맡은 아사이시 조는 “창조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마나 많이 보고, 듣고, 읽었느냐이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다. 창조는 축적의 결과물이다. 지식과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전공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고교 시절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한다. 무식한 행위다. 전 세계에서 이과와 문과를 고등학교 때부터 구분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중국의 최고의 명문 칭화대의 교육 이념 중 하나는 ‘문리삼투’이다. 문과적인 것과 이과적인 것이 서로 반응하고 교감하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거는 GE의 슬로언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이런 조언이라면 마음에 들겠지 하는 식으로 타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드러거는 말했다고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만장일치가 되면 그는 실행을 유보했다. 만장일치란 뭔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드러거는 하루하루 성장했다. GE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드러거는 없었을 것이다. 드러거는 하버드로부터 4번의 콜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베닝턴 대학을 선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3년마다 늘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고수는 몰입해야 한다. “병사가 잊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전쟁에 나가라는 명령을 받고는 가정을 잊고, 싸움에 임해서는 부모를 잊고, 진격의 북소리를 듣고는 자신을 잊어야 한다.” 사마전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지금 몰입하고 있는가? 일터에 나와 아내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는가? 집에 가서는 일터를 걱정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있는 곳에서 몰입을 하는 것이 고수다.

 

고수는 심플하게 산다. 중세 기독교 성자 토마스 아 캠피스는 이렇게 애기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무성한 소문에 대해 듣지 않게 된다. 차라리 집에 있으면서 복된 무지를 누리는 편이 낫다. 밖에서는 최신 소식을 듣는 기쁨이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그 결과 해결해야 하는 혼란스런 문제는 만날 것이다.” 주기적이 단식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을 주듯 복잡한 시대에는 주기적으로 자신을 사회로부터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뉴스를 늘 듣는다. 안 들으면 궁금하고, 허전하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서 도움이 안 되는 것도 많다. 한 두주 한국을 떠나 있을 때 뉴스를 듣지 못했어도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면 괜히 많은 소식을 접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고수는 자신을 피알하지 않는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게 대인이다. 억지로 공을 내세우지 마라. 공은 내세우는 순간 날아가 버린다. 진짜 금은 도금할 필요가 없다." 노자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 입으로 자랑하는 것은 하수다.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초조해 하는 것이 하수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한다. 나는 분명 하수다. 더 많이, 아주 더 많이 키워야 한다. 바다처럼 많은 물로 담아야 한다.

 

고수는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다. 고수는 자발적 고독을 즐긴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몰입하기 위해 도심을 떠난다. 홀로 있기 위해 일을 떠난다. 하루가 짧다. 전에 3주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본 경험이 있다. 집중, 몰입, 정리, 혜안을 얻을 수 있었다. 홀로의 유익이다. 고수는 과감히 이런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현실이 허락지 않는다. 그래도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줄다리기를 해 봐야 할 것이다. 고수는 안주하는 안전빵을 먹지 않는다. 고수는 도전빵을 먹어야 살 수 있다. 나는 이제 새로운 빵으로 배를 채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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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일기 - 머무름, 기다림, 비움
아르투로 파올리 지음, 최현식 옮김 / 보누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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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년전 안식월을 1달 반 가진 적이 있다. 3주 동안 아무 것도 아니하고, 만나는 사람도 별로 없이 지냈다. 자연스럽게 천천히 걷고, 천천히 생각하고, 아무 것도 아니하는 일(?)을 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일을 하니 그 때부터 뭔가가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깊은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의 내 자리가 어디인지를 알게 되었었다. 지난 날의 일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도 보였다. 자연히 깊이 묵상이 되고, 글이 써지고, 시도 나왔다. 깊은 사색이 되고, 고독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때로는 사람이 그리웠지만 그런대로 깊고 잔잔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다. 심신이 쉬니 활력을 얻을 수 있었고 안식월 후에 일들은 잘 풀리고, 건강도 회복 되었다. 아무 것도 안함의 능력이었다.

 

사막일기, 사막에서 쓰는 일기라 관심이 갔다. 사막에서는 무엇을 느끼는가?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뭘 보고, 뭘 생각하게 될까? 저자는 600키로를 낙타와 함께 안내자를 동반하여 걸었다고 한다. 군대 근무 시절에 1박2일에 걸쳐 100키로 행군을 한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막에서 600키로라 생사를 건 행군이라 생각된다. 이 행군과 사막의 수도원에서 느낀 점들을 주옥같이 기록하고 있다. 본인이 사막에 갖힌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갖히고 본인은 자유를 누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 자유를 들여다 보자.

 

비움은 기억 없음이다. 이것은 공간과 시간의 비움을 말한다. 여기엔 우리가 내면을 응시하고 심연 속에 그저 내맡기는 일만이 남는다. ‘한 처음’에 혼돈, 비움이 있었다. 두려움은 비움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표시이다. 참을성도 없고, 이해심도 없는 사람들은 이 중요한 통찰을 얼른 내팽개쳐버리고, 비움을 우리 인간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출발점으로 삼기를 거부하는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여기서 말하는 비움을 가지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 수 있다. 사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움이라 생각이 든다.

 

“신앙생활에서 죽음의 가장 큰 결실은 자유다. 고린도후서3:17절에 주님은 영이시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다. 비움은 조금씩 자유의 빛깔을 얻는다. 사막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을 dlg은 채 몇 년 동안 혹독한 수형 생활을 하는데 갑자기 어떤 이가 문을 열고는 삶을 찾아 나가라고 했다. 그 때 비로소 지식 나부랭이들이 완전히 떨어져 나간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였다. 물론 몇 년 뒤에 도로 덧씌워졌지만 말이다.” 살아 있으나 죽은 것 같은 삶이 진정한 살아 있는 삶이다. 이것이 자유의 삶, ‘너희가 진리 안에서 자유케 되리라’의 성취된 삶이다.

 

“사막에서 받은 소중한 선물인 자유를 결코 잃어본 적이 없다고 믿는다. 비록 노예 같은 삶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이를 고수 한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노예 생활은 고되지만 확실함을 준다. 말하자면 당신에게 영혼을 달라는 대신 안정을 준다. 영혼을 팔라고 하루에 일흔 번 꼬임 받는 바로 그 순간에 사람은 확실함과 안정성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우리는 지금 영혼을 팔아 안정을 누리고, 세상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다. 시간의 노예, 상황의 노예, 물질의 노예, 언제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겠는가? 단 하루의 자유를 누리는데도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속박하는가? 아내에게 안식을 하라고 했다. 집, 아이들, 교회를 두고 어디를 가란 말인가? 이 모든 것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걱정 말라고 하는데도 걱정이 된다고 한다. 자유의 경험이 없으니 주어도 누리기 힘은 우리의 길들여진 삶을 어떻게 깨뜨릴 수 있을까?

 

“사막은 이런 말로 나를 일깨웠다. ”자 친구, 얼굴을 들고 웃어보게, 머리에 기름도 좀 바르고, 주위를 둘러봐, 솔로몬도 그 온갖 영화 속에서도 이 꽃 하나만큼 차려입지 못하였네. 오늘 사막 한가운데서 자넬 위해 준비한 이 꽃 앞에 시바의 여왕도 검불 하나에 지나지 않아“ ”겸손함을 잃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음에도 힘든 줄 몰랐다.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게 되었을 때 더는 겸손을 찾을 필요도 없었고 자신에게 솔직한 걸로 충분했다.“ 사막에서 발견한 한 꽃의 아름다움, 그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의 아름다움,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보시지 않을까?

 

“우리의 기도학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하는게 아니라 일상적으로 규정된 프로그램들을 소심하게 준수할 것을 사람들에게 요구하고 또 그룹을 세련되고 획일화하는 힘을 높이 평가하면서, 그 틀을 잘 유지할 수 있는 개인만을 양산하는 데 힘을 쏟는다. 하지만 이는 위험하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랑에 관한 모든 선언들에도 불구하고, 기도는 예수를 조금씩 알아가고 그 분의 얼굴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뵈옵는 데로가 아니라 완고해지려고만 하는 구조들을 경직시킬뿐이고, 구조 밖에서 이루어지기도 하는 주님의 현존과 활동을 알아차리도록 돕지 못할 것이다.” 기도의 형식이 기도에 도움이 되지만 기도에 방해도 될 수 있다는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기도는 형식이 아니라 주님과의 자유로운 교제이다.

 

제일 나쁜 태도는 그분께 자신을 완전히 맡기지 않는 것이었다.

 

사하라 사막 위에 난 길을 천천히 걷는 동안 더욱 힘써 ‘덕행들’을 갈고닦으리라는 어떤 웅변같은 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즉 “내게는 모두가 똑같다. 부자건 가난하건, 중국인이건 남미인이건, 백인이건 흑인이건”, “나는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분으로 족하다.” “내겐 사람들과의 끝이 나쁠수 있지만, 하나님아고는 늘 좋아.” 우정이 친교일진대, 주님께서 나와 함께 나란히 걸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는 것, 정말 자신만의 것을 내게 주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사막에서 저절로 알아지는 깨달음이었다. 사막의 유익함이다. 사막이 아니더라도, 홀로 있음, 고독, 단절 속에서 얻는 유익함이다. 한 번쯤 경험해 볼만하다.

 

사막에서 얻은 교훈, 사막에서 몇 년씩 지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막과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봄은 어떤가? 깊은 시골에서 몇 주, 몇 개월을 지내보는 것이다. 깊은 시골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조금은 한적한 곳에서 지금 있던 곳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단절해 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구속 속에서 사는 우리 현대인들에게는 수많은 깨달음을 줄 것이다. 비움을 경험케 할 것이다. 자유아닌 자유를 줄 것이다. 진정한 삶을 제공할 것이다. 언제나 제대로 살 수 있을 때가 올 것인가? 불쌍한 현대인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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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힌트
이츠키 히로유키 지음, 채숙향 옮김 / 지식여행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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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이어령 박사가 있다면 일본에는 이츠키 히로유키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고령에 삶의 깊이를 전해주는 잔잔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삶의 지식을 전해 준다. 그것도 아주 실생활에 정말로 도움이 되고, 아주 밀접한 이야기들을 전해준다. ‘삶의 힌트’ 참 내용에 맞는 제목이다. 일본의 지성은 우리의 삶에 어떤 힌트를 주고 있는가 아이스크림을 떠먹듯 그 달콤함을 느껴보자.

 

<격려하다> 정말 과학의 진보란 어떤 의미일까? 현대인들은 조금씩 건강과 행복은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현대 의학은 건강을 지상 명령처럼 강요한다. 병원에서는 건강은 선이고, 병은 악이라고 한다. 의학은 부정을 기본으로 한다. 의학은 눈, 귀, 심장이 불편하면 안된다고 한다. 고열을 얼음으로 식히는 것을 대치라고 한다. 땀을 흘려 열을 내리는 것을 동치라고 한다. 힘든 사람에게 “힘을 내”라고 하기 보다는 같이 울어주는 것이 동치이다. 짐을 짊어져주고, 슬퍼해주는 동치가 필요하지 않을까? 의학의 대립 사상보다 긍정의 사상 동치 사상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의학으로만 고치려 하지 말고 동치 사상, 즉 공감, 긍휼, 함께의 마음으로 세상을 치료해 보자.

 

<맡기다> “인생이란 생각대로 되지 않는 법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한 일은 불가능합니다. 뭔가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힘을 능가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나는 그것을 신비로운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신비로운 힘이 아니라 한 인간의 능력을 넘는 뭔가 커다란 흐름 같은 것입니다. 생명의 리듬 같은 것이라고 할까. 나는 거기에 나를 ‘맡긴다’는 감각을 조금씩 개발해가고 싶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앞으로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지요” 겸손한 저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뭔가의 힘을 느끼는 것 같다. 학자의 양심을 느낀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가볍게> 나는 아내에게 자주 핀잔을 듣는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농담을 한다게 그 이유다. 나도 모르게 말하고 싶은 것이 발동을 한다. 아내를 생각하며 절제를 해야 하는데 역시나 또 실수를 한다. 아내는 농담을 하지 말고 유머를 하라고 한다. 그 의미는 알지만 쉽지는 않다. 구분하기가 어려워 늘 또 실수를 한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아내들이 집안에서 가족들과 특히 부모 밑에서 멋진 농담을 생각해 내는 것이란다. 재치 넘치는 농담을 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농담을 해야 좋은 며느리감으로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매일 같이 스페인어 농담을 생각하고 메모하곤 한다곤 한다. 농담을 하거나, 유머를 하면 사람이 가볍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것도 유교적 전통에 의한 선입견이라고 한다. 심포지엄이란 말은 그리스 시대에 많이 먹고 마시면서 활기찬 수다를 펼치는 그런 모임을 가리켰다고 한다. 활기차고 자연스럽다 보면 상처를 받는 사람이 나온다. 이래서 어렵지만 자연스러우면서 분위기가 항상 편안하고 즐거운 분위기였으면 좋겠다.

 

<혼내다> “혼나고 또 혼나서 / 저 아이는 마을까지 심부름하러 -작곡 시미즈 가츠라, [혼나서] 선생님이란 표현에는 ‘선생님에게 혼나다’가 연결이 된다. 선생님은 혼내는 분, 혼내시는 분은 선생님, 선생님은 혼내셔야 한다. 혼내셔야 진정한 선생님이 되신다. 젊은 세대 중에는 어른들에게 진지하게 ‘혼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 듯싶다. 자기를 혼내지 않는 부모를 애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원망하는 청소년들도 있다. 아이를 혼내지 않는 부모가 젊은 세대를 망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 강남의 아이들이 소년원의 아이들을 부러워한다고 한다. 왜? 소년원의 아이들은 인성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강남의 아이들은 공부만 잘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한다. 공부만 잘하면 모든 것에 면죄부를 준다고 한다. 나는 잘 혼내는 편이다. 그런데 혼나는 사람들이 싫어한다. 그래서 절제한다.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선물을 하면 사람의 앞길이 열리고 위대한 사람 앞으로 그를 인도한다(잠18:16절)

“남몰래 선물해두면 분노는 진정되고, 뇌물을 주머니에 넣어주면 격조도 가라앉는다.(잠21:14절)

“사람들은 서로 다양한 것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건이라는 것이 간혹 말이 이상으로 마음을 잘 전달해준다고 한다면, 저는 ‘보낸다’는 행위의 어려움, 깊이 재미를 인식하여 선물을 보내기의 고수, 선물 받기의 고수가 되고 싶습니다.” 나도 남에게 주는 훈련을 더욱 더 많이 해야겠다. 있어서 주는 것이 아니라 없어도 늘 주는 습관을 가져야 진정 줄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나를 위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겠지만. 이것도 이기적인가?

 

학자의 깨달음, 유연한 자세로 살아가는 여유로운 생각, 잘 살아 보고 싶은 마음 속 깊은 갈망 등이 잘 표현된 책이라 생각된다. 나이가 많이 들면서 하나, 둘 내려놓는 저자의 자세를 본다. 젊은이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너그러운 마음을 본다. 학문조차도 자신의 것을 내려 놓고 양보하는 것을 본다. 많이 배웠지만 티내지 않고, 고집스럽게 주장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선택할 수 있는 마음을 주는 소파위에 누워서 읽으면 더 좋을 것 같은 그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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