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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한번은 고수를 만나라 - 경지에 오른 사람들, 그들이 사는 법
한근태 지음 / 미래의창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착각에 산다. 내가 뭔가 특별한 것으로 오해하고 살아 왔다. 나는 직관을 좋아 한다. 뭔가 정형적인 것은 불편하다. 나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좋아 한다. 말이 안통하면 답답해서 견딜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스스로 고수라고 생각하는 참으로 신기루 속에 살아 왔다. 이 책을 보면서 더욱 더 확실하게 내가 고수가 아니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고 책을 덮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고수의 길을 갈 것인가? 내가 고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제대로 고수가 되는 길을 가 보아야 겠다.
저자는 고수가 되기 위한 몇 가지 중요한 점을 말한다. 첫째, 고수로 가는 길, 둘째, 고수, 그들이 사는 방식, 셋째, 고수의 마음 관리, 넷째, 고수의 생각법, 다섯째, 고수, 사람을 얻다. 고수의 길에 있어서 나의 부족한 점을 중심으로 회초리를 들어 보겠다.
고수는 다작한다. 나는 지금 글을 쓰는 중이다. 한가할 때 주로 쓰는데 고수는 바쁠 때도 쓰라고 권면한다. 특히 시를 쓰는데 시는 조용한 시간에 떠오름이 없이는 잘 안 된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하루에 한 편씩 써보기로 다짐해 본다.
고수는 안정을 추구하지 않는다. 빵 중에 가장 맛있는 빵이 ‘안전빵’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안정을 추구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공(公)자 들어간 직장을 최고로 친다. 신의 직장이라 부러워한다. 일하는 것보다 돈을 많이 주는 직장, 대충 일해도 짤릴 염려가 없는 직장, 들어가긴 어렵지만 들어가는 순간 평생이 보장되는 직장으로 사람들이 몰린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는 고수가 탄생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이런 곳은 장기적으로 보자면 신의 직장이 아니라 신이 저주한 직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정말로 공감한다. 두 개의 화살을 갖지말라. 두 번째 화살이 있으면 첫 번째 화살에 집중하지 않는다. 가장 무서운 것은 술에 취하는 것과 현 상황에 안주하는 것이다. 고수는 혼자 힘으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 조직의 힘으로 살아간다. 조직 안에서는 폼을 잡지만 조직을 떠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홀로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40중반에 책 읽기에 도전했고, 첼로에 도전할 것이다. 50에 베드민턴에 도전했다. 70이 넘어서는 방송에 도전할 것이다. 50대 중반에는 학교를 운영할 것이다. 끝없는 도전이 나의 좌우명이다.
축척의 힘을 믿어야 한다. 피카소가 2만점이 넘는 작품, 아인슈타인은 240편의 논문, 바흐는 매주 한 편씩 칸타타를 작곡했고, 에디슨은 무려 1,039개의 특허를 신청했다. 고수들은 좋은 작품 못지 않게 형편없는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웰컴 투 동막골의 음악감독을 맡은 아사이시 조는 “창조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마나 많이 보고, 듣고, 읽었느냐이다.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다. 창조는 축적의 결과물이다. 지식과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전공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고교 시절부터 문과와 이과를 구분한다. 무식한 행위다. 전 세계에서 이과와 문과를 고등학교 때부터 구분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중국의 최고의 명문 칭화대의 교육 이념 중 하나는 ‘문리삼투’이다. 문과적인 것과 이과적인 것이 서로 반응하고 교감하는 인재를 키우겠다는 것이다.
피터 드러거는 GE의 슬로언과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이런 조언이라면 마음에 들겠지 하는 식으로 타협하지 않았으면 합니다.“라고 드러거는 말했다고 한다.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만장일치가 되면 그는 실행을 유보했다. 만장일치란 뭔가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드러거는 하루하루 성장했다. GE에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드러거는 없었을 것이다. 드러거는 하버드로부터 4번의 콜을 받았지만 거절하고 베닝턴 대학을 선택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이다. 3년마다 늘 새로운 것을 도전한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고수는 몰입해야 한다. “병사가 잊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전쟁에 나가라는 명령을 받고는 가정을 잊고, 싸움에 임해서는 부모를 잊고, 진격의 북소리를 듣고는 자신을 잊어야 한다.” 사마전의 <사기>에 나오는 말이다. 나는 지금 몰입하고 있는가? 일터에 나와 아내를 걱정하고 있지는 않는가? 집에 가서는 일터를 걱정하고 있으면 안 된다. 있는 곳에서 몰입을 하는 것이 고수다.
고수는 심플하게 산다. 중세 기독교 성자 토마스 아 캠피스는 이렇게 애기했다.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무성한 소문에 대해 듣지 않게 된다. 차라리 집에 있으면서 복된 무지를 누리는 편이 낫다. 밖에서는 최신 소식을 듣는 기쁨이 있을지 모르지만, 분명 그 결과 해결해야 하는 혼란스런 문제는 만날 것이다.” 주기적이 단식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을 주듯 복잡한 시대에는 주기적으로 자신을 사회로부터 차단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뉴스를 늘 듣는다. 안 들으면 궁금하고, 허전하다. 그러나 실제로 들어서 도움이 안 되는 것도 많다. 한 두주 한국을 떠나 있을 때 뉴스를 듣지 못했어도 아무 일 없이 잘 돌아가는 것을 보면 괜히 많은 소식을 접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게 된다.
고수는 자신을 피알하지 않는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연연하지 않을 수 있는 게 대인이다. 억지로 공을 내세우지 마라. 공은 내세우는 순간 날아가 버린다. 진짜 금은 도금할 필요가 없다." 노자에 나오는 말이다. 자기 입으로 자랑하는 것은 하수다.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초조해 하는 것이 하수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말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한다. 나는 분명 하수다. 더 많이, 아주 더 많이 키워야 한다. 바다처럼 많은 물로 담아야 한다.
고수는 혼자 있어도 두렵지 않다. 고수는 자발적 고독을 즐긴다. 나는 일주일에 하루는 몰입하기 위해 도심을 떠난다. 홀로 있기 위해 일을 떠난다. 하루가 짧다. 전에 3주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본 경험이 있다. 집중, 몰입, 정리, 혜안을 얻을 수 있었다. 홀로의 유익이다. 고수는 과감히 이런 시간을 갖는다. 그러나 현실이 허락지 않는다. 그래도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줄다리기를 해 봐야 할 것이다. 고수는 안주하는 안전빵을 먹지 않는다. 고수는 도전빵을 먹어야 살 수 있다. 나는 이제 새로운 빵으로 배를 채워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