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 해변의 펜더윅스
진 벗설 지음, 정성진 옮김 / 지양어린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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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아이가 대안학교를 다닌다. 일주일 동안 고난학습으로 제주도 한라산 등반을 떠났다. 너무 힘들다고 가기 싫어했다. 그러나 한라산 정상까지 가야하는 힘든 여정을 반드시 해 낼 것이다. 그 고난을 통하여 정말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아이들은 학교 외에서 배우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학교에서만 가르치려 한다. 학업만이 배움이란 생각이 아이들을 약하고 문제 많은 아이들로 만들지 않나 생각된다. 나도 어렷을 때 아버님이 서울로 직장을 옮기게 되어 당시 초등학교 5학년 밖에 안되는 누님이 동생들을 밥을 해주면서 얼마동안 보낸 적이 있었다. 나는 너무 어려서 잘 기억이 없지만 누님에게는 큰 인생의 경험이 되었다. 그 때 동생들을 잘 돌보아서 어른들의 칭찬이 자자했던 기억이 난다.

 

갈매기 해변의 펜더윅스는 엄마 아빠가 여행을 떠나고 언니 로잘린드 마저 친구와 함께 뉴저지 주의 해변으로 휴가를 떠나게 된다. 결국 둘째 스카이예, 제인, 베티, 세 자매들은 오랜 친구 제프리와 합류하고, 새로운 친구들도 만나게 된다. 막내 베티는 음악을 사랑하는 제프리와 옆집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고 고모가 다치는 사건을 해결하려 노력하는 리더로서의 책임을 다하려는 스카이예의 모습을 본다. 특히 스카이예는 책임감이 강해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도 안계시고, 언니 마저 없는 중에 가족을 지켜내려는 강한 책임감 속에 갈등하고, 고민하게 된다. 또한 세 자매는 친구들과의 만나서 그들과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관계의 훈련을 하게 된다. 또한 자기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데, 베티의 경우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여 음악회를 하기도 한다.

 

저자 진 벗설은 미국 사회에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학교나 집에서 부모님의 손길 아래 약해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래서 부모님이 집을 떠나는 설정을 함으로 아이들이 그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게 된다는 긍정적 설정을 하고 있다. 어디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는지를 제공하려 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특히 미국 사회에서는 아이들만 집에 놓고 간다는 것이 통념적으로, 법적으로도 쉽지 않은 설정인데 이런 설정은 그 자체로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생각된다. 또한 그 속에서 아이들답지 않은 책임감, 서로의 갈등을 잘 해결해 가는 아이들, 특히 후버 강아지가 고모를 놀라게 해 고모가 다치고, 다친 고모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는 과정 속에 특별한 책임감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가는 스카이예의 탁월한 리더십은 아이들에게 모험과 책임의식을 심어주게 된 것 같다.

 

이 소설은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별다를 것도 없고, 흥미진진한 전환도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이런 설정은 나름 색다르고, 한 번 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 것 같다. 오래전 “나홀로 집에”라는 영화의 설정도 아이 혼자 집에 남게 됨으로 겪는 애피소드를 소재로 하고 있는데 그 설정이 기본적으로 흥미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 이런 상황이 아이들이 자신을 찾아가게 되는 계기가 되며, 가족이라는 강한 연대감을 갖게 되기도 했다. 따라서 미국 사회에 특히 부모들에게 이런 모험을 하게 해 주는 기회를 제공하라는 간접 멧세지도 있는 것 같다.

 

한국도 남들 따라가는 것은 누구보다도 잘하는 나라로서 미국 사회를 똑같이 본받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과잉보호로, 밀착 행동으로 갑갑해 하는 어린아이들에게 해방감을 줄 수 있도록 해야 겠다. 또한 뭔가를 스스로 해 보는 기회를 제공함으로 더욱 성숙한 아이로 만들어야 함을 교훈하고 있다. 나는 큰 아이를 중 3 2학기에 미국에 홀로 홈스테이 하는 가정에 1년 유학을 보낸 경험을 갖고 있다. 물론 너무나 힘든 시기였다. 영어도, 문화도, 음식도 충격적일 정도로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본인가 가겠다는 바램으로 갔기 때문에 잘 이겨낼 수 있었다. 그 경험이 지금의 모습을 갖게 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까지 도전하며 외교관을 꿈꾸며, 유엔 근무를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둘째는 기숙사 학교가 있는 고등학교 대안학교에 가서 지방에서 서울을 오가며 많은 경험을 하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 힘든 관계 훈련을 함으로 자신감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이런 경험이 미국에 홀로 1달 반을 지내고 오고, 외국인에 대한, 여행에 대한 두려움을 싹 씻어냈다.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통해 도전정신, 스스로 해보고, 자신을 찾아가는 기회를 만들었으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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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멀어지게 된 45가지 이유 - 어제와 다른 나로 사는 법
바실레아 슐링크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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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나는 수녀님들의 생활을 약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저렇게 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수녀님들의 묵상의 세계를 요즘은 조금 알듯하다. 조용한 묵상이, 자연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있을 때에 깨닫는 것들은 참으로 깊고 소중하다. 나도 기도원에 가서 묵상을 하면 깊은 깨달음이 있어 이젠 묵상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다. 바실레아 슐링크의 깊은 묵상에서 나온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45가지는 참으로 귀하다. 특별한 간증이나, 이야기 거리는 없다. 그러나 심연의 죄성들을 끄집어내는 영성은 참으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죄성을 알아차리고 지적할 수 있을까? 내가 속에 깊이깊이 숨겨 놓아서 아무도 찾지 못할 것 같은 그런 것들을 속속들이 파헤쳐 우리를 발가벗기고 있다. 이 책은 나를 다 벗기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벗기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벌거벗음이다. 오히려 시원함이랄까 영적 샤워를 하는 느낌이다. 차라리 벗어 던지고 솔직히 고백하니 치유받는 느낌이다. 나의 숨겨놓은 죄들을 고백해 보자.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하는 불신앙과 낙심, 우리는 낙심을 그저 내가 손해보는 신앙의 자연스런 마음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러나 슐링크는 확실하게 집어주고 있다. 낙심은 죄라고. 그렇다. 낙심 속에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죄가 숨어 있다. 나는 이 죄를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나에게 손해가 되는 면들만 보았다. 그러나 나의 손해 이전에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전적인 불신앙이 있기에 낙심이 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젠 낙심이 오면 먼저 믿지 못하고 있는 믿음을 점검하자.

 

원한과 시기의 화살 비웃음. 남을 비웃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비웃음 속에 원한과 시기의 화살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저 나보다 낫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비웃음의 깊은 속에는 그 사람을, 세상을 향한 원한과 원망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시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다. 비웃음으로는 안된다. 기쁨의 웃음, 축복의 웃음을 주어야 한다.

 

죄가 없다고 믿는 어리석음 자기의와 자기합리화. 자기는 옳다고 하는 생각은 나에게 참으로 많다. 그래서 회개가 별로 없다. 적당히 잘하고 있고, 이정도면 잘하는 편이야 하는 나의 합리화 속에서 살고 있다. 나쁜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문제도 없어 라는 생각이 더욱 회개가 없는 삶을 살게 만든다. 그러나 단 1%라도 죄가 있다면 그 1%에 아파해야 한다. 울어야 한다. 아니 통곡을 해야 한다. 1%는 결코 1%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2%, 50%, 100%로 갈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훈련은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자기 사랑 없음을 인정하고 그 깊은 마음 속의 사랑으로 채워야 함을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는 마음 존경심의 상실. 나는 대통령도, 정치인도, 교계의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심도 부족하다.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고, 뭐 특별한게 있겠나 싶은 마음에서이다. 물론 나보다 더 훌륭하다. 실제로 나보다 똑똑하고, 노력도 더 많이 했고, 성실하고, 헌신적이다. 그런데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게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무시라는 점이다. 즉 모든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분인데 내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윗이 사울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죽을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질서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그 생명을 지켰다. 아! 나는 무엇인가? 다시 살아야 겠다. 지난 세월을 후회한다. 존경심으로 속과 겉을 채우자.

 

자신을 섬기려는 마음의 병. 까다로움. 나는 성격이 까다로운 편이다. 반찬도 같은 반찬이 나오면 잘 안먹는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도 같은 음식을 두 끼를 먹지 않는다. 꼭 다른 메뉴를 찾아 먹어야지 직성이 풀린다. 남이 먹자고 해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려고 무던 애를 쓴다. 내 물건을 누가 함부로 만진 흔적이 있으면 불편하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섬기려는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우리의 자아가 병들면 영혼이 까다로워진다. 까다로워졌다는 것은 주목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자아에게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응석을 받아주길 기대한다. 결국 나의 이때까지의 까다로움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한 응석이었다. 내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응석인가? 이젠 응석을 벗자. 어른으로 의젓하게 서자. 좀 편안하게, 적당하게 넘어가는 훈련을 해 보자.

 

다시 한 번 바실레아 슐링크의 깊은 사색에서 나온 영성에 감탄한다. 그저 배워서 나오는 영성이 결코 아니다. 책을 통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말씀 속에 살고, 살면서 말씀을 보고, 그래서 말씀과 삶이 하나로 만들어져야만 나올 수 있는 영성이다. 내가 영적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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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구 할매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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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는 자체가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 예기치 않게 나라가 두 동강나는 분단 역사의 시작,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가족을 비롯하여 동네, 두 개의 철로가 평행선을 긋듯 남북이 사상의 평행선을 그으며 살았던 역사, 그나마 그 쓰다버린 종이장 보다도 못한 이념 때문에 동족상잔의 통한의 세월들, 우여곡절 끝에 선량한 나라와 군인들의 도움으로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찾았고, 5.16 군사혁명으로 인한 군화발이 전 지방을 휩쓸던 세월들, 광주민주항쟁에 의한 현대판 지역갈등에 의한 웃지 못하다가 울고 말아버린 무고한 죽엄들이 있었다. 이 모든 역사가 어찌 논픽션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역사는 픽션 중에 픽션일 것이다. 우리네 부모 세대들이 이런 질곡의 세월들을 견디어 왔다. 그 와중에도 88올림픽, 2002 월드컵, 세계 경제 10위, G20 정상회의 의장국 등을 맡는 영광을 얻었다. 역사 속에서 희와 비를 번갈아 소나기와 화창한 날씨를 번갈아 맞이하듯 맞아가며 살아온 주인공들이 우리의 근대 1세대들이다. 이런 세월들을 살아온 모든 분들은 다 소설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바로 이분들을 소재로 삼았다. 왜 진즉 이들을 알아보지 못했는가? 왜 이분들의 지뢰밭을 걷는 것 같은 시간들을 보지 못했는가 후회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도 한 영화감독이 메구할매의 삶을 영화화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메구할매의 삶 자체가 파란만장하다. 「계성재가솔부」에 수록된 15대 종부인 수항당 신 씨를 거쳐 16대 안순당과 17대 여례당 권 씨에 이르는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매구할매 진녹두와 더불어 한 시대를 당당하고 기품 있게 살았던 여례당은 수백 년 동안 면면이 이어온 가문의 전통을 지킨 여장부였다. 여례당은 수많은 가솔들과 함께 해방과 육이오 전쟁을 거치며 하루아침에 외종손인 자식과 지아비를 폭도들에 의해 잃는다. 자식을 잃은 아픔과 남은 사람들을 지키려 온 힘을 쓰는 모습에서 당찬 여인의 버팀목 같은 우리 부모님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종갓집과 종손 종부가 고택을 지켜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고, 집안을 지켜내고, 가족까지 건져낸 우리네 어머님들의 강인함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한국의 힘이다. 이런 세월 속에서 견뎌낸 부모 세대의 당당함이 있다면 현대의 젊은이들은 쉽게 변질되고, 남의 남편을 빼앗고, 뺏기고, 깊고 진솔한 사랑을 사라지고 가볍고 변하는 사랑을 하는 모습들을 주인공 은현을 통해 비추고 있다. 그렇다. 한국의 근대를 살아온 모든 분들의 삶은 다 소설인데,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삶은 예전에는 볼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삼류 소설이다. 우리 부모님들의 세상을 이겨내는 힘은 다 어디에 갔는가? 사랑도, 목표도, 가족도 쉽게 바꿔버리는 이 세대는 어디에서 떨어진 외계인 같은 사람들인가? 아이 하나도 버거워 다시는 애 낳지 않겠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젊은 엄마들은 어디에서 나온 자식들인가? 교육비 많이 들고, 애를 낳아 몸매도 버리고, 삶을 즐기지 못하니 아예 낳지 말자고 캠페인을 벌리는 세대들은 어디에서 솟아났는가? 작가는 은연 중에 멧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우리 장모님은 현재 88세이다. 일제, 6.25 등을 겪으며 허씨 가문의 재취로서의 삶을 시작하여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늦둥이로 보셨다. 한학은 하셨지만 농사에 흥미도 기술도 없으신 장인을 모시고 일평생 밭에서 사셨다. 일제 강점기에는 위안부로 잡으러 온 사람들을 피해 집에 몰래 숨어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만약 그 때 끌려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빈농의 아내로서 더 이상 자녀를 키워낼 수 없어 두 딸을 외지로 친척집에 보내고, 직장으로 보내 돈을 벌게 할 수 밖에 없었고, 아들은 딸의 집으로 보내 공부를 시킬 수 밖에 없었던 세월을 보내셨다. 원치 않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이런 세월 속에 장손으로 1년이면 십수번의 제사, 도와주지 않는 형제들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른다. 농사로 구부러진 허리, 돈이 없어 돌볼 수 없는 치아로 다 빠진 이로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이 장모님의 삶은 분명 소설이다.

 

다음은 우리 어머님의 삶이다. 경찰의 아내가 되어 청주의 시부모집에 들어가 시어머님의 시집살이에 죽고 싶어 방죽(저수지)로 돌진하다 친척에게 발견되어 죽지도 못한 삶을 결혼 후 60년이 넘게 살았다. 겨우 자리 잡고 직장생활하던 남편의 사표로 구할 직장이 없어 독일의 탄광부냐, 원양어선, 즉 배를 타느냐의 기로에서 배를 타고 참치 잡이를 나서 남편을 일평생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한번 가면 3년씩 집에 오지 않고, 5남매를 박봉의 월급으로 교육시키며 살아내야 하는 버거운 삶이었다. 연약한 아내로서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 무거운 집에 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를 눈물로 불렀던 분이시다. 늘그막에 더 이상 배를 타지 않고 돌아온 남편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떨어진 탓에 정은 다 떠나고 부부라는 주민등록등본의 기록에만 남은 그런 부부가 되어 늘 다툼의 연속이었다. 서로 따뜻하게 함께 여행한번 못하고, 다정한 말 한 번 건네지 못한 세월을 보내며 남편을 먼저 보냈다. 막상 병석에 누워있는 구박하던 남편도 그 방에 없으니 허전하다며 혼자 있음이 버겁다고 한다. 남은 것은 손주들 잘 되는 것 기대하며 기도를 올리는 삶을 낙으로 삼으시며 세월을 지켜내고 있다. 어찌 픽션이 아니겠는가?

 

우리 부모세대들의 위대한 삶이 나라를 지켰다. 우리의 행복한 가정을 지켰다. 우리 젊은이들이 조금만 힘들어도 못살겠다고 헤어지는 세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1997년 IMF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많은 가정이 파탄났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이 때 지켜내야 하는 것이 가정이지 않았겠는가? 우리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세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우리 부모님에게서 배우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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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다시 쓴다
샘 파르니아 & 조쉬 영 지음, 박수철 옮김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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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과 2012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1912년 4월이 아니라 2012년 4월에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면, 그리고 특히 카르파시아호 대신에 소생술의 미묘한 부분까지 정통한 전문가들을 태운 구조선이 충돌했다면 신문의 머리기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 체온이 떨어지면 뇌세포가 보존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결론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임사체험, 즉 죽은 이후에 수 시간, 수 날 지난 후에도 살아나서 죽은 이후에 영혼이 가보았다는 세계에 대한 보고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죽음에 대한 결론을 다시 한 번 재고해 보고, 죽은 육체라도 살리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좀 더 긴 시간 동안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이후에 가 보았다는 세계에 대한 보고가 공통되는 것은 터널을 봤다는 것이다. 터널은 여러 가지 색을 칠한 만화경 같은 터널이었다. 터널은 반짝반짝 윤이 났고,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는 밝은 빛, 자신을 반겨주는 따뜻한 빛도 봤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밝은 빛 외에도 환하게 빛나는 존재도 봤다는 것이다. 그 존재에게 사랑, 자비, 동정을 느꼈다. 그 분은 절대적으로 완벽한 존재였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혹은 예수님으로, 혹은 그저 빛나는 존재로 해석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절대 확신으로 보고함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노벨상 수상자인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고 존 에클스 경은 아마 정신이나 의식을 뇌와 별개의 것으로 바라본 가장 저명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에클스 경의 이론은 그의 저서 <자아와 그 두뇌>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는 의식적 경험의 통일성이 뇌 신경세포의 작용이 아니라 정신에 의해 구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신이나 의식이나 영혼이 뇌세포 활동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통합되고, 그것을 단일한 통일체로 변모시킨다고 봤다. 그는 뇌가 모든 일을 수행한다거나 의식적 경험이 단순히 뇌 활동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잘못으로 여겼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적 자아는 뇌 신경세포의 작용이 무대에 올린 공연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구경꾼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정말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행동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착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는 “우리의 뇌와 우리의 의식적 자아라는 2가지 실체가 결합”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뇌를 “의식적 자아나 개인에게 외부세계와의 소통 수단을 제공하는 도구”로 여겼다. 이를테면 어떤 의지적인 움직임을 개시함으로써 ‘자아’를 통해 뇌의 행동을 조절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정신이 그런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서로 별개의 관계인 정신과 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결론적으로 뇌가 곧 인간 존재의 전부가 아니며, 뇌가 죽는다고 곧 다 죽었다, 소멸되었다고 볼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뉴턴의 물리학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여러 물리학자들처럼 죽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현상으로 여겼지만,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죽을 때와 죽은 이후의 시간에 일어나는 일에 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런 깨달음은, 우리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죽음 자체를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을 하나씩 발견한 이루에 비로소 가능해졌다. 죽음은 끝이다라는 생각에서 또 다른 존재 영이 있다는 생각이 그렇다면 다시 그 영이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육체를 살리는데 노력을 기울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의식, 자아, 즉 영혼이 죽음 직후에 진정한 의미에서 상실되는가이다. 의식, 자아, 즉 영혼은 그 시점에 하나의 실체로서 영원히 소멸되는가? 현재 속속 등장하고 있는 해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의식, 즉 영혼은 죽음 이후에 뇌에서 세포손상과 세포소멸을 점진적으로 유발하는 무산소성 뇌손상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실체로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즉 뇌 신경회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상실’되지 않는다.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해 의식을 조절하는 뇌 신경회로와 그 밖의 뇌 부위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지만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에 일어나는 일을 연구할 수 있다.

 

저자는 어웨이 연구라는 것을 시작했다. 어웨이 연구란 임상적 사망 도중의 인간의 뇌와 의식을 연구하는 데 모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의 국제적 협업이다. 또한 그것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두 개의 나란한 길을 추진력으로 삼은 전문가적 관심과 연구 작업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길은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뇌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소생술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길은 죽음 도중에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장정지는 뇌기능이 마비되어 뇌사 상태에 빠질 때의 인간의 의식을 연구할 수 있는 아마 유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개의 길은 우리가 생명을 구하려고 애쓸 때 단지 하나의 의학적 과정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간의 의식과 뇌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밑 걸음이다. 의식과 인식을 조절하는 뇌 신경회로가 붕괴한 사람의 정신, 의식, 영혼을 볼 수 없어도 아직 그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 이 점을 결코 무시하거나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영혼이 있다는 것을 연구하여 증명하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이후에 뇌가 작동하지 않을 때도 계속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은 오늘날의 신경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우리의 인식과 달리 뇌의 일반적인 전기적 혹은 화학적 과정을 통해 생성되지 않은 별개의 과학적 실체일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추가적인 입증을 거친다면 이것은 새로운 신경과학적 패러다임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인간의 의식, 영혼이 죽음을 정의하는 기존의 경계선을 훨씬 뛰어넘어서도 존재한다면 과연 그것은 하나의 실체로서 진짜 죽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의 새로운 연구를 통해 앞으로 이 문제를 비롯한 여러 의미심장한 윤리적 문제를 꾸준히 파고들어야 한다.

 

죽음을 다시 쓴다. 책의 제목으로 적합하다. 죽음이란 정의가 이젠 육체로서 끝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증명들을 보면 수긍이 간다. 또한 수많은 종교들이, 그 의식들 속에서, 대부분의 장례 예식을 보더라도 다들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영혼의 존재에 대한 주장을 하면 극구 반대 입장에서 서서 증명하려 애를 쓴다. 이 책의 저자가 수많은 증거 자료와 과학적 접근 등을 통해 필설하는 부분을 냉정하게 고려하여 죽음에 대한 정의를 해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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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 홀리데이 (2013~2014년 최신판) - 내 생애 최고의 휴가 최고의 휴가를 위한 여행 파우치 홀리데이 시리즈 1
전혜진.김준현.박재현 지음 / 꿈의지도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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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아직 발리에 미도착 중이다. 발리에 들은 지는 벌써 수 십년. 왜 나는 아직 못가 보았을까? 그런데 왜 발리, 발리 했는지를 이 책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더욱 가고 싶은 마음에 갈증을 느끼게 한다. 발리의 매력을 내 느낀 대로 적어본다.

 

발리의 자연 환경은 가히 최고다. 각종 탑과 바다, 모래, 풍경, 노을 등등의 자연의 아름다움은 그야 말로 환상이다. 자연이 기본적으로 바쳐 주는 곳이다. 다른 곳들은 인위적인 것이 있다면 여기는 기본이 풍경이다. 풍경이 기본으로 깔리니 더 이상 아무것도 없어도 될 만한 것 같다.

 

발리는 자연에 최첨단을 심었다. 자연만 있으면 불편함이 있을 수 있는데 자연 속에 최첨단 시설을 넣어 편안함을 더하였다. 원주민의 생활 공감에 인터넷이라니, 우아한 카페라니, 아늑한 침대라니 누가 이런 상상을 했을까? 자연과 첨단이 만난 환상의 커플 휴양지 발리.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발리는 먹거리가 많다. 먹거리가 너무나 다양해서 고르기가 힘들 정도다. 해산물, 특산물, 신 개발 메뉴 등등 너무나 다양해서 먹는 즐거움 또한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먹을거리만 찾아 다녀도 다 먹지 못할 정도다. 먹는 즐거움이 휴양과 첨단에 더해지니 발리는 최고의 휴양지로 손색함이없다. 이미 다른 곳들이 너무 많이 개발되어 발리가 이젠 뒤로 밀린 느낌이지만 절대로 아님을 입증하는 것 같다.

 

발리는 쇼핑과 공연이 어우러져 있다. 그냥 나만의 즐거움으로 끝날 것들이 서로 어우러지는 공간이 있다. 다양한 공연을 통해 간간히 지루함을 달래줄 수 있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여행은 쇼핑인데 다양한 쇼핑 거리는 여행을 더욱 빛내주고 있다. 발리는 아름답다. 발리는 최고의 휴양지다. 아직도 발리는 살아있다. 구관이 명관이라 했던가. 발리는 아직 손색없는 휴양지도 추천한다. 아니 내가 먼저 빨리 달려가야겠다. 다음 휴가는 발리로!

 

발리를 이렇게도 자상하게, 아름답게 설명과 묘사해 놓은 책은 처음입니다. 정말로 발리로 바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드는 책입니다. 사진들, 자세한 장소 안내, 설명까지 정말 이런 책 처음입니다. 작가님들이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가 내 돈 주고 책을 사본다고 해도 이런 책들은 감사한 마음이 절로 납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많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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