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다시 쓴다
샘 파르니아 & 조쉬 영 지음, 박수철 옮김 / 페퍼민트(숨비소리)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1912년과 2012년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1912년 4월이 아니라 2012년 4월에 타이타닉호가 침몰했다면, 그리고 특히 카르파시아호 대신에 소생술의 미묘한 부분까지 정통한 전문가들을 태운 구조선이 충돌했다면 신문의 머리기사가 달라졌을 것이다. 즉 사람이 죽은 뒤에 체온이 떨어지면 뇌세포가 보존될 수 있다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결론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임사체험, 즉 죽은 이후에 수 시간, 수 날 지난 후에도 살아나서 죽은 이후에 영혼이 가보았다는 세계에 대한 보고가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이 죽음에 대한 결론을 다시 한 번 재고해 보고, 죽은 육체라도 살리기 위한 방안을 강구하고, 좀 더 긴 시간 동안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이후에 가 보았다는 세계에 대한 보고가 공통되는 것은 터널을 봤다는 것이다. 터널은 여러 가지 색을 칠한 만화경 같은 터널이었다. 터널은 반짝반짝 윤이 났고, 마지막에 이르렀을 때는 밝은 빛, 자신을 반겨주는 따뜻한 빛도 봤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들은 밝은 빛 외에도 환하게 빛나는 존재도 봤다는 것이다. 그 존재에게 사랑, 자비, 동정을 느꼈다. 그 분은 절대적으로 완벽한 존재였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혹은 예수님으로, 혹은 그저 빛나는 존재로 해석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하여 절대 확신으로 보고함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분위기다.

 

노벨상 수상자인 세계 최고의 신경과학자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고 존 에클스 경은 아마 정신이나 의식을 뇌와 별개의 것으로 바라본 가장 저명한 과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에클스 경의 이론은 그의 저서 <자아와 그 두뇌>에 자세히 기술되어 있다. 그는 의식적 경험의 통일성이 뇌 신경세포의 작용이 아니라 정신에 의해 구현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신이나 의식이나 영혼이 뇌세포 활동을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통합되고, 그것을 단일한 통일체로 변모시킨다고 봤다. 그는 뇌가 모든 일을 수행한다거나 의식적 경험이 단순히 뇌 활동의 반영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잘못으로 여겼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의 의식적 자아는 뇌 신경세포의 작용이 무대에 올린 공연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구경꾼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정말 어떤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우리에게는 우리의 행동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은 착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그는 “우리의 뇌와 우리의 의식적 자아라는 2가지 실체가 결합”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뇌를 “의식적 자아나 개인에게 외부세계와의 소통 수단을 제공하는 도구”로 여겼다. 이를테면 어떤 의지적인 움직임을 개시함으로써 ‘자아’를 통해 뇌의 행동을 조절한다. 하지만 그는 아직 정신이 그런 역할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서로 별개의 관계인 정신과 뇌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결론적으로 뇌가 곧 인간 존재의 전부가 아니며, 뇌가 죽는다고 곧 다 죽었다, 소멸되었다고 볼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뉴턴의 물리학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여러 물리학자들처럼 죽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현상으로 여겼지만,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죽을 때와 죽은 이후의 시간에 일어나는 일에 관한 근본적인 인식전환이 필요할지 모른다고 주장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런 깨달음은, 우리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죽음 자체를 되돌릴 수 있는 수단을 하나씩 발견한 이루에 비로소 가능해졌다. 죽음은 끝이다라는 생각에서 또 다른 존재 영이 있다는 생각이 그렇다면 다시 그 영이 돌아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갖고 육체를 살리는데 노력을 기울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의식, 자아, 즉 영혼이 죽음 직후에 진정한 의미에서 상실되는가이다. 의식, 자아, 즉 영혼은 그 시점에 하나의 실체로서 영원히 소멸되는가? 현재 속속 등장하고 있는 해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의식, 즉 영혼은 죽음 이후에 뇌에서 세포손상과 세포소멸을 점진적으로 유발하는 무산소성 뇌손상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의 실체로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즉 뇌 신경회로는 진정한 의미에서 ‘상실’되지 않는다. 무산소성 뇌손상으로 인해 의식을 조절하는 뇌 신경회로와 그 밖의 뇌 부위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었지만 아직 심장이 뛰고 있는 사람들의 의식에 일어나는 일을 연구할 수 있다.

 

저자는 어웨이 연구라는 것을 시작했다. 어웨이 연구란 임상적 사망 도중의 인간의 뇌와 의식을 연구하는 데 모은 과학자들과 의사들의 국제적 협업이다. 또한 그것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두 개의 나란한 길을 추진력으로 삼은 전문가적 관심과 연구 작업을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첫 번째 길은 더 많은 생명을 구하고 뇌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소생술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두 번째, 길은 죽음 도중에 인간의 정신과 의식에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심장정지는 뇌기능이 마비되어 뇌사 상태에 빠질 때의 인간의 의식을 연구할 수 있는 아마 유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두 개의 길은 우리가 생명을 구하려고 애쓸 때 단지 하나의 의학적 과정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인간의 의식과 뇌 사이의 관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밑 걸음이다. 의식과 인식을 조절하는 뇌 신경회로가 붕괴한 사람의 정신, 의식, 영혼을 볼 수 없어도 아직 그 사람은 어딘가에 있다. 이 점을 결코 무시하거나 잊어서는 안 된다. 즉 영혼이 있다는 것을 연구하여 증명하는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은 이후에 뇌가 작동하지 않을 때도 계속 존재할 수 있다면 우리의 정신은 오늘날의 신경과학적 지식에 근거한 우리의 인식과 달리 뇌의 일반적인 전기적 혹은 화학적 과정을 통해 생성되지 않은 별개의 과학적 실체일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추가적인 입증을 거친다면 이것은 새로운 신경과학적 패러다임의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인간의 의식, 영혼이 죽음을 정의하는 기존의 경계선을 훨씬 뛰어넘어서도 존재한다면 과연 그것은 하나의 실체로서 진짜 죽기는 하는 것일까? 우리의 새로운 연구를 통해 앞으로 이 문제를 비롯한 여러 의미심장한 윤리적 문제를 꾸준히 파고들어야 한다.

 

죽음을 다시 쓴다. 책의 제목으로 적합하다. 죽음이란 정의가 이젠 육체로서 끝이 아님을 역설하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의 증명들을 보면 수긍이 간다. 또한 수많은 종교들이, 그 의식들 속에서, 대부분의 장례 예식을 보더라도 다들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영혼의 존재에 대한 주장을 하면 극구 반대 입장에서 서서 증명하려 애를 쓴다. 이 책의 저자가 수많은 증거 자료와 과학적 접근 등을 통해 필설하는 부분을 냉정하게 고려하여 죽음에 대한 정의를 해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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