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매구 할매
송은일 지음 / 문이당 / 2013년 7월
평점 :
한국근현대사는 자체가 소설이다. 일제 강점기, 예기치 않게 나라가 두 동강나는 분단 역사의 시작, 남북한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가족을 비롯하여 동네, 두 개의 철로가 평행선을 긋듯 남북이 사상의 평행선을 그으며 살았던 역사, 그나마 그 쓰다버린 종이장 보다도 못한 이념 때문에 동족상잔의 통한의 세월들, 우여곡절 끝에 선량한 나라와 군인들의 도움으로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를 찾았고, 5.16 군사혁명으로 인한 군화발이 전 지방을 휩쓸던 세월들, 광주민주항쟁에 의한 현대판 지역갈등에 의한 웃지 못하다가 울고 말아버린 무고한 죽엄들이 있었다. 이 모든 역사가 어찌 논픽션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이 역사는 픽션 중에 픽션일 것이다. 우리네 부모 세대들이 이런 질곡의 세월들을 견디어 왔다. 그 와중에도 88올림픽, 2002 월드컵, 세계 경제 10위, G20 정상회의 의장국 등을 맡는 영광을 얻었다. 역사 속에서 희와 비를 번갈아 소나기와 화창한 날씨를 번갈아 맞이하듯 맞아가며 살아온 주인공들이 우리의 근대 1세대들이다. 이런 세월들을 살아온 모든 분들은 다 소설의 주인공이다. 작가는 바로 이분들을 소재로 삼았다. 왜 진즉 이들을 알아보지 못했는가? 왜 이분들의 지뢰밭을 걷는 것 같은 시간들을 보지 못했는가 후회하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도 한 영화감독이 메구할매의 삶을 영화화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메구할매의 삶 자체가 파란만장하다. 「계성재가솔부」에 수록된 15대 종부인 수항당 신 씨를 거쳐 16대 안순당과 17대 여례당 권 씨에 이르는 기록들이 남아 있었다. 매구할매 진녹두와 더불어 한 시대를 당당하고 기품 있게 살았던 여례당은 수백 년 동안 면면이 이어온 가문의 전통을 지킨 여장부였다. 여례당은 수많은 가솔들과 함께 해방과 육이오 전쟁을 거치며 하루아침에 외종손인 자식과 지아비를 폭도들에 의해 잃는다. 자식을 잃은 아픔과 남은 사람들을 지키려 온 힘을 쓰는 모습에서 당찬 여인의 버팀목 같은 우리 부모님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다. 수백 년 동안 내려온 종갓집과 종손 종부가 고택을 지켜낸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고, 집안을 지켜내고, 가족까지 건져낸 우리네 어머님들의 강인함은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이 없는 한국의 힘이다. 이런 세월 속에서 견뎌낸 부모 세대의 당당함이 있다면 현대의 젊은이들은 쉽게 변질되고, 남의 남편을 빼앗고, 뺏기고, 깊고 진솔한 사랑을 사라지고 가볍고 변하는 사랑을 하는 모습들을 주인공 은현을 통해 비추고 있다. 그렇다. 한국의 근대를 살아온 모든 분들의 삶은 다 소설인데,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의 삶은 예전에는 볼수도 상상할 수도 없는 삼류 소설이다. 우리 부모님들의 세상을 이겨내는 힘은 다 어디에 갔는가? 사랑도, 목표도, 가족도 쉽게 바꿔버리는 이 세대는 어디에서 떨어진 외계인 같은 사람들인가? 아이 하나도 버거워 다시는 애 낳지 않겠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드는 젊은 엄마들은 어디에서 나온 자식들인가? 교육비 많이 들고, 애를 낳아 몸매도 버리고, 삶을 즐기지 못하니 아예 낳지 말자고 캠페인을 벌리는 세대들은 어디에서 솟아났는가? 작가는 은연 중에 멧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우리 장모님은 현재 88세이다. 일제, 6.25 등을 겪으며 허씨 가문의 재취로서의 삶을 시작하여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늦둥이로 보셨다. 한학은 하셨지만 농사에 흥미도 기술도 없으신 장인을 모시고 일평생 밭에서 사셨다. 일제 강점기에는 위안부로 잡으러 온 사람들을 피해 집에 몰래 숨어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만약 그 때 끌려갔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빈농의 아내로서 더 이상 자녀를 키워낼 수 없어 두 딸을 외지로 친척집에 보내고, 직장으로 보내 돈을 벌게 할 수 밖에 없었고, 아들은 딸의 집으로 보내 공부를 시킬 수 밖에 없었던 세월을 보내셨다. 원치 않는 이산가족이 되었다. 이런 세월 속에 장손으로 1년이면 십수번의 제사, 도와주지 않는 형제들에 대한 원망이 하늘을 찌른다. 농사로 구부러진 허리, 돈이 없어 돌볼 수 없는 치아로 다 빠진 이로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이 장모님의 삶은 분명 소설이다.
다음은 우리 어머님의 삶이다. 경찰의 아내가 되어 청주의 시부모집에 들어가 시어머님의 시집살이에 죽고 싶어 방죽(저수지)로 돌진하다 친척에게 발견되어 죽지도 못한 삶을 결혼 후 60년이 넘게 살았다. 겨우 자리 잡고 직장생활하던 남편의 사표로 구할 직장이 없어 독일의 탄광부냐, 원양어선, 즉 배를 타느냐의 기로에서 배를 타고 참치 잡이를 나서 남편을 일평생 기다리는 삶을 살았다. 한번 가면 3년씩 집에 오지 않고, 5남매를 박봉의 월급으로 교육시키며 살아내야 하는 버거운 삶이었다. 연약한 아내로서 자식들을 키워야 하는 무거운 집에 늘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이란 노래를 눈물로 불렀던 분이시다. 늘그막에 더 이상 배를 타지 않고 돌아온 남편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떨어진 탓에 정은 다 떠나고 부부라는 주민등록등본의 기록에만 남은 그런 부부가 되어 늘 다툼의 연속이었다. 서로 따뜻하게 함께 여행한번 못하고, 다정한 말 한 번 건네지 못한 세월을 보내며 남편을 먼저 보냈다. 막상 병석에 누워있는 구박하던 남편도 그 방에 없으니 허전하다며 혼자 있음이 버겁다고 한다. 남은 것은 손주들 잘 되는 것 기대하며 기도를 올리는 삶을 낙으로 삼으시며 세월을 지켜내고 있다. 어찌 픽션이 아니겠는가?
우리 부모세대들의 위대한 삶이 나라를 지켰다. 우리의 행복한 가정을 지켰다. 우리 젊은이들이 조금만 힘들어도 못살겠다고 헤어지는 세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1997년 IMF로 힘든 시간을 보낼 때 많은 가정이 파탄났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러나 이 때 지켜내야 하는 것이 가정이지 않았겠는가? 우리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 세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우리 부모님에게서 배우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