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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과 멀어지게 된 45가지 이유 - 어제와 다른 나로 사는 법
바실레아 슐링크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전에 나는 수녀님들의 생활을 약간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저렇게 산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생각했다. 그런데 수녀님들의 묵상의 세계를 요즘은 조금 알듯하다. 조용한 묵상이, 자연에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있을 때에 깨닫는 것들은 참으로 깊고 소중하다. 나도 기도원에 가서 묵상을 하면 깊은 깨달음이 있어 이젠 묵상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다. 바실레아 슐링크의 깊은 묵상에서 나온 주님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45가지는 참으로 귀하다. 특별한 간증이나, 이야기 거리는 없다. 그러나 심연의 죄성들을 끄집어내는 영성은 참으로 무릎을 치게 만든다. 어떻게 이런 죄성을 알아차리고 지적할 수 있을까? 내가 속에 깊이깊이 숨겨 놓아서 아무도 찾지 못할 것 같은 그런 것들을 속속들이 파헤쳐 우리를 발가벗기고 있다. 이 책은 나를 다 벗기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벗기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벌거벗음이다. 오히려 시원함이랄까 영적 샤워를 하는 느낌이다. 차라리 벗어 던지고 솔직히 고백하니 치유받는 느낌이다. 나의 숨겨놓은 죄들을 고백해 보자.
하나님의 능력을 멸시하는 불신앙과 낙심, 우리는 낙심을 그저 내가 손해보는 신앙의 자연스런 마음이라고만 생각을 했다. 그러나 슐링크는 확실하게 집어주고 있다. 낙심은 죄라고. 그렇다. 낙심 속에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죄가 숨어 있다. 나는 이 죄를 보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나에게 손해가 되는 면들만 보았다. 그러나 나의 손해 이전에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전적인 불신앙이 있기에 낙심이 왔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이젠 낙심이 오면 먼저 믿지 못하고 있는 믿음을 점검하자.
원한과 시기의 화살 비웃음. 남을 비웃는 것은 분명 좋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비웃음 속에 원한과 시기의 화살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저 나보다 낫다는 것에 대한 불편함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비웃음의 깊은 속에는 그 사람을, 세상을 향한 원한과 원망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다. 남들이 잘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시기심으로 가득차 있었다는 것이다. 비웃음으로는 안된다. 기쁨의 웃음, 축복의 웃음을 주어야 한다.
죄가 없다고 믿는 어리석음 자기의와 자기합리화. 자기는 옳다고 하는 생각은 나에게 참으로 많다. 그래서 회개가 별로 없다. 적당히 잘하고 있고, 이정도면 잘하는 편이야 하는 나의 합리화 속에서 살고 있다. 나쁜 마음이 없기 때문에 문제도 없어 라는 생각이 더욱 회개가 없는 삶을 살게 만든다. 그러나 단 1%라도 죄가 있다면 그 1%에 아파해야 한다. 울어야 한다. 아니 통곡을 해야 한다. 1%는 결코 1%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2%, 50%, 100%로 갈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훈련은 자기 합리화가 아니라 자기 사랑 없음을 인정하고 그 깊은 마음 속의 사랑으로 채워야 함을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무시하는 마음 존경심의 상실. 나는 대통령도, 정치인도, 교계의 지도자들에 대한 존경심도 부족하다. 그들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고, 뭐 특별한게 있겠나 싶은 마음에서이다. 물론 나보다 더 훌륭하다. 실제로 나보다 똑똑하고, 노력도 더 많이 했고, 성실하고, 헌신적이다. 그런데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일게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질서에 대한 무시라는 점이다. 즉 모든 지도자는 하나님이 세우신분인데 내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윗이 사울을 함부로 하지 않은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자신이 죽을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질서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그 생명을 지켰다. 아! 나는 무엇인가? 다시 살아야 겠다. 지난 세월을 후회한다. 존경심으로 속과 겉을 채우자.
자신을 섬기려는 마음의 병. 까다로움. 나는 성격이 까다로운 편이다. 반찬도 같은 반찬이 나오면 잘 안먹는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음식도 같은 음식을 두 끼를 먹지 않는다. 꼭 다른 메뉴를 찾아 먹어야지 직성이 풀린다. 남이 먹자고 해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으려고 무던 애를 쓴다. 내 물건을 누가 함부로 만진 흔적이 있으면 불편하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섬기려는 마음의 병이라는 것을 잘 몰랐다. 우리의 자아가 병들면 영혼이 까다로워진다. 까다로워졌다는 것은 주목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자아에게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럴 경우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의 응석을 받아주길 기대한다. 결국 나의 이때까지의 까다로움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 것에 대한 응석이었다. 내 나이가 얼만데 아직도 응석인가? 이젠 응석을 벗자. 어른으로 의젓하게 서자. 좀 편안하게, 적당하게 넘어가는 훈련을 해 보자.
다시 한 번 바실레아 슐링크의 깊은 사색에서 나온 영성에 감탄한다. 그저 배워서 나오는 영성이 결코 아니다. 책을 통해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말씀 속에 살고, 살면서 말씀을 보고, 그래서 말씀과 삶이 하나로 만들어져야만 나올 수 있는 영성이다. 내가 영적 샤워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 저자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