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족입니다
설기문 지음 / 소울메이트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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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가을 추석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모였다. 4남 1녀 중 누님은 미국에 계셔서 못 오시고, 막내는 추석 전날 부모님 뵙고 갔고, 작은 형님과는 이천 호국원에서 만나기로 했으나 차가 너무 막혀 결국 함께 하지 못했고, 결국 큰 형님 가족하고 우리 가족만 야외에서 모임을 갖고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그나마 점심을 먹고 차를 마시며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까지 먹고 이어진 대화 속에 서로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큰 형님은 딸이 일본에 있어 명절에 함께 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 하셨다. 형님도 60이 넘어서니 가족 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나 또한 낳아서 키울 때는 셋이 많아 힘든 것 같았는데 이제 모두 대학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을 하고 나니 셋이 결코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일요일 저녁이면 꼭 함께 식사를 하고 많은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일주일 중에 제일 기다려지는 시간이고, 즐거운 시간이다. 아이들도 그렇게 느끼는 것 같아 마음이 좋다.

 

<그래도 가족이다> 가족의 소중함, 가족의 사랑을 유지하려면 조심해야 할 부분들, 가족에게 해 주어야할 좋은 말들, 살아가는 이유가 가족이며, 상실의 시대에 가족이 위로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가족이라는 내용으로 전개하고 있다. 이 책은 특히 진부한 설명보다는 짧은 싯구같은 전개로 가슴을 울리고 있다. 꼭 필요한 내용들을 집약해서 시적 표현으로 이어가는 것이 아주 좋았다. 사실 이미 너무나 잘 알지만 지키지 못하는 것들, 알 것 같으면서도 바쁜 삶에 잃어버리는 것들을 감동적으로 적으니 더욱 좋은 것 같다. 아는 것보다 감동을 받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 그렇다고 미사여구로만 일관하지 않고 꼭 필요한 중요한 내용들이 곁들여져 있어 감동 받은 것을 실천하고 싶은 용기를 가지게 하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오랜 가정 사역, 가족 치유 상담을 통한 경험들이 녹아 있어 그 감동의 질도 더 높은 것 같다. 몇 가지 마음에 남는 것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엄마의 관심이 힘겹고, 남편들은 아내의 관심이 달갑지 않은 때가 있습니다. 그냥 궁금한 것을 덮어두고 말없이 편이 되어주며 뭔가 말을 건네면 “잘했다. 고맙다, 그랬구나.” “그럴수도 있지, 힘들었구나.” “괞찮아, 금방 좋아질 것야.” 이렇게 덤덤히 사랑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법, 참 어렵습니다. 많이 참아야 하고, 못 본 척해야 하고 못들은 척 해야 하는데 모든 것이 궁금하니... 사람하기 참 어렵나 봅니다. 고슴도치가 적장한 거리로 유지해야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할 수 있듯이 그 적당함이 필요한데 그게 어디 쉽게....

 

심리상담을 받기 위해 상담실을 찾는 무수한 분들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믿어주고 박수를 쳐주고 격려해줄 사람이 곁에 없다고 합니다. 아무도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가족마저도 자신의 편이 아니며 삶은 절대적으로 고독하다고 말합니다. 학교 부적응 학생들도 역시 그런 순간 학교는 지옥이 되고 세상은 외운 벌판이 된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나를 위해서 아픈 말을 해주는 것이 때론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더 힘이 되는 것은 위로의 말, 잘한다는 말, 당신이 최고라는 말이 더욱 그립습니다. 아내에게, 아이들에게 이 말을 더 많이 듣고 싶습니다. 가족들이 알랑가 모르겠습니다.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나를 칭찬해 주세요. 이런 마음은 어린 아이나, 어른이나 별반 다를게 없는 것 같습니다.

가족이 가족을 버리면 어떻게 하나요? 이것 만큼은 정말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도 가족은 버릴 수 없습니다.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할 것은 바로 가족입니다. 가족에게 버림을 받은 사람이 머릿 속에 지우개가 있다면 문지르고 또 문질러 깨끗이 지우고 싶습니다. 비누칠을 해 빨래를 하듯이 묵은 부끄러움과 분노를 지우고 싶습니다. 가족에게 버림 받은 아픔은 이렇게 큽니다.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가족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공동체는 저녁 퇴근 시간을 8시로 정하고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족은 삶의 힘이요, 근원이요. 전부입니다. 우리 나라가 이런 가족을 지키는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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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그리고 향기 - 향수 만드는 남자의 향기 이야기
임원철 지음 / 이다미디어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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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향수, 나에게는 낮선 물품이고, 단어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주변에서 향수를 선물한다. 딸도, 지인들도 나에게 향수가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향수를 사들고 온다.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딸들이 뿌리라고 한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뿌리고 나가는데 아직 많이 어색하다. 그래서 이 책을 더 읽게 되었다. 향수,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어떤 영향이 있는가? 어느 나라에서 발전되었으며, 어떤 제품이 유명한가? 그래야 여자들하고 대화도 통하고, 아내에게 향수를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향수하면 비싸고, 쓸데없는 화장품 정도로만 알고 있는 내가 유식해질 찰라가 왔다.

 

이 책은 미국 뉴욕,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이탈리아의 밀라노, 일본의 토교의 향기로 나누고 있다. 각각의 나라의 향기가 다르다. 그 역사도 다르다. 취향들도 다르다.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먼저 미국을 보면 미국의 향수 업계는 미국인도, 영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유태인이 향수를 주도하고 있다. 두 유대인인 캘빈 클라인과 랄프 로렌이다. 캘빈 클라인은 청바지 업계의 황제로도 알려졌는데 <이터너티>라는 향수로 미국의 향수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의 향수의 이미지는 철저히 가족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광고도 가족들이 함께 행복해 하는 사진을 내 걸고 있다. 물론 이런 이미지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섹스와 자유의 미학을 추구한 옵세션(집착)을 만들어 출시함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하기도 했다. 또 한사람의 향수 업계의 거물은 랄프 로렌이다. 랄프 로렌은 영국의 귀족 라이프 스타일을 대중화 하였다. 폴로 티를 입고, 승마를 하고, 고전적이고 우아함과 모던함을 믹스한 폴로를 입은 것을 주재료로 삼았다. 캘빈 클라인과 랄프 로렌은 미국 패션업계의 오랜 숙적 관계로 지내왔다. 다양한 분야에서 충돌했지만 그 중에 하나가 향수였다. 두 사람이 향 개발을 의뢰한 향료 회사가 같은 회사인 IFF였다.

 

다음은 영국의 런던이다. 영국하면 버버리다. 영국은 박물관의 나라다. 약 2,500개나 된다. 런던을 대표하는 유명한 미술관 중에 하나인 테이트모던 미술관만 보더라도 화력발전소로 쓰던 건물을 더 이상 전기를 생산하지 않고 허물어져야 할 위기를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영국이다. 즉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아름다움의 조화,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라고 하는 버버리가 바로 이런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버버리 하면 체크무늬를 빼 놓을 수 없다. 낡고 우중충한 화력발전소 건물을 현대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듯,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군 장교들에게 입혔던 그 유명한 트렌티코트 속에 로지 헌팅천 휘틀리의 육감적이면서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채워 넣은 것이다. 결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처럼 오래된 것을 허물지 않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기고 새롭게 재탄생 시킨 것이다. 1856년 토머스 버버리가 탄생된 이후 150년 동안 영국 장교들을 위한 납품업체였고, 영국 왕실에서 공식 인증한 업체로 영국의 사랑을 받아 왔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려 하자 왕세자와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시위를 벌였을 정도다. 영국을 대표하는 블랜드의 생산 공장이 영국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버버리는 한결 같이 영국 출신의 모델들을 기용하는 것도 전통적인 영국 브랜드임을 강조하려는 전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통적인 버버리가 향수 산업에 진출하면서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둘은 충돌했으나 조화를 이루는 쪽으로 결론지어졌다. 크리스토퍼 베일리에 의해서 새롭게 추구된 변화의 모습들이 담겨진 버버리 런던(2006년) 더 비트(2008년)이다. 버버리 특유의 체크를 사용하되 연한 색으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그런 약간의 변화만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판단하여 과감한 변신을 추구하게 된다. 영국을 주도하는 또 하나의 패션업계의 주도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그는 향수에 영국 왕실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병의 모양도, 병의 디자인도 영국 왕실이 쓰고 있는 문양을 그대로 디자인해 쓰고 있다. 영국 여왕 중 빅토리아 여왕의 얼굴의 모양의 둥근 형태를 병 모양으로 사용하고, 그 위에 병 뚜겅은 빅토리아 여왕이 쓰고 있는 왕관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는 “내 향수를 사용하게 될 당신이 여왕이다.”는 이지미를 심고 있다.

*향수 문화는 중세 잘 씻지 않는 문화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잘 생각해 볼 문제다. 즉 지금처럼 잘 씻는다면 필요없는 것일까?

파리의 향기는 샤넬이다. 샤넬은 코코 샤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 중에 마릴린 먼로가 잠들기 전에 잠옷 대신 입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샤넬 No. 5'다. 디자이너 이름을 붙인 인류 최초의 향수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가지 향기만 주로 사용하여 만들어 졌는데, 샤넬 No. 5는 83가지가 넘는 재료로 만들어낸 독특한 향의 향수였다. 그런데 샤넬 No. 5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향수라는 것이다. 즉 러시아에서 향수 산업이 러사아가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향수회사 랄레 사가 국유화되고, 조향사 이르네스트 보는 프랑스로 옮기게 되고, 프랑스에서 러시아의 향수를 생산하게 된 것이 샤넬 No. 5가 된 것이다. 즉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이었던 디미트리 파블로비치가 코코 샤넬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디미크리가 바로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를 샤넬에게 소개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에게 바쳐졌던 비운의 향수 예카테리나의 부케는 유럽 대륙을 횡단한 수 패션업계의 여황제로 기록될 여인 마드모아젤 샤넬과 조우하면서 파리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후 샤넬 No. 5는 한 세기를 군림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 하는 여배우 중 최고는 오드리 햅번이다.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가 만나게 된 계기는 영화 <사브리나>를 준비할 때 헵번은 지방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고집을 세워 지방시가 1952년 첫 번째 부티크를 오픈하고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은 1954년 사브리나를 만들 때부터 지방시 옷을 입기 시작했다.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흰색 블라우스와 어리가 잘록한 플레어스커트가 지방시가 디자인한 것이었는데 이 의상이 완벽하게 헵번에게 어울린 것이다. 그 이후 18편의 영화의 의상을 대부분 지방시의 옷만 입었다. 롤랑 바르트는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은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기호학자다운 방식으로 이런 정의를 내렸다. ‘명성의 거래’

 

향수 하면 구찌를 빼 놓을 수 없다. 구찌의 파격적인 향수 광고는 향수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과도한 노출, 섹시한 풍경,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사회 규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파격적인 시도를 일삼았다. 동성애를 자극하는 땀을 흘리는 여성끼리 키스하는 장면, 여성의 중요부분을 광고에 실으면서 향수를 탈윤리의 이미지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향수는 아직은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았다. 역겨운 냄새가 날 때 얼마나 심기가 불편한가? 도저히 냄새 때문에 참을 수 없다. 비행기 안에서 김치 냄새라든지, 해외여행 중에 먹고 트림했을 때 나는 두리안 냄새는 심한 고통까지 주게 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향수의 향기는 얼마나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까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알 것 같다. 미국 여행 중에 구입한 아로마 치료제를 어깨가 뻐근할 때 어깨에 발라주면 아주 시원하고, 그 시원한 향기가 마음까지 시원케 함을 경험하며 향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기로 마음을 먹어 본다. 이젠 집에 굴러 다니는 향수를 약간씩 뿌리는 것에 도전해 볼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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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복음 -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라
리처드 스턴스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드폰테스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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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우리 교회 권사님께서 “사는게 재미 없다”고 하셨습니다. 얼마 지나더니 “죽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를 지나 그 권사님에게 결혼 적령기가 지난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을 낳았는데 손녀를 본 권사님이 어느날 부터인가 얼굴이 달라졌습니다. 그 때부터 “사는게 재미 없다.” “죽고 싶다.”는 말이 싹 사라졌습니다. 오히려 입이 귀에 달려 늘 웃으시면서 행복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권사님이 뭐 때문에 삶의 의미를 잃었던 것일까 생각했더니 바로 “아이” 즉 “생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날 교회들도, 성도들도 신앙의 의미를 잃었다고 봅니다. 왜? 바로 생명에 관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스턴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대부분 나무에 집중하지 숲을 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즉 배우자, 가족, 교육, 능력, 돈, 공로 모두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가 하는 일이 인생의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히려 인생의 ‘목적’이 우리가 하는 다른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와 같은 인생의 충만함을 느끼지 못할까? 교회에도 가고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지만 여전히 뭔가가 빠진 느낌이 있다. 그것은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기”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눈앞에 있는 것들에 정신이 팔려서 큰 그림은 보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일이 아이가 자라 학교에 가고, 직장을 잡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일상의 여러 가지 문제들과 씨름하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가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잡아 먹는 일, 즉 나무다. 이런 일들에 집중하다 보면 숲 속에서 나무들만 보고 길을 찾다가 결국 길을 잃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숲은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시는지 파악하고 거기서 우리가 할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그분의 이야기에서 매우 특별한 역할을 맡기시려는 의도로 당신을 창조하셨다. 우리에게 맡겨 놓으신 이야기기 무엇인가?

(마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나님의 이야기는 천국 복음의 전파, 땅끝까지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지상대명령이라 합니다. 이것을 위해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지옥의 문이 이기지 못하리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혁명 정신을 잃어버렸다. 이것은 충격적 현실이다. 영생에 들어가기 위해 죄를 용서받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기는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힘들 때 하나님의 위로를 찾거나 어떻게 하면 선하고 열매 맺는 인생을 살 수 있는지 알려주는 행동강령이 기독교 신앙이기는 해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우리 주님이요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따르라는 요청이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가 하고 계신 위대한 사명에 동참하라는 요청이다. 기독교 신앙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분을 따르라는 요청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온전하게, 우리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깊은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인생을 향한 이 위대한 소명을 재발견하여 혁명의 불꽃을 다시 피울 수 있다. 21세기 교회는 자원, 지식, 규모, 권한, 성령의 능력 등 모든 것을 갖추었다. 부족한 것은 의지뿐이다. 이제 그 일을 마무리할 때다. 참으로 공감하는 말이다. 현대 성도가 은혜를 받지 못함의 원인은 딱 하나, 영혼구원의 사명으로 다가가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가 무기력에 빠진 원인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집중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갖춘 한국교회가 다시 이 근본, 기본, 예수님의 지상명령으로 가면 반드시 대부흥은 물론 전세계를 다시 깨울 수 있다고 본다.

 

성경 속의 도미노 현상을 보면 기생 라합의 헌신, 보아스와 룻의 결혼, 보아스는 라합의 어머니, 보아스가 오벳을 낳고, 오벳이 이새를 낳고, 이새가 다윗을 낳으며, 다윗의 혈통에서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한다. 한 여인의 희생의 도미노가 예수님을 탄생 시킨다. 어떻게 뉴저지가 한국을 바꾸어 놓았는가? 뉴저지의 주의 프린스턴의 로버트 와일더가 선교에 사명을 받고 학생선교자원운동을 창시하고 네 친구와 함께 선교사가 되겠다고 헌신했다. 한 친구의 도미노로 다섯 친구가 넘어졌다. 와일더는 167개 대학 교정에서 강연을 했고, 메코믹신학교에서 말씀을 전했는데 새뮤얼 모펫이 감동을 받고, 2년이 채 못되어 한국에 왔다. 모펫이 길선주를 전도했고, 길선주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주동자가 되었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 한 사람이 복음의 능력에 넘어지면 연쇄반응을 일으킨다. 복음의 열정에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다. 딱 한 사람, 바로 나다. 내가 변하면 도미노로 넘어지게 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남을 기대한다. 함께 넘어졌으면 한다. 그러나 서로 눈치만 보고 있지 어느 누구도 넘어지지 않는다. 그 많은 인적 자원, 재정적 자원들이 그냥 서만 있다. 마치 영적 보디빌더처럼 말이다. 즉 보디빌더는 자신의 체격만 키우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포환을 던지지도, 창을 던지지도, 역기를 들지도 않는다. 우리가 능력을 키우고는 있지만 영혼을 구원하지는 않는다면 영적 보디빌더에 불과하다. 먼저 내가 들어야 한다. 내가 들기만 하면 다른 사람은 함께 들게 될 것이다. 그 한 사람이 내가 되어야 하고, 바로 내 교회가 되어야 한다. 아니 내가 되고, 내 교회가 반드시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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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행복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오유란 옮김, 베아트리체 리 그림 / 오래된미래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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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당신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 요하임 바이만 외 지음/ 강희진 옮김/ 미래의창>를 읽었다. 결론은 행복의 기준의 천차만별이었다. 행복감에 대한 원인이 수입, 가족, 관계, 안정된 국가, 건강 등등에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도 사실 알고보면 개개인의 기준차이라는 것이다. 결국 행복이란 것은 제각각 알아서 느끼는 것이라는 것이다. ‘행복’하기가 참 어렵다. 프랑수아 클로르, 정신과 의사인 그의 행복론을 들어보자.

 

주인공 꾸뻬씨는 정신과 의사이다. 불행하다 생각하는 사람들은 상담해주고 행복의 길은 안내한다. 정작 본인은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행복을 찾는 여행을 떠난다. 참 아이러니 한다. 행복하지도 못한 사람이 행복하게 하려고 상담을 해주고, 안내를 해 주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행복하지 못하여 여행을 떠난다. 그렇다면 구뻬씨에게 행복은 이런 것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은 행복을 바로 알까? 그래서 마지막에 중국의 노승이 말하기를 “당신은 환자에게 모두 같은 것을 말하나요?” 환자의 성격과 젊은가, 늙었느냐, 정말로 불행한 삶을 살았는가 아닌가에 따라 꾸뻬가 상담해 주는 이야기의 내용이 달랐다. 다시 노승이 말했다. “그것 보세요. 진리도 그것과 같습니다.” 결국 행복의 기준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르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은 꾸뻬 씨의 행복론이다. 꾸뻬 씨가 여행을 하면서 정리해본 행복론의 항목을 적어보자.

배움1- 행복의 첫 번째 비밀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다. 배움2-행복은 때때로 뜻밖에 찾아온다. 배움3-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오직 미래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배움4-많은 사람들은 더 큰 부자가 되고 더 중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배움5-행복은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산속을 걷는 것이다. 배움6-행복을 목표로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배움7-행복을 좋아하는 사람과 함게 있는 것이다. 배움8-불행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다. 배움9-행복은 자기 가족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음을 아는 것이다. 배움10-행복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배움11-행복은 집과 채소밭을 갖는 것이다. 배움12-좋지 않은 사람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에서는 행복한 삶을 살기가 더욱 어렵다. 배움13-행복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쓸모가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배움14-행복이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람받는 것이다. 배움15-행복은 살아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배움16-행복은 살아 있음을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이다. 배움17-행복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생각하는 것이다. 배움18-태양과 바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다. 배움19-행복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배움20-행복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 배움21-행복의 가장 큰 적은 경쟁심이다. 배움22-여성은 남성보다 다른 사람의 행복에 대해 더 배려할 줄 안다. 배움23-행복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시적 운율의 행복이 절로 느껴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나의 행복론을 정립하고 마치려 한다.

 

행복은 가족이다. 가족이 없는 행복은 불가능하다. 가족이 행복이다. 가족을 먼저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어떤 것도 행복하기 위해 가족을 뒤로해서는 안된다. 수입을 더 많이 얻기 위한 가족과 식사도 한 번 같이 먹는 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공부를 더 많이 해서 좋은 대학에 가서 출세하려고 하는 행복은 불행을 위해 행복을 담보다는 것이다.

 

행복은 자연이다. 자연에 행복이 있다. 자연 속에는 엄청난 행복이 넘쳐난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을 너무나 많이 파괴해서 행복하려 하고 있다. 편리하려고 자연을 외면했지만 편리해졌는지는 모르지만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무, 새, 동물, 풀, 구름, 하늘, 길 등이 행복이다. 자연을 보면 내가 보인다. 내가 보이면 행복이 보인다. 내가 보이면 가족이, 이웃이 보인다. 나는 수요일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간다. 자연이 그렇게 편할 수 없다. 자연 속에 가면 모든 것이 여유로워 진다. 여유가 행복이다. 여유로우면 행복을 느끼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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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은 좋은 일이다 - 탁정언의 손바닥 이야기, 두번째
탁정언 지음 / 문예마당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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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은 좋은 일이다.’ 너무나 직설적이고도, 적나라한 표현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걸 어떻하겠는가? 얼마나 많이, 많은 사람들이 나쁜 일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좋이 일이 된 것이 많은가? 개인에게서든, 역사에서든 수도 없이 많아 셀 수도 없을 것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화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지인들에게 “나는 눈이 작아 너무 감사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내가 눈까지 컸다면 연예계에 나갔을 것이다. 그런데 다행이 눈이 작아 연예인이 되지 않고 지금의 더 소중한 직업과 일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절대로 농담이나 유머가 아니다.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 어떻게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겠는가? 아무리 실제로 나에게 나쁜 일이라도 좋게 생각하면 좋아지지 않을까?

 

얼마 전 1900년대 책 100선에 뽑힌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었다.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억울한 누명으로 20년 감옥살이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몇 년전 신문기사에서 누명으로 감옥살이 한 사람이 출감 후 진범이 잡혀 본인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 진 후 참을 수 없어서 자살을 했다는 기사였다. 두 사람의 억울한 감옥살이가 한 사람은 참지 못해 자살, 한 사람은 책을 펴내고, 출옥 후 교수로 후학에게 감동을 주는 인생, 누가 만들었는가? 결국 똑 같은 억울한 일이지만 자신이 받아들이는 마음에 따라 달랐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힘들지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쩔 수 없이’라고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 생각은 현실을 넘어 진리라고 생각한다.

 

‘적은 나의 스승이다.’ 멋진 말이다. 나를 괴롭히는 적이 얼마나 나를 단련시키는가? 실력으로, 인내로, 아니 감내하는 능력을 길러내는 방법으로 말이다. 적을 나의 스승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적이 얼마나 고마운가? 적에 대한 얼마나 좋은 감정을 가지겠는가? 그러면 ‘웃는 낮에 침 못 뱃는다’는 말이 있는데 적이 아군이 되지 않겠는가? 나는 늘 다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미워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모두 나를 사랑한다.” 어찌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하겠는가? 미워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또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저 사람들은 나를 사랑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나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실패의 답은 오답 노트에 있다’ 나는 어떤 행사를 치루고 나면 평가나 피드백을 하기를 싫어한다. 혹시 나에 대한 좋지 않은 평가가 나올까봐 방어적 수단을 강구하는 것 같다. 그러나 피드백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그 실수는 반복될 것이다. 그러면 절대로 나아지는 것 또한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프더라도 오답 노트는 써야 한다. 실패의 원인을 오답 노트에서 찾지 않고, 환경, 타인의 잘못, 나에 대한 잘못된 평가 등등에 돌리는 것은 정말 안 좋은 습관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 아프더라도 오답 노트를 쓰듯, 평가회를 갖고 반드시 개선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인생도 개선될 것이다.

 

‘직관은 살아 있다’ 나는 직관을 믿는다. 아니 직관을 좋아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준비나, 미리 하는 일에 게으르다. 그러다 보니 임박해서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내고 보면 미리 준비한 것 보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때가 많다. 그래서 이 습관이 잘 버려지지 않는 것 같다. 실제로 생각해 보니 미리 준비한다는 것은 임박했을 때의 변화된 상황에 대처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물론 그것까지 예상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 종류의 일은 반드시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에 변명을 하면 정말로 좋지 않은 습관이다. 그러나 임기응변을 요하는 일, 임박해서 결정해야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일 등은 정말로 직관력이 필요하다. 직관은 결코 직관이 아니다. 이때까지 그 분야에 종사한 모든 능력이 한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순간에 응집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일반적이며,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그 분야의 실력을 키우고, 독서를 해서 직관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준비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각 주제별로 영감을 주는 내용들이 많다. 자신의 경험담을 기록해 줌으로 훨씬 생동감이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약간 깊이가 부족함을 느꼈다. 또한 주제들이 서로 상충되는 것 같기도 하고, 산만한 것 같아 일체감이 약함을 느낀다. 한 나무의 줄기가 중심으로 가지들이 뻗어 나가 나뭇잎 들이 어우러져야 나무가 나무답고 아름다울 텐데 가장 중요한 줄기가 없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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