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향수 그리고 향기 - 향수 만드는 남자의 향기 이야기
임원철 지음 / 이다미디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향수, 나에게는 낮선 물품이고, 단어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주변에서 향수를 선물한다. 딸도, 지인들도 나에게 향수가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향수를 사들고 온다.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런데 딸들이 뿌리라고 한다. 가끔, 아주 가끔이지만 뿌리고 나가는데 아직 많이 어색하다. 그래서 이 책을 더 읽게 되었다. 향수,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가? 어떤 영향이 있는가? 어느 나라에서 발전되었으며, 어떤 제품이 유명한가? 그래야 여자들하고 대화도 통하고, 아내에게 향수를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향수하면 비싸고, 쓸데없는 화장품 정도로만 알고 있는 내가 유식해질 찰라가 왔다.
이 책은 미국 뉴욕, 영국의 런던, 프랑스의 파리, 이탈리아의 밀라노, 일본의 토교의 향기로 나누고 있다. 각각의 나라의 향기가 다르다. 그 역사도 다르다. 취향들도 다르다.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먼저 미국을 보면 미국의 향수 업계는 미국인도, 영국인도, 프랑스인도 아닌 유태인이 향수를 주도하고 있다. 두 유대인인 캘빈 클라인과 랄프 로렌이다. 캘빈 클라인은 청바지 업계의 황제로도 알려졌는데 <이터너티>라는 향수로 미국의 향수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그의 향수의 이미지는 철저히 가족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주제로 하고, 광고도 가족들이 함께 행복해 하는 사진을 내 걸고 있다. 물론 이런 이미지만을 고집한 것은 아니었다. 섹스와 자유의 미학을 추구한 옵세션(집착)을 만들어 출시함으로 파격적인 변신을 하기도 했다. 또 한사람의 향수 업계의 거물은 랄프 로렌이다. 랄프 로렌은 영국의 귀족 라이프 스타일을 대중화 하였다. 폴로 티를 입고, 승마를 하고, 고전적이고 우아함과 모던함을 믹스한 폴로를 입은 것을 주재료로 삼았다. 캘빈 클라인과 랄프 로렌은 미국 패션업계의 오랜 숙적 관계로 지내왔다. 다양한 분야에서 충돌했지만 그 중에 하나가 향수였다. 두 사람이 향 개발을 의뢰한 향료 회사가 같은 회사인 IFF였다.
다음은 영국의 런던이다. 영국하면 버버리다. 영국은 박물관의 나라다. 약 2,500개나 된다. 런던을 대표하는 유명한 미술관 중에 하나인 테이트모던 미술관만 보더라도 화력발전소로 쓰던 건물을 더 이상 전기를 생산하지 않고 허물어져야 할 위기를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이것이 영국이다. 즉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현대적인 아름다움의 조화, 영국을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라고 하는 버버리가 바로 이런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버버리 하면 체크무늬를 빼 놓을 수 없다. 낡고 우중충한 화력발전소 건물을 현대 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키듯,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군 장교들에게 입혔던 그 유명한 트렌티코트 속에 로지 헌팅천 휘틀리의 육감적이면서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채워 넣은 것이다. 결국 테이트모던 미술관처럼 오래된 것을 허물지 않고 그것의 아름다움을 소중하게 여기고 새롭게 재탄생 시킨 것이다. 1856년 토머스 버버리가 탄생된 이후 150년 동안 영국 장교들을 위한 납품업체였고, 영국 왕실에서 공식 인증한 업체로 영국의 사랑을 받아 왔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중국으로 공장을 이전하려 하자 왕세자와 국회의원들까지 나서서 시위를 벌였을 정도다. 영국을 대표하는 블랜드의 생산 공장이 영국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버버리는 한결 같이 영국 출신의 모델들을 기용하는 것도 전통적인 영국 브랜드임을 강조하려는 전략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전통적인 버버리가 향수 산업에 진출하면서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둘은 충돌했으나 조화를 이루는 쪽으로 결론지어졌다. 크리스토퍼 베일리에 의해서 새롭게 추구된 변화의 모습들이 담겨진 버버리 런던(2006년) 더 비트(2008년)이다. 버버리 특유의 체크를 사용하되 연한 색으로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그런 약간의 변화만으로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판단하여 과감한 변신을 추구하게 된다. 영국을 주도하는 또 하나의 패션업계의 주도자는 비비안 웨스트우드다. 그는 향수에 영국 왕실의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병의 모양도, 병의 디자인도 영국 왕실이 쓰고 있는 문양을 그대로 디자인해 쓰고 있다. 영국 여왕 중 빅토리아 여왕의 얼굴의 모양의 둥근 형태를 병 모양으로 사용하고, 그 위에 병 뚜겅은 빅토리아 여왕이 쓰고 있는 왕관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는 “내 향수를 사용하게 될 당신이 여왕이다.”는 이지미를 심고 있다.
*향수 문화는 중세 잘 씻지 않는 문화에서 만들어진 산물이다. 잘 생각해 볼 문제다. 즉 지금처럼 잘 씻는다면 필요없는 것일까?
파리의 향기는 샤넬이다. 샤넬은 코코 샤넬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그 중에 마릴린 먼로가 잠들기 전에 잠옷 대신 입었다고 해서 유명해진 ‘샤넬 No. 5'다. 디자이너 이름을 붙인 인류 최초의 향수다. 이전까지만 해도 한가지 향기만 주로 사용하여 만들어 졌는데, 샤넬 No. 5는 83가지가 넘는 재료로 만들어낸 독특한 향의 향수였다. 그런데 샤넬 No. 5는 러시아에서 태어난 향수라는 것이다. 즉 러시아에서 향수 산업이 러사아가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뀌면서 향수회사 랄레 사가 국유화되고, 조향사 이르네스트 보는 프랑스로 옮기게 되고, 프랑스에서 러시아의 향수를 생산하게 된 것이 샤넬 No. 5가 된 것이다. 즉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사촌이었던 디미트리 파블로비치가 코코 샤넬과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디미크리가 바로 조향사 에르네스트 보를 샤넬에게 소개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에게 바쳐졌던 비운의 향수 예카테리나의 부케는 유럽 대륙을 횡단한 수 패션업계의 여황제로 기록될 여인 마드모아젤 샤넬과 조우하면서 파리에 정착할 수 있었다. 이후 샤넬 No. 5는 한 세기를 군림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 하는 여배우 중 최고는 오드리 햅번이다. 오드리 헵번과 지방시가 만나게 된 계기는 영화 <사브리나>를 준비할 때 헵번은 지방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고집을 세워 지방시가 1952년 첫 번째 부티크를 오픈하고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하고 얼마 되지 않은 1954년 사브리나를 만들 때부터 지방시 옷을 입기 시작했다.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흰색 블라우스와 어리가 잘록한 플레어스커트가 지방시가 디자인한 것이었는데 이 의상이 완벽하게 헵번에게 어울린 것이다. 그 이후 18편의 영화의 의상을 대부분 지방시의 옷만 입었다. 롤랑 바르트는 지방시와 오드리 헵번은 그리 로맨틱하지는 않지만 기호학자다운 방식으로 이런 정의를 내렸다. ‘명성의 거래’
향수 하면 구찌를 빼 놓을 수 없다. 구찌의 파격적인 향수 광고는 향수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과도한 노출, 섹시한 풍경,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사회 규범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파격적인 시도를 일삼았다. 동성애를 자극하는 땀을 흘리는 여성끼리 키스하는 장면, 여성의 중요부분을 광고에 실으면서 향수를 탈윤리의 이미지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향수는 아직은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해 보았다. 역겨운 냄새가 날 때 얼마나 심기가 불편한가? 도저히 냄새 때문에 참을 수 없다. 비행기 안에서 김치 냄새라든지, 해외여행 중에 먹고 트림했을 때 나는 두리안 냄새는 심한 고통까지 주게 된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향수의 향기는 얼마나 우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줄까를 생각해 보면 조금은 알 것 같다. 미국 여행 중에 구입한 아로마 치료제를 어깨가 뻐근할 때 어깨에 발라주면 아주 시원하고, 그 시원한 향기가 마음까지 시원케 함을 경험하며 향수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기로 마음을 먹어 본다. 이젠 집에 굴러 다니는 향수를 약간씩 뿌리는 것에 도전해 볼 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