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 - 구본형의 자기경영 1954-2013
구본형 지음 / 김영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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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본형이란 사람을 잘 모른다. 그러나 변화라는 단어는 잘 안다. 아니 좋아 한다. 컴퓨터나 전화기는 늘 얼리어답터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따라가기가 힘들어 좀 버거움을 느낀다. 구본형님의 명함 “변화경연전문가”가 맘에 든다. 어차피 사는 인생 새롭게 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해 보고, 새로운 곳을 보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해 보는 삶이 진정한 삶이 아닌가? 구변형의 604편에서 가려 뽑은 대표 유고작 60편을 읽어내려 간다. “그대의 일이 놀이가 되기를, 그대의 삶이 축제가 되기를” 이 책은 우리에게 ‘평범한 하루에서 위대한 하루로, 내가 바라는 그 사람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질문의 힘은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것일까? 익숙해 신기할 것이 없는 것을 낯설게 보는 훈련으로부터 온다. 나는 이것을 ‘시인의 시선’이라고 부른다. 수없이 많은 것을 보지만 언젠가 한 번 제대로 보는 순간 우리는 느닷없이 재미있는 세상으로 인도된다. 시인 이정록의 시인의 시선을 갖기 위한 초보적 훈련의 교본을 보자. 첫째, 하나의 사물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둘째, 비교해 보는 것이다. 도토리와 상수리를 비교해 보듯 비교는 새로운 시선을 연다. 셋째, 삶에 농을 치는 것이다. 저자가 원고지 5장을 채워 오라 했을 때 원고지 상단에 10*20이라 써 있는 것을 보고 200이라고 온 바닥을 다 채워갔다가 뒤지게 맞았다고 한다. 낯선 삶은 늘 흥미진진하다.

 

변화의 두려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여행을 갈 때 얼마나 큰 짐을 들고 가는가? 짐의 크기는 여행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다. 저자의 여행가방 싸기가 도움이 된다. 일단 가방을 열어두고 필요한 것을 가득 채운다. 그리고 떠나기 전날 짐을 반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렇게 싸는 이유는 여행은 떠나기 전의 즐거움이 더하다. 가반을 싸면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반으로 줄이는 것은 가서 뭔가를 채워 오기 위함이다. 이번 여행을 그렇게 해 보자.

 

버나드 쇼는 “인생은 너 자신을 발견하고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 네가 원하는 모습대로 너를 창조해내는 것이다.” 창조란 길들여진 생각이 미처 찾아내지 못한 것들을 찾아내어 새롭게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나의 창조, 그것은 내 속에 머무는 잠재태를 이 세상으로 불러내 현실과 다시 연결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시를 쓰고, 글을 쓰고, 한국을 위해, 가정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다. 앞으로 이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앞 날의 삶이 너무너무 기대된다.

 

지금 나의 문제를 깊이 겨냥하라. 비교종교학자 조셉 캠벨이 제자와 결혼을 했는데 다 좋은데 젊고 예쁜 아내가 늘 늦는 것이었다. 싸우고, 엄포를 해보고, 달래보기도 했지만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에게 고민을 이야기 했더니 이렇게 충고를 했다. “그건 자네에게 문제가 있는 거야 아내가 도착하기를 바라지만 아내는 아직 오지 않아. 지금 자네는 현실이 아닌 것을 열망함으로써 그녀를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다른 경험들을 망치고 있단 말이야” 캠벨은 이 충고를 듣고 기다리는 시간을 일종의 영적 훈련의 시간으로 삼았다. 마음을 바꾸자 짜증은 가라앉고 그 장소와 풍광이 흥미진진하게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상점 속의 진열품을 감상하거나 관심 있는 것에 대해 묻는 동안 그녀는 올 때가 되면 나타났다. 그 맛을 즐기느라 그는 종종 아내가 더 늦게 나타나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러니까 생각이 나는데 나도 아내를 늘 기다린다. 그런데 내가 터득한 방법은 책을 들고 나온다. 기다리는 시간에 짬을 내어 책을 읽는데 얼마나 꿀맛 같은지 모른다. 아내가 늦어도 전혀 상관없다. 나도 화를 내지 않으니 부부관계도 좋아 졌다.

 

50대 10년 동안 해야 할 7가지를 적어 보자. 1. 자신의 철학을 이웃과 조직에 나누어주어라. 2. 나의 인생에 감동한 세 명에서 다섯 명의 후배를 만들어라. 3. 아침에 일어나 하고 싶은 일로부터 하루를 시작하라. 4. 하루에 한 번 작은 즐거운 일 하나를 만들어내라. 5.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산에 가라. 6. 자신의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라. 7. 한 달에 한 번은 가장 좋을 때 한국의 산하를 구석구석 뒤지고, 1년에 한 번은 다른 나라를 돌아보고, 매일 30분 이상씩 걷는 거리의 산책을 즐겨라. 인생은 길과 거리에 수많은 교훈을 남겨둔다.

나를 이 기준에 비추어 점검해 보자. 1번은 우리의 공동체 수백 명에게 수시로 나누고 있다. 2번은 그들이 감동되었는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3번은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데 건강을 위해서지 하고 싶은 아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을 위한 일이니 도움이 된다. 4번은 작은 즐거움, 그 중심에 운동이 있다. 운동을 하면 너무나 즐겁다. 가끔 아내와 냉면, 막국수를 먹는다. 가족과 산책과 나눔을 갖는다. 5번은 산에 꼭 간다. 산책도, 묵상도, 시도, 글도 쓴다. 6번은 자서전은 아직 못쓰고 있다. 비슷한 글을 하나 쓰고 있는데 자서전으로 만들어봐야 겠다. 7번은 산에 간지 오래다. 한 번 아내와 실천해 봐야 겠다. 일년에 한 번 다른 나라는 실천하는 편이다. 매일 30분 걷기는 밥 먹고 소화시키러 가는 정도다. 둘러보니 웬만큼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좀더 구체적으로 해 보아야 겠다.

 

일이 예술이 되는 차원을 만들라. 일을 예술의 차원으로 만들려면 첫 번째 차원은, 부지런함의 단계이다. 즉, 성실함의 단계다. 두 번 째 차원은, 시키는 일, 즉 과업을 달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세 번 째 차원은,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하는 대신 새로운 개념의 할 일을 찾아내는 차원이다. 네 번째 차원은, 일이 예술의 경지에 이르는 차원이다. 이때 일은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웰빙에 기여하는 수준에 도달하게 된다. 네 번째 수준에 이르면 고통스럽고 고독하다. 운이 좋으면 영광도 크다. 그러나 거부할 수 없는 천복을 따를 길이니 인생 전체가 보답하게 된다. 참 마음에 든다. 일이 예술이 되는 차원, 마음이 예술, 상황이 예술이 되면 좋겠다. 나는 가족, 지인에게 가끔 시를 읽어주는 즐거움으로 산다. 나의 시를 하나 올려 보는 것으로 독후감을 마쳐보려 한다.

 

방의 예찬

 

그리 좁은 것이 어찌 우주를 담고 있는가

초라하기 그리 없지만 고귀한 품격이 길러지는 곳

갖춘 것 없어도 활력의 충전소

연구재료 없어도 걸작품 제작소

아무도 봐주지 않는 곳이나 세계가 주목하는 꿈 터

고독하게 홀로 있으나 모두를 사랑하는 사랑 터

어떤 피곤도 씻어내는 세곤실(洗困室)

어떤 모습으로 돌아와도 반겨주는 곳

사랑하는 이의 배신의 피신처

누구의 허락 없이도 갈 수 있는 곳

그곳엔 꿈, 쉼, 잠, 창작, 사랑이 활개 친다

오늘도 고마운 그놈이 나를 기다 린다

방이 있다

삶이 있다

내가 있다

그 곳에 내가 없으면 그 것이 없다

내 안에 그것이 없으면 그 곳이 아니다

나는 그곳이고, 그 곳이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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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가 잃어버린 주기도문
김형국 지음 / 죠이북스(죠이선교회)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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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모든 교회들은 예배 때마다 거의 주기도문을 했다. 주일예배는 물론, 수요예배, 주일저녁찬양예배, 혹은 회의때에도 수시로 주기도문을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기도문이 사라졌다. 아직도 든든히 하는 교회들이 있지만 점점 사라져 아예 흔적조차 찾지 못할 정도까지 되기도 했다. 사도신경은 하지만 주기도문은 잊어버렸다. 왜 그랬을까? 주기도문을 잃어버린 것과 한국교회의 쇠락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사단의 미묘한 속임수가 있었을까? 주기도문은 너무나 많이 하다보니까 형식적이 되어 주기도문에 기도를 빼면 ‘주문’이 되는데 주문이 되다시피 했다고 생각하고 그럴 바에야 아예 하지 말자고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주기도문이 주문이 되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아예 하지 않는 것은 더욱 문제인 것 같다. 기본적으로 주기도문을 찾을 뿐만 아니라 주기도문의 정신과 내용을 되찾아야 겠다. 저자가 남들이 쉽게 간과해버린 것을 예리한 영성으로 찾아낸 것 같아 고맙다. 주기도문을 왜 찾아야 하는지, 주기도문의 중요성은 무엇인지, 주기도문의 내용은 무엇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저자의 혜안을 읽어보기로 하자.

 

마태복음 6장에는 주기도문 바로 앞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이와 같이, 그러므로 기도하라, 너희는”입니다. 주어인 ‘너희는’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데 강조법입니다. 즉 ‘너희는’ 특별한 백성이므로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너희’에 대한 이해가 분명하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는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즉 애굽의 노예된 백성, 노예로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구속받고, 천시 받고, 대우받지 못하는 백성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을 말합니다.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에는 애굽의 풍속을 따르고, 애굽의 신을 섬기고, 그들의 규례와 명령을 따랐던 백성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 세상의 법을 따르고, 세상의 신을 섬기던 모습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제 구원을 받고 세상에서 벗어났으니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하나님 나라는 구약의 이스라엘이 하나님 백성으로 부름받을 때와 동일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게 된 우리 자신이 전혀 특별하지 않은, 매우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이 그것입니다. 오히려 많은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형편없고 무가치하다고 여기며 괴로워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백성의 특징입니다. 별 볼 일 없는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이하인 사람들을 부르셔서, 온 우주와 전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신 특별한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된 우리가 어 이상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을 따라 가기로 결단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 백성의 특징입니다. 주기도문은 바로 이렇게 된 백성들이 하는 거룩한 기도입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수훈을 읽으면 우리가 가장 기죽게 됩니다. 산상수훈대로 살기가 얼마나 힘이 듭니까? 그러나 산상수훈은 ‘이렇게 살면 그리스도인이다’라는 기준이 아닙니다.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므로 산상수훈의 가르침대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행위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마음 상태, 그리고 그러한 마음을 가져오는 새로운 관계를 강조하는 것이 산상수훈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상수훈을 가능하게 한단 말입니까? 그 답은 바로 주기도문에 있습니다.

 

마5:3-16절 하나님나라 백성의 정체성, 마5:17-48 하나님나라 백성의 새로운 삶의 방식, 마6:1-4 자선에 대한 가르침, 마6:5-8 이방인의 기도, 마6:9-13 주기도문, 마6:14-15 온전한 기도를 위한 용서, 마6:16-18 금식에 대한 가르침, 마6:19-7:12 하나님나라 백성의 근원-하나님 신뢰, 마7:13-29 하나님나라 백성의 열매와 표지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정체성에서 열매와 표지로 가는 중간에 삶의 방식, 신앙생활, 삶의 방식의 근원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그 가장 중심에 기도가 있고, 그 중에서도 중심에 주기도문이 있습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은 기도에 달려 있는데 이방인처럼 중언부언도 아니고, 바리새인처럼 외식하는 기도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내용을 골방에 들어가서 주님과 독대하듯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기도로 살고, 그 중에서도 주기도문으로 삽니다.

 

그렇다면 주기도문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왜 기도하는지, 어떻게 기도하는지, 무엇을 기도하는지를 보면 세상이 얼마나 우리를 간절히 기도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도가 살아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요?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행하도록 우리를 이끄는 힘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그 해답이 우리 안에는 없다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그 동력은 우리를 불러 주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과 소통할 때 우리에게 특별한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립니다. 갈등과 연약함 가운데서 우리로 이기게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이 기도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주기도문을 외워서 우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기도문이 우리를 형성하고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게 만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이스라엘을 지켰다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을 허셨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성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즉 제사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성전을 헐었다는 것은 이미 주님의 십자가로 이루셨기 때문에 제사가 필요 없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성전을 허신 것이겠지요. 그래서 지금도 성전 자리에 성전을 지을 수 없게 되었고, 이슬람의 황금모스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는 집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다고 진노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제사의 의미를 성취하시고 성전은 이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즉 구약의 안식일은 제사하는 날이라면 신약의 주일은 기도하는 날일 것입니다. 구약은 제사로 살았다면 신약의 성도는 기도로 사는 것입니다. 기도 중에서도 주기도문으로 사는 것일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주기도문을 부지런히 드려야 합니다. 주기도문을 단단히 지켜내야 합니다. 그러나 실상은 주기도문을 우리가 지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기도문을 하고, 그 뜻을 기도를 통하여 이루면 결국 주기도문이 우리를 지킨 것이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주기도문을 지킨 것이 아니라 주기도문이 성도를 지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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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의 원리 Vol. 1 - 원리편 국어의 원리
구자련 지음 / 다섯번째사과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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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실력은 국어 실력이라고 합니다. 수학도, 영어도, 과학도 결국은 국어 실력이 좋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다 문장이고, 그 문장을 어떻게 잘 이해하느냐의 문제이니까요. 그런데 사람들은 문장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단어, 선지식에 의한 그 단어의 의미, 문장의 의미 속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려 하는 것 같습니다. 결국 선 지식이 없으면 그 단어, 문장, 책을 이해하는데 실패하고 마는 것이지요. 영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독해를 할 때 몇 단어를 몰라서 절절매다 결국 문제를 풀지 못하고 점수 획득에 실패를 하고 맙니다. 그러나 국어 실력이 좋은 학생은 몇 개의 단어를 몰라도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를 하면 모르는 단어조차도 유추해서 이해하고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결국 문제를 맞춰 좋은 점수를 받아 남들보다 앞서가게 되는 것이지요. 국어의 원리의 저자는 바로 이런 점들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잘 정리해 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어의 이해에 있어서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OLD와 NEW가 있습니다. 올드한 방법은 선행연구에 의한 방법입니다. 즉 문장 혹은 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선행지식이 없으면 쉽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방식은 선행지식이 없어도 텍스트 메카니즘으로 이해하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선행연구는 배경지식 중심, 결과형 독해기술, 수직적 대응, 해설자 입장이지만 텍스트 메카니즘은 구조+논리 중심, 과정형 독해원리, 수평적 대응, 독자 입장에 의거해서 풀어가는 방법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이론이라도 어린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하지 못하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이인슈타인-

 

통상적으로 언어, 국어 관련 서적이나 연구들의 텍스트 분류 기준은 시험 범위에 맞춰 인문, 사회, 과학, 기술, 예술, 언어 등 한 편의 주제나 전개방식 또는 문제유형을 기준으로 분류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구분은 배경지식 중심이거나 내용 중심의 기준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한국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니고, 중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닌 바로 텍스트 자체 분석 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1)변하지 않는 속성 즉, 내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 2)논리적 사고와 연관된 요소, 3)모든 언어의 공통적, 보편적, 일반적 속성에 해당되는 요소가 무엇인지를 고민했습니다.(p53)

 

세 가지의 속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텍스트와 이성적 사고, 둘째, 텍스트와 학교문법, 논리문법, 셋째, 텍스트 유형과 사고의 유형입니다. 결론적으로 모든 문장은 어떤 내용을 주장하기 위해서 단어와 단어를 이어주고, 동일 단어를 반복해서 그 주장을 펴고, 비슷한 단어로 다시 설명하고, 주장에 더하는 단어나 문장을 덧붙이기도 하며, 때로는 빼기를 해서 반어법으로 주장을 펴기도 한다. 그 흐름을 순류로 흘러내려가며 이어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역류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전환하여 다른 흐름으로 이어가기도 한다. 이런 것들이 단어에서, 문장으로, 문장에서 문단으로, 문단에서 책으로, 책에서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책, 전집등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원리만 이해하면 뭐든지 다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선지식이 없이는 책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말했든 모든 책은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게 써 놓은 것이니 그 텍스트를 이성적 사고, 논리문법, 사고유형으로 해석해 나가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니 국어가 쉽다.

 

몇 년 전 플라톤의 국가론을 읽으면서 아주 어려워했다. 그런데 초등학생인 친구 아들이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깜짝놀랬다. 이제 생각하니 나는 선지식이 없어서 이해하기 힘들다는 선입견으로 가지고 읽어내려 가니 모든 것이 어려웠고, 그 학생은 그저 문장으로 쉽게 읽어 내려 가다보니 이해가 빨랐고, 재미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관점에서 플라톤의 <국가>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주 쉬운 이야기였다고 생각된다. 그저 서로 대화하는 것을 대화법으로 기록한 것뿐이니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또한 그 대화의 내용이 아주 전문적인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 다만 플라톤이 말하니 아주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어렵게 만든 것뿐이었다. 이제 알겠다. 국어를 쉽게 하는 방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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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난 제작소 이야기
카마다 마사루 지음, 김욱 옮김 / 페이퍼로드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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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딸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1년 2개월이 넘었다. 새벽에 나가 저녁 늦게, 아니 아주 늦거나 새벽에 들어올 때도 있다. 일도 힘들지만 재미가 없단다. 왜 다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단다. 자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동료도 선배도 그렇단다. 팀장님은 집에서 샤워를 하면서 소리를 지르며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오직 성공을 위해서 다닌다고 한다. 직장을 다니며, 재미, 흥미, 보람이란 단어를 찾는다는 것은 호사중에 호사일 것이다. 그런 회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메이난 제작소는 바로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주는 회사인 것 같다. 어떻게 이런 회사가 다 있을 수 있을까? 도대체 이 회사는 어떤 회사 이길래, 그 사장님은 어떤 분이 시길래 이런 회사를 만들어 놓았는가? 메이난 제작소의 수많은 장점과 특이점,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들은 열거해 보자.

 

첫째, 어느 날 직장의 직원이 메모판에 메이난 회사를 부숴버리겠다고 했다. 그 글을 읽은 사장은 저 글을 내가 쓰지 못 한 게 안타깝다고 했다. 직원들을 보람 있게 만들지 못하는 회사는 존재할 필요가 없어! 그런 회사는 다 부숴버려! 이것이 하세가와 사장의 기업 경영의 철학이다.

둘째, 창업 이래 한 번도 이익을 올리라고 다그친 적이 없다! 회사가 존재하는 목적은 이익이 목적이 아니다. 기술도 아니다. 좋은 물건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의 존재 목적은 사람이다. 직원들을 위해, 직원들이 행복한, 자신들의 능력을 펼쳐가며 즐거워하는 그런 곳이 회사가 되어야 한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셋째, 회사 사시가 F=ma인 회사다. 역학은 철학이고, 자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이 원리는 노력에 시간을 더하는 성장 에너지다. 사람이 노력하고, 그 노력하는 시간이 곱해지고, 가속도가 붙으면 반드시 힘은 생기고, 결과는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직원들을 위한 회사, 그래서 그 직원들이 자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그 시간이 축척되면 반드시 결과는 이익으로 나오고, 그 이익은 직원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직원들을 사장과 동일한 능력자로 대우하는 것이다. 월급을 동일하게 준다는 말은 아니다. 목공기계제작소이니만큼 직원들의 학력수준은 중졸 이상 정도이다. 직장의 일을 마치고 더 공부할 수 있도록 야간고등학교를 다니게 했다. 물론 자신의 돈으로 다니게 했다. 그런데 학교에 간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은 회사에서 학비를 대준다는데 왜 우리는 안 대주냐는 불평을 했다. 이 때 학생들과 타 회사 사장에게 한 말은 이렇다. 공부는 회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연히 스스로 학비를 내야 한다. 학비를 대 주는 것은 직원들을 이미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대우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학비를 받는 순간 나는 저 사장님보다 못한 사람이니 도움을 받고, 그러니 그 사장님과 같이 될 수 없는 인식을 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호세가와 사장은 직원들의 능력이 자신보다 더 탁월하다는 생각에 얼마든지 발전할 것을 기대하며 자신을 위해 스스로를 격려하며 당당하게 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만약 아깝고 억울하면, 자신이 공부하는 것이 회사를 위해 한다고 생각하면 경리과에서 학비를 청구하면 다 주겠다고 했지만 한 사람도 찾아가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멋진 철학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게 모르게 차별대우 했으며, 그런 대우를 받았는가?

다섯째, 직원들이 사 보는 모든 책을 회사가 지불한다. 영수증만 가져오면 어떤 책이든 상관없이(만화책도, 소설책도) 책값은 회가에서 지불한다. 직원들의 성장을 위한 간절한 호세가와 사장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여섯째, 사장도 ‘완전신임투표’로 운명에 달려 있다. 사장이라 해서 영원히 사장은 아니다. 사장이 사장으로서의 자격과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직원들의 투표에 의해 물러나야 한다. 호세가와 사장이 얼마나 자신감이 있는가? 아무리 잘하고 있다고 해도, 앞으로도 부지런히 끝까지 잘할 생각을 하지 못하면 힘든 일이다. 또한 모든 일의 결정은 담당자가 책임지고 한다. 상사의 눈치를 절대로 보지 않는다. 아니 모든 책임을 담당자가 진다는 의미가 더 크다. 또한 모든 업무는 다 할 줄 안다. 자신이 잘하는 업무만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업무를 다 통달하여 업무능력을 극대화 시킨다. 부서간의 협력이 증대되게 한다.

일곱째, 세상에서 가장 신기한 급여 협상을 한다. 사장의 월급을 직원들이 결정한다. 메이난 제작소는 ‘차원제’가 있는데 0.5-5단계까지 두고 있다. 이 차원제도 직원들 스스로 정한다. 벌거벗고 서로의 차원을 난상토론하며 정한다. 마음이 상하는 경우도 있지만 솔직하게 받아들이고 더 노력하게 만든다. 자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여덟째, 채용방법이 특이하다. 최소 3개월 길면 1년씩 걸린다. 임시직으로 있는 동안 모든 부분을 체크해서 모든 직원들이 합의하에 결정한다. “대우해 주지 않는다”라고 미리 밝혀도 지원자가 몰린다. 취업 지원자 대부분 회사가 제공하는 연봉이나 규모, 복지 후생 시설에 구미가 당겨 지원하는데 메이난 제작소는 그런 것은 없다고 한다. 즉 이런 대우받기 위해서 온다면 후회한다는 것이다. 오직 물리를 공부하러 온다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자신을 더 나은 사람으로 발전시킬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맞는 회사라는 것이다. 회사 물리 시험은 미리 공지한다. 시험문제를 알고 풀기 때문에 못 푸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런지를 설명해야 한다.

 

메이난 제작소는 중소기업이다. 일본에는 메이난 제작소를 뛰어넘는 대기업이 수두룩하다. 메이난 제작소가 크지 않은 이유를 이런 방식으로 하니까 그렇지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대기업들은 정형화된 직원들을 뽑아서, 시키는 일을 탁월하게 잘하고, 야근과 특근을 병행하며 뼈가 빠지도록 시키면 반드시 대기업이 된다. 그러다가 능력이 다하거나, 나이가 들거나, 못 견디는 사람은 떠나면 그만이다. 기다리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직원들은 소모품이다. 돈 주고 쓰다가 다 써서 못쓰게 되면 버리면 그만이다. 이 방법도 틀린 것은 아니다. 그래야 대기업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호세가와 사장은 사람을 택했다. 인간을 존중했다. 자신을 버리고 돈을 남들보다 더 벌겠다는 사람은 대기업을 택하면 된다. 그러나 ‘나’를 찾겠다는 사람은 메이난 제작소를 찾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메이난 제작소가 없는가?

나는 작은 공동체를 인도하는 리더로서 많은 것을 배웠다. 나의 공동체에서도 무임으로 너무나 많은 시간과 능력을 헌신하는 사람들이 많다. 너무나 고맙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보람이라 생각한다. 기쁨과 즐거움이 있으니 자신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것일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의미다. 의미 있는 일, 타인을 살리는 일, 생명에 관한 일은 이렇게 자신을 불사를 수 있다. 그 가치를 찾아 구성원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더 중요한 가치, 그 가치를 더 강력하게 제공하고, 함께 그 가치를 위해 달려가는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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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죽기로 결심하다 - 어느 날 문득 삶이 막막해진 남자들을 위한 심리 치유서
콘스탄체 뢰플러 외 지음, 유영미 옮김 / 시공사 / 2013년 8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내가 아는 아이의 아빠가 과로로 쓰러지시고 돌아가셨다. 알고보니 바쁜 회사 생활을 하면서 투 잡을 하신 것이다. 결국 쓰러지시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가족을 지키려고 그토록 애를 쓰셨는데 결과는 전혀 반대 방향으로 가고 말았다. 가족들은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고, 아내로, 자녀로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아직도 많이 어려운 상태다. 이렇게 쓰러지는 경우도 있고,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마음을 쓰러진 남성, 우울증에 시달리는 남성들이 너무나 많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우울증은 여성병인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실제로 남성이나 여성이나 별 다름 없이 비슷하게 통계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성들이 더 많이 괴로워하고 있다. 왜냐하면 남성들은 남성이라는 남성성에 눌려 여성처럼 약해 보이지도 못하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남성들은 무한경재의 사회에서 도태되는 고통과 집에서 위상이 높아진 아내들에게 눌리고, 자녀들에게까지도 외계인 취급을 받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이런 현대적 상황은 남성들을 더욱 코너에 몰아가고 있다. 과거에 여성들이 시달렸던 아픔을 이젠 남성들이 고스란히 댓가를 치루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대안을 찾을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책은 남성의 우울증 비율, 원인, 치료 및 대책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남성들의 우울을 날려버리러 가자.

 

남성과 여성의 우울증의 비율은 비슷하다. 그러나 점점 여성들이 강하게 되면서 그 비율은 높아질 확률이 많아진다. 남성들의 우울하게 되는 원인을 보면 남자다운 남자가 더 우울하다. 남자가워야 하는 주위의 이목이 남성들을 더욱 고독하게 만들고 있다. 심지어 남성들은 남성다움이라는 것 때문에 타인의 도움까지도 쉽게 받지 못하고 있다. 남성들 중 자신의 가치를 이로 정의 하는 남자들이 더욱 우울하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은 젊은 아빠들도 우울하다. 앞날을 볼 때 결코 나아질 것 같지 않은 형편들을 보면서 우울에 빠진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고정되어 버렸다는 두려움에 빠지면서 우울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우울한 마음은 더욱 깊어진다.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기 힘들다. 퇴직, 건강의 악화, 대인 관계가 끊어짐, 가족들의 무시 등등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우울할 확률이 높이진다. 노년의 우울을 예방하는 방법은 강한 인간 결속력이 우울을 막는다. 좋은 친구 관계를 지속적으로 늙어서도 가지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다.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 상관 없다. 익명의 전화 통화든, 목사님이든, 좋은 친구든 상관없다.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중요하다. 경로당에서 지난 과거 이야기 보따리를 늘어 놓고, 남자들이 좋아하는 군대 이야기도 좋은 것 같다. 친구를 만나서 운동을 하거나 재미난 유머를 이야기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본격적으로 우울증의 치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살펴보자. 대인관계치료가 도움이 된다. 자신의 어려운 문제를 누군가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도 내 일의 후계자를 물색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음챙김명상이 좋다. 자꾸 미래만 생각하면서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 전적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책을 읽든, 운동을 하든, 요리를 하든 그 순간에 집중하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며 우울은 사라진다. 회복탄력성을 키우라. 역겨운 상황에 꿋꿋이 대처해 나가고, 삶의 도전에 맞서 나가고,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그 가운데 성장하는 능력을 말한다. 헨젤과 그레텔 이야기에서 찾을 수 있는데 두 주인공은 극도로 위험한 상황과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는다. 숲속에서 헤메고, 마녀의 집에서 절망적인 상황을 맞았지만, 그들은 내내 자신들이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믿음이 중요하다. 회복탄력성의 중요 인자는 낙천주의, 수용, 해결지향성, 책임을 지는 행동, 희생자 역할 버리기, 인간관계 가꾸기, 미래 그려보기 등이 있다. 즉 언제나 스스로에게 “잘 되고 있습니다.”고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주어진 환경에 불평하지 말고, 수용적 태도를 가지는 것이다. 즉 어려운 환경이면 나를 더 강하게 해 주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다는 긍정적 사고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희생자 역할을 버려야 한다. 나 때문에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나눠져야 한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내면의 힘이 있는데 이 힘은 매일 15분동안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익숙해진 상황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무조건적으로 쉬는 것이다. 아주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신앙생활이 주는 도움도 있다. 많은 사람에게 믿음은 선물이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 무신론자나 종교가 없는 사람보다 대체적으로 행복하다는 것을 많은 연구가 증명하고 있다. 어떤 형편에 있는 신앙은 확신과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 상실과 헤어짐과 불행과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특히 많은 사람이 신앙으로 회귀한다. 상실이 부당해 보이고, 다른 사람의 행동이 말도 안됙 불공평하며, 질병이 생명을 위협할지라도 믿음을 통해 내일에 대한 가능성을 본다. 소망을 가지고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을 인내하며 주의깊고 성실한 태도로 어려움을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 성장한다. 신앙은 정신적인 버팀목이며, 우리에게 세계를 다른 눈으로,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한다. 믿음은 기도로 표현된다. 신상인은 신과의 인격적인 대화를 통해 안식을 얻고, 멈추어 거리를 두고, 시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p267)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옥죄고 있다. 자기가 당기는 줄이 자기의 목을 걸고 당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일로 바빠하며 줄기차게 달려가는데 왜 달려가는지도 모르고, 가족을 행복하게 한다는 이유로 그렇게도 뼈가 부서지도록 일을 했는데 결국 가족들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남자이다. 이젠 내려 놓아야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 가족들조차도 인정하지 않는 일을 남자들은 뭔가에 홀려 군중심리에 끌려 달려가고 있다. 빨리 벗어나야 한다. 나를, 남자를 찾아야 한다. 가족으로 돌아가야 한다. 우리 공동체는 퇴근 시간을 8시로 캠패인을 벌이고 있다. 가족에게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남자들이 먼저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고, 진정으로 가족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 그래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풍성하게 가진다면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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