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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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성과 달리

기억이라는 것은 감성의 영역과 깊이 연결된 느낌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도 내가 느낀 감정에 따라

때로는 그 기억이 '사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왜곡되거나 잘못된 형태로 남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기억을 편집해 주는 기술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 기억의 편집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여기 있다.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본질로 연구하는

작가가 쓴 《기억의 낙원》이다.


가상현실, 메타버스, AI 등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이 새로운 기술들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착각할 만큼 정교해지고 있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나 사업이 등장하는 등

앞으로의 전망은 점점 커질 듯하다.

아직까지는 커뮤니티를 즐기거나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등 순기능적인 부분이

도드라지고 있지만,

이것을 활용한 기술이 '사람'에게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직접영향을 주게 되었을 때

그 파장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대학교 졸업 후 변변찮은 스펙 앞에

제대로 된 취업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소개로 다니게 된 작은 회사의 영업부 직원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하람.

언제나 하람의 고민을 들어주던 장도영 교수가

오랜만의 만남을 청하고,

그렇게 마주한 장 교수는 하람에게 함께 일해보자며

'더 컴퍼니'라는 회사의 명함을 내민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뇌과학,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하람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했었던'

그 순수한 마음 하나는 분명하게 있었다.


더 컴퍼니라는 회사가 무엇을 팔고

어디 있는 회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보다는 이직했다고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하람은 더 컴퍼니의 조 실장을 만난다.


정해진 사무실도 없고,

대학에 다니던 시절 자주 들렀던

교내의 카페 코스모스에서

조 실장을 만난 하람은,

그 자리에서 고객과의 미팅을 바로 진행하는

모습에 당황을 하게 된다.

고객을 함께 만나고

자신들이 어떤 상품을 파는지 알게 될 거라며

그런 다음에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는 말에

지켜본 상품에 대한 설명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데...


바로 더 컴퍼니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기억을 편집하는

인공지능의 기술로 고객 혹은 고객이 요청하는 인물에게

원하는 형태의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시한부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족에게

현실과 달리 번듯하고 성공한 모습으로

행복한 기억만을 심어주려고 한 의뢰인,

식물인간 상태가 된 아들에게

만나지 못한 엄마와의 만남을 기억으로

심어주고자 한 의뢰인,

복수를 위해 복수 상대에게

다른 이의 기억을 주입하고자 한 의뢰인,

특수한 언어능력만을 빼내어 이식하려고 한 의뢰인 등

다양한 사연과 다양한 상품이

고객들에게 맞추어져 제공되고 있었고,

일을 하면서 이를 지켜보고 담당하는 하람은

'편집되고 조작된 기억이 진짜인가?'라는 생각과

'이렇게 조작된 기억으로 얻은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 앞에서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정체가 드러날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더 컴퍼니와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시스템 '발할라'까지

하람은 학부생 시절 장 교수와 함께 배우고

나누었던 수업 시간의 내용과

점점 의심스러워하는 자신의 속마음 속에서

끝없는 고뇌를 한다.


하람의 전 여자친구이자,

패기 넘치는 신입기자인 소이 역시

비슷한 시기에 '더 컴퍼니'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는데,

과연 장 교수와 더 컴퍼니, 발할라가 그리는

이 시스템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숨 가쁘게 따라갔던 서스펜스 소설이었다.


인생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고 행복한 기억만으로 살 수는 없다.

감성적인 부분은 워낙 상대적인 것이라서

넘치는 행복 속에서는 그 행복의 소중함을

미처 느낄 수 없고

어쩌면 고통이나 불행이라는 것이 있기에

행복이나 안도라는 감정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편집된 기억이 가져오는 행복이 전부가 아님을,

또 겉으로 보이는 것에 가려진 진실이 있음을

등장하는 의뢰인들의 사연을 통해 다시금 느낀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하람이 있기에 더 컴퍼니도 발할라도

제 자리를 결국엔 찾아가지 않을까?


실제 관련된 연구를 하는 작가의 촘촘한 구성과

현실감 넘치는 묘사가 작품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었다.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이런 제안과 상품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의 욕망을 제대로 담은 조작,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을 행복이라 여길 것이고

누군가는 힘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쁨의 망각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고통을 감내한 사람만이 얻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관계없이

마음이 느끼는 행복만 있으면 되는지

연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이었다.


조작된 기억이 가져올 파장은

잔잔한 호수를 뒤흔들 만큼 충분히 강력했다.

한 사람의 사연을 통해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점점 늘어나다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커다란 덩치의 파장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실제로 먼 훗날 생길 수 있는 일 같아서

마냥 픽션으로만 즐길 수는 없던

씁쓸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 글은 웅진지식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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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무슨 색인가요? - 전지적 컬러테라피 시점
김규리.서보영 지음 / 이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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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색을 만난다.

다채로운 색을 만나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색이 있기도 하고

그 색은 때로는 나를 드러내기도,

혹은 나에게 위로와 힘, 기쁨을 주는 색이 되기도 한다.

그 색상의 옷이나 아이템을 소지하면

유난히 운이 따르는 것 같은 '행운의 색'이 있기도 하고

나를 좀 더 돋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나에게 맞는 '퍼스널 컬러'를 찾는 데에도

비용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어떤 사람을 드러내는 색에는 무엇이 있을까?

좁은 범위로 생각하면

연예인들의 팬클럽 공식 색상이 있고,

파워레인저에서 이름을 대신하는

등장인물들의 고유 컬러가 있기도 하다.

각 컬러는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고

아이들은 그걸 보며

'나는 레드 할래, 나는 핑크 할래' 하면서

그 컬러 속에 자신을 투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색상이 가지는 어떤 의미를 넘어서

거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색 이야기로 담아낸

재미있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컬러테라피협회의 회장과 이사로 활동하는

저자들이 써낸 《당신의 사랑은 무슨 색인가요?》는

레드, 핑크, 오렌지, 옐로우, 그린,

블루, 로얄블루, 바이올렛, 마젠타 등

9가지 색으로 나뉘어

각 감정의 특징을 나눈 사례들과

그들이 처한 문제점을 진단 및 처방을 전함으로써

각각의 색상의 사람들이 나타내는

성격적 특징이나 강점, 약점을 소개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수 있고

내가 속한 컬러를 통해 나 자신의 약점을

고침으로써 관계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격을 나타내는 MBTI나

별자리 특징처럼

색상으로 분류한 타입이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고

각 컬러별 사례로 제시되는 부분은

어느 정도 그 컬러에 대한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극단적인 케이스 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보편적인 범위 내에서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이런 색상에 속하고

이런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겠다.


가볍게 읽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컬러테라피를 접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고,

읽으면서 나는 어떤 타입의 컬러에 속하는지

또 내가 만났던 관계는 어떤 컬러에 있어서

무엇이 그 관계의 문제였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겠다.






책의 부록으로는 설문지를 통해서

나의 사랑이 어떤 컬러에 속하는지

테스트해 볼 수도 있었는데

성격적인 묘사를 살펴보았을 때는

오렌지 타입이라 생각했었는데

설문지를 체크하다 보니

그린 타입과 블루 타입의 성향이 강하다는 결과에

스스로도 조금 의외의 답을 받을 수 있었다.

가볍게 읽으면서 관계에 대한

상처를 얻은 마음에 치유를 얻고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옛말이 있는데

깊은 그 한 길 사람 속을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는 기회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이콘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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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어른
이옥선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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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기의 기술〉,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를 비롯해

〈말하기를 말하기〉, 〈금빛종소리〉 등을 쓰며

책읽아웃이라는 도서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걸로

잘 알려진 김하나 작가와 작품을 좋아한다.

내가 블로그에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카테고리명으로 '책읽아웃'을 사용하는 것도

이 표현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


여러 책들을 통해서 김하나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녀의 가족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많은 그녀의 책들 중에서도 주변인들에게

많이 추천하고 또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 중 하나는

바로 그녀의 어머니와 함께 공저한

〈빅토리노트〉 이다.


김하나 작가가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친 책 리스트에서

언급을 했던 것으로, 출간 전에도 검색을 해보며

'대체 빅토리노트가 뭐지?' 하며 궁금해하던 찰나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출간된 단행본 형태의 이 작품은

그녀가 태어나면서부터 5세가 될 때까지

엄마인 이옥선 여사가 써 내려간 육아일기였던 것이다.

노트의 이름이 '빅토리 노트'여서 자연스레

책의 이름도 빅토리 노트가 되었고

그녀 오빠의 노트는 '유니언 노트'라는 이름!


자녀의 성장과정을 따라

그날그날의 추억과 사랑을 담아낸 엄마의 흔적은

오랜 시간이 지나 다 자란 자식들에게

인생에 힘든 고비나 고민이 있을 때

'너는 이만큼 소중한 존재'라며 무엇보다 큰 힘을 주었다.


빅토리 노트를 출간하며 그때의 일기에 대한 코멘트와

여기저기 기고했었던 글들을 함께 실었던

이옥선 여사는 '빅토리 노트' 출간 후 북토크를 다니며

다시는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들어 책을 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출판사와 김하나 황선우 작가의 권유에 못 이겨

또 '한 약속은 지킨다'라는 마음에 시작한 책을 쓰다 보니

어느새 쓰고 싶은 말이 많아져

'내가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학생들을 지도하는 일을 하다가

결혼 이후에 자연스럽게 그만두고 전업주부로의

삶을 살아오게 되었는데

글과 문학에 대한 조예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이 깊었고,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고 해야 할지

김하나 작가의 그 탄탄한 필력은 아무래도

엄마 아빠에게서 고스란히 이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고하신 김하나 작가의 아버지는 시인이셨다.)


작가는 성인이 되어 독립한 자식들,

또 남편을 떠나보내고 비로소 '혼자'의 삶이 되면서

자유의 몸이 된 자신의 시간을 만끽하며

즐거운 어른으로 살아가고 있는 시간을 묘사했다.

할머니, 노인이라 부를 수 있는 나이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며

자유로이 지내는 시간을 가지는 모습은

정말 너무나도 멋지고

'나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했다.


일본 작가 중 소노 아야코나 사노요코를 좋아하는데,

지긋한 나이의 작가가 전하는 이런

'살아볼 만큼 다 살아본 이가 전하는

위트 있는 가르침'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이번에 〈즐거운 어른〉을 읽으면서도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고

아직은 우리 엄마보다는 좀 더 선배 나이인 작가였는데,

우리 엄마도 나이가 좀 더 들어서

이렇게 나이들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나 자신을 제대로 알며

인생의 골든에이지를 살아가는 모습은

이런 게 인생의 성공이자 행복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희망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오롯이 자신의 이름 석 자로 돌아간 시간을

누구보다도 즐겁게 살아가는 작가의 모습에서

즐거움과 행복, 이상향까지 발견한 기분으로

즐겁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전작인 〈빅토리노트〉에서는

육아일기 속 삼십 대 젊은 엄마의 시선에서

쓰인 글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더 많은 시간이 지난

70대의 인생에는 더 많은 굴곡과 즐거움이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장맛이 깊어지듯,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도

무릇 시간의 흐름이 더해져야

비로소 완성이 되는 게 아닐까?

나의 인생에도 깊은 시간이 맛이 더해져서

내공이 쌓여지기를 차분히 기다려본다.


"이 글은 이야기장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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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도윤 지음 / 한끼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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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벌을 내리는 것은 사람인가, 신인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들었던 생각이다.

종교적인 존재를 넘어서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믿음이라는 시선으로 보느냐

그를 하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보느냐에 따라

이 소설에서 누가 선인이고 악인인지

생각이 수시로 바뀌곤 했다.


어렸을 때는 심심한 주말 시간을 어쩌지 못해

'당연한' 차례인 듯 교회에 나갔던 적이 있었다.

아직 마음속에서 종교나 신에 대한 정의가

제대로 내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모여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장소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던 교회는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 앞에서

무딘 감정을 갖게 하였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교회든 성당이든 절이든 그것을 믿고 찾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종교가 맞고 틀리다는 생각은 전혀 없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지 않음을 바랄 뿐이다.


이렇듯 나는 종교에 있어서도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느 사회에서는 이 종교활동이

필수적인 관계의 요소가 되기도 한다고 한다.

외국에서 거주하는 이민자들의 경우

먼저 정착한 한인들의 도움이 무엇보다 필요한데,

이 커뮤니티가 가장 활발한 곳이 교회라서

이전에 믿고 안 믿었고에 상관없이 많이들

교회에 다니고 거기서 관계를 형성한다고 하니,

과연 종교 선택의 자유를 가졌다고 할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이 들기도 한다.


어린 시절 집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동생과 부모님을 잃은 소년이 있다.

사고 당시의 끔찍한 기억과

내가 조금만 달랐더라면 가족들을 살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과 후회를 가진 그는

홀로 외로이 자라다 초등학교 교사가 된다.

사고 당시 잃었던 동생의 나이와 비슷한

아이들을 볼 수 있다는 점,

또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동떨어진 곳에 발령을 받아도

전혀 아무렇지 않았던 그는

오히려 다른 이들과의 접점이 없는 외딴곳으로

발령을 신청하고 (당연한 수순으로) 그곳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한사람 마을은 표지판도 제대로 없고

마을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 같은 존재가 있을 정도로

폐쇄적인 데다가 사람들은 마을 밖을 잘나가지 않고

마을 내에서만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인원도 많지 않고 초등학교도 통합반으로 운영될 정도로

굉장히 외딴곳이었다.


지낼 곳도 알아볼 겸 정식 출근 일주일 전

이곳을 방문한 이준은 낯선 마을의 모습에

조금 이상함을 느끼다가도 외지인인 자신을 위해

기꺼이 머물 곳을 내어주고 집 수리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서 온기를 느낀다.


학교에 정식 출근을 시작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로 향하는 사람들에 손에 들린

피가 뚝뚝 떨어지는 봉지를 보며

저들이 교회에 바친다는 '제물'과

교회의 정체에 궁금함이 생기는데


이윽고 발생한 학교에서 키우던 토끼의 죽음,

'고기가 없어서..'라는 말로 토끼를 죽인 것을 인정한

한 아이를 비롯해 일련의 계기로 통제되었던

교회라는 공간에 나가게 된 이준은

마을의 이장이자 교회에서 '영접'을 하게 도와주는

이장과 그 영광의 방에 대한 미스터리를 가지게 된다.


마을에서 발생한 화재사건에서

과거 자신의 가족을 떠올리며

위험에 빠진 아이를 구출하다 다치게 된 이준.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영광의 방에 가게 되고

드디어 그들이 '신'이라 말하게 되는 존재를 영접하며

심하게 다쳤던 손을 순식간에 치료받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후 '신'과 '영접'을 통해 세상을 떠난 가족을

되살리고자 한 이준의 비뚤어진 욕망을

마을을 통째로 흔들 사건을 만들게 된다.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

그 존재에 자체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이준이

이를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며

숨겨진 '제물'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며 파국에 달한다.


종교가 아닌 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사이에서

혼자 다르게 생각하는 외지인인 이준이 느끼는

기이함이 처음에는 '낯섦'에서 시작하지만,

실제 이준이 영접을 하고 난 이후 그의 마음이 바뀌며

이야기는 큰 요동을 치며 변화하게 된다.


신과 영접을 믿지 않던 이준이

간절히 그것을 원하게 되면서

'인간의 욕심'이 얼마나 많은 것을 어디까지

희생하게 하는지 민낯을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기괴한 설정, 믿을 수 없는 반응이 이어지며

'진실'이나 어떤 '선함과 악함'에 대한 평가보다

앞으로 그래서 어떻게 이어질지를

정신없이 쫓다 보니 어느새 이야기의 끝에 다다랐다.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이장을

과연 마냥 악인으로만 볼 수 있을 것인가?

개인의 소망을 위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고

내달리던 이준을 순수한 선인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대를 이어 연결되는 한사람 마을의 시간이

외지인 이준으로 인해 흔들리고 진실이 파헤쳐 지며

씁쓸한 인간의 본성과 민낯이 드러난 순간

마을 사람들이 내내 읊조리던 '천벌'을 내리는 것은

신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작은 시골마을에서 펼쳐지는 한정된 공간에서의

'신의 기적'이나 '신의 존재'라는 것이

이토록 오랜 시간에 걸쳐 유지될 수 있다는 설정이

오히려 음산하게 느껴졌고

마지막까지 씁쓸했던 마무리는

'과연 이렇게로 끝났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들게 했다.


한국판 오컬트 물이라 하면

귀신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보이지 않는 존재나

어떤 한의 정서 같은 것을 생각했었는데

스스로 폐쇄적으로 만든 작은 마을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서로를 의심하고 다툼이 발생하는 순간

그 '틈'에서 오는 두려움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순식간에 몰입하여 읽어 내려가게 만든

작가의 필력에도 감탄했던 참신한 작품이었다.


"이 글은 한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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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이끄는 곳으로
백희성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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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단순히 먹고 자는 등 생활을 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넘어서 한 개인, 한 집안의 문화와

그 역사를 고스란히 담은 집약체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심심찮게

잘 알려진 이들의 '생가터'를 볼 수 있다.

어떤 업적을 남긴 이가 나고 자란 고향에서

그를 기념하기 위한 어떤 의미라고도 할 수 있지만

사실 먼 시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에게

그 '집'이라는 공간이 가진 의미가 얼마나 되기에

실제 지금은 그들이 살지 않는 과거와 비슷하게

그때의 세간살이를 가져다 놓고 전시장처럼 꾸려둔

그 집의 가치가 도대체 무엇일지 궁금할 때가 많았다.


그런 편견을 가졌던 나에게

어떤 한 가족의 의미와 사랑을 담은 이 작품은

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깨닫고 느낄 수 있는

계기로 다가왔다.


건축가상을 수상하고

현재도 건축디자이너이자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백희성 작가의 《빛이 이끄는 곳으로》이다.


프랑스에서 10여 년간 건축가로 활약하며

다양한 건축물을 디자인해온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실제와 같은 느낌의 소설인

팩션을 써 내려간다.

이 소설은 기록 노트에 담겨온 건축에 대한 생각과

그의 경험, 배운 모든 것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프랑스 시테섬과 스위스 루체른을 배경으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자신이 지은 건물에

잔뜩 녹여내고 숨겨놓은 건축가의 흔적을 따라

뤼미에르 클레제라는 인물이 그것을 파헤쳐 가는

과정을 통해 진정한 집의 의미와 사랑을

따스하게 담고 있었다.


건축가인 클레제는 자신만의 공간을 늘 꿈꾸던 와중에

프랑스 시내 한복판인 시테섬에서

말도 안 되는 금액에 올라온

오래된 집의 매물을 보게 되고,

그 집을 살펴보러 갔다가 알게 된

집주인의 비서 이자벨을 통해

집주인인 피터의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왈처요양병원에 초대를 받게 된다.


건축가인 클레제의 시선을 통해 묘사되는

오래된 고택의 모습과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과거 수도원이었다는 왈처요양병원의 모습은

굉장히 이국적이면서도 글만으로도 그 느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섬세했는데,

소설 중간중간에 그려진 건물을 표현한 스케치는

더욱 그 상상 속의 건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오래된 고택을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다는 점에 매료되어

집주인인 피터의 초대에 임한 것도 있었는데

막상 요양병원에 찾아갔을 때 피터는 의식이 없어서

며칠간 그가 회복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된다.


잘 알지 못하는 집주인을 만나러 간 상황도 특이했지만,

그것도 외부인의 경우 병원에 있는 노인들에게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외지인인 그를

기꺼이 이곳에 머물게 한다는 점과

시종일관 미스터리한 표정으로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는 원장 크리스 부인에게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클레제는

건축가의 입장에서

이 요양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해서 생기는

원초적인 관심을 지울 수가 없다.


집주인인 피터가 제시한 '4월 15일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오래전 피터의 아버지가 지었다는

이 요양병원 건물 구석구석을 살피고,

발견한 여러 힌트들을 바탕으로 추리에 나선다.


숨겨진 공간들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이제까지 3명이나 나타났다가

다들 화를 내며 사라졌다는

건축가들과는 다르게

클레제는 자신만의 시선과 감을 가치고

서서히 비밀에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찾게 된 피터의 아버지인 프랑스와 왈처씨와

아나톨 가르니아의 이야기가 담긴 일기는

피터씨에게 참을 수 없는 원망을 남기게 하는데,


요양병원에서의 일을 뒤로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클레제에게

원장인 크리스 부인이 전한 편지와

두 권의 일기장을 바탕으로 오래된 시테섬의

고택에서 이어지는 비밀을 계속해서 풀어나가고

결국에 피터의 아버지인 왈처가 전하고자 했던

진실에 가닿게 된다.


건축이나 집의 의미에 대해서

저렴하고 빠르게 찍어내던

영혼이 없던 집에 있어서

제대로 된 의미와 사랑을 깨닫게 되고

그것을 다시 원 주인에게 그 모습 그대로 담아

되돌려주는 클레제의 모습은

건축가로서의 사명감을 넘어

한 가정과 한 남자의 사랑에 대한 존경심 같았다.


퍼즐 같았던 건축물의 각 요소들이 맞춰져가며

숨겨져있던 공간이 나타나고

자연과 어우러져 그 진가를 보여주는 모습은

'아! 한번 실제로 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읽으면서 내내 이 공간이 실제로 어디일지,

마치 소설이 아니라 실제 이야기일 것만 같아서

그 알려지지 않은 공간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 커졌다.

그만큼 실감 나게 묘사한 작가만의 필력이

이 작품을 더욱 탄탄하게 만들어준 것 같았고

건축가라는 작가의 직업답게

기초부터 탄탄한 작품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건축 일을 하는 분들은

수시로 스케치를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건축학을 전공하던 친구가

언제든 생각나는 것을 스케치로 옮기기 위해서라도

수시로 그리는 과정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에도 건축과 그림의 연결에 대해서

깊게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서 소설 속에 더해진

작가의 스케치를 보며 그 스케치를 바탕으로 완성될

공간이 주는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

우리가 집을 통해 그 안에서 가족들과 나누었던

혹은 나누고 싶었던 수많은 마음들이

그 속에 잔뜩 배이고 때가타고 삐거덕거리며

전할 그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제는 '생가터'라든가 '집터'라는 공간을

왜 보여주게 되었는지 그 의미를 다시 알게 되었다.


하나의 집이라는 곳이 가지는 수많은 감정들을

아련히 손끝으로 공간을 스치며 생각해 본다.

백희성이 그린 이 소설이 프랑스와 스위스의

어딘가를 넘어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에서 품어진 이야기로 담아주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은 북로망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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