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곁에 두어 좋은 말 - 100년의 문학 작품에서 길어 올린 마음들
나민애 지음 / 북다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북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나라만의 문자를 가졌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고 대단한 일인지

어렸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던 말과 언어였고,

많은 나라 사람들이 사용한다고 하는

이른바 '세계 공용어'라 불리는 타국의 언어를 배울 때면

'아, 애초에 내가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에 태어났다면

이렇게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느라

골치가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던

학창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사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언어

'한글'의 맛있음과 멋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특히나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타국의 언어로 옮기려고 했을 때

그 느낌이 제대로 살지 않는다는 현실에 부딪힐 때면

이렇게 깊은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우리의 언어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다.


2026년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 기념이 되는 해이다.

모두가 평등하게 읽고 쓸 수 있는 한글!

한글의 등장은 어쩌면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기념해

단어를 모으는 사람이라 불리는 나민애 교수가

100년이라는 시간 속에 담긴 문학 속에 있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와 시대를 담고 있는

단어들을 골라내어 이야기를 담았다.

두고두고 꺼내 읽고픈

〈오래 곁에 두어 좋은 말〉이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사용하는 단어의 수는

약 15,000개라고 한다.

이 중에서 서로 다른 단어의 수는 2,000개.

세어보지 않아서 몰랐던 단어의 수가

이렇게 많았다니 새삼 그 수치 앞에서 감탄하게 된다.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가

활자 형태였던 책이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사진이나 영상 등 다양한 미디어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글자를 많이 읽지 않게 되었다.


나날이 줄어가는 독서량은

어휘력 부족 문제를 염려할 정도에 이르렀고,

오늘날의 우리들은 내 마음을 제대로 묘사할 수 있는

표현조차 어려운 시대에 온 것 같다.


이럴 때일수록 아름다운 문학 속으로 들어가서

잊지 말아야 할 단어들을 새겨야지

라는 생각이 든다.


익숙한 단어들부터 예전에는 사용했지만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았던 단어,

이런 의미를 뜻하는 단어가 있었나 싶은 단어들까지

나민애 교수가 한국문학 속에서 길어올린 단어들은

여러 가지 마음과 함께 다가온다.


어떤 단어들은 잊고 있었던 추억을 불러일으켰고,

어떤 단어들은 순식간에 마음을 일렁이게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말 단어들의

의미를 제대로 살펴보면서,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우리말'의 가치를

다시 한번 체감할 수 있었다.


내가 쓰는 말은 나라는 사람을 보여준다.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느낌이 달라지는 것처럼

아름다운 우리말 단어들이 전할

우리만의 정서나 느낌은

다른 언어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뭉뚱그려 표현하던 말들에

좀 더 세밀한 줄기를 더해본다.

새롭게 발견한 단어들을 하나 둘 모아두고,

이렇게 모아둔 단어들로 글을 써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 아니더라도

흐릿해져가는 우리말의 맛을

이 책을 통해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기를.

마음속에서 길어 올린 단어들이

당신이라는 사람의 깊이를 더해주기를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 - 나를 활자에 옮기는 가장 사적인 글방
양다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을 쓰기를 원하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나 싶은 요즘이다.

서점에 가보면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고,

출판사를 통해 나오는 책뿐 아니라

개인이 직접 만드는 독립출판,

인쇄물 형태의 책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기고까지 살펴보면 '쓰기'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다는 걸

새삼스럽게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어렸을 때에는 '말하고 듣고 쓰기'를 배웠었다.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또 글을 쓰면서 발표를 하고 다듬으며

연습의 과정을 충분히 거칠 수 있었다면

공식적인 학업이나 직장에서의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스스로 우러나서 쓰는 글쓰기'는

보편적이 아닌 특별한 일 같았는데

이 '쓰기'에 대해 마음을 먹고 나니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가 생기고, 기록을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인류는 엄청난 변화를 마주했다.

기억력의 한계로 인해 전해지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기록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전달, 가공되었고

이로 인해 문화가 발달하기도 하며

우리는 기록을 통해 시간, 물리적으로 떨어진

시대와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어느 순간 나이를 먹으면서

타인과 외부를 향하던 시선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나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나라는 사람을 파악함으로 인해서

스스로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에

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다름 아닌 '기록'이었다.


나에 대해서 기록을 할 수 있다면,

그 기록을 돌아볼 수 있다면

인생이라는 시간을 더욱 나를 위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쓰기'를 시작하려고 해도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닌

혼자서 읽고 쓰는 것인데도

이렇게 주저하게 되다니.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글쓰기는

얼마나 더 어려울지 말조차 꺼낼 수도 없다.


그런 글쓰기의 욕구를 가진 이들의 마음을 읽은 듯

요즘은 성인을 대상으로 한 글쓰기 교육도 많다.

어떻게 글을 쓰고 다듬어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한 이들에게

글쓰기 기회를 제공하고, 다른 사람들과 글을 나누는 곳.

쑥스러워서 실제 모임에 참석하기 어려운 나에게

작가와 단둘이 글쓰기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매우 사적인 글방'을 만났다.


양다솔 작가가 책으로 전하는 34통의 편지가 담긴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이다.


양다솔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이슬아 작가를 통해서였다.

같은 글방을 나온 친구 사이로,

어쩐지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을 보이는

두 작가의 모습은 분명 나보다 어린데도 불구하고

절로 '우러러' 보게 되는 포스가 있었다.


이렇게 맛있게 글을 쓸 수 있구나,

이렇게 솔직하게 글을 쓸 수도 있구나

감탄을 하면서 내적 친밀감까지 생긴

양다솔 작가는 '까불이 글방'이라는

글쓰기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매 회마다 순식간에 매진되는 이 글방은

글방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아웃풋을 도출해 내고 있는데,

이번에 만난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는

그런 까불이 글방의 연장선상에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흔히 '글쓰기'라 하면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것도 책이라고'

혹은 '이런 글을 쓰는 사람도 작가라고'하면서

쉽게 얘기할 수 있지만

막상 내가 그만한 분량의 글쓰기를 시도한다면

단 몇 문장을 적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음을

단번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활자로 옮기는 방법'이라 할 수 있는

34통의 질문을 통해

양다솔 작가는 독자들에게 글쓰기 과제를 던진다.

일주일에 한편씩 쓴다 해도

34개의 글이라고 하면 8~9달에 달하는 기간으로

꾸준히 글쓰기를 할 수 있을뿐더러

이를 통해 '나'라는 사람을 글로 옮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작가는 글쓰기의 소재가 될 수 있는

키워드들을 6부로 나누어 풀어가며

'나'라는 사람을 파헤치며

문장에 담을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초고 작성법이나, 글쓰기에 막혔을 때 대처하는 방법,

글쓰기에 실패했을 때, 퇴고 체크리스트 등은

실제 전업작가로 살아가는 작가가 전하는

실질적이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팁으로 다가온다.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작조차 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글쓰기의 높은 장벽을 낮춰주며

계속 쓸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그런 시간.


작가는 누구보다 글쓰기의 어려움을 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고자 하는 마음을 공감하기에

독자의 입장에서 그 마음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것 같다.


글쓰기의 방법론이 아닌 글 쓰는 마음가짐이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물꼬를 터주는 것 같은 이 책은

쓰기로 마음먹은 모두에게

환한 가로등이 되어줄 것이다.


단순한 감정의 배설이나

혼자서 읽는 늘어놓는 일기가 아니라

한편의 '글'을 탄생시킬 수 있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그런 시간!


누구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야기를

'글'로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쓰기로 마음먹은 당신에게〉였다.


책을 읽고 있자니, 감정을 뭉뚱그려 놓았던 일기가 아닌

제대로 된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10문장이라도, 직접 쓰고 다듬으며

'글'을 써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이 들게 한 책.

글쓰기가 힘들고 버거워질 때면

언제든 펼쳐 읽으며 방향을 다잡고 싶은 그런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스와이프 엄금 - 변사한 대학생의 핸드폰 ㅣ 엄금 시리즈
치넨 미키토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북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린아이들부터 나이가 지긋한 노인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휴대폰!

우스갯소리로 '무인도에 가져갈 물건 3가지'를 고르라면

물이나 음식 같은 생존 용품뿐 아니라

다양한 정보를 찾을 수 있고, 무료함을 달랠 수 있는

'휴대폰'을 챙기겠다는 이들이 정말 많을 것이다.


단순히 '연락'을 주고받기 위한 수단이 아닌

우리의 생활 깊숙이 들어와버린 휴대폰인지라

이제는 휴대폰을 소재로 한

영화나 드라마, 소설 등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미확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알아서 무서운 것들이 많다.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거나

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개인'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요즘에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는 과거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고장 나서 수리에 맡기느라

일주일 만에 켜게 된 핸드폰.

그동안 보지 못했던 메시지들이 쏟아지고,

동아리 선배가 요청한 자료를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조사에 들어가게 된

잇시키 가즈마.


그가 활동 중인 오컬트 동호회도

애초에 여자친구 때문에 가입했었고,

'시시한 도시 전설'에 매달리는

선배가 한심해 보였지만,

여자친구와의 '미래'를 생각하며

취준생의 입장에서 거절할 수 없었던

'도메키의 동네'라는

도시 전설의 조사를 시작한다.


소설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핸드폰 사이즈로 되어있다.

한쪽 면은 우리에게 익숙한

평범한 소설의 텍스트가

한쪽 면은 마치 누군가의 핸드폰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구조!


마치 주인공이 되어 그와 함께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는 것처럼

이야기 속의 단서를 휴대폰 화면으로

독자들은 함께 보게 된다.


그가 도시 전설 조사를 위해

검색하는 SNS의 화면이나

선배, 여자친구와의 대화창,

영상통화 화면이나 무작위로 날라오는

AIR 메시지 등.


익숙한 레이아웃의 휴대폰에서 펼쳐지는

소설 속의 이야기는

이것이 소설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리얼함을 살리는 것과 동시에

이야기에 좀 더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글로 상상하며 읽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 눈으로 화면을 바라보며

몰입감 있는 체험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심하다'라고만 생각했던 도시 전설,

그 전설 속의 이야기가 점차 현실이 되어가며

숨 막히는 추적이 이어진다.

께름칙한 불안감을 느끼는 주인공의 마음을

그의 휴대폰에 전달되는 메시지를 통해

함께 공감하게 된다.


가장 익숙한 것에서 오는 낯선 공포!

이윽고 도달하게 되는 마지막 반전까지!

130페이지 남짓의 이야기이지만

짧은 시간 내에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새로운 형태의 호러소설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니 매일 가장 가까이에 두고

수시로 꺼내보는 휴대폰이

평소와는 다르게 느껴진다.


'함부로 메시지를 열어보지 말 것!

함부로 스와이프 하지 말 것!'

경고를 절대 잊지 말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창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잊고 싶은 과거에 오래도록 묶여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과거의 상처나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벗어나고 싶지만, 어떤 시간이나 사건은

아무리 달아나려 애써도 헤어나기 힘든 족쇄가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내내 따라다니며 뒤흔들곤 한다.


가정 안에 속해 있지만 늘 기대에 못 미치고

사랑과 이해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방황하며 흔들린 아이가 있었다.

어떤 행동을 해도 못마땅한 시선 아래,

자신을 숨기고 낮추기 바빴던 아이는

자신을 대하는 부모의 시선 앞에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집을 떠나게 된다.


'내가 사라지면 나를 찾지 않을까?'

'용서를 구하며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

사랑받고 이해받고 싶었던 마음에 나섰던 길은

결국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관계의 단절이 돼버린다. 


청소년 문학에서 믿고 읽는 작가로 손꼽히는

백온유 작가의 이야기를 만났다.

이번에는 방황하고 소외된 가출 청소년의 이야기로,

과거의 상처와 마주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 서사를 담아낸 <경우 없는 세계>는

어두운 곳에 대한 관심과 연대라는

깊이 있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하며

 흔들리고 위태로운 시간을 보낸 모두에게

스스로를 용서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응원의 힘을 보낸다.


'가출 청소년'하면 드는 생각은?이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늘 문제의 '원인'을 가출 당사자에게서 찾았다.

학교나 가정에 대한 '반항', 노력하지 않는 '부적응자',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는 '문제아' 등.

하지만 막상 가출 청소년이 직면한 문제나

그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있는지,

그들의 세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말이다.


거리를 방황하는 가출 청소년이 감당해야 하는

수많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기보다는

그들의 몫으로 치부하며 외면했었다.

하지만 모든 가출 청소년들이 정말 많은 이들이

선택한 것처럼 '문제'를 가진 것일까?


백온유 작가는 그들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새롭게 출발한다.


가출 청소년 출신으로 이제는 성인이 되어,

방황했던 시간을 뒤로하고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있는 인수.

어느 날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가출 청소년 이호를 만나며

인수는 거리를 방황하던 그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이해받고 싶었고, 보호받고 싶었지만

어디에서도 받지 못했던 '사랑'이라는 형태의 것.

서로 어울릴 수밖에 없었던 가출팸 사이에서

여느 아이들과 달랐던 '경우'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A와의 사연.

이후 알 수 없는 추위에 떨며

살아있지만 죽은 자처럼 살던 인수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여전히 변함없는

가출 청소년의 삶을 사는 '이호'를 돌보며

자신이 지닌 과거의 상처와 제대로 이별하고,

비로소 '나'를 마주할 수 있게 된다.


늘 이해할 수 없었던, 그래서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그 마음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처 주고 외면했던

경우의 세계를 오늘에서야 이해하며,

그의 방식으로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소설은 가출 청소년 출신인 '인수'의 오늘과

십 대 시절 그의 과거 이야기가 교차로 펼쳐진다.

우연히 만나게 된 '이호'와의 만남을 통해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게 된 인수는

누구도 믿지 못하고 반항하는 이호의 모습에서

자신의 예전 모습을 겹쳐보게 된다.

이해받고 싶었고, 인정받고 싶었던 자신의 마음을

이호에게 투여하며 그를 이해하고 인정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끌어주고 싶어 한다.


그런 인수의 가출팸 시절에 만난 아이들 중

잊지 못하는 이름들이 있다.

어디를 가야겠다거나 무엇을 해야겠다는

계획 없이 되는대로 살았던 아이들과 달리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고, 목표를 위해 노력하던

서글서글함과 선함이 가득했던 '경우',

자신의 몸을 다치게 하면서 그 몸뚱이로

겨우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A.

그리고 인수처럼 집을 나온 아이들이 언제든 머물며

제집처럼 굴었던 '우리 집'에서의 시간.


소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가출 청소년의 삶을

깊숙이 파고들어간다.

그들이 어떻게 돈을 벌고, 하루를 버티며,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 말이다.


부모에게서 이해와 사랑을 받지 못했던 인수에게

'사랑받고 자란 티'가 나는 경우는 늘 이해할 수 없는

의문으로 남았다.

보육원 출신인 경우는 평범한 가정에 있다가 가출한 

인수가 지니지 못한 특유의 서글서글함과

사람들에게 받는 호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관리하고 머무는 환경을 정리하며,

자신을 버리고 간 엄마와의 미래까지 계획하는 경우.

경우의 세계는 그의 바른 모습만큼이나 견고해 보였고

그런 경우가 부러우면서도 시샘이 났다.

가까워지고 싶었고 오래도록 친하고 싶었지만

그러면서도 그런 그에게 상처를 입히고 싶었다.


조금은 평온하게 유지되는가 싶었던

가출팸의 연대는 A의 사건으로 인하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 일을 계기로 뿔뿔이 흩어지게 된 아이들,

다시 가정으로 돌아갈 기회 앞에서

다시 또 거리로 나서게 된 인수의 이야기는

방황하고 흔들리는 경험을 했던 많은 이들에게

과거와 마주하게 되는 기회를 제공한다.


스스로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에 대한 사과를 하며

비로소 '나'라는 사람과 마주하게 된 인수는

같은 상황에 직면한 이호를 도움으로써

스스로 자신을 구원함과 동시에

그에게 주어진 상처에게서

비로소 벗어나는 자유를 보여준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시기에

비로소 오늘의 '나'를 만들어준 경우를 떠올리며,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인수의 모습은

진정한 의미의 '성장'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담담한 필체로 냉철하게 현실의 모습을 반영하는

백온유 작가의 힘이 가득히 느껴지는 이 소설은

청소년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전 연령이 함께

읽고 공감하기에도 좋은 흡입력을 가졌다.


잊고 싶은 과거를 마주할 용기를 얻고

막막한 삶이라도 끝끝내 다시 살아낼 희망을

갖게 해주는 소설. <경우 없는 세계>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닭뼈와 플라스틱 - 범람의 시대에 사라지지 않는 것
남종영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북트리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우리는 화석을 통해 오래전의 시대를 들여다본다.

지층은 오랜 시간 쌓여져 오면서,

생물이나 환경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고 있고

그 쌓인 흔적 사이에서

우리는 시대를 기와 절, 세로 나누며

하나의 큰 흐름을 살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흔적으로 남게 될까?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고 언젠가의 누군가가

파헤치게 될 지층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어떤 민낯이 숨겨져 있을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우리는 1만 1,700년 전부터 지속된

지질시대인 '홀로세'의 평형에서 이탈해

새로운 지질 시대를 맞고 있다.

증기기관의 등장, 산업혁명 이후

우리 인류의 삶은 큰 반향을 맞이했다.


새로운 발전은 인류의 삶을

더욱 편리하고 풍족하게 만들었지만,

그런 발전의 이면에는 우리가 감추고 외면해온

새로운 문제점이 도사리고 있었다.


더욱 넉넉하게 먹고, 편리한 삶을 누리고 있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쓰레기나

우리가 허물고 있는 지구의 문제에 대해서는 감춰지는

'범람과 은폐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환경 저널리스트이자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공부하는 작가는

이런 우리가 살고 있는 '범람과 은폐의 시대'를

인류가 버린 익숙하고도 낯선 흔적에서부터 시작해

'인류세'를 본격적으로 탐사하기 시작했다.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

찬반 의견이 너무나 분분한 문제인데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이 개념에 대해서

보다 제대로 파악하고

이와 관련된 자본주의나 불평등까지

한 번에 다루는 것이다.


지질시대를 '인류세'라고 부르는 것 자체에 대해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한 데다가

환경오염에 대한 것도 지극히 위기만을 강조해

불안감을 조성한다는 입장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과거와는 다른 차원의 속도로 파괴되고 있는

지구라는 행성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미래를 살아갈 후손들에게 좀 더 떳떳하고

그들이 버틸 수 있는 자원을 남겨줘야 하는 건

지구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책임이 아닐까?


거대한 가속이 나타나기 시작한

'인류세'의 기원부터 시작해

실제 쓰레기 매립지를 시추해 살펴보고

닭 가축화의 흔적이 발견된 태국을 찾아가며

그 흔적 속에 기록된 지구의 시간을 탐구한다.

그 흔적들을 통해 인간의 역사가

지구의 역사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는지 살펴보고,

이제는 더 이상 전통적 지질학의 개념이 아닌

인간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자연의 역사로서 바라보는 것이다.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는 지금,

우리가 인류세라는 개념을 강하게 붙들어야 한다고

작가는 목소리를 높인다.


인류세의 개념을 살피고,

우리가 어떻게 지구를 바꾸었는지 탐구하던 시선은

더욱 확장해 행성적 관점에서 지구를 바라본다.

뭉뚱그려진 '공동 운명체'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은

책임의 차이까지 언급하며

우리가 파국의 시대를 어떻게 견딜 것인지

또 어떤 세계를 만들어갈 것인지

피할 수 없는 질문들을 독자들과 함께 마주하는 것이다.


환경문제 앞에서 우리는 늘 '편리함'과

'인류를 위해'라는 말로 지금만을 생각했었다.

그렇게 외면해 온 무분별한 개발과 파괴는

더 이상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문제로

우리에게 다시 공을 패스하고 있다.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상태로 다다르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일깨워 주는 책.

우리의 발밑에 깔린 균열을 제대로 조명하며

보다 현실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던 시간이었다.


오늘도 플라스틱을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고,

먹은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또 치킨을 먹고 있지는 않은지

뒤엉킨 지구의 균열을 떠오르며

'인류세'의 시작을 만들어낸 우리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고민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