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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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사람에 대한 편견이 많다.

느리다거나 힘이 없다는 신체적 특징뿐 아니라,

노인들은 새롭고 낯선 것을 싫어하고

정적인 것을 좋아할 거라는 생각.


막상 지금의 내가 '나이가 든다면'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다들 흔하게 생각하는 노인이 되지 않을 거야!''

라고 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생각은

고리타분한 고정적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소녀가 자라 아가씨가 되고

결혼을 해서 엄마가 되고 아이를 낳고

또 할머니가 되고,

할머니였던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는

일련의 흐름을 보고 있자니

삶이라는 흐름 앞에 훈장처럼 주어지는

체력 고갈과 새로운 것에 대한 어려움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겠다는 다짐이 든다.


뿐만 아니라, 나이에 관계없이

너무나 멋지게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을 볼 때면

'그래! 내가 바란 노인의 모습은 이런 거였어!'

'이런 게 바로 실버 힙이지!'라고 느끼게 되었는데,


평범함은 거부한 노인들의

요절복통 분투기가 담긴 너무나 따뜻한 소설,

그저 행복해지고 싶은 그들의 바람이

그들이 어디까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주었던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을 만났다.


각자의 이유로 나이가 들고 쓸쓸함과 무료함,

새로운 변화를 꿈꾸던 이들에게

해머스미스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만델라 복지관의 노인 사교 클럽 안내가 눈에 들어온다.


'새로운 친구를 좀 사귀고 싶은가요?'

메시지에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가지고 모인 노인들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복지관 시설,

도통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모습의 노인들을 보며

과연 이들과 새로운 인연을 맺을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된다.


첫날부터 천장이 무너지며 사고가 발생하고,

사고가 직접적인 연관은 아니지만

사망한 노인이 키우던 강아지까지

맡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노인 사교 클럽을 운영하게 된 리디아와

사교 클럽을 방문한 노인들은

자신들이 속하게 된 복지관을 지키고,

각자 이루고 싶었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두발 걷어붙이고 나서게 된다.


복지관을 지키기 위한 공통의 목표 아래

사실은 그 속에 담긴 각자의 행복을 위한 몸부림은

그들이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그들 사이의

끈끈한 우정과 연대, 따뜻함이라는 감정을 심어 놓는다.


노인이라는 연령대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을

날려버릴 화끈하고 적극적인 그들의 모습은

자신에게 주어진 '젊음과 시간'이라는 보물을 두고도

치열하지 못한 이들에게

그렇게 시간을 후회하지 말라며 보내는

경고이자 조언 같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사교 클럽의 관리자

리디아처럼 50대였던 작가는,

불필요한 존재로 여겨지는 자신의 존재를 느끼며

'진정한 어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80대인 부모님과 그들의 친구들은

자유롭게 여행하며 인터넷도 잘 사용하는데

소설에서 만나는 연금 수령자 노인들은

무력하고 어수룩한 모습으로만 그려지는 모습에

상황을 주도하는 노인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그런 다짐은 이번 소설에서

인생을 헤쳐나가는 법을 가르쳐 주는 멋진 모습의

노인들로 등장을 한다.


소설 속의 노인들은 모두가 풍족하거나

완벽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은퇴 후 여전히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싶어

일자리를 찾기도 하고

때로는 좌절감에서 도둑질을 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수줍고 조용한 듯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거침없이 뜨개질로 만든 작품으로

다른 이들 앞에서 표현하는 행동파이기도 하다.

보행 보조기를 사용하지만, 활동하는데 주저하지 않고

화려한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며

떠난 남편들의 수를 헤아리기도 한다.

스스로를 감방에 가두듯 집에서만 은신하다

15년 만에 집 밖으로 나온 이도

처음에는 망설이기는 했지만

거침없이 데이트 앱을 사용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선다.


고정된 성별과 연령의 역할을 거부하고

자신이 보여주고자 하는 대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은

"진짜 하고 싶은 것"을 향해 후회 없이 돌진하는

누구보다도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형편이나 상황, 조건 때문에 라는 핑계로

무언가를 미루고 도전을 피하고 있는 이들에게

'우리 같은 노인들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라며

자세만 바꾸면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 준다.


거침없이 중앙분리대를

펄쩍 뛰어넘는 주인공의 모습처럼

우리를 가로막는 수많은 문제들 앞에서

거침없이 뛰어넘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또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서로를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을 가질 수 있기를

그래서 결국 도달하고자 했던 행복에

모두가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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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김슬기 지음 / 클레이하우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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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의 양육, 누군가의 도움, 누군가의 보호 아래

한 사람의 몫을 다할 수 있도록 자라나며

그렇게 자라난 사람들은 받은 그 사랑을

또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면서 함께 살아간다.


이런 아름다운 연대라는 것이

인류가 가장 연약한 신체적 특징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을 보내며 유지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함께 살아간다'는 연대의 힘을 느끼게 해주는

따스한 소설을 만났다.

판타지 같기도 하고, 코미디 같은 가상현실을 담은 

구절초리와 괴력을 담은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담긴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이다.


제12회 브런치북 소설 부문 대상작이기도 한,

이 작품은 역대 최다 응모작을 뚫고 나온

괴력의 소설이라는 평을 받는다.

브런치북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주로 떠올리는데

브런치북 대상작 중에서 소설이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게 최다 경쟁을 뚫고 나온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을지 너무나 궁금했다.


가족도 없이 쓸쓸하게 배달 일을 하면서 사는 '강하고'

친구들이 부르는 '강호구'라는 별명처럼,

사람이라는 애정이 늘 그리웠던 그녀는

늘 이용당하고 내주면서도 모진 인연은 끊어내지 못하고

애꿎은 자신의 목숨만을 내놓으려고 하다가

삶의 끝, 마지막이라 생각한 순간

슈퍼맨처럼 나타나 자신을 구하려 온

낯선 할머니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내가 살아있는 건지 죽고 있는 과정인 것인지

파악조차 하지 못했던 하고가 도착한 곳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고 사람들의 세상과는 동떨어진

구절초리라는 마을이었다.


바다를 품고 있는 이곳에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튼튼해지는

근육이 울끈불끈한 할머니들만이 살고 있는데

이곳에서 살았다는 자신의 친모 '김명희'씨의

남겨진 집에서 그녀가 하던 일을 이어받으며

구절초리의 생활에 물들기 시작한다.


이름만 품고 있던 엄마에 대한 그리움,

지칠 대로 지친 삶의 끝에서 나를 건져놓은 할머니들과

구절초리에서의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며

하고는 자신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와

또 강인한 할머니들의 삶 사이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내기 시작한다.


구절초리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져 갈 무렵,

불청객처럼 찾아온 끊어내지 못한 가족 같은 친구

'정아'의 등장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이 내는

파고 같은 느낌을 주었다.


끝난 것 같은 인생을 구해준 구절초리와 할머니들을

이제는 자신의 의지와 힘으로 지켜내고자 하는 하고,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구절초리에서 얻은

힘으로 변화를 맞이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이야기는

'함께 산다'는 강인한 연대가 주는

안정감이나 따스함을 가득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6시 내고향》이나 《생생정보》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한마을에서 함께 사는 노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처음에는 노인들만 남은 시골의 평범한 일상에서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몇이나 있을까? 싶었는데,

방송을 통해 만난 노인들의 모습에는

그 오랜 삶의 다양한 조각들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인생의 깊은 지혜와 따스한 사랑이 담겨 있었다.


인생의 굴곡 앞에 짙어진 단단한 굳은살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의연함과 여유로움이 있고,

그런 인생의 흐름이 보여주는 모습을 통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배우고,

지친 마음을 위로받으며 힘을 북돋기도 한다.


 구절초리의 할머니들은 핏줄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그런 따스한 가슴으로 하고를 품어 안는다.

"이런 게 가족이지. 구절초리 거대 가족"이라 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품고 도와주며 구원하는

천국의 천사 같은 존재들,

그리고 맛없는 게 매력인 '이름 없는 차'로 만든

'이름을 딴' 다양한 레시피까지

소설을 통해 구절초리에서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살아낼 수 있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에너지를 얻는다.

그리고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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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사람이 이긴다 - 사람을 남기는 말, 관계를 바꾸는 태도
이해인 지음 / 필름(Feelm)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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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필름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표를 묻는다면

'좋은 삶' 결국은 잘 살기 위함을 얘기할 것이다.

많은 부, 누가 봐도 이룬 성공이라는 것들도

결국은 좋은 삶을 위한

하나의 조건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좋은 삶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

단순하게 생각하면 일단 좋은 하루를 만들고

그런 좋은 하루가 반복되고 쌓이면

좋은 인생, 좋은 삶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한 번의 엄청난 행운 같은 성공을 꿈꾸며

좋은 삶의 조건을 높이고 있기에

거기에 다다르기 힘든 것은 아닌가 싶다.


이런 꾸준한 좋은 하루의 반복이

좋은 삶을 가져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런 좋은 하루를 위해

자기 자신에게도 또 타인에게도

다정함으로 채우고 있는 사람이 있다.


다정함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적당한 야망과 높은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

전작 〈감정은 사라져도 결과는 남는다〉를 통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업하는 언니 해니크로 잘 알려진 작가는

이번에는 전작의 연결선상으로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고 갈등을 해결하는

'다정함'을 얘기하며, 이것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임을 전하고 있다.


성공한 사업가라는 이름 뒤에 감춰진

수많은 자신의 시간들,

또 마주한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운

단단한 '다정함'이라는 힘에 대해서

독자들에게 그 말의 온도를 전한다.


'다정하다'라는 것을 떠올리면

자신보다는 타인을 향하는

말이나 행동을 떠올리기 쉬운데,

작가는 자신에게 '다정한' 사람이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도

문제 상황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고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며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얘기한다.


이 책은 그런 다정함의 기록이자,

작가의 마인드가 가득하게 담긴

변화의 씨앗이 심겨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쇼펜하우어나 데일 카네기 등의

책 속에서 만난 말들을 전하며

여기에 자신만의 해석을 덧붙이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다정함과는

또 다른 시각으로 다정함을 바라본 작가는

'스스로에게 다정한 나'를 보여준다.


못나고 불완전한 나를 이해하고,

조금씩 다독이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

작가가 말하는 다정함이란 그런 것이다.


나에게 베푸는 다정함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고

이런 이해에서부터 관계의 실마리가 풀린다.


다정하고 따듯한 말투,

한껏 데워진 대화의 온도는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마음속에

온전히 진심을 전하고 남아있게 된다.


다정함의 온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요즘,

너무나 그리운 타인의 온도와 더불어

진정한 의미의 '다정함'에 대해서 배우고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다.


작가 스스로 겪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또 단단하게 세워 온 자신의 기준으로

성격적 특성이 아닌

하나의 기술과 같은 다정함을 전한다.


또한, 매 순간 우리 모두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의 영역에 있는 다정함을 말하며

다정한 사람들이 바꾸어갈 세상에 대한

기대 또한 전하고 있었는데,

작가가 말하는 이런 현실적인 위로와 조언은

말과 사람에게서 상처를 받거나 지친 이들에게

그 어떤 응원보다도 단단하게 다가갈 것이다.


나 또한 다정함의 힘을 믿는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 다정함의 온기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각자가 가진 다정함을 세상에 더하여,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아름다운 세상이 될 수 있다면

그 자체로도 충분히 '좋은 삶'이지 않을까 싶다.


책을 읽기 전에는 사업가적 마인드로

'다정함'이라는 성격적 특성을 묘사할 거라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다정함에 대한 시각을 바꾸고

외부로 향하기만 했던 다정함을

스스로에게도 베풀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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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 시호도 문구점 2
우에다 겐지 지음, 최주연 옮김 / 크래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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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는 학용품, 어른이 돼서는 사무 용품으로

문구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지만,

물건을 마주하는 마음이나 시선은 한껏 달라진다.

어렸을 때의 물건은 필요보다는

누군가 선물을 했다거나 하는 식의 의미나

그저 갖고 싶었고 가지게 되었던 소망이 담겨

원래 물건이 가진 가치보다도 더 높아진다.

반면 어른의 물건은 지극히 실용적이고 편한 것,

자주 사용해서 손에 익숙한 것,

누가 봐도 부러울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대단한 물건이라 하더라도

의미, 이야기가 없는 물건은 금세 질리고 만다.

하찮고 작지만 이야기가 담기는 순간,

절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듯 소중한 손님들의 의미와 이야기가 담긴

혹은 그런 의미가 되고 싶은 문구들을 건네는

따뜻한 문구점이 있다.


손님의 나이, 직업, 성별에 관계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며

기어이 손님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주는 그런 곳.

<긴자 시호도 문구점>의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났다.


1권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환하게 문을 연

긴자 시호도 문구점은 일본에서는 4편까지 나오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권에서는 각기 다른 고민을 가진 인물들에게

(주로 선물이나 편지를 전하고자 하는)

그에 어울리는 편지지나 펜을 골라주고

편지 쓰기를 도우며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풀었다면


이번에 만나 본 2권에서는

각자 추억이 얽힌 물건을 가진 등장인물들이

우연한 기회를 바탕으로 시호도 문구점을 찾으며

자신의 물건에 얽힌 이야기가 꺼낸다.

고민을 나누는 것에서 추억을 나누는 것으로

시호도 문구점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이다.


대를 이어 운영하는 시호도 문구점은

오래된 문구점의 모습과 도구들뿐 아니라,

선대가 지켜온 기본을 이어오고 있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손길,

손님의 입장에서 함께 공감하는 마음은

이곳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소중한 마음을 나누는 곳임을 보여주는데

(하지만 이래서야 어디 유지가 되나 싶다)


방문하는 손님들의 각기 다른 추억과 물건들로 하여금

독자들에게도 잊고 있던 추억이나 마음가짐,

소중하게 간직하고픈 물건들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어렸을 때는 '어른의 물건'은 무엇이 다를까?

라는 생각을 한 번씩 했었는데,

막상 어른이 되어보고 나니,

아이의 물건이 그대로 자라는 주인과 함께 존재하며

어른의 물건이 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추억을 가진 물건들은 그 쓰임보다도

가지고 있는 의미에 가치가 더 부여되면서

그저 존재한다는 것 자체로도 큰 힘이 되는,

하나의 행복의 요소로 남는 것이다.


만약 시호도 문구점에 내가 방문하게 된다면

나는 어떤 물건을 찾게 될까?

내 추억의 문구 중 어떤 물건을 가지고

그곳을 가게 될까?

생각해 봤는데, 책을 읽자마자 떠올린 물건은

바로 이것이다.




바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일본 출장을 다녀오며 아빠가 사다 주신 가죽 필통.

학창 문구류에 욕심이 많을 때에는

얼마 들어가지 않고 알록달록하지 않은

이 필통이 '일본제'라는 것 이외에는

특별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이제는 저 필통을 꽉 채우지 않아도

충분히 필요한 문구류가 다 들어가기에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궁금함에 필통의 브랜드로 검색을 해보았는데,

이제는 회사가 없어진 건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만약 시호도 문구점이 있다면,

이 필통을 보여주며 필통에 담긴 나의 추억과

이 필통 브랜드의 다른 제품이나

비슷한 제품들을 둘러보며

나도 누군가에게 오래도록 사용할 수 있는 선물을

고를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봤다.


복잡하고 늘 지쳐있는 것 같은 어른의 삶에도

문구 하나면 의외로 행복의 포인트는 쉽게 다가온다.

그런 소소한 행복을 찾아주는 따뜻하고 편안한 공간,

〈긴자 시호도 문구점〉에서 이어질

새로운 이야기가 너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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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컬 나이트
조예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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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갑작스럽게 자유시간이 주어질 때면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선생님들께 이 '지루하고 졸린' 시간을 잊을 수 있는

얘기를 해달라며 조르곤 했다.


같이 노는 무리가 아니어도

"무서운 얘기 할 건데, 같이 얘기할 사람?" 하면

서로 손을 번쩍 들며 순식간에 원형으로 둘러앉아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무서운 얘기를 하며,

아이들의 반응을 이끌어 냈는데

그런 괴담들은 대체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혹은 이야기의 진실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과장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토요미스테리극장》, 《전설의 고향》 같은

괴담을 다룬 프로그램에 나왔던 이야기나,

누군가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은

귀에서 입으로 옮겨가며 때로는 더 날카롭게

때로는 더 매서운 이야기로 변하곤 했다.


이런 괴담을 나누며 아이들은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곤 했다.

마치 '함께 있다'는 확인을 하고 싶었던 것처럼,

그렇게 손을 꽉 잡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아이들과도

공통분모가 생긴 것만 같았다.



괴담이라도 믿기 힘든 초자연적인 존재의

무서운 이야기로만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괴담 속에도 나름 서사가 있고

전개를 거쳐 결말에 다다르며,

때로는 무서운 존재에게 숨겨진 이야기는

슬픔이나 아련함으로 동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하고

웃음이라는 반전을 가진 이야기로 펼쳐지기도 한다.


한국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이자,

장르문학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조예은 작가의 <트로피컬 나이트>는

섬뜩하지만 이런 따스한 총천연색의 마음이 담긴

알록달록한 괴담집이다.


자신만의 문체를 바탕으로

조예은의 세계관을 착실히 쌓아가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는 무언가 께름직한 느낌이 드는

이야기로 시작을 연다.

짧은 단편으로 이어지는 소설들은

괴담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었지만,

사실은 존재를 확인하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담긴

또 그 속에서 서로를 향해 애쓰는 따스하면서도

말랑한 마음이 잔뜩 담겨있는

너무 새콤해서 쓴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머리를 찌르게 달콤한 젤리처럼 다가온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존재함'이라는 키워드를 떠올리게 된다.

갑자기 발생한 누군가의 부재를 알아차린다던가 <할로우키즈>

떠난 가족을 뒤로하고 홀로 남은 이의 지극한 외로움이

짙게 배어 나오기도 한다. <고기와 석류>

내가 누구라는 기억조차 없이 어느 '틈'에서 떨어진 이는

그곳에서 존재했던 자신을 찾아 헤매고, <릴리의 손>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존재하고자 하는 몸부림도 있다. <새해엔 쿠스쿠스>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않았던 이가 처음으로 타인에게

문을 열며 달라지는 변화는 사실은 외면하고 싶었지만

누구보다 어울리고 싶었던 본격적인 그리움이기도 하다. <가장 작은 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던 존재로 하룻밤 꿈처럼 잊히다

한 사람에게 인식되기 시작하자 본분을 잊기도 하고,

<나쁜 꿈과 함께>

사라진 고양이를 찾아 헤매다 새로운 차원으로 떠나는 

그의 역할과 존재를 인정하기도 한다. <유니버셜 캣숍의 비밀>

끝도 없이 문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평행세계에서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존재하는 이도 있다.

<푸른 머리칼의 살인마>


이처럼 각 소설은 희미해진 존재를 가진 이들이

자신이 '존재함'을 인정해 주는 타인과 마주하며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게 되면서 마주하는

어떤 사랑 같은 감정을 그려낸다.

그 과정은 때로는 괴기스럽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하며, 의문투성이이기도 하지만

끝내 다다르는 결론은 각기 다른 색을 하고 있지만

따스한 마음이라는 한곳을 향한다.


작품들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작가의 욕구 또한 이런 '존재함' 속에

담겨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었다.


 괴기적 하지만 결코 혐오스럽지 않은,

최후에는 따스함에 이르고 마는 여름밤의 괴담들.

조예은은 그런 이야기들을 통해

결국 살아남은 따스함을 독자에게 전한다.

독자들은 이야기를 통해 잔뜩 움츠리다가도

이내 어깨를 펴고 그의 이야기 속에 빠지게 된다.

마치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며 체온을 공유했던

공통분모로 한껏 가까워졌던 친구들처럼 말이다.

이 작품들은 본격 조예은 월드의 시작이자 확장판으로,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세계관을 열어주는

마중물로 독자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한여름밤의 더위를 잊게 할, 그렇지만 너무 차갑지만 않은

결국은 따뜻한 이야기.

새콤달콤한 젤리 같은 맛의 괴담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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