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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3월
평점 :

믿음이라는 것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어떠한 가치관이나 종교, 사람, 사실 등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동의와 관계없이 확고한 진리로서
받아들이는 개인적인 심리상태라고 하는 이 믿음.
보편적으로는 '믿음이 있다'라고 했을 때
종교적인 관점에서 많이 생각하게 된다.
태어나기 전부터 접하게 되어 자신의 선택의지에
관계없이 전수받게 되는 모태신앙도 있고,
자신이 선택한 종교라 하더라도 어떤 계기로 인해
더 이상 믿음을 지속하지 않는 경우나
특정 종교나 무언가에 치우치지 않고
불특정한 대상을 바탕으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있다.
종교적인 믿음에 있어서 모태신앙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는 이들의 경우 자신이 힘들거나
지쳤을 때 의지하게 된다.
무언가 소망하는 일이 있을 때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고 간절한 마음을 담는 건
종교를 불문하고 통하는 모습이기도 하니 말이다.
불의의 사고로 어린 자녀를 떠나보내고,
순식간에 평온한 일상을 잃어버린 가족 앞에
'아드님을 위해 노래하게 해주세요'라고 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영원을 믿는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하며
영원의 세상에서 잃어버린 아들과도
함께 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나서부터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아내와 딸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너의 이름은〉, 〈스즈메의 문단속〉 등의 영화를 제작하고,
소설 〈세상에서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을 쓴
가와무라 겐키가 '믿음'에 대한 질문을 담을
압도적인 신작을 발표했다. 소설 〈신곡〉이다.
초등학교 앞에서 벌어진 묻지마 범죄로
막내아들을 잃은 단노가의 가족들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가족 구성원인 단노 미치오,
단노 교코, 단노 가온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건이 펼쳐진 후, 일상과 행복이 산산조각 난 가족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하는데
그런 이들 앞에 서로의 이견을 가져오고
엇갈리게 하는 건 다름 아닌 '믿음'이다.
재혼가정으로 이루어진 단노 가는
넉넉하진 않지만 평온하고 행복한 여느 집들과
다를 바가 없었는데, 그 사건 이후에 생기를 잃은 집과
상처받은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를 보듬을 여유도 없고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상처를 주게 된다.
엇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다시 평온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 아래
틀린 줄 알면서도 비뚤어진 선택을 하고
그것을 방관하며 문제 삼지 않았던 그들은
순식간에 기울어진 믿음 속으로 스스로를 던진다.
막연한 믿음을 순식간에 그들을 사로잡았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믿지 못할 일들의 진실을 외면한 채
그저 겉으로 보이는 '평온함'만을 추구하며
마음속의 이야기를 삼켜버리고 만다.
지키고 싶었던 가족의 모습,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이해와 보듬음이 부족했던
그들의 모습은 '영원한 믿음'이라는 종교 앞에
서로를 시험하고 평가하며 냉철한 민낯을 드러낸다.
그들은 과연 그들 스스로를 가둔 믿음으로부터
자유를 찾을 수 있을까?
도피해버린 마음속 진실 앞에서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까?
가족 구성원 각자의 입장에서 진행되던 이야기는
마지막 20여 페이지에 이르러
대반전의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결말에 이르른다.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내가 가진 믿음과 그 시작에 대하여
돌아보는 계기를 제공하고,
믿음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는
사람에게 '믿음'이라는 것이 어떻게까지
스며들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어렸을 때 교회를 다니며 가졌던
'믿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다.
놀이의 느낌으로 동네에 있는 아이들이라면
자연스럽게 찾았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던 중 마주했던 어떤 날이 있었다.
시험기간을 앞두고 나름 공부를 하고 싶어서
교회를 빠지고 싶어 하던 나에게
말씀 지도를 해주던 교회의 선생님이 전한 말이었다.
"시험을 앞두고 공부를 하는 게 옳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하면서
믿음을 공부하는 게 중요한지
과연 하나님은 어떤 모습을 좋아할지 생각해 보라"였다.
시험을 위해 공부를 하고자 하는 나의 모습을
믿음을 저버린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하는
선생님 앞에 과연 '믿음'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인
우선순위를 교회와 종교에 돌리는 것이 정답인가?
라는 의문이었다.
열심히 기도하면, 성적이 잘 나오는 것보다
기뻐하신다는 것은 확인할 수 없는
막연함으로 다가왔고
열심히 기도를 하고도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 앞에
부족한 믿음에 대한 스스로의 성찰이 아닌
믿음에 대한 균열로 다가오곤 했다.
종교나 믿음에 대해서 개인이 생각하는 마음가짐은
타인이 이렇다 저렇다 판단하거나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그런 평가를 하는 곳이
바로 종교였다는 점에서 나는 믿음을 놓았다.
지금도 막연하게 무언가를 향해 기도를 하곤 하지만,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일 뿐
기대거나 의지하는 것은 아니다.
단노가의 가족들이 가진 믿음이 의지나 기대가 아닌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나 변화를 위한 계기로
마주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그들의 결론이 소설과는 조금은 다르게
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도 든다.
모든 것을 다 이해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이름과
'믿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이 글은 소미미디어로부터 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