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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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라곰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재미를 위해서 또 궁금함에

사주나 점, 타로 등을 통해서

미래를 점쳐보는 사람들이 있다.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고

나와 잘 맞는 사람, 장소 등을 알아서

주어지는 운과 복을 최대로 맞이하고픈 욕망,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잘 살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점술이 좋은 얘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건강이나 사고를 조심하라거나

구설수, 사람을 조심하라는 얘기는

그래도 피하거나 흘려듣고 말 수도 있다.

만약 점쟁이가 하는 얘기가

"당신이 죽을 날짜를 알려줄게요,

당신은 38살 12월 16일에 죽게 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앞으로 19년 후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게 말이 돼?'라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여행을 떠난 열아홉의 커플 넬과 그렉은 친구들과 함께

재미로 찾았던 예언가에게서

그들이 각각 죽게 될 날짜를 듣게 된다.

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거짓말이겠지 하며 함께 예언가를 만난

친구들과 죽을 날짜를 서로 공유하는데,

동갑인 그들은 서로 다른 인생인 만큼

죽을 날짜도 나이도 달랐다.

넬은 서른여덟

헤일리는 마흔 살,

그렉은 무려 백 살,

그리고 말이 없었던 소피는 '다음 달'이라는 것.


믿을 수 없는 예언가의 말에 신경이 쓰이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던 열아홉의 그들.

그들 중 가장 빠르게 죽는 날짜가 다가온 소피는

자신에게 예언된 1월 17일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이 넘친다.

하필 그날에 절벽에 다이빙을 하러 가자는 소피,

"그날은 좀 그렇지 않아?"라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그러니까 가자는 거야. 그 사기꾼이 틀렸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자고." 하며 소피는

예언가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사고로 거짓말처럼 예언처럼

소피는 1월 17일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뒤로 19년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의 날을 준비하며 넬은 인생을 살아간다.

거짓말이라 믿었지만 사실이 되어버린 소피를 보며,

얽매일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한정되게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예언가의 말을 믿고 서른여덟에 죽을 날짜를

기다리며 사는 넬을 보며 연인인 그렉은

생각의 차이를 이기지 못한다.

그렉은 예언에 얽매일 필요 없다고 했고,

넬은 백 살까지 사는 너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어린 연인은

그렇게 그 뒤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고

넬은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이 받게 될

슬픔과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해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을 거리가 되면

가차 없이 그들을 떠나고 철저히 자신을 홀로 두었으며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고는

은행 계좌, 핸드폰을 비롯해 SNS 계정을 정리하고

집안의 물건들도 처분하고는 깔끔한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집안에 있던 침대를 중고로 구매하러 온

코미디언 톰에게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넬,

충동적이라고 해야 할지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자'는 마음이었을지

낯선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마지막 디데이를 하루 앞두고

엄마와 이혼한 아빠, 언니, 전 연인인 그렉,

그리고 하룻밤을 보낸 톰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발송한다.


화려한 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하고,

대여한 멋진 드레스까지 입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 중 고르고 골라

최후의 만찬을 하고 침대에 누워 시계를 바라보는 넬.

시간은 10시 30분, 이제 1시간 30분 후면

나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갑자기 어질한 느낌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의식이 돌아온 넬.

이곳이 저승인 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마주한 세상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인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

소피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강행했던 '사고'로 죽은 것이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다.

넬은 여전히 살아있고,

오로지 삶의 끝을 서른여덟로 맞추어놓고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던 그녀는 멘붕에 빠지게 된다.


돈도, 누구에게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나 핸드폰도

머물 수 있는 집도,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없이

갓 태어난 것처럼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것이다.


영국 언론과 찬사를 받으며 영화화가 확정된

샬럿 버터필드의 소설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예언가가 말한 삶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다음날

새롭게 펼쳐진 인생을 맞이한 넬이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고,

새로운 일상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주변인들까지 변화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기쁨,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떠나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는 막연함을 넬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지켜보며

나 역시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이라는 후회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하게 된다.

하지만 흘러온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매 순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부족했던 노력도, 아쉬웠던 선택도

당시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음을

시간을 지나놓고 알면서도 후회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넬 앞에 남은 것은

새로운 '오늘'이라는 삶,

그리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던져놓은

폭탄 같은 편지들이다.

가족들에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쏟아냈던 말들은

상처와 싸움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전 연인 그렉과

마지막으로 함께 밤을 보낸 톰의 인연은

이상할리 만큼 계속 엮이게 된다.


예언가의 말이 틀렸음을 넬을 통해 보게 된 그렉은

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뒤로 미뤄왔던

자신의 행복과 일상의 즐거움을

그녀와 함께 다시 찾고 싶어 했고,

그를 사랑하지만 예전의 감정이 아닌 넬은

새로운 인연인 톰과 그렉 사이에서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매일매일의 선택과

삶을 다하는 넬을 보며

가족들과 그렉, 톰은 그들에게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여기에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노부인 주노와

그녀의 아들, 며느리까지

넬에게는 새롭게 주어진 인생만큼이나

새로운 인연들이 늘어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조용히 사라지려

감정의 벽을 높이 세우고 있던 넬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새롭게 인생의 길을 닦아나가는 모습은

알 수 없는 나중을 위해 소중한 것을 미루고

'그저 살아내기'만 하는 바쁜 현대사회의 우리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


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이번 생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5일 뒤에 죽는다면 어떨지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마지막 순간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지막 식사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내가 사랑했던 건 무엇이고,

내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고

스스로에게 해주고픈 말은 무엇인지,

내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압축해서 보다 보니

하루 이틀에 걸쳐 고민했던 작은 문제거리들은

이 마지막 앞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넣어 두는 상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고민이 생겼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적은 종이를 상자에 넣어두고

2~3일이 지나놓고 살펴보면

이미 해결이 되었거나 막상 별일이 아닌 것이라는,

우리는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

지금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인생이라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과 사의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가 하루에 수십 개씩 마주하는 문제들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인 줄 알았던 삶의 끝에서

당황스럽게 새 삶을 마주하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넬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라는 매일을

감사하게 느끼고 할 수 있는 최선을,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로 꽉 채워

순간순간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마지막을 아름답게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하고 나답게 만드는 인생,

매일 주어지는 아침을 기쁘고 감사하게 맞이하며

최선을 다하는 시간으로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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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행동은 나라를 바꾼다 - MZ 세대를 위한 공직 세계
김우호 지음 / 시공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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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8월 12일 국가 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공무원 제도.

2023년 12월 31일 기준

공무원 정원은 1,171,070명이다.

100만 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의 지위를 가지고,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며

국가 또는 지방의 사무를 맡아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무원은

나라의 녹을 받는 국가직으로,

그 어느 직장보다 안정적이고 탄탄하며

제도적으로 많은 보호를 받는 '철밥통'의 이미지가 크다.

하지만 신의 직장, 철밥통이라 불리던

그렇게 경쟁률이 높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공무직을 내려놓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23년에만 퇴직 공무원 수가 57,000명을 넘었으며

퇴직률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공무원 퇴직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고,

아직 퇴직하지는 않았지만 쉽지 않은 '공무원 생활'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나 MZ 공무원은 근속연수가 오래지 않음에도

공직사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시대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고여있는 공직 세계의 문제인 것인지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특히나 공무원 업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은 현재의 공직사회에서

앞으로 더욱 날아오를 대한민국을 위해

제대로 문제를 파악하고 변화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공직 사회에 대한 궁금증과 공무원의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보고 앞으로를 위해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할지 살펴볼 수 있었던

새로운 물결이 담긴 책을 만났다.

대한민국 제5대 인사혁신처 김우호 처장이 쓴

〈어떤 행동은 나라를 바꾼다〉이다.


김 처장은 1993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에 입문했고 이후 행정자치부, 대통령 비서실,

주중한국대사관, 법무부 등 주요 기관을 두루 거치며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했다.


이 책을 통해서 공직 세계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MZ들에게는 공직 사회에 대한 안내를,

또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꼭 공직에 관련된 일을 하거나 꿈을 꾸지 않더라도

'공무원의 일'에 대해서 궁금함이나

믿음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현재 대한민국 공직 사회에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리면서 공직자들에 대한 이해와

제도적인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그들에 대한

공감 또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사실 한때는 공무원을 꿈꿨던 시간도 있었고,

공무원 시험을 본 적도 있었으며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공무원들을 보며

민원인으로서 느끼는 이런저런 불만도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듯 공허한 눈빛으로

기계적인 답변과 업무를 진행하는 이들에게

'왜 이렇게 밖에 일을 할 수 없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고 말이다.

일반 직장인들과는 다른 연금제도나

어지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직위해제가 되지 않는 공무원 제도에 대해서는

'분명 이상한 문제다'라는 불만도 있었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공무원 제도와 그들에 대한 평가,

공무원들이 처한 현실 등에 대해서도 몰랐던 부분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무너져가는 한국 공직사회를 되살리기 위해

마주해야 할 변화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갔던 부분은

업무의 '전문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선발을 위한 시험으로 경쟁률은 높아졌지만,

이 시험이 정말 해당 업무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적재적소, 적소적재에 대하여 읽으며

공무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전문화'를 놓쳤고,

선발을 위한 시험, 시험을 위한 과목 등이

제대로 업무에 있어서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고, 또 제대로 된 평가 또한

이루어지지 않으며 동기부여로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은

악순환의 연속으로 점점 공직사회를 무너뜨리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 같았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인력 배치의 조건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가장 기본적인 체계를 갖춘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러면 이걸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가?라는 고민이 들었다.


또한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세대가

공무원직으로 등장하면서

MZ 세대의 특징과 그들을 고려한

채용과 보상, 정년에 대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특정 세대를 위함이 아니라

이런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지속적으로

등장해야 할 포인트이지만 말이다.


계급제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물결을 맞이한다면

답답하고 고여있는 것 같은

전혀 바뀔 수 없을 것만 같은

철옹성 같은 이 공직 세계도

변화라는 시간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공무원, 공직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벗어나

팩트를 마주하며 시선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그들이 속한 공직사회를 바꿈으로써

그들로부터 비롯된 변화가

국민에 대한 봉사로 이어지는 또 다른 변화로

나비효과를 가져오기를 바랐다.


공직사회와 제도라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다양한 예시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누구나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제시한 이 책은

공무원을 꿈꾸는 이 들 뿐 아니라

공직에 대한 관심이 없던 국민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

나라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변화,

가장 작은 움직임, 가장 작은 시선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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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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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영화나 공연이 시작하기 전, 혹은 어떤 이벤트를 앞두고

칠흑 같은 어두움이 찾아오면

기대감으로 마음속엔 흥분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시각장애 앞에서

이 칠흑 같은 어두움이라는 이 이벤트는

그저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전작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통해

시각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게 펼쳐낸 조승리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그의 글을 통해서 내가 가져온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그들의 삶에 대한 동정을 벗어나

사람 대 사람으로 그들의 인생 자체를

건강한 시선으로 응원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만나본 신작은 밝고 씩씩하기만 할 것 같았던

조승리 작가의 힘들고 어두웠던 순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던

'살아있다는 감각'을 함께 느끼며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마저도 생각할 수 있었다.


신체적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매체로 만나온 장애인들을 통해

우리들의 시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불편하고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며

많은 제약이 더해진다.


직업의 선택도, 여행의 자유도, 이동의 자유도

그 어느 하나 그들에게는 쉽게 허용되는 것이 없었다.

특히나 후천적 시각장애로 이 '어둠'에 순응하고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작가에게

제약과 제한이라는 것은 더욱 가속도가 붙어 다가왔다.


이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자 나의 몫이기에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순응하던 작가는

어느 순간 먹는 즐거움도 자신에 대한 애정도 없이

그저 살아내고 있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런 작가를 끌어내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던 것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그 생경했던 풍경 속에서 느낀 따스함이었다.


남들과 달리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꿈과는 관계없이 안마사라는 직업으로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내던 작가는

'보이지도 않는' 여행을 떠나서 오감을 통해

그곳들을 느끼고 마음속의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둘러싼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더 이상 정체하거나 무력하지 않고,

씩씩한 작가를 만들어낸 순간들의 기억은

불평불만투성이에 반복되는 무력감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무탈한 행복이 주는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표현이 있다.

전맹 시각장애인인 작가는

오디오북을 통해 책을 접한다.

'오디오북을 읽는다'는 작가의 표현에서

신선함을 느꼈는데,

이런 사소한 표현에서부터 가진 나의 편견을 비롯해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높은 허들이 얼마나 벅차고 힘들었을지

작가의 마음 높이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부러 낯설고 힘든 곳으로 떠났던 여행,

안마사 일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작가는 자신의 치부와 생각을 낱낱이 털어놓으며

크게 얘기한다 '나는 여기 살아있다, 살고 있다'

라고 말이다.


전작을 통해서는 많이 웃기도 했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많이 울컥했다.

이런 울컥한 감정들을 느끼는 독자들 앞에서

작가는 보란 듯이 더 씩씩한 모습을 보이며

"불꽃 따위 안 보여도 난 잘 먹고 잘 살 거다.

이 더러운 세상아!"라고 깔깔거리며 말한다.


이런 멋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런 용기는 타고나는 걸까?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았던 그녀가

사실은 높고 보이지 않는 벽을 넘기 위해

엄청난 몸부림을 쳤다는 것,

그런 자신에게 끊임없이

스스로 응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뒤늦게 그녀의 글을 보고 울고 웃으며

그저 박수를 더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나는 또 내 인생이 부끄러워진다.


타인의 불행이나 어려움 앞에서

그에 비해 평온한 나의 인생을

상대적 행복이라 규정짓고 싶지 않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인생,

누가 누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동정하기보다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묵묵한 응원을 더하기를 바란다.


조승리 작가의 글은 그런 힘이 가득했고,

그 글을 통해 나는 내 삶을 바꾸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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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 - 보여줄게 100세의 박력, 100세의 해피엔드 인생법
사토 아이코 지음, 장지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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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한 번 사는 인생

다가오는 매일이 새롭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많은 문제들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보다 그 시간을 먼저 살아 본

인생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나 역시 지금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나온 시간을 살고 있는

동생들이나 한참 어린 조카들에게는

무슨 얘기든 해줄 수 있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시간의 차이일 뿐

'인생은 결국엔 겪게 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100세라고 하면 한 세기의 시간인데,

100년이라는 인생을 살아낸 할머니에게는

얼마나 많은 인생의 굴곡이 있었을까?

단순히 행복과 불행을 논하기보다는

살고 죽는 것을 걱정하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그 후로 너무나 많은 것이 풍족해진 오늘

마냥 여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잔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100년이라는 시간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나와 외할머니는 50세라는 나이차로,

요즘을 생각하면 할머니 치고

굉장히 젊은 할머니였지만

할머니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 모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런 차이에 대해서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 얘기할 만한

기회나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말이다.

하지만 그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이따금씩 참다 참다 한마디씩 하시던

그 잔소리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마치 할머니가 하는 잔소리처럼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책을 만났다.

1923년도에 태어나 100세를 훌쩍 뛰어넘고도

여전히 현역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사토 아이코 할머니가 쓴

〈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이다.


1970년대부터 2016년까지

월간지에 실렸던 글들을 모은 책인데,

최근에 쓴 글이 아닌데도 너무나 와닿는 표현과

공감되는 글에 '이 글이 이때 쓰인 게 맞다고?'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작성한 연도를 확인하곤 했다.


특히나 요즘 들어서 이런저런 고민들로

무언가 인생의 시야가 좁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타인의 시선 앞에서나 나 자신에게 위축되었던 마음을

따끔하게 충고하면서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나다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장점으로 키우는 것을

항시 잊지 말아야겠다.


스펙터클한 작가의 인생사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요즘 세대에 대한 토로도

조금은 꼰대 같은 부분도 있었지만

이토록 솔직하고 깊은 애정이 어디 있을까 싶다.


사람들은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네'

'나이가 들었네'라고 하지만

나보다 조금만 더 나이가 많은 인생 선배들에게

지금 내 나이대를 얘기하면

"아이고~ 그 나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그 나이가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다"

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시간을 부러워한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인생이 되는지,

어떤 모습이 나다운 모습인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생의 비법을 사토 할머니의 글을 통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위즈덤하우스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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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체가 보고 싶은 날에는
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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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게 느껴진다.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 주어지는 사람도 있고,

한없이 편하고 가볍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견딜 수 있을까? 싶을만한 어려움이나

문제를 가진 이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짊어진 채

묵묵히 삶을 살아간다.


사람으로 쳐도 60년이라는 시간은

'노인'의 범주에 가까울 만큼 오랜 시간이다.

하물며 60년 된 아파트는 오죽할까?

몇 개 되지 않는 동을 가진 60년이 넘은

오래된 이 아파트는 자살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단지의 주민이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외부인이 들어와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만큼이나

이곳은 어둡고 '죽음'이라는 것에

이만큼 더 가까운 듯하다.


세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빠, 그리고 아직 보호가 필요한

초등학생 시절 중학생인 언니와 자신만을 남겨두고

집을 떠난 엄마를 뒤로하고 미카게는

오래된 이 단지에서 언니 나나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타고난 천식으로 인해 활동도 쉽지 않고

따돌림으로 인해 일반 학교를

더 이상 나가기 힘들게 되자,

집에서 가까운 빵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야간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든 언니는

동생인 미카게가 미루어 짐작만 할 수 있는

'밤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오래된 단지, 그리고 규칙적으로 오가는 빵 공장,

야간학교에서 만나는 한정된 친구들 등

좁은 세상에서만 살고 있는 마카게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었으니 바로

'언젠가 직접 두 눈으로 시체를 보는 것'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죽음에 가까이 있기도 했고

제대로 된 보호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오키상 수상을 한

전작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를 통해서

상실을 겪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구보 미스미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죽음에 가까웠던 어두운 삶

가운데 있던 미카게가 단지에서 마주한

젠지로 할아버지와 친구들로 인해

삶에 대한 희망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스하고 다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별다른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지내던 미카게는

젠지로 할아버지와 함께 단지 경비원 일을 하면서

단지에 거주하는 타인들을 마주하고,

부족한 자신의 상황 속에서도 타인에게 나누는

기쁨을 느끼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늘 곁을 지켜주는 친구 무짱과 구라하시는

미카게가 변화와 꿈을 가지게 되는데

큰 영향을 주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모두 나름의 아픔과 빈틈이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꺼이 그 아픔을 내보이면서

서로를 탓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빈틈을 자신의 따스함으로 채워주며

그저 '같이' 살아주는 것이다.


귀찮고 왜 하는지 몰랐던 경비 일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미카게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애쓰는 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도 언니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또 나아가 오래된 단지의 철거 소식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나서는 모습은

굉장히 큰 반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호기심으로 '시체를 보고 싶다'는 막연함은

미카게의 변화를 유발하는 계기도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라서 가졌던 그 호기심은

소중한 사람이 생기고 그 마음이 커지며

후회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소설의 끝부분에 마주한 젠지로 할아버지와의

마주함에서는 '죽음'이나 '시체'에 대해 가졌던

미카게의 달라진 성숙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 따스함이

이 각박하고 메마른 오래된 단지에서의 삶을

그리고 한 아이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한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임무로 자신의 몫을 다해나가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미카게를 통해

따스함이 주는 변화의 힘을 체감하고

나이를 초월한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더욱 빛나게 묘사함으로써,

각박한 현대사회의 사람들에게

위로라는 따스한 불씨를 키우고 있었다.


이웃과의 인사나 어울림이 점점 줄어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사람이 주는 온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따뜻한 힐링 소설이었다.

그런 따스함을 받은 미카게의 내일이

너무나도 기대가 됐다.


"이 글은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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