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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망상 ㅣ 달달북다 11
권혜영 지음 / 북다 / 2025년 5월
평점 :

"이 글은 달달서포터즈 활동을 위해 북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아직 제대로 된 사랑이 무언지도 모르던 학창 시절
반 아이들은 세 분류로 나눌 수 있었다.
청소년기에도 자연스럽게 연애를 하는 요즘과 다르게
'이성친구를 사귄다 = 노는 느낌' 이 강해서인지
드물었던 '이성친구를 사귀는' 파,
그리고 미지의 존재 같은 '연예인에 열광하는'파,
이성친구에도 연예인에도 관심 없는 나머지 부류.
그래서인지 연애나 로맨스를 떠올릴 때면
이성친구가 있는 아이들은 소소한 투닥거림이나
서운함을 토로하기도 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한
나에게 실망도 주지 않고 완벽한 모습으로 있는
'우리 오빠'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마냥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그들만의 로맨스를 이어갔다.
실제로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없는
미지의 존재 같은 연예인을 좋아하는 감정은
팬덤 내에서도 '유사 연애'라는 워딩으로
폄하되기도 하는데, 연예인을 상상 속 애인으로 삼고
연애 감정을 가지고, 상상 연애를 하는 것을 이르는
이 말은 무언가 건강하지 못한 관계의 느낌이라
타인 앞에서 쉬쉬하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비슷한 느낌으로 2014년에 개봉되었던
영화 〈Her〉는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인공지능 운영체제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를 담으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실체가 없는 상대와의 사랑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을 이번에 만나보게 됐다.
달달북다의 로맨스X비일상 시리즈인
〈애정 망상〉이다.
과거의 연애를 계기로 남자 울렁증이 생긴
주인공 '지나'에게는 타인에게는 밝히지 못하는
고막 남자친구가 있다.
바로 '세진'이라는 이름의 ASMR 콘텐츠가 그 상대인데,
실체도 상처도 없으면서도 연애의 감정을
지속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메리트이다.
퇴근을 하고 자신만의 루틴으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세진의 ASMR 콘텐츠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게
지나의 가장 큰 낙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지나의 귓속으로 익숙했던
세진의 목소리가 말을 하기 시작한다.
볼륨을 0으로 해놓고 재생도 일시 정지한 상태였는데
어리둥절한 지나에게 '세진'의 목소리를 한 그가 말하길,
자신은 지구로부터 2800만 광년 떨어진
다즐링이라는 소행성에서 온 왕자이며,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지구라는 행성의
한국이라는 나라로 '아이돌'이라는 남자를
만나기 위해 떠났고, 그녀를 따라 여기에 오다
문제가 생겨 신체는 잃은 채 불시착했다는 것,
그래서 주파수를 이용해 세진의 목소리를 빌려
그녀에게 자신을 도와주기를 부탁하는 것이었다.
지나를 무력화 시키는 '세진'의 목소리로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이 다즐링 왕자를 쫓아내기 위해선
그를 도와 이곳에서 보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인데,
하필 왕자의 요청은
'남자 염색체를 가진 신체의 일부를 구해달라는 것'
남자 울렁증을 가진 지나에게
가까이 지내는 남자도 없을뿐더러,
아무리 손톱, 타액, 터럭 같은 것이라 해도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러던 와중에 지나의 유일한 친구인
가람에게서 남자친구와의 연애 상담이 들어오고,
지나의 집에 온 가람이 가지고 온
지난 연애의 기록 같던 티켓북에 있는 정체불명의
물건들을 바탕으로 다즐링 왕자는 임시로 머물
신체 조각들을 하나 둘 만들기 시작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들을 꼭 닮은 신체들을 보며
이것들을 결합시켜 만나고 싶어 하는 가람과 달리
자신이 무엇을 주지 않아도
상처도 주지 않고 실체도 없는 그래서 좋았던
언제나 곁에 있는 '세진'의 목소리를
미스터리한 다즐링 행성의 왕자에게
뺏기는 것이 싫었던 지나는
그들의 마지막 작전을 훼방놓기 시작한다.
과연 다즐링 행성의 왕자는 임시로 몸을 만들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지구를 떠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지난 연애를 오래도록 끌어안고 집착하던
가람은 자신이 원하던 과거 남자친구들의 결합체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그 과정을 쫓아가는 과정이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어떤 의미에서 애정은 망상과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지난 애정의 기억은 지극히 개인적인 입장에서
재 편집되고 기억되며,
이는 망상과도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남녀 간의 만남을 전제로 한 사랑하는 감정,
가장 일상적이라고 생각했던 로맨스에 대해
작가는 유난히 '리얼한' '누군가의 경험'이 담긴
애정 얘기 앞에 멈춰 서야 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담아
이 이야기의 시작을 써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다른 이들에겐 가장 일상적인 사랑을
가장 비일상적이라고 느끼면서 말이다.
과거의 연애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던 지나의
다시는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바램이
그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그저 상상과 망상으로도
채울 수 있는 '로맨스'적 포인트로 이끌었다.
자신과 비슷한 줄 알았지만 의외로 서로 다른 모습에
친해질 수 있었던 가람과의 관계처럼
연애에 있어서도 지나와 가람은
정 반대의 모습을 보이며
어떤 사랑이 더 나은가? 무엇이 더 옳은가?를
독자들에게 저울질하게 했다.
완벽히 혼자가 된 지나는 비로소 자유로움을 느낀다.
변함없이 자신의 곁을 채워주는 세진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런 망상 또한 애정'이라고,
자신이 틀린 것은 아니라며 다시 일상을 되찾는다.
지나의 모습을 보며 우리가 '일상적'이라 생각했던
애정이라는 것이 과연 정말 일상적인 게 맞는가?
어쩌면 연애 역시 망상과 다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로맨스 세상의 범위를 확장하며
우리가 가장 일반적으로 보편적이라 생각했던
애정이라는 것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했던
조금은 난해하지만 실험적이었던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시선으로 로맨스를 바라보고 싶다면,
〈애정망상〉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진입해 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