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무법자
크리스 휘타커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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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레뷰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 입니다."


어떤 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가족을 떠나보낸

유가족에게 남은 상처는 이로 말할 수 없다.

더욱이 누군가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면

가해자에 대한 원망 역시 내내 키우게 되고 말이다.


평범한 가정의 십 대 소녀가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났다.

범인은 같은 동네에 살던 십 대 남자아이,

한참을 떠들썩하게 하던 시간이 30년이나 지나고

아이였던 소년은 남자가 되어 출소를 앞두고 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바뀌게 했다.

파도에 의해 침식되어

점점 무너지고 있는 해안가 마을처럼,

누군가는 집을 잃기도 하고,

위험한 집을 팔고 마을을 떠나기도 하며

또 누군가는 그곳에 머무르며 여전히 삶을 이어온다.


글쓰기로 인해 우울했던 자신을 살렸다는 작가는

한 사람의 실수에서 시작된 광범위한 이야기를 펼친다.

한마을을 배경으로, 과거의 죄를 저지른 남자가

30년 만에 세상 속으로 돌아오고 머지않아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그가 지목되면서,

사건의 진실과 남겨진 유족의 입장에서 바라보며

이와 얽힌 한 가정, 그중에서도 가족을 지키고자 한

스스로를 무법자라 부르는

소녀의 성장에 대해서 말이다.


케이프 헤이븐이라는 해안 도시,

마을에는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함께 어울리는

평범한 소년, 소녀들이 있다.

이들은 함께하며 형제처럼 연인처럼

서로에게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는데

이 평화로움은 마을에 거주하는 시시 래들리라는

소녀의 사망사건과 함께 흔들리고 만다.


사망한 시시 래들리를 살해한 혐의로 잡힌 것은

그의 언니인 스타 래들리와도 친한 친구였던

십 대 소년 빈센트 킹.

그는 교정시설행을 선고받고

또 그 안에서도 살인사건을 저지르며

총 30년에 달하는 감옥살이를 마치고

케이프 헤이븐으로 돌아온다.


그와 형제와도 같은 사이이자

현재는 경찰서장인 워크는

오랜 친구들과 마을을 돌보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빈센트 킹에게서 동생을 잃은 스타는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말라며

만나기를 꺼리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그녀는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술이나 약에 취한 채 아빠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다.


빈센트 킹이 마을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을 잃었던 스타 래들리 역시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워크가 발견한 것은

범죄현장인 스타의 집에 있는 빈센트와

위층에서는 자고 있었던 그녀의 아이들.

잠결이었는지 아니면 충격이 컸는지

사건에 대한 유일한 목격자인 로빈은

그에 대해서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현장에서 범행도구는 발견되지 않았고,

자신이 범인이라 시인하는 빈센트는

이대로 가다가는 사형이 내려질게 뻔한 터.

빈센트가 범인임을 믿을 수 없는 워크는

스타와 수시로 싸우고 문제가 있었던

다크를 범인으로 의심하고,

그에 대한 수사를 이어간다.


과연 스타를 살해한 범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대체 왜 그녀를 살해했을까?


동생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무법자'가 되고자 하는 소녀에게는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 벅찬 일들이 이어지고 마는데

과거의 사건, 기억을 잃어버린 동생, 엄마의 사망까지

사건을 뒤쫓는 워크와 무법자 소녀인 더치스를 따라가며

진실에 가닿는 과정은 평범한 범죄 추리소설과는 다른

반전과 섬세한 감정선이 담긴 매력이 있었다.


워크가 왜 그토록 빈센트를 믿었는지,

더치스가 가족을 위해 벌인 행동에서 오는

후회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인물들이 선택하는 순간순간은

서로를 강하게 엮고 옥죄며

사건을 더욱 깊게 끌고 갔다.

그 시간을 따라가며 수많은 선택과 후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한다.

주어진 순간에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의도치 않은 엮임으로 엉켜버리지만

그 역시 자신이 받아들여야 할 몫으로

기꺼이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자신 역시 아직 소녀이면서

더 어린 동생을 보살피고 지키는 더치스가 보인 사랑,

자신의 투병 속에서도 끝까지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워크의 열정은 단순히 경찰서장이라는 직업이 아니라

그 속에 자신의 친구들이 있고

과거의 사건에 대한 책임까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이윽고 마주한 반전의 결말에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선택들에 그제야 납득이 갔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원죄들,

이 소설에서 누가 선인이고 악인인가?라는 질문 앞에

무어라 결론 내릴 수 없는 잔잔한 감정이

얼룩처럼 남는다.


소설 속에서 일어나는 살인 사건들을

단순히 범죄로서의 사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죽음은 어떤 의미로 남고,

또 누군가의 죽음은 어떤 사건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지독하게 엉켜버린 인물들의 서사를 아득히 떠올리며,

누구라도 그런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없었음을

그저 그 시간에 내동댕이 처진 주인공들에게

안쓰러움을 느낄 뿐이다.


시간은 흐르고 아이는 자란다.

로빈과 더치스가 행복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어른은 있었을까?

악의 품에서 자란 소녀와

그녀의 마지막 구원이 된 살인자 사이에는

어떤 인연이 있을지

꼭 직접 읽고 확인해 보기를 추천하는 소설

〈나의 작은 무법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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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길은 여름으로
채기성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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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나무옆의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떤 기억은 평생을 따라다니며 한 사람을 괴롭힌다.

벗어나야지라고 이내 다짐하지만,

발목을 잡히고 끌려다니는 걸 알면서도 이내 엉키는

벗어날 수 없는 악연 같은 기억은

'나'라는 사람을 이전과 떼어놓거나 잊고 방치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게 할 정도이다.


상처와 번민, 가족으로 이어진 굴레,

평행선을 달리는 타인과의 관계, 감정 등

지친 각자의 삶 속에서 고뇌하는 사람들은

기대와 사랑으로 빛날 계절을 다시 꿈꾼다.


인생이라는 시계는 그렇다.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가혹하다가도 다정하게

못 견디겠다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다가도

또 이만하면 버틸 수 있게

삶의 한 가운데에서 자신과 타인의 인생을 바라보며

그 여름의 아련함을 느껴본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과거에 다시 얽매이는 것 같았던 고향에

도망치듯 다시 돌아오게 된 주인공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과 상처들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고향에서

다시금 서로를 향해 날선 상처를 주게 한다.


누군가는 잊고 싶었고,

누군가는 도망치듯 벗어났던 그 공간에서

과거의 추억과 시간을 함께 공유한

주인공들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서로에게 날선 말을 던지며,

자신의 상처를 외면하던 주인공들은

자신이 아닌 타인의 삶을 통해

외면하고 있던 과거의 나를 바라보게 되고,

그들을 향해 손을 뻗으며,

조금씩 과거의 상처에서도 벗어나 보고자 한다.


세계문학상과 사계절문학상 수상 작가

채기성의 신작 소설 〈우리의 길은 여름으로〉은

상처뿐인 도시에서의 시간을 뒤로하고

자신을 찾아, 쉴 곳을 찾아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고등학교 동창인 등장인물들은

과거 친구이자 추억을 공유한 인물들이다.

설레는 첫사랑의 기억이기도 하고

아직은 서툴렀던 마음을 미숙하게 삼켰던

그래서 서로에게 미련이자 원망이 남아있는 그들은

일련의 사건을 계기로 멀어졌다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만난다.


일을 통해 건조하게 서로를 대하지만,

상반된 성격이나 일을 마주하는 모습에서 대조하는 모습은

그때의 앙금이 여전히 남아있는 듯하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은

숨겨진 그때의 일에 대한 기억,

그리고 자책이자 원망 등을

현재의 시간과 겹쳐 보이며 펼쳐놓는다.


따스하고 화목한 가족과의 관계조차

제대로 성립되지 못했고,

사랑하기에 아끼기에 모진 소리를 내뱉었던 말들은

씻지 못할 상처로만 남았다.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벗어나지 못한 채

방황하던 주인공들은

현재의 시간에서 그때의 시간을 조금씩 어루만지고

이해하지 못했던 마음들을 돌보게 된다.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도피하듯 외부로 돌렸던 눈은

타인에 대한 손길에서 마음으로,

그것은 다시 돌고 돌아 과거의 시간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계기로 다가온다.


고정된 형태로 남아있던 각인된 감정들은

이내 기대와 사랑으로 다시 피어오른다.

상처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이해하고 싶었고

이해받고 싶었으며 표현하고 싶었던

마음의 깊이가 더욱 더해진 것이다.


다른 이를 어루만지며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된 이들이

마음속에 품어놓은 사랑을 꺼내놓는다.

폭풍과도 같았던 감정들이 잠잠해지고,

그 속에 숨겨진 진심이 떠오르듯이

태풍이 훑고 지나간 뒤에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의 태양처럼

그들에게도 따뜻한 기대와 사랑이 넘치게 된다.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작가는 얘기한다.

타인과의 관계라는 굴레 안에서 상처받으면서도

기대와 사랑으로 삶을 채워간다고,

타인과 불과하면서도 또 타인에게 헌신하고

그렇게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거라고

그런 삶에 대한 이야기를 글을 쓰며 찾았다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정된 자신의 감정에서 벗어나

비로소 타인을 이해하고 서로를 품는다.

타인을 이해하고 구하면서 비로소 품을 수 있었던 것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였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기대와 사랑은 자라나기 시작한다.


어리숙한 마음이 진심만 있다면

언젠가는 닿을 거라 생각하던 때가 나 역시 있었다.

하지만 서툴렀던 표현으로는 담기지 않는

표현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 진심도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의 변화를 마주하며,

그 잔잔한 파고를 들여다보며

나 역시 여름으로 향하는 길을 찾는다.

상처가 아문 자리에서 빛날 그 길을 따라

잔잔한 그리움을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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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씨의 포옹
정은혜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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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야기장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개교 3년 차 신생학교였던 우리 학교는

일반 고등학교에 특수반(사랑반)을 설치해서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통합교육을 실시했었다.

예체능 수업 시간에 한해 장애를 가진 친구들도

교실에서 동일한 수업을 받으며 또래들과 어울렸는데,

아마도 그때가 장애인과 어울린 최초의 기억인 것 같다.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나 발달장애, 다운증후군 등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진 친구들이 2명씩 한 반에 배치되어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마주하게 되었는데,

꼭 같은 반이 아니어도 (인원수는 그리 많지 않았기에)

등하교 때나 쉬는 시간 등 틈틈이 마주하는 이들을 통해

장애인과 어울리는 방법을 익히곤 했다.

수업을 앞두고 교실에 올라오는 사랑반 친구들을 위해

책상 자리를 비워둔다거나,

몸이 불편한 친구를 데리러 가는 일,

갑자기 불편함을 느끼고 돌발행동이 나타나도

당황하지 않고 이해하는 일은

그들이 결코 다르거나 특별해서가 아니라

모두 같은 학생으로서 누려야 할 학업에 대한 배려이자

이 사회를 살아가는 기본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교복을 입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똑같은 수업을 듣는

사랑반 아이들을 보며 기뻐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더러 이미 성인이 된 나이에 학교에 온 아이들도 있었다.

특수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수는 극히 일부니까)

자식을 생각하는 우리 부모님과 다르지 않은 사랑에

그들에 대해 적어도 여기에서만큼은 '다르게' 여기지

않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사랑반 친구들은 '순수' 그 자체였다.

있는 그대로 반 친구들을 바라보고 좋아하며

감정 표현도 즉각적, 좋고 싫음이 분명한 표정까지.

누군가의 모습이나 조건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순간의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사춘기의 학생들에게는 볼 수 없었던 포인트가 있었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였던 건 언제였더라? 하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지 않는 한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 순수한 사랑을 가진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 어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다르다'라고 판단되며 배척되는 현실에서

한 번씩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된다.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하며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는데,

남들처럼 태어나 '평범'이라는 범주에 있다는 이유로

그들과 선을 그을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장애인이라고 하면 마주하기 불편하거나

무조건 양보해야 해서 내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모습이 낯설어서 무서워하는 이들도 있고,

그냥 그 자체로 싫다고 여기는 이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길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을 쉽게 볼 수 없는데,

장애인의 비율이 낮다기보다 그들이 나올 수 없는

환경임을 알고 나면 그 진실이 그렇게 불편할 수가 없다.

그 속에서 꿋꿋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얼마나 큰 용기를 가지는지 새삼스럽게 체감한다.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 근래에 봤던 드라마 중

<우리들의 블루스>는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잘 알려진 여러 배우들이 등장하는 옴니버스식인데다가,

극 중에서 한지민 배우의 쌍둥이 언니로 나온

실제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정은혜 작가의 등장 때문이기도 했는데,

비밀이 많고 자신을 숨기는

한지민 배우의 극 중 역할도 역할이었지만,

비장애인이 장애인 역을 맡는 게 아닌

실제 장애를 가진 장애인이 등장하는 씬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극 중 내용을 이해하고

대사를 외워 연기를 한다'라는 것은

비장애인만이 가능하다는 나의 편견이자,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소극적이라 생각한 선입견이

얼마나 기울어진 시선인지를

드라마는 사정없이 부숴버린다.


그리고 드라마를 통해 알게 된 정은혜 작가에게

시선을 옮겨가며,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 순수한 시선과 세상을 품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은혜씨의 포옹>은 정은혜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와

그림, 사랑이라는 날 것의 마음을 담은 그림 에세이다.

사진을 찍을 때면 상대와의 빈틈없이 꼭 끌어안는 그녀는,

그렇게 세상을 품고 사랑한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예쁘다고 할 수 있는

강한 용기를, 누구보다 약한 그녀는 가득히 쥐고 있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재고 따지는 것이 아니라

'좋아' 하면서 웃고 이내 품어버리는 이 커다란 사랑을

우리는 왜 잊어버리는 걸까?


'저를 한눈에 봐주세요.

첫눈에 반해주세요.'라고 하며

정은혜라는 이름을 크게 내보인다.

그녀의 시선을 통해 바라본 세상과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행복한지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세상 모든 경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순수하고도 강한 힘,

'사랑'이라는 그 힘을 자신의 가장 큰 강점으로 내보인다.

잊고 있던 가장 소중함을 일깨우는 순수한 포옹,

결국 모두가 같은 사람이고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키는

<은혜씨의 포옹> 이었다.


책을 읽으며, 20여 년 전 고등학교 때의 시간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다정한 눈빛으로 이름표의 글자를 훑으며

부르고 손을 내밀었던 그 얼굴들,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궁금해진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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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궁궐 일본 요괴
조영주 지음, 윤남윤 그림 / KONG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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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진 유적지나 유물을 바라보며

막연하게 그때의 어떤 이야기를 상상해 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아주 먼 시간이 떨어진

누군가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마주할 때면,

특히나 그 물건의 형태가 아주 잘 보관되어

마치 어제까지 사용했던 것 같을 때는

그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과거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조선 궁궐 일본 요괴〉 역시 그런 하나의 실마리에서

상상의 씨앗이 자라나 펼쳐진 세상을 담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 근처에 오이밭 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왜 궁궐에 다른 것도 아닌 오이밭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새로운 이야기 한편으로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그를 통해

막연한 상상 속에 있었던 인물들의 우정을

독자들에게 직접 느낄 수 있게 한다.


여러 차례 대규모 공사를 통해

복원되었던 경복궁 경회루,

그곳에서 2000년도 더 된

일본 양식의 작은 접시가 발견된다.

그곳에서 발견된 접시에 대하여

'왜'라는 궁금증은 끝내 해소되지 못한다.


이윽고 이어지는 소설의 시작,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때에

너무 오래 살아 심심함을 느낀 갓파가

조선으로 건너와 왕이 살던 궁에 숨어들었다가

경복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에서 머물게 된다.

화재로 인하여 파괴된 경복궁의 경회루 수리를 위해

왕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각기 다른 '소망'이 있는 선조와 갓파는

함께 서로의 '소망'을 위해 함께 어울리다

친구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나약하고 힘없는 왕의 모습으로 보였던

선조의 색다른 면이 소설 속에서는 보인다.

아끼고 걱정되는 친구 갓파를 위해

그를 위한 오이밭을 기꺼이 경회루 근처에 만들며

다른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갓파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은

가장 평범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누리고 싶었던 우정을 왕이 됨으로써

포기하고 있던 선조가 누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자 변주 같기도 했다.

화려한 궁궐, 힘없는 왕의 모습 뒤에 숨겨진

서로에게만 내보일 수 있는 진실한 모습은

서로의 모습이나 위치를 떠나

존재 대 존재로서의 가치를 주고받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아름다운 궁궐의 모습과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그림은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소설을 더욱 다채롭게 꾸며주고 있었다.

머리에 접시가 있고,

그 접시가 마르면 안 되는 일본의 요괴.

갓파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갓파와 왕의 우정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고,

갓파에 대해서 모르던 이에게는

경회루와 더불어 일본의 갓파전설까지

찾아보게 되는 시야의 확장을 가져온다.


두 나라의 역사와 전설 캐릭터가 만나 펼쳐지는

마치 '드림팀'같은 느낌의 소설은

허무맹랑한 과장이 아니라

'어쩌면 혹시?' 하는 환상을 가질 수 있는

SF 픽션으로 다가온다.


여느 SF 픽션과 달리,

실제 사실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더욱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왕'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나약했던 왕으로, 가장 큰 시련의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비난을 받았던 왕인 선조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선조에 대한 평가는 최근에 재조명되기도 해서,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서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는다면

또 하나의 색다른 재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았던 소설,

'말도 안 돼'라고 하면서도 어딘가 믿고 싶어만 지는

그런 귀여운 역사소설

〈조선 궁궐 일본 요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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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부지런한 행복 - 출근길의 아득함을 설렘으로 치환하는 힘
김지영 지음 / 포르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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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포르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창 바쁘던 직장인 시절,

한 시간 반 남짓의 퇴근길을 거쳐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빨라도 7시 반,

저녁을 먹고 나면 시계는 밤 9시를 향했다.

하루를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쉽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지쳐버려서

뭐라도 하겠다고 컴퓨터를 켜고 TV를 보다 보면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쁜 평일의 피로는 주말에 허리가 아플 때까지

몰아서 자는 취침으로 풀고자 했고,

덥고 추운 것을 느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방 같은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순식간에 한 해 두 해 지나갔다.


분명 퇴근하고 맞이한 자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퇴근길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내가 선택하고 돈을 벌고 있는 일인데

출퇴근하는 사이에서 뭐가 이렇게 아깝고 억울한지"

눈물이 절로 주르륵 흐르곤 했다.


네모난 건물의 네모난 책상에 앉아서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던

회색 같았던 일상 속에서

다채로운 행복을 찾고 싶었던 마음과의 격차는

짙은 아쉬움으로 그렇게 눈물을 흐르게 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라든가

'아보하'라는 말속에서 나와 맞는 결을 찾기 시작했다.

대단하진 않아도 나에게 잘 맞고 행복하며

나의 삶의 균형을 찾아주는 것 같은

작은 일상의 조각들은 오히려 대단한 것이 아니기에

쉽게 가지거나 행할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은 마음속의 자양분이 되어

나라는 사람을 '씩씩하게' 자라게 했다.

직장을 나와서야 비로소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나에게 선사했다면

조금은 덜 힘들고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13년 차 직장인이기도 한 작가는

동아일보에서 2030세상이라는 지면에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느슨하게 부지런한 행복〉은

이 지면에 연재해온 칼럼과

새로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한 명의 직장인이자 여성으로 지내며

삶이 불안할 때 행해 온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부지런함은

'시작해 봤다'라는 의미로

한껏 부지런함의 문턱을 낮춰준다.

지킬 수 없는 완벽한 루틴 대신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리듬을 택해서,

마음을 다한 순간순간이 자신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믿는 작가는

지난한 사회생활에 마모된 자신을 위해

작은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일상을 부지런히 그리고 느슨하게 느끼며

하루하루를 기대감으로 채우는 힘을 만들어 낸다.


그런 작가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담긴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의 리듬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일상 속에서 행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일터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에서 시작해

무기력과 월급의 기쁨 사이를 오가는 밥벌이,

나를 지키는 생활 습관, 관계의 온도를 조율하는 법,

그리고 삶의 끝과 다시 시작을 담은 이별 프로젝트까지

생생한 경험담으로 채워진 각 장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나이들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묻는다.


그중에서도 3장인 '나를 지키는 일상 프로젝트'의

「혼자의 교실」 부분이 가장 와닿았는데,

매일 출근 전 2시간 일찍 카페에서

나름의 학기제를 운영하며 공부를 하며 느낀

황홀함에 대한 얘기는 '공부'라는 것 자체가

학생 때에만 해당하고 피곤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직장인에게

강렬한 자극제로 다가올 것 같다.


배우고 싶었던 것이나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절한 보상을 배치해서 즐기는 그 마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기꺼이 나서서 하는 공부란 얼마나 즐거울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희소성으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함께하는 가족, 친구에 대한 애정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작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평범한 이름의

평범한 사람이 쓰는 평범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다가간다.


나만의 색을 찾아가고픈

무채색의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지루한 출근길을 기대감으로 채울 수 있는

힘에 대하여 말하는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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