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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성과 달리
기억이라는 것은 감성의 영역과 깊이 연결된 느낌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도 내가 느낀 감정에 따라
때로는 그 기억이 '사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왜곡되거나 잘못된 형태로 남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기억을 편집해 주는 기술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 기억의 편집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여기 있다.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본질로 연구하는
작가가 쓴 《기억의 낙원》이다.
가상현실, 메타버스, AI 등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이 새로운 기술들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착각할 만큼 정교해지고 있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나 사업이 등장하는 등
앞으로의 전망은 점점 커질 듯하다.
아직까지는 커뮤니티를 즐기거나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등 순기능적인 부분이
도드라지고 있지만,
이것을 활용한 기술이 '사람'에게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직접영향을 주게 되었을 때
그 파장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대학교 졸업 후 변변찮은 스펙 앞에
제대로 된 취업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소개로 다니게 된 작은 회사의 영업부 직원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하람.
언제나 하람의 고민을 들어주던 장도영 교수가
오랜만의 만남을 청하고,
그렇게 마주한 장 교수는 하람에게 함께 일해보자며
'더 컴퍼니'라는 회사의 명함을 내민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뇌과학,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하람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했었던'
그 순수한 마음 하나는 분명하게 있었다.
더 컴퍼니라는 회사가 무엇을 팔고
어디 있는 회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보다는 이직했다고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하람은 더 컴퍼니의 조 실장을 만난다.
정해진 사무실도 없고,
대학에 다니던 시절 자주 들렀던
교내의 카페 코스모스에서
조 실장을 만난 하람은,
그 자리에서 고객과의 미팅을 바로 진행하는
모습에 당황을 하게 된다.
고객을 함께 만나고
자신들이 어떤 상품을 파는지 알게 될 거라며
그런 다음에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는 말에
지켜본 상품에 대한 설명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데...
바로 더 컴퍼니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기억을 편집하는
인공지능의 기술로 고객 혹은 고객이 요청하는 인물에게
원하는 형태의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시한부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족에게
현실과 달리 번듯하고 성공한 모습으로
행복한 기억만을 심어주려고 한 의뢰인,
식물인간 상태가 된 아들에게
만나지 못한 엄마와의 만남을 기억으로
심어주고자 한 의뢰인,
복수를 위해 복수 상대에게
다른 이의 기억을 주입하고자 한 의뢰인,
특수한 언어능력만을 빼내어 이식하려고 한 의뢰인 등
다양한 사연과 다양한 상품이
고객들에게 맞추어져 제공되고 있었고,
일을 하면서 이를 지켜보고 담당하는 하람은
'편집되고 조작된 기억이 진짜인가?'라는 생각과
'이렇게 조작된 기억으로 얻은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 앞에서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정체가 드러날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더 컴퍼니와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시스템 '발할라'까지
하람은 학부생 시절 장 교수와 함께 배우고
나누었던 수업 시간의 내용과
점점 의심스러워하는 자신의 속마음 속에서
끝없는 고뇌를 한다.
하람의 전 여자친구이자,
패기 넘치는 신입기자인 소이 역시
비슷한 시기에 '더 컴퍼니'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는데,
과연 장 교수와 더 컴퍼니, 발할라가 그리는
이 시스템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숨 가쁘게 따라갔던 서스펜스 소설이었다.
인생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고 행복한 기억만으로 살 수는 없다.
감성적인 부분은 워낙 상대적인 것이라서
넘치는 행복 속에서는 그 행복의 소중함을
미처 느낄 수 없고
어쩌면 고통이나 불행이라는 것이 있기에
행복이나 안도라는 감정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편집된 기억이 가져오는 행복이 전부가 아님을,
또 겉으로 보이는 것에 가려진 진실이 있음을
등장하는 의뢰인들의 사연을 통해 다시금 느낀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하람이 있기에 더 컴퍼니도 발할라도
제 자리를 결국엔 찾아가지 않을까?
실제 관련된 연구를 하는 작가의 촘촘한 구성과
현실감 넘치는 묘사가 작품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었다.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이런 제안과 상품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의 욕망을 제대로 담은 조작,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을 행복이라 여길 것이고
누군가는 힘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쁨의 망각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고통을 감내한 사람만이 얻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관계없이
마음이 느끼는 행복만 있으면 되는지
연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이었다.
조작된 기억이 가져올 파장은
잔잔한 호수를 뒤흔들 만큼 충분히 강력했다.
한 사람의 사연을 통해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점점 늘어나다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커다란 덩치의 파장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실제로 먼 훗날 생길 수 있는 일 같아서
마냥 픽션으로만 즐길 수는 없던
씁쓸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 글은 웅진지식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