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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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영화나 공연이 시작하기 전, 혹은 어떤 이벤트를 앞두고

칠흑 같은 어두움이 찾아오면

기대감으로 마음속엔 흥분이 피어오른다.

하지만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시각장애 앞에서

이 칠흑 같은 어두움이라는 이 이벤트는

그저 두려움이라는 감정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전작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를 통해

시각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자신의 인생을

씩씩하게 펼쳐낸 조승리 작가의 신작이 나왔다.


그의 글을 통해서 내가 가져온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그들의 삶에 대한 동정을 벗어나

사람 대 사람으로 그들의 인생 자체를

건강한 시선으로 응원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 만나본 신작은 밝고 씩씩하기만 할 것 같았던

조승리 작가의 힘들고 어두웠던 순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었던

'살아있다는 감각'을 함께 느끼며

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마저도 생각할 수 있었다.


신체적 불편함을 가지고 있지만

다양한 활동을 하며 매체로 만나온 장애인들을 통해

우리들의 시각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불편하고 여전히 환영받지 못하며

많은 제약이 더해진다.


직업의 선택도, 여행의 자유도, 이동의 자유도

그 어느 하나 그들에게는 쉽게 허용되는 것이 없었다.

특히나 후천적 시각장애로 이 '어둠'에 순응하고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는 작가에게

제약과 제한이라는 것은 더욱 가속도가 붙어 다가왔다.


이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자 나의 몫이기에

그것들을 받아들이며 순응하던 작가는

어느 순간 먹는 즐거움도 자신에 대한 애정도 없이

그저 살아내고 있다는 무력감에 빠진다.

그런 작가를 끌어내고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던 것은

'낯선 곳으로의 여행' 그리고

그 생경했던 풍경 속에서 느낀 따스함이었다.


남들과 달리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꿈과는 관계없이 안마사라는 직업으로

하루하루를 그저 살아내던 작가는

'보이지도 않는' 여행을 떠나서 오감을 통해

그곳들을 느끼고 마음속의 눈으로 바라보며

자신을 둘러싼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된다.


더 이상 정체하거나 무력하지 않고,

씩씩한 작가를 만들어낸 순간들의 기억은

불평불만투성이에 반복되는 무력감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무탈한 행복이 주는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책 속에서 인상 깊었던 표현이 있다.

전맹 시각장애인인 작가는

오디오북을 통해 책을 접한다.

'오디오북을 읽는다'는 작가의 표현에서

신선함을 느꼈는데,

이런 사소한 표현에서부터 가진 나의 편견을 비롯해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주어지는

세상의 높은 허들이 얼마나 벅차고 힘들었을지

작가의 마음 높이에서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부러 낯설고 힘든 곳으로 떠났던 여행,

안마사 일을 하면서 느꼈던 감정들,

작가는 자신의 치부와 생각을 낱낱이 털어놓으며

크게 얘기한다 '나는 여기 살아있다, 살고 있다'

라고 말이다.


전작을 통해서는 많이 웃기도 했었는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는 많이 울컥했다.

이런 울컥한 감정들을 느끼는 독자들 앞에서

작가는 보란 듯이 더 씩씩한 모습을 보이며

"불꽃 따위 안 보여도 난 잘 먹고 잘 살 거다.

이 더러운 세상아!"라고 깔깔거리며 말한다.


이런 멋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이런 용기는 타고나는 걸까?

작가의 운명을 타고난 것 같았던 그녀가

사실은 높고 보이지 않는 벽을 넘기 위해

엄청난 몸부림을 쳤다는 것,

그런 자신에게 끊임없이

스스로 응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뒤늦게 그녀의 글을 보고 울고 웃으며

그저 박수를 더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나는 또 내 인생이 부끄러워진다.


타인의 불행이나 어려움 앞에서

그에 비해 평온한 나의 인생을

상대적 행복이라 규정짓고 싶지 않다.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인생,

누가 누구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며 동정하기보다

한 사람으로서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묵묵한 응원을 더하기를 바란다.


조승리 작가의 글은 그런 힘이 가득했고,

그 글을 통해 나는 내 삶을 바꾸는 힘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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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 - 보여줄게 100세의 박력, 100세의 해피엔드 인생법
사토 아이코 지음, 장지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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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렇겠지만 한 번 사는 인생

다가오는 매일이 새롭기 때문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마주치게 되는

많은 문제들 사이에서 방황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보다 그 시간을 먼저 살아 본

인생 선배들에게 조언을 듣는 것이

무엇보다도 도움이 될 때가 있는데,

나 역시 지금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지나온 시간을 살고 있는

동생들이나 한참 어린 조카들에게는

무슨 얘기든 해줄 수 있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시간의 차이일 뿐

'인생은 결국엔 겪게 되는 과정'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100세라고 하면 한 세기의 시간인데,

100년이라는 인생을 살아낸 할머니에게는

얼마나 많은 인생의 굴곡이 있었을까?

단순히 행복과 불행을 논하기보다는

살고 죽는 것을 걱정하던 때가 있었을 것이고,

그 후로 너무나 많은 것이 풍족해진 오늘

마냥 여유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잔소리가 절로 나오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100년이라는 시간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나와 외할머니는 50세라는 나이차로,

요즘을 생각하면 할머니 치고

굉장히 젊은 할머니였지만

할머니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 모두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런 차이에 대해서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 얘기할 만한

기회나 시간이 별로 없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말이다.

하지만 그사이 시간은 흘러가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이따금씩 참다 참다 한마디씩 하시던

그 잔소리가 그렇게 그리울 수가 없었다.


마치 할머니가 하는 잔소리처럼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책을 만났다.

1923년도에 태어나 100세를 훌쩍 뛰어넘고도

여전히 현역 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는

사토 아이코 할머니가 쓴

〈이왕 사는 거 기세 좋게〉이다.


1970년대부터 2016년까지

월간지에 실렸던 글들을 모은 책인데,

최근에 쓴 글이 아닌데도 너무나 와닿는 표현과

공감되는 글에 '이 글이 이때 쓰인 게 맞다고?'

하는 생각에 몇 번이나 작성한 연도를 확인하곤 했다.


특히나 요즘 들어서 이런저런 고민들로

무언가 인생의 시야가 좁아진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타인의 시선 앞에서나 나 자신에게 위축되었던 마음을

따끔하게 충고하면서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이 '나다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장점으로 키우는 것을

항시 잊지 말아야겠다.


스펙터클한 작가의 인생사도

솔직하게 털어놓는 요즘 세대에 대한 토로도

조금은 꼰대 같은 부분도 있었지만

이토록 솔직하고 깊은 애정이 어디 있을까 싶다.


사람들은 '벌써 내 나이가 이렇게 됐네'

'나이가 들었네'라고 하지만

나보다 조금만 더 나이가 많은 인생 선배들에게

지금 내 나이대를 얘기하면

"아이고~ 그 나이라면 못할 것도 없지"

"그 나이가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다"

하면서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시간을 부러워한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인생이 되는지,

어떤 모습이 나다운 모습인지,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인생의 비법을 사토 할머니의 글을 통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위즈덤하우스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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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체가 보고 싶은 날에는
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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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게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게 느껴진다.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 주어지는 사람도 있고,

한없이 편하고 가볍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견딜 수 있을까? 싶을만한 어려움이나

문제를 가진 이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짊어진 채

묵묵히 삶을 살아간다.


사람으로 쳐도 60년이라는 시간은

'노인'의 범주에 가까울 만큼 오랜 시간이다.

하물며 60년 된 아파트는 오죽할까?

몇 개 되지 않는 동을 가진 60년이 넘은

오래된 이 아파트는 자살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단지의 주민이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외부인이 들어와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만큼이나

이곳은 어둡고 '죽음'이라는 것에

이만큼 더 가까운 듯하다.


세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빠, 그리고 아직 보호가 필요한

초등학생 시절 중학생인 언니와 자신만을 남겨두고

집을 떠난 엄마를 뒤로하고 미카게는

오래된 이 단지에서 언니 나나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타고난 천식으로 인해 활동도 쉽지 않고

따돌림으로 인해 일반 학교를

더 이상 나가기 힘들게 되자,

집에서 가까운 빵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야간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든 언니는

동생인 미카게가 미루어 짐작만 할 수 있는

'밤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오래된 단지, 그리고 규칙적으로 오가는 빵 공장,

야간학교에서 만나는 한정된 친구들 등

좁은 세상에서만 살고 있는 마카게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었으니 바로

'언젠가 직접 두 눈으로 시체를 보는 것'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죽음에 가까이 있기도 했고

제대로 된 보호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오키상 수상을 한

전작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를 통해서

상실을 겪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구보 미스미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죽음에 가까웠던 어두운 삶

가운데 있던 미카게가 단지에서 마주한

젠지로 할아버지와 친구들로 인해

삶에 대한 희망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스하고 다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별다른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지내던 미카게는

젠지로 할아버지와 함께 단지 경비원 일을 하면서

단지에 거주하는 타인들을 마주하고,

부족한 자신의 상황 속에서도 타인에게 나누는

기쁨을 느끼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늘 곁을 지켜주는 친구 무짱과 구라하시는

미카게가 변화와 꿈을 가지게 되는데

큰 영향을 주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모두 나름의 아픔과 빈틈이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꺼이 그 아픔을 내보이면서

서로를 탓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빈틈을 자신의 따스함으로 채워주며

그저 '같이' 살아주는 것이다.


귀찮고 왜 하는지 몰랐던 경비 일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미카게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애쓰는 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도 언니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또 나아가 오래된 단지의 철거 소식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나서는 모습은

굉장히 큰 반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호기심으로 '시체를 보고 싶다'는 막연함은

미카게의 변화를 유발하는 계기도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라서 가졌던 그 호기심은

소중한 사람이 생기고 그 마음이 커지며

후회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소설의 끝부분에 마주한 젠지로 할아버지와의

마주함에서는 '죽음'이나 '시체'에 대해 가졌던

미카게의 달라진 성숙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 따스함이

이 각박하고 메마른 오래된 단지에서의 삶을

그리고 한 아이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한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임무로 자신의 몫을 다해나가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미카게를 통해

따스함이 주는 변화의 힘을 체감하고

나이를 초월한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더욱 빛나게 묘사함으로써,

각박한 현대사회의 사람들에게

위로라는 따스한 불씨를 키우고 있었다.


이웃과의 인사나 어울림이 점점 줄어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사람이 주는 온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따뜻한 힐링 소설이었다.

그런 따스함을 받은 미카게의 내일이

너무나도 기대가 됐다.


"이 글은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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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나라 베이커리의 이별 파이
임현지 지음 / 머메이드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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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많은 이별 앞에서

우리는 그 아픔을 어떻게 이겨낼까?

누군가는 기다렸다는 듯 지워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못내 지우지 못하고 끙끙 앓기도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우리는 이별의 아픔을 치유한다.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부모 자식 간의 이별, 반려동물과의 이별 등

다양한 이별 앞에서 힘들어하는 시간이 있다.


이별의 아픔을 지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도 달콤한 파이를 먹으며 지울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덜 힘들어하고

슬픔에서 금방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판타지를 담은 따뜻한 소설을 만났다.

〈별나라 베이커리의 이별 파이〉이다.

종로의 허름한 골목에 위치한 별나라 베이커리는

손님들의 이별 사연 속

추억과 사랑을 계량한 레시피로

예약한 손님에서 맞춤으로 제공하는

'이별 파이'를 판매한다.

이별의 아픔을 지워주는 이 파이는 먹고 나면 꿈속에서

이별 상대를 만나 못다 한 말을 전하며,

이별의 아픔을 지울 수 있다고 하는데


오래 만난 연인과의 이별,

배 속에 품고 있던 아기와의 이별,

무지개다리를 건넌 반려동물과의 이별 앞에서

힘들어하는 등장인물들은

이별의 아픔을 잊고자 별나라 베이커리의

문을 두들기게 된다.


소설은 크게 3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대학교 때부터 이어진 오랜 연애 끝

이별을 맞이한 고은과

뱃속의 아이를 떠나보낸 정희,

그리고 마침표를 찍은 고은과 달리

뒤늦게 이별의 아픔을 지우지 못한 선호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덕호와 고양이 사리가

만드는 이별 파이의 제조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해진다.


이별 앞에서 이별의 원인, 문제를 상대방에서 찾고

원망과 헤어 나오지 못하는 슬픔 속에서 잠겨있던

주인공들은 이별을 제대로 마주하며

이별의 원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선택을 한다.


손님들의 사연을 통해

그들의 사랑과 이별을 함께 겪으며

덕호와 사리처럼 독자들도 그들의 감정에 공감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이별의 아픔 앞에서

어떻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그리고 제대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이별을 할 수 있을지

그 속에서 성장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지

지켜보고 응원하게 된다.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모두에게

신비한 별나라 베이커리라는 공간에서

달콤한 이별 파이가 다가왔던

힐링 소설이었다.


"이 글은 레뷰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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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고고학, 나 혼자 수원화성 여행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 14
황윤 지음 / 책읽는고양이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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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살았다.
학교를 다니고 사회생활을 해도
언제나 결국 내가 돌아올 곳은 바로 이곳, 수원이었다.
"고향이 어디예요?" 혹은 "어디 사세요?"라는 질문에
"수원이요"라고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아~삼성?"이라거나 "화성?" 하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수원의 이미지를 꺼낸다.
효의 도시, 영조에서 사도세자를 거쳐 정조로 이어지는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죽인'이라는 쇼킹한 사건이자
영화, 드라마의 숱한 소재가 되기도 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을 말이다.

지금까지 인생의 전부를 수원에서
늘 화성을 끼고 마주치며 살아서인지
나에게 화성이라는 것은 늘 보는 가족 같은 얼굴이었다.
'수원화성'이 아닌 '화성'이라 부르는 것도
어쩌면 나의 도시라고 구태여 이름을 붙여 부르지 않아도
당연히 누구나 보편적으로 알고 통한다는
자부심에서 였는지도 모르겠다.

꽃이 피어서, 주말에 나들이로,
학교에서 소풍으로, 학원에서 그림을 그리러
갖은 이유로 화성을 들락날락 거렸다.
세월의 때가 묻은 벽돌의 문양을 그림에 녹여내고
잔디밭에서 구르고 고무줄을 하며
그곳이 어떤 의미를 가진 어떤 공간이라는 생각보다는
수원의 백성인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호사를
누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머리알이 크고 조선시대를 다루는 역사를 배우며
이토록 스펙터클한 조선왕조의 사건 중 하나의 핵심에
우리 수원이 있고, 또 너무나 익히 들어서 잘 아는
그 일들이 공부거리가 된다는 것이 신기했다.
화성이 가지는 의미보다도 '아, 거기 소풍 갔던데'
하며 보다 가까운 체감이 가져오는 온도는
책이 말하는 역사보다 더 뜨거웠으니 말이다.

학생을 졸업하고 더 이상 역사를 추가로 배우지 않지만,
수원화성에 대한 이야기는 절로 관심이 간다.
가을이면 찾아오는 화성문화제 하며,
화성이 가진 가치와 의미에 대해 이골이 나도록 듣고 익힌
수원 백성인 우리들은 내 고장 수원의 '화성'을
보다 자세히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저장된 로드뷰 사진 속에서 잊힌 기억의 장소나
블러 처리되었지만 보고 싶은 이의 모습을 발견하고
아련한 반가움을 느끼는 것처럼
여전히 나의 터전이자 과거, 미래를 담을
수원화성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어떤 역사라기보다
내가 겪었던 과거로의 시간 여행 같았다.

단풍 진 융건릉에서 아빠가 찍어준 사진이나
이제는 할아버지 위패를 모셔 더 자주 가는 용주사까지
우리의 생활 그 자체로 물들어 있는 수원화성을 둘러싼
자세한 이야기들을 읽고 있으니
'늘 함께 있어 소중함을 몰랐던' 나의 무심함을 반성하고,
마냥 추측하고 놀기에 바빴던 공간들의
정확한 명칭과 의미들을 깨달으며 새로운 의미와 가치의
'수원화성'이 나의 기억에 아로새겨졌다.

수원화성을 역사적 의미나 글로만 접한 이라면
직접 와서 보는 것만큼의 생생함을 줄 수 있고,
수원화성 여행을 앞둔 이들에게는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그런 책이다.
역사 이야기라면 자칫 무거울 수 있는데,
일상이 고고학 시리즈에서 여러 번 만나본
황윤 작가를 따라가다 보니 수원화성의 이야기도
이렇게 가볍고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조선시대 르네상스라 불리는 그 시대를
거침없이 헤쳐나간 정조의 모습을 떠올린다.
누구보다 백성을 아꼈고, 아버지를 사랑했으며
자신의 원대한 꿈을 하나의 도시로 만들어 보이고자 했던
그의 결과물이 바로 수원이기에,
그 이어진 정기를 받아 나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행리단길이라 불리는 핫해진 골목의 상점들보다도
구석구석 오래된 성곽이 가진 가치를
사람들이 들여다봐줄 수 있기를 바란다.
그 깊은 가치를 모르고 스치고 매일을 닳듯이 다녔던
수원의 내가 느끼는 이 아쉬움을 타지인들은 모르게,
그저 그 깊은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일상에 깊이 배인 수원화성의 정취를 부러 꺼내어 펼치며
이 도시가 이토록 아름답고 가치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본다.

"이 글은 책읽는 고양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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