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 - 빨래골 여자아이가 동대문 옷가게 알바에서 뉴스룸 앵커가 되기까지
한민용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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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야기장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뉴스의 꽃, 방송국의 얼굴.

메인 뉴스의 앵커 자리에는

늘 단정한 차림새의 여성 앵커들이 있다.

가장 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이지만

어쩌면 가장 보수적인 게 뉴스인데

그동안 고정되었던 이미지의 여성 앵커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는 멋진 사람을 만났다.


JTBC 뉴스룸 최초의 여성 앵커이자

대한민국 뉴스 역사상 최연소 여성 메인 앵커를 맡은

기자 출신 한민용 아나운서가 쓴

〈매일 뉴스로 출근하는 여자〉이다.




뉴스를 진행하는 여자 아나운서는 많았다.

이름만 대어도 다들 아는 여자 아나운서들은

지적인 모습으로 또박또박 뉴스를 전하면서도

시청자들에게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를

한결 부드럽고 유하게 해주는 역할을 했다.


여자 아나운서를 다룬 드라마, 영화들도 많았지만

그런 픽션에서처럼 '전하고자 하는'

의식, 의지가 있는 캐릭터들은 현실에서 볼 수 없었고

'말하는' 스피커로서의 역할이 대부분이었다.


많은 직업군에서 유난히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여자' 아나운서 '여자' 운동선수 '여자' 작가.

직업에 있어서 성별로 구분된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닌데,

'여성'이라는 수식어 앞에

마치 남성의 보조나 남성의 파트너 같은 느낌이

점점 맞지 않는 옷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민용 아나운서는 자신의 역할 앞에

덧붙여진 성별을 지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단단하게 펼치는 사람이다.

기자 겸 앵커여서 였을까,

방송국에서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뉴스의 꽃' '방송국의 얼굴' 대신

사람들을 설득하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묵묵하게 해내며,

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에게

또 그를 바라보는 또 다른 여성들에게

단단하게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인다.


아나운서, 그저 좋은 학교를 나오고

어려운 언론 고시를 통과해

고생 없이 탄탄대로를 밟아 온,

결국은 그러다가 결혼을 핑계로 방송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봐오며 스스로도 여자이지만

편견 아닌 편견을 가졌던 나에게

한민용 아나운서의 이야기를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는 자신이 보내온 시간을 통해,

얼마나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사람이었는지

또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는지,

자신이 만나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자신이 부딪쳐온 꿈을 향한 높은 벽과 여정,

그리고 결국은 돌고 돌아 스스로 쟁취한

땀의 시간을 통해

그렇고 그런 뻔한 성공 스토리가 아닌

스스로 만들어간 "나의 이야기"를 펼친다.


처음부터 앵커를 생각했던 것이 아니라,

기자 생활을 거쳐 언론생활을 시작하며

주어지게 된 앵커라는 역할을

자신만의 색과 방식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한 아나운서의 이야기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모두에게

그만의 응원으로 다가온다.


만들어진 기사를 그저 말하는 것이

앵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뉴스는 앵커는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한 회의 뉴스 진행을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시간까지,

때로는 밤을 새워서 방송을 하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

더하고 있는 숨어있는 노력을

새삼스럽게 알아차리며,

그들의 역할을 쉽게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반성하게 되었다.


기자로서 가졌던 사명감,

기자 생활을 바탕으로 앵커가 된 뒤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꺼내 보였던 많은 이야기들,

말을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그녀의 모습은

왜 그녀가 그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증명해 주는 포인트였다.


세월호 참사, 국정 농단, 대통령 탄핵,

이태원 참사, 계엄령 등

많은 사건들 앞에서 언론인으로 한 명의 국민으로

시대와 역사를 마주한 그녀의 단단한 시선이

점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자신처럼 꿈을 꾸는 이들에게 전하는

가장 작지만 단단한 응원!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불안하고 흔들리는 모두에게

'당신만은 당신의 편이 되어주라고,

인생에서 가장 좋은 이야기를 고르고 골라

스스로에게 들려주라'라고 말한다.


인생의 새로운 챕터에 접어들며,

또 다른 변화를 맞이한 한 아나운서의 앞길에는

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너무나 기대된다.


나 역시 나만의 이야기로 내 인생을 채우며,

나의 길을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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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사람들 -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와대를 받치는 사람들의 이야기
강승지 지음 / 페이지2(page2)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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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페이지2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2022년 5월 10일, 청와대가 국민에게 개방되었다.

1179일 동안 852만 명이 그 공간을 거닐었고,

이제 다시 빗장을 걸고 원래의 역할로 돌아가려 한다.


지도에서도 자세히 볼 수 없던 그곳.

삼청동을 걷다 보면

어쩐지 삼엄한 기운이 느껴졌던 그곳.

뉴스로만 접하던 그 공간에,

매일 출근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청와대 사람들〉은

우리가 대통령의 공간으로만 여겼던 청와대를

‘회사’라는 일터의 시선으로 바라본 에세이다.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킨 한 직원의 시선으로

청와대의 일상과 사람들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이따금씩 청와대에서 일했던

조리사분이나 대통령의 이발사 등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그곳으로 매일 출퇴근을 하는

직원의 일상을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개방되었다고는 하지만 공간이 열렸을 뿐,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일을 했었는지

그들의 출근과 퇴근 사이, 사무실이라 불리는 공간은

우리처럼 여느 '회사'의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한 포인트가 참 많았다.




책을 쓴 작가는 미술을 전공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다 청와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물다섯 번의 계절을 그곳에서 보내며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출근했고,

청와대가 대중에게 문을 열었을 때에도

그 자리를 지켰다.


이 책은 청와대로 출근하는 이가 바라본

‘나의 회사’이자 ‘사회생활’의 배경이 된 청와대와

그곳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정권에 따라 싹 물갈이될 것만 같은

가장 비밀스러운 공간에서

세 번의 정권 교체를 지나며 자리를 지킨 사람들.

작가의 시선에 비친 청와대는

물음표 가득했던 공간에서

‘다 똑같은 회사’처럼 가볍게 다가왔다.




📘 책 속 이야기

각 장은 청와대라는 공간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준다.

1장에서는 청와대로 출근을 할 때면 거쳐야 하는

출입절차나 사람들이 궁금해했던

청와대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그리고 업무용 핸드폰이나 카메라 사용 가능 여부,

대통령의 이름으로 된 선물을 고르는

직원들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


2장에서는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청와대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다.

국기를 관리하는 사람, 수목을 책임지는 사람,

벽에 걸 그림 액자를 거는 사람 등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청와대에서 일하는구나'

하고 새삼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3장에서는 금강산도 식후경!

청와대에서 마주하는 식사시간과

점심시간만큼은 자유롭고 싶은

직장인의 고충이 담겨 있었다.

제아무리 청와대라고 해도 결국은 사람이 일하는 곳!

'회사'에서 느끼는 고충은

어디든 똑같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4장에서는 청와대라는 공간으로 출퇴근을 하며

느꼈던 작가의 다양한 감정들이 담겨있다.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청와대'라는 공간이 주는

차별점을 이장에서 만날 수 있다.


5장에서는 정권 교체와 함께

대중에게 공개된 청와대의 변신과 더불어

청와대라는 공간에 스스로를 많이 투여했던

그래서 갑작스레 달라진 환경에 방황했던

작가의 마음앓이가 담겨 있다.


6장에서는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조용히 자리를 지켰던,

늘 도드라져 보이지 않지만

그곳을 지키고 만들었던

청와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청와대라는 공간 속에 숨겨진

무수한 많은 노력들에 대한

감사까지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 사람 냄새 나는 공간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었던 직원식당 이야기,

청와대 내 과수나무에서 떨어진 과일로 만든 화채,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함께 일하는 동료들.

딱딱하고 격식을 차릴 것만 같은 청와대가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차가운 공간이 아니었다.

사람 냄새가 가득한 따스하면서도 평범한

회사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 다시 닫힌 청와대, 다시 시작될 이야기

이제 청와대는 다시 빗장을 걸고

원래의 역할로 돌아가려 한다.

‘공개되었던 기간 동안 한 번쯤 둘러볼 걸 그랬나?’

싶다가도, 어쩌면 그런 아쉬움이나 보지 못하는

적당한 거리감이 청와대라는 공간의 무게감이나

환상을 유지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이대로 보지 못한 것도 썩 나쁘지 않다.


다시 그곳을 채우고 묵묵히 빛나게 해줄 사람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평범한 직장인들처럼

검은색 사이 나만의 변주를 더한 옷을 입고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쏟아져 내리며,

각자의 노곤한 샴푸 향을 풍기고 자리에 앉아

오늘을 살아가겠지.


다시 또 뉴스로 만나게 될 테지만,

그래도 그곳의 이야기를 전할

청와대 사람들의 새 등장을 기다리며

기분 좋은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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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개의 말·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 민음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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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농담>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밀란 쿤데라.

위대한 체코 작가로 불리고 있지만,

작가이자 한 사람으로서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조국인 체코로부터 프랑스로의 망명,

'말할 자유'를 찾아 떠났지만 다른 언어에서 오는

표현의 차이는 그를 몸살을 앓게 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아닌

번역가의 마음으로 표현된 작품을 보며

그는 프랑스어로 직접 작품을 집필하기도 했으며,

자신의 작품에서 쓰인 또 마음에 들거나 놓치고 싶지 않은

표현들을 모아 나만의 사전을 만들기에 이른다.


<89개의 말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는

그런 표현의 자유를 갈망한 그의 몸부림이자

고국에 대한 그리움, 그러면서도 우월했던

문화에 대한 자부심으로 꽉 차있는

밀란 쿤데라의 유고작이다.


이 책은 두 편의 산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9개의 말》은 쿤데라가 중요하게 여긴

단어들을 정리한 철학적 소사전이고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는 프라하의 문화적 유산과

소국의 감수성에 대한 에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체코에서 태어나 체코어로 초기 작품을 썼지만,

그의 소설이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으며

체제에 대한 반발로 받아들여지며 금서가 되고

조국에서 배제된 작가가 된다.


번역을 충실할 때만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참된 번역가를 만드는 건 충실성에 대한 열정이다! 이를 깨닫고서, 수년 전에 나는 내 책의 외국어 판본들을 바로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말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찾기 위해 망명을 하지만

이후로는 문학적 보편성과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두게 되었다.


하지만 늘 마음 한편에는 지울 수 없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상처가 담겨있는데,

<89개의 말 ·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는

그가 정리한 사전 속 단어들의 정의와

프랑스 망명 초기에 쓴 에세이를 통해

그의 세계관을 통과하는 가장 근본적인 메시지를 담으며

밀란 쿤데라의 디아스포라적 요소를

한껏 느끼게 해주었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지금의 우리는

그가 마주한 '말의 자유'와 '말의 무게'를

체감하기가 어렵다.

나의 표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번역 앞에서

자유를 위해 떠나기를 택한 자신의 선택임에도

조국의 언어와 문화를 그리워하는 그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지 생각만으로도 먹먹해진다.


하지만 작가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의 자유'를

선택한 것은 끝끝내 작가로 살기로 한

그의 각오이자 다짐으로, 그런 그리움마저 써 내려가며

스스로의 아픔을 하나의 요소로 승화시킨다.


그가 말하는 단어들의 의미,

그리고 조국인 체코 프라하의 문화와

끝끝내 표현하는 사람으로 존재하고자 하는 의지까지

한껏 쿤데라의 세계관을 느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자유를 읽고

그 자유를 통해 그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세계관을

독자들도 마주하게 된다.

비로소 그 세계관을 이해하면서 가지처럼 뻗어 연결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기회 또한 얻을 수 있고 말이다.


그가 프랑스 작가인지, 체코 작가인지

스스로 어느 나라의 작가로 생각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말하고 쓰기를 선택했고, 결국 이렇게 남았다.

지금의 우리는 그의 남은 흔적을 통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그의 자유를 만끽함으로써

비로소 그가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게 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글 중 가장 솔직하고 개인적일 수도 있었던,

그의 존재를 가장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해주는

<89개의 말 프라하, 사라져 가는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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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무죄 세계의 사랑법 -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
정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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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한겨레출판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법적인 다툼이 벌어지면 재판이 열린다.

피해자와 피의자로 나뉜 사람들,

그리고 유죄 혹은 무죄로 결론 나는 재판.

법은 중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묻는다.

과연 모든 이야기가 두 가지로만 나뉠 수 있을까?


대학교 때 ‘법과 인간’이라는 교양 수업을 들으며

재판을 참관한 적이 있다.

공개재판이라 누구나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 공간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법조인의 목소리는

때로는 단호했고, 때로는 조용히 날카로웠다.

그들은 수많은 법령과 증거를 바탕으로

사건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법은 무섭다. 그리고 법을 다루는 사람은 더 무섭다.’

검사 역시 원리와 원칙만을 따르는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 책을 읽고 완전히 바뀌었다.


〈유무죄 세계의 사랑법〉은 정명원 검사의

인간적인 고뇌와 따뜻한 시선을 담은 에세이다.

유퀴즈 출연으로 알려진 그녀는

공판 분야 국내 유일 블랙벨트 검사로,

법이라는 냉정한 제도 속에서도

사람의 온기를 읽어내는 시선을 가진다.

이 책은 법조인의 일상이 아닌,

사람을 마주하는 한 인간의 기록이다.


1부에서는 재판 판결문이나

어떤 사건의 재판을 다룬 뉴스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건 너머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쩐지 검사라 하면 사건의 사실과

그 행위들이 가지는 유무죄에 대해서만 따질 것 같은데,

결국 모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기에

검사이자 한 명의 사람인 그녀는

그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온기를 읽는다.


문장을 쓰는 일에 애착을 가진 사람으로서

공소장을 쓰며 좌절했던 순간들,

할 말을 잃게 만들었던 피고인들,

사건 속에서 마주한 이들의 남은 삶을 고려해

판단의 기로에서 선택했던 자신의 결정까지

법으로만 얘기할 수 없는 여러 표정들이 담긴다.


2부에서는 새내기 검사를 지나 공판부장으로,

법조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법조인의 일상이 바로 이 파트가 아닐까 싶다.


사건을 배정받고 누군가 사람을 불러 조사를 하고,

때로는 암흑 속에 숨겨져 있는 듯한 사건을 파헤치며

검사로서 가졌던 어떤 사명감이나 책임의식,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느낀 애써 버티고 있는

사람의 역사에 대해서도 담담하게 얘기한다.

또 검사이자 엄마로 아이를 배에 품고 키우며

들었던 생각들은 차갑게만 보였던,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냉혈한 같은 이들에게도

무엇보다 유약하고 원초적인 감정이 있음을,

결국은 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걸

당연하지만 미처 잊고 있었던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사건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각기 사연이 있듯

그것을 마주하는 이들에게도 자신만의 사연이 있는데,

법을 다루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그들에게서 어떤 감정이나 감성적인 것은 없다고

우리 스스로 판단해왔던 것은 아닐까 반성했다.


마지막 3부는 상주시에서 지청장으로 근무하게 되며

겪었던 일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은 시골마을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조용하거나 답답하지만은 않았던

너무나 따뜻하고 애틋했던 이곳에서의 시간,

그 애정이 듬뿍 담긴 시간을 전한다.


이윽고 다시 발령이 나고 상주를 떠나게 되며,

이임식에서 보편적인 딱딱한 이임사가 아닌

'세월이 가면'이라는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는

생각조차 못 했던 전개로 읽으면서도 괜스레

코 끝이 찡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단단히 익어간 농부의 딸로, 나아가 검사가 된 사람.

이 일을 잘 해내기 위해 그 뿌리가 될 토양이 되는

사람들의 삶의 결을 이해하고 싶다는 그의 다짐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지

그녀의 관점을 느낄 수 있었고,

범죄 너머에서 발견한 인간에 대한 낙관을 가진

따스한 시선을 통해 쌓여가는 법이라는 역사를

제대로 마주하게 해주었다.


법의 선택과 결정이 모두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 속에도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차갑고 딱딱할 것이다'라는 편견으로만

바라봤던 검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따스한 시선을 가질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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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백온유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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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간을 살아간다 하더라도

세대에 따라 시대를 바라보는 눈은 달라진다.

"요즘 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 얘기는 아주 오래전에도 지금도

그 시대의 기성세대들은 말해 왔었다.


이렇듯 시대를 살아가며 느끼는 세대들의 감정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은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현실의 감정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을 통해

우리는 시대라 부르는 시간에 담긴 정서를 느낄 수 있고,

또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세대 간의 차이 역시

그들의 표현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나에게

단순히 '젊은' 작가들의 글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감각과 고민을

함께 공감한다는 포인트로 다가왔다.


2025년 제16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는

익숙한 작가들의 이름이 많았다.

이름만으로도 기대되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를 발견하는 과정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딸, 손녀의 삼대가

잃어버린 오천만 원의 행방을 쫓으며

드러나는 가족 간의 갈등과

가족이 아닌 타인인 요양보호사에 대한

할머니의 믿음이 엇갈려 보이며

가족의 균열과 노년의 외로움을 섬세하게 그려난

백온유의 〈반의반의 반〉


2025년 상반기를 꽉 채운 베스트셀러인

소설집 〈혼모노〉에서 먼저 만나봤던

성해나의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죄의식 섞인 유희와 길티 플레저를 드러냈는데,

주인공의 인식 변화를 바라보는 과정이

다시 읽어도 와닿았다.


어쩌면 성해나의 작품과도 결이 비슷한 듯한

이희주의 〈최애의 아이〉는

최애 아이돌의 정자를 기증받아 아이를 갖고

팬사인회에서 그를 만나는 여성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이돌을 소비하는 소비자가 아닌

좋아한다는 감정을 넘어 도덕적 문제까지 연결되어

생명윤리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결말은

충격적인 반전까지 더해져 더욱 흥미진진했다.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도 돋보였다.

트랜스 남성이 자신과 다른 남성인 오스틴을 통해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과정을 담은

서장원의 〈리틀 프라이드〉는

성소수자의 내면을 심도 있게 담아냈다.


각기 다른 주제를 가진 소설들이지만,

이를 통해 바라본 시대의 감성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혹은 잃고 싶지 않은

'나 라는 정체성'이라는 주제로 모아진다.


가족이나 사회, 관계 속에서 흔들리는 불안과 균열을 통해

감정의 단절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도

아이돌이나 굿즈, 정자 기증 등

시대의 트렌디한 소재도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었다.


작품들은 불안한 현실 속에서 마주하는 세대의 현실과

인물들의 섬세한 감정묘사를 통해

그 불완전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독자들에게

각 등장인물의 고민을 독자에게 투영함으로써

그것을 한 개인이 아닌 세대의 문제이자 나의 문제로

탐색할 수 있게 한다.


쓸쓸하면서도 단단한 시선으로

때로는 실험적인 이야기를 다루며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작품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내면의 대화를 나누게 한다.


지금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드러낸

작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작품들이 그려낸 세상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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