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이슬아 지음 / 이야기장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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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이라면 하루에도 몇 통씩 이메일을 읽는다.

휴가를 다녀오고 나면 쌓인 이메일을 읽고 처리하느라

시간이 순식간에 흐를 정도.

하지만 이메일을 처음 만들던 순간을 떠올리면

아날로그 감성이 더해진 '편지'의 느낌이 더 강했다.

얼굴을 보고 미처 전하지 못했던

말들이나 고백을 메일로 담아내었던

그리고 사진과 음악, 때로는 재미있는 게임을 보내주며

'함께 만끽하기를' 바라는 작은 소망이 거기 있었다.


하지만 그런 메일이 보편화되고 익숙해지며

이제는 쇼핑몰 등에서 결제 알림이나 홍보 메일,

차단해도 죽지도 않고 또 찾아오는

좀비 같은 스팸메일에 질려서인지

메일에 대한 감흥이 떨어지고 말았다.

더 이상 이메일은 낭만이나 설렘, 기다림이 아닌

처리해야 하는 업무 *건,

내 개인정보가 얼마나 털렸는지 체감하게 하는

계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만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메일에서 점점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메일에 담긴 상대방의 모습이

더 이상 그려지지 않으면서부터

그렇게 불특정 다수에게 뿌려지는 메일이

익숙해지고 나서부터는

메일은 '읽는 것'이 아닌 '보는 것'이 되었고,

거기에는 감정도 담기지 않은 텍스트만이 놓였다.

여기에 카카오톡 등의 메신저 앱이 활성화되면서

우리는 더 이상 메일에 말을 고민하며 골라 쓰지 않았고,

부러 열어보지 않을뿐더러 몇 번의 클릭만으로

읽음 처리나 삭제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여전히 이메일은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업무에서 여전히 메일을 쓰고 있고,

한번 보낸 뒤에는 수정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이 있으며, 쓰는 이와 받는 이의 시차가

어떻게든 발생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날로그적 관점이 남아있기도 하다.


'이메일로 인생을 바꿀 수 있느냐?'라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가로젓겠지만

나는 여전히 그렇다고 고개를 이내 끄덕일 것 같다.

대부분의 중요한 이슈들은 전화로 통화하더라도

이메일로 안내가 될뿐더러

(입사 안내, 거래 서류뿐 아니라 사소하게는

건강검진 결과도 이메일로 받을 수 있다.)

작가 이슬아처럼 실제로 이메일로

인생을 바꾼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이슬아는 이메일로 자신의 글을 납품하는

본격 산지 직송(?) 서비스 〈일간 이슬아〉로

한국문학의 판도를 뒤집고,

이제는 완연하게 많은 이의 사랑을 받으며

자신 스스로 그 증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메일이 좋은 메일일까?

이메일은 어떻게 써야 할까?

작가 이슬아는 〈월간 이슬아〉를 운영하며

쌓아온 자신만의 영업 비밀을

만천하에 널리 알린다.


사회 초년생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혹할

설득의 마법을 배우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는

섭외와 조율, 설득의 비법을 담은 책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이다.


웹서비스 기획자로 일하던 당시

내게 이메일은 '없어지면 큰일 나는 것' 중 하나였다.

서비스 운영과 관련된 대부분의 업무 조율을

이메일로 했을뿐더러,

그것들은 나에게 매우 중요한 '증거'가 되었기에

때로는 업무의 기록으로,

때로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협박(?) 같은

매우 중요한 요소로 언제나 함께 했다.


이메일로 일을 하다 보면 꼭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어떤 설득을 하거나 혹은 제안을 받은 당사자가 되어

수락이나 거절, 문의 등을 하게 된다.

결국은 함께 협의라는 마침표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보다 내가 원하는 바를 담기 위해서는

상대를 알고 나를 잘 표현하며 그것을 알맞게 조율하는

언어의 마법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

그 가장 원초적인 언어의 마법이

통하는 것이 이메일이자,

이메일이라는 것이 없어질 수 없는 이유이다.


이슬아는 글쓰기를 업으로 삼은 작가답게

자신의 노하우를 듬뿍 담아

이메일 쓰기에 대하여 말한다.

그녀의 이메일 쓰기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갑작스레 많이 쓰지도 않는 메일이지만

보낸 편지함과 받은 편지함을 뒤적이며

내가 보낸 메일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나에게 왔던 메일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다시금 들여다보게 되었다.


(뒤늦었지만 회사원 시절,

일정을 지키지 않고 퇴근해버린 UI 개발자에게

그녀와 그녀의 파트장, 팀장님을 비롯해

관련자들을 모두 참조해

'그럴 리가 없는데 오지 않는 메일이

혹시 시스템상 문제가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

기다리다 보낸다며 새벽에 보낸 이메일은

점잖지 못한 못난 표정의 이메일이었음을 고백한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것처럼,

이메일 한 통이 이슬아처럼

당신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

나는 나의 목소리를 어떻게 내고 싶은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떻게 잘 담고 싶은가?

이슬아의 글을 읽으며 다듬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대화는 쉽지만 아직 메일은 어려운

사회 초년생이나 직장인들에게

가장 설득력 있으면서도 강력한 후킹이 있는

이메일 쓰기를 배울 수 있는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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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 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필사적 SF 읽기
강양구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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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북트리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근시대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매해 과학의 날을 맞이해서

고무동력기 날리기, 물로켓 만들기, 과학 상자 조립하기

같은 선택활동을 비롯해

미래 일기 쓰기, 미래 그림 그리기 등을 하며

각자 머릿속에 그려온 '미래'라는 시간을

담아내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때의 '미래'나 '과학'에 해당하는

현실이 된 지금은 주어진 현실을 사는 것이 바빠서인지

미래나 과학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잊고 지내는 '가까운 미래' 혹은 '근시대의 과학'을

떠올리면 오히려 가장 가깝게 접하는 것이

SF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SF 장르문학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그 중심을 잡고 이끌며

'한국 SF 문학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번에 이런 SF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전하는 책을 만났다.


어떤 의미의 독서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미래예측 도서라고도 할 수 있는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인

강양구 작가가 쓴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이다.


작가는 다양한 SF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현상들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를 진단한다.

우리가 마주할 과학기술이 데려다줄 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낸 사고실험으로써 SF 소설을 바라보며

그 속에 담긴 질문들을 파헤치고,

오랫동안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해 온

자신만의 시각으로 답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과학기술과 역사, 정치,

경제, 문화를 넘나드는 읽기를 보여주는 시도가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다양한 SF 작품들을 소개하는데,

이 작품들을 읽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거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공감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SF 독자로서

이 책을 통해 한 명이라도 또 다른 SF의 팬이 되기를,

또 이런 SF 작품을 통해서 '망가진 세계'에서

설사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더라도

재미있게 꿈꾸고 싸우기를

그래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품는다.


과학이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차가우면서도 기술적이고

인간미가 없는 기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나누자면 문과형 인간인 나에게

과학이란 '피도 눈물도 없는 그저 기계 같은 학문'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런 과학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어떤 세상을 구한다거나 인간을 생각한다는 것보다는

'기술발전의 의의'만을 생각한다는

편견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지극히 문학적인 그리고 그 속에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SF 문학들을 만나고 나니

과학, SF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오해가 하나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SF 장르에 대해서도

이번에 만난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을 읽으며

보다 쉽고 가까운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주어진 현실을 보다 잘 묘사하는 건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의 문학이라 생각했다.

초자연적인, 기술적인 과학을 담은 SF 문학이

과연 담을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를 정했던 것은 스스로의 편견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인종 차별, 세대 간의 분쟁, 감시와 통제,

기후 재앙이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은 수많은 현신들은 SF 소설 속에서

다양한 파편들을 품은 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당신들의 세계가 여기 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말이다.


소설들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그 생생한 미래를 미리 겪어보고 예측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고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그런 SF의 매력을, 그들이 전하는 질문을

너무나 친절하게 독자인 우리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해 준다.


작가의 바람만큼이나 소개된 18편의 소설 중

읽고 싶은 작품들을 여럿 꼽아보았다.

주로 한국 젊은 작가들의 SF 소설만을 읽어보았던

나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올 것 같아서

너무나 기대가 된다.


무너진 세상을, 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을

SF가 조용히 일러준다.

그리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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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가 결혼을 안 해서요
가키야 미우 지음, 서라미 옮김 / 흐름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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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적령기의 외동딸을 둔 부부가,

딸의 미래를 걱정하며

더 늦기 전 딸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본격 결혼시장에 뛰어들며

이른바 '부모 대리 맞선'에 참여하게 된다.


아직은 20대인 나이지만

이제 곧 30대를 앞두고 있고

이러다가 부부가 떠난 이후에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살게 될 딸이

너무나 걱정되는 부부는

좀 더 적극적으로 딸에게 결혼을 권하게 되는데,

그런 그들이 선택한 것은 '부모 대리 맞선'


결혼을 희망하는 자녀들의 신상서를 작성해서

대리 맞선장에서 만난 부모님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마음에 드는 상대의 신상서를 서로 교환한다.

그 이후 만남은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달려있지만,

부모들끼리 자녀들의 결혼을 위해 나서고

그 첫 단추를 부모님이 끼운다는 점에서는

일반적인 만남과는 차이가 있는데


기대하고 준비하며 나갔던 맞선은

생각과는 다른 현실로 다가온다.

너무 나이 차이가 많이 나거나,

사진과는 다른 모습,

혹은 지극히 가부장적인 마인드를 가진 상대를 보며

'이런 상대에게 우리 딸을 만나게 할 수 없어'

하다 보니 손에 남는 신상서는 몇 개 없게 되는데,

그나마 딸도 부모도 마음에 드는 상대는

신상서 교환을 거절하는 등

비슷한 사람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 욕심이었던 건지

대리 맞선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게 풀린다.


여러 번의 대리 맞선을 준비하며

딸인 도모미와 부모인 지카, 후쿠는

결혼과 결혼 상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이 결혼하고 자녀를 키우던 때와는

다른 도모미의 생각과 모습에

세대 차이, 결혼 관념에 대한 차이를 느끼게 되고,

비슷한 나이대의 자녀를 둔 친구들과의 연락 속

먼저 결혼하고 손주를 두게 된 이야기에는

질투를 느끼기도 하고 또 보이는 모습과는 다른

현실의 결혼 이야기 앞에서 지카코는

결혼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

나라가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연애도 결혼도 쉽지 않은 현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과연 도모미는 부모 대리 맞선을 통해

결혼 상대를 만날 수 있을까?


대리 맞선을 통해 만나게 된 여러 상대들,

그리고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주인공 지카코가

딸, 친구 등과 함께 나누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결혼에 대한 세대 차이를 들여다보고

결혼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소설이다.


"그렇다면 결혼도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텐데,

최근에는 결혼하지 않는 사람이 늘고 있어."


신문기사나 한창 지긋한 나이를 가진 어른들에게서

쉽게 들을 수 있었던 얘기들이

소설 속에서도 펼쳐진다.


결혼이란 무엇인지?

어떤 사람이 결혼 상대로 좋은 사람인지?

소설 속에서 도모미와 함께

다양한 맞선 상대를 마주하며

결혼이라는 현실이 전하는 씁쓸함을 맛본다.


출간하는 책마다 사회문제를 꼬집으며

유쾌한 전개를 보여주던 가키야 미우는

이번에 '결혼'이라는 카드를 꺼낸다.


왜 이렇게 결혼을 하기가 힘든지,

어떤 결혼 상대를 찾고 있는지,

결혼 앞에서 결혼 적령기인 자녀들과

그 부모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거울처럼 현실을 비춰주며

그 기이하게 기울어지고 있는

하나의 사회를 보여준다.


함께 살아가는 인생의 동반자가 아닌

손익을 계산하고 마는 모습,

그렇다고 그 모든 것을 남편 혹은 아내에게만

맡길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진정한 의미의 결혼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가족을 만들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무색해지고 있는 지금,

여전히 미혼으로 부모님과 살아가는 나 역시

소설 속의 도모미, 부모님과

비슷한 고민을 늘 마음 한편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달성해야 하는 과업처럼

결혼을 적당한 시기에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다.

무엇보다도 결혼에 대한 '절실함이나 필요성'을

당사자들이 직접 느끼는 환경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N포세대의 입장에서 얘기해 본다.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식의

해피엔딩은 이제 더 이상 끝이 아니다.

결혼이 행복의 마침표가 아니고,

결국은 '나'라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우선인 시대가 됐는데

오늘날을 살아가는 N포세대들에게

결혼이라는 것이 다시금 '필요하고 하고 싶은'

행복의 포인트로 다가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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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사전 - 인생의 작은 숙련가를 위한
단춤 지음 / 유유히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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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 유유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으로는 모르겠어"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성과 감성의 영역이 다르기 때문일까,

이따금씩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

'도대체 나는 왜 그런 걸까?'

하며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고자 했다.


정말 내가 문제일까?

무어라 부를 수 없는 이 감정의 이름은 무엇일까?

나처럼 그런 물음표를 가진 작가 단춤이

자신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발견한 기록을 한 권의 책으로 담았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만화 에세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묵직한 울림을 주는

〈인생의 작은 숙련가를 위한 감정 사전〉이다.


하루에도 여러 가지의 감정이 나를 스친다.

어떤 순간은 불안하다가도 평안해지고

애쓰다가도 후회하기도 한다.

슬퍼하다가도 행복해지기도 하며

좋아하는 감정이 사랑한다로

사색하다가도 포기하다로 이르는 것이

사람이기에 품을 수 있는 감정이다.


매일 나를 찾아오는 감정을 골똘히 헤아리고

들여다보는 시간은 많지 않다.

이해하지 못해도 그러려니,

제멋대로인 감정을 들여다보기도 전에

뭉뚱그려 넘기고 마는 바쁜 현대인들.

그러다 보니 흘러가는 시간처럼 감정들도 어느새

바스락거리며 메말라져 버리곤 한다.


단춤은 이런 감정들의 바스락거림 앞에서

잠시 멈춰 보기로 한다.

엉켜있는 감정들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합 겹씩 풀어가며 들여다볼 용기를 낸다.


마음을 표현하는 50개의 감정에 대하여

사전이나 세상이 정의하는 의미가 아닌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나를 찾아오는 감정을 헤아려보고 이름을 붙이며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이 책은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는 연습이 담긴

작가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어서 또는 잘 몰라서

이해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했던 감정들에 대해

단춤은 그 시작을 돌아본다.

이 마음이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

그 탄생에 대해서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타인이나 세상이 정의하는 의미가 아닌

나만의 의미가 담긴 단어들로

감정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더한다.


왜 그렇게 밖에 하지 못했냐거나

세상이 정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에게

어떻게 이해하고 위로를 전해야 할지 방황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자신만이 정의한 감정 단어들의 의미를 통해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자고 말한다.


작가가 자신만의 해석을 한 감정 단어들을 바라보며

나 역시 나만의 해석을 더하게 되었다.

같은 감정에 대해서도 바라보는 시각과 마음이 다르면

다른 의미로 다가갈 수 있고,

나의 마음속 이야기를 통해서

그동안 제대로 정의하지 못했던 의미들에

비로소 이름을 붙이면서

스스로에게 '다정함'이라는 온기를 전하는 것이다.


이런 마음속 작은 행복 조각들을 찾아

모험을 떠나다 보면 어느새 내가 바라는 대로 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나의 인생에서도 숙련가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진정한 의미의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무어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 앞에서

아이들은 눈물을 흘리곤 한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면서 우리는 감정을 참고

들여다볼 새도 없이 흘려보내곤 한다.


나의 감정에 제대로 시간을 주고 마주한다면

혼란스러운 이것을 무어라 부르면서 정의할 수 있다면

조금은 덜 혼란스럽고 조금은 더 편안하며

그렇게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마음과 마주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지친 마음을 헤아리는 방법을 알려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씩 나아가는 자신을 만드는

다정한 시선의 방법, 그런 다정한 힘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


귀여운 그림과 함께 전하는 따스한 힘을 전해 받으며

나의 진심을 마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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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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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 영역이었으며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며

궁궐로서의 모습을 잃기 시작한다.

급기야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어 궁궐이 아닌

공원화가 되어 훼손이 되기 시작하는데,

왕족들만 출입하는 궁궐이 아닌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시민공원으로 바꾸고,

왕족이 머물던 공간에 동물을 들이며

그 권위를 저해하고자 한

일제의 만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 유럽식 온실이자

식물원 지구의 중심에 위한 대온실은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6.25를 겪으며 폐원한 창경원,

그리고 폭격으로 인해 일부 훼손된 대온실은

1980년대에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되는 과정에도

철거하지 않은 채 남아있다가

2017년 보수공사 끝에 다시 개방하게 된다.


이 소설은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 30대 여성 영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석모도 출신으로 중학교 시절 창덕궁 담장을 따라

형성된 원서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창경궁'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서늘해지며 그 일을 맡기를 꺼리게 된다.

그리고 창경궁과 함께 '낙원하숙'에서 지냈던

과거의 일을 회상하게 되는데,


묻어두었던 과거의 수리와 마음속에 넣어두고

꺼내보지 않았던 과거의 상처가 겹쳐져 펼쳐지며

연관성이 없었던 것 같은 조각들은

다른 듯 같은 이야기로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단청에 새겨진 섬세한 무늬처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마음을 수놓는 작가 김금희가 선택한

이번 소설은 일제강점기의 상흔이라고 할 수 있는

창경궁에 위치한 대온실,

그곳에서 발견된 미스터리한 지하공간의

비밀을 파헤쳐 가며

묻어 놓았던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마주 보고

그것을 치료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사랑으로 모든 것을 끌어안는 성장과

미완에서 벗어나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더욱 빛나는 진실을 담고 있다.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고

찾아가 만나게 된 일은 다름 아닌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작성하는 것.

공사를 진행하는 이들은 따로 있지만,

워낙 깐깐하고 업무협조가 쉽지 않은지라

빡빡한 공문 작성을 담당해 줄 이를 찾다가

영도에게 연이 닿은 것이다.

자신이 담당하게 될 일이 그녀의 인생에

상처와 얼룩을 남겨진 그곳 가까이인 것을 알았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하고

익숙하고 한때는 사랑했던,

그리고 상처를 받았던 그곳을 향한다.


창경원을 구성하는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작품의 가장 핵심이 될 대온실까지

실제 있는 장소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이 소설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닌

마치 실제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내주었다.

조용한 섬마을에 살던 시골 소녀가

서울로 유학을 와서 느꼈던 어색함이나 외로움은

넓고 큰 궁궐과 그 궁궐에 이어진 담벼락을 따라

형성된 새로운 세상 앞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외롭거나 답답할 때, 또 자신의 현실에 타협하며

내밀고 싶지 않은 손을 내밀어야 했을 때도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곳이

바로 창경원이기도 하다.

그녀의 상처와 아픔을 바라보던 그곳은

현재의 그녀가 마주하게 된 보수공사 앞에서

이번에는 반대로 그 자신이 품고 있는

숨겨진 과거의 비밀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 동네 이름만 들어도, 창경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잊고 싶은 과거가 떠올라 외면했던 영도는

이제 대온실의 보수공사 앞에서도

또 함께 연결되어 떠오르는

자신의 과거와 상처 앞에서도 마주 서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믿지 않을 때도

따스한 손을 내밀어 주던 낙원하숙의 할머니,

그리고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득히 혼재되어 독자들의 마음속을 떠다닌다.


이윽고 밝혀지는 가슴 아픈 진실과

자신의 과거를 이겨내고 사랑으로 나아가는

영도의 모습은 더 이상 눈물을 삼켜야 했던

어린 소녀가 아닌 한 명의 어른으로서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성장과 자유 앞에서

과거와 얽힌 새롭게 태어난 창경궁 대온실을

있는 그대로 만나며 홀가분한 모습을 보이는

영도를 통해 '결국 살아내었다'는 생존감과

완전히 묻히는 진실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간절함은 진실이 가진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지난한 역사의 흐름 속에

우리가 그토록 기억해야 할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음을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왕실에 한정되었던 궁궐이라는 공간을

국민들을 위한다는 포장으로 무너뜨렸던

일제의 만행, 그리고 그 속에서 주어진 역할에 따라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역사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되돌아가 자리를 되찾은 창경궁의 한 가운데,

이국적인 대온실이 전하는 것은

그날의 상처와 아픔을 잊지 말자는

어떤 다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대중에 공개되었다가 다시 복원 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어우러진 궁궐을 보며

시간은 이것을 또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본다.

대온실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이렇게 독자들의 마음에서부터

오랜 역사의 시간으로 쭉 이어지게 된다.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어받은 것이기를, 또 우리가 전해 받은 그것을

잘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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