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 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필사적 SF 읽기
강양구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7월
평점 :

"이 글은 북트리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근시대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때에는
매해 과학의 날을 맞이해서
고무동력기 날리기, 물로켓 만들기, 과학 상자 조립하기
같은 선택활동을 비롯해
미래 일기 쓰기, 미래 그림 그리기 등을 하며
각자 머릿속에 그려온 '미래'라는 시간을
담아내고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때의 '미래'나 '과학'에 해당하는
현실이 된 지금은 주어진 현실을 사는 것이 바빠서인지
미래나 과학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잊고 지내는 '가까운 미래' 혹은 '근시대의 과학'을
떠올리면 오히려 가장 가깝게 접하는 것이
SF 장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SF 장르문학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젊은 작가들이 그 중심을 잡고 이끌며
'한국 SF 문학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이번에 이런 SF 작품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고 전하는 책을 만났다.
어떤 의미의 독서 에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미래예측 도서라고도 할 수 있는
과학 전문 기자이자 지식 큐레이터인
강양구 작가가 쓴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이다.
작가는 다양한 SF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현상들을 통해 오늘날의 사회를 진단한다.
우리가 마주할 과학기술이 데려다줄 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낸 사고실험으로써 SF 소설을 바라보며
그 속에 담긴 질문들을 파헤치고,
오랫동안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해 온
자신만의 시각으로 답해보려는 시도를 한다.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과학기술과 역사, 정치,
경제, 문화를 넘나드는 읽기를 보여주는 시도가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책에서는 다양한 SF 작품들을 소개하는데,
이 작품들을 읽지 못했다 하더라도
내용을 이해하거나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을
공감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다만 작가는 독자들과 마찬가지로 한 명의 SF 독자로서
이 책을 통해 한 명이라도 또 다른 SF의 팬이 되기를,
또 이런 SF 작품을 통해서 '망가진 세계'에서
설사 무엇 하나 바꾸지 못하더라도
재미있게 꿈꾸고 싸우기를
그래서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기를 바라는 희망을 품는다.
과학이라는 장르를 생각하면
무엇보다 차가우면서도 기술적이고
인간미가 없는 기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굳이 나누자면 문과형 인간인 나에게
과학이란 '피도 눈물도 없는 그저 기계 같은 학문'의
이미지가 강했고, 그런 과학을 다루는 이야기에서
어떤 세상을 구한다거나 인간을 생각한다는 것보다는
'기술발전의 의의'만을 생각한다는
편견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지극히 문학적인 그리고 그 속에 무한한 세계가
펼쳐지는 SF 문학들을 만나고 나니
과학, SF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오해가 하나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SF 장르에 대해서도
이번에 만난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을 읽으며
보다 쉽고 가까운 친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주어진 현실을 보다 잘 묘사하는 건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의 문학이라 생각했다.
초자연적인, 기술적인 과학을 담은 SF 문학이
과연 담을 수 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 한계를 정했던 것은 스스로의 편견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인종 차별, 세대 간의 분쟁, 감시와 통제,
기후 재앙이나 팬데믹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은 수많은 현신들은 SF 소설 속에서
다양한 파편들을 품은 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당신들의 세계가 여기 있다'라고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냐고' 말이다.
소설들이 던지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그 생생한 미래를 미리 겪어보고 예측하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고 현재를 돌아보게 된다.
작가는 그런 SF의 매력을, 그들이 전하는 질문을
너무나 친절하게 독자인 우리에게
자신만의 언어로 해석해 준다.
작가의 바람만큼이나 소개된 18편의 소설 중
읽고 싶은 작품들을 여럿 꼽아보았다.
주로 한국 젊은 작가들의 SF 소설만을 읽어보았던
나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올 것 같아서
너무나 기대가 된다.
무너진 세상을, 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방법을
SF가 조용히 일러준다.
그리고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이 책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