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온실 수리 보고서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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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창덕궁과 경계 없이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궐 영역이었으며

주로 왕실 가족들의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었던 이곳은

순종이 황위에 오른 후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며

궁궐로서의 모습을 잃기 시작한다.

급기야 일제에 의해 궁의 이름을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되어 궁궐이 아닌

공원화가 되어 훼손이 되기 시작하는데,

왕족들만 출입하는 궁궐이 아닌

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시민공원으로 바꾸고,

왕족이 머물던 공간에 동물을 들이며

그 권위를 저해하고자 한

일제의 만행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우리나라 최초 유럽식 온실이자

식물원 지구의 중심에 위한 대온실은

당시 동양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기도 했는데

일제 강점기 이후 6.25를 겪으며 폐원한 창경원,

그리고 폭격으로 인해 일부 훼손된 대온실은

1980년대에 창경원을 창경궁으로 복원되는 과정에도

철거하지 않은 채 남아있다가

2017년 보수공사 끝에 다시 개방하게 된다.


이 소설은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기록하는 일을

담당하게 된 30대 여성 영두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석모도 출신으로 중학교 시절 창덕궁 담장을 따라

형성된 원서동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창경궁'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서늘해지며 그 일을 맡기를 꺼리게 된다.

그리고 창경궁과 함께 '낙원하숙'에서 지냈던

과거의 일을 회상하게 되는데,


묻어두었던 과거의 수리와 마음속에 넣어두고

꺼내보지 않았던 과거의 상처가 겹쳐져 펼쳐지며

연관성이 없었던 것 같은 조각들은

다른 듯 같은 이야기로 소설 속에서 펼쳐진다.


단청에 새겨진 섬세한 무늬처럼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마음을 수놓는 작가 김금희가 선택한

이번 소설은 일제강점기의 상흔이라고 할 수 있는

창경궁에 위치한 대온실,

그곳에서 발견된 미스터리한 지하공간의

비밀을 파헤쳐 가며

묻어 놓았던 자신의 과거와 상처를 마주 보고

그것을 치료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비로소 사랑으로 모든 것을 끌어안는 성장과

미완에서 벗어나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더욱 빛나는 진실을 담고 있다.


친구를 통해 소개를 받고

찾아가 만나게 된 일은 다름 아닌

창경궁 대온실 보수공사의 백서를 작성하는 것.

공사를 진행하는 이들은 따로 있지만,

워낙 깐깐하고 업무협조가 쉽지 않은지라

빡빡한 공문 작성을 담당해 줄 이를 찾다가

영도에게 연이 닿은 것이다.

자신이 담당하게 될 일이 그녀의 인생에

상처와 얼룩을 남겨진 그곳 가까이인 것을 알았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하고

익숙하고 한때는 사랑했던,

그리고 상처를 받았던 그곳을 향한다.


창경원을 구성하는 식물원과 동물원,

그리고 작품의 가장 핵심이 될 대온실까지

실제 있는 장소에 대한 섬세한 묘사는

이 소설이 만들어낸 허구가 아닌

마치 실제의 이야기라고 느끼게 하는 효과를 내주었다.

조용한 섬마을에 살던 시골 소녀가

서울로 유학을 와서 느꼈던 어색함이나 외로움은

넓고 큰 궁궐과 그 궁궐에 이어진 담벼락을 따라

형성된 새로운 세상 앞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외롭거나 답답할 때, 또 자신의 현실에 타협하며

내밀고 싶지 않은 손을 내밀어야 했을 때도

그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던 곳이

바로 창경원이기도 하다.

그녀의 상처와 아픔을 바라보던 그곳은

현재의 그녀가 마주하게 된 보수공사 앞에서

이번에는 반대로 그 자신이 품고 있는

숨겨진 과거의 비밀을 꺼내기 시작한다.


그 동네 이름만 들어도, 창경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잊고 싶은 과거가 떠올라 외면했던 영도는

이제 대온실의 보수공사 앞에서도

또 함께 연결되어 떠오르는

자신의 과거와 상처 앞에서도 마주 서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을 믿지 않을 때도

따스한 손을 내밀어 주던 낙원하숙의 할머니,

그리고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지켜내려 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가득히 혼재되어 독자들의 마음속을 떠다닌다.


이윽고 밝혀지는 가슴 아픈 진실과

자신의 과거를 이겨내고 사랑으로 나아가는

영도의 모습은 더 이상 눈물을 삼켜야 했던

어린 소녀가 아닌 한 명의 어른으로서

성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성장과 자유 앞에서

과거와 얽힌 새롭게 태어난 창경궁 대온실을

있는 그대로 만나며 홀가분한 모습을 보이는

영도를 통해 '결국 살아내었다'는 생존감과

완전히 묻히는 진실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어떤 간절함은 진실이 가진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

지난한 역사의 흐름 속에

우리가 그토록 기억해야 할 누군가의 이야기가 있음을

대온실 수리 보고서를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왕실에 한정되었던 궁궐이라는 공간을

국민들을 위한다는 포장으로 무너뜨렸던

일제의 만행, 그리고 그 속에서 주어진 역할에 따라

그것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의 이야기는

소설이 아닌 역사 속에서 여전히 살아있다.

되돌아가 자리를 되찾은 창경궁의 한 가운데,

이국적인 대온실이 전하는 것은

그날의 상처와 아픔을 잊지 말자는

어떤 다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대중에 공개되었다가 다시 복원 후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어우러진 궁궐을 보며

시간은 이것을 또 어떻게 바라볼지 생각해 본다.

대온실이라는 공간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이렇게 독자들의 마음에서부터

오랜 역사의 시간으로 쭉 이어지게 된다.

작가가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을 제대로

이어받은 것이기를, 또 우리가 전해 받은 그것을

잘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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