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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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2년 전이 되었다.

제법 긴 시간을 치매를 앓으며 요양센터에서

보내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없이 치러지는 장례절차 중

엄마와 삼촌, 이모를 비롯해

남매들의 가장 큰 화두는

아무래도 할머니를 '어떻게 모실지'였던 것 같다.


원래는 집안의 문중들이 모두 모인

가족묘가 선산에 있었는데

자식들의 나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아이들(후손) 대까지 책임을 물려줄 수 없다'라는

의견 아래 사촌 육촌들이 모두 모여

오래된 조상들을 파묘하여

선산과 가족묘를 정리한 뒤로는

'다 같이 모셔야 할 장소'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남매들의 뜻을 모았던 것이었다.


그래도 한 번씩 가까이에 두고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한 번에 뿌리기엔 사라지는 게 싫어서

엄마와 삼촌, 이모가 선택한 방법은

집에서도 가까운 시에서 운영하는

연화장에 있는 '자연장' 이었다.

일정 기간 동안에 분골한 후 땅에 묻고

그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서 그 자리는 다시

비워지게 되는 방식이었는데


곁에 두고 싶어 했던 모두의 의견과

한 번씩 찾아가서 인사하고 기념할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자연장 장소에 모셔진 할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빈틈없이 빼곡하게 늘어나는

할머니의 동료(?) 분들을 보고 있자니

이 작은 땅덩이에서 앞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질 텐데

매장 형태의 장례풍습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제 이혼합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결혼상대는 추첨으로》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회문제를 다뤄온

가키야 미우는 이번 신작

《파묘 대소동》을 통해 저출산과 노령화,

젠더 이슈까지를 아우르는 묫자리 이야기를 다루었다.


소설은 마쓰오 가문과

나카바야시 가문의 묫자리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문의 여러 인물들의 시선에서 펼쳐지고 있다.

작품의 시작은 사쓰키의 시어머니인

요시코가 투병 끝에 사망하기 전

'자신은 가문의 묘가 아닌 수목장으로 해달라'라고

유언을 남기면서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의견 차에서부터 시작된다.


남편과의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고, 큰 문제도 없었는데

죽기 직전 남긴 유언이 '마쓰오 가문의 묘에는

죽어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니 말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준비하던 남매들은

서로 분분한 의견 속에서 어머니가 남긴

유언의 의미를 각기 입장에서 해석하기 시작한다.


사쓰키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또 한 사람의 여자의 입장에서

시어머니가 남긴 유언이 공감이 가기도 하는데,

때마침 결혼을 앞둔 딸의 '결혼 후 성 문제'로

인해서도 고민이 더해지며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사람의 유언이 아닌

세대와 성별에 따른 의견 차이로 그 문제를 확대해간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으로 바뀐다.

하물며 결혼한 여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여권에 본인의 성 옆에 wife of ***라는 식으로

남편의 성을 함께 표기되고 있고 말이다.

아이를 낳고 나면 선택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당연하듯 아빠의 성을 따르기도 하며,

엄마의 성을 사용하는 아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남성중심주의의 제도와 인식 아래에서

소설 속의 일본 사회는 묫자리 문제까지 대두하게 된다.

가문의 묘, 가족묘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관리 주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까지로 다양한 문제들이 펼쳐지며

저출생 고령화와 젠더 문제까지

다채롭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깨어있는 엄마의 모습인 사쓰키도

둘째 딸의 남자친구인 사토루 앞에서는

경우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가문의 분위기에서

노후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을 채

절에 구좌당 백만 엔씩도 주저 없이 내어놓으려는

사토루의 아버지도 있다.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없다거나,

그것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세대의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렇다 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은 소극적인 반항 같아 보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인 줄 알았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로 인해 멀어지는 모습은 꼭 젠더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애초에 맞지 않았던 것이

젠더적인 문제를 계기로 폭발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오래 지속되온 '그래왔었던' 불편함에 대해서

다시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결혼 후 바꾸는 성에 대한 문제'나

'가족묘에 들어갈지 나 관리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이런 문제들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인

저출생, 노령화에 대해서 찾아가게 하고 있다.


사쓰키의 딸인 마키바와 시호는

가문의 가장 어린 손녀대 인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세대와 젠더의 문제들을

자신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돌파해 나간다.

그들의 세대가 바꾸어갈 모습은

앞으로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기대하게 했다.


현재는 대두되지 않는 문제들도

지금의 젊은 세대가 나이가 들어 노령세대가 되면

새로이 다른 문제들로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의 '상식'이 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상식'일 수 없는 것처럼

그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할이나 의미가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이 포인트를 말하고자 한 것 같다.

마쓰오 가문과 나카바야시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시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취해야 할 자세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

묫자리에 대한 것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과

그 '마음의 편안함'을 위한 산 자들의 욕심인 것 같다.

좁아져가는 땅덩이, 점차 늘어나는 망자들의 공간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엔딩노트를 나도 지금부터 꾸준히

업데이트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리얼리티 한 묘사와 설정으로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가키야미우의 작품!

문화가 다르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고 가족들끼리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면 좋을 것 같은

그런 작품이었다.


"이 글은 문예춘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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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지 않고 이기는 말하기 기술
김은성 지음 / 원앤원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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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지금의 시대,

우리는 누군가와 제대로 대화를 하고 있을까?

얼굴을 마주하고 주고받는 대화뿐 아니라

인터넷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금,

어떤 주제에 대한 토론이나 논쟁을 떠나서도

일상 대화에서도 깊은 대화가 아닌

자랑이나 감정 해소,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함 등

일방적인 대화가 너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제대로 된 의미의 대화를 해본 적이 얼마나 되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려면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하는,

회사나 단체에서 주변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을 때

유난히 대화 후에도 지치고 피로감을 느낄 때가 많다.

뭔가 대화를 주고받기는 했는데

의미 없이 자신의 말만 일방통행 식으로 하고

서로 주고받는 게 없다는 느낌처럼 말이다.

대화를 하고 있지만 대화를 잃어가는 느낌이 드는 요즘,

더더욱이 토론의 법칙이나 말하기 기술에 대한

니즈가 생기기 마련이다.


대화라는 것이 이기고 지는 것의 문제는 아니지만

어떤 의견의 합치가 필요할 때는

이러한 토론에 있어서 이기는 기술이 동반되어야 한다.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말하기 기술을

아루투어 쇼펜하우어의 이론으로부터 배워보았다.


현 KBS 앵커 겸 아나운서이자

베테랑 강사로 활약하고 있는 김은성 앵커가 쓴

《적을 만들지 않고 이기는 말하기 기술》이다.


최근의 토론을 보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공론장의 역할이 아닌 사술이 난무하고 있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38가지

토론 기술의 의미를 지금의 관점으로 해석, 설명하고

나아가 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커뮤니케이션 박사로서의 시각을 담고 있다.


의견을 주고받는데 있어서 나를 적절히 방어하며

상대와의 관계도 해치지 않는

진정한 의미의 '이기는' 방법을 제시하고,

지혜롭게 사술을 활용하는 방법까지 담음으로써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나를 지키는 기술을 전하고 있다.


토론에 앞서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고 나선다 해도,

상대방과의 대화 속에서 화가 나는 상황이나

인신모독 혹은 논점의 반박 등에 마주하거나

당황하여 우물쭈물하거나 침묵을 하게 되었을 때,

이 포인트로 상대방에서 약점을 잡혀

그의 페이스에 말리게 되어

제대로 의견을 표현하지 못할 수 있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기술을 통해

'정신으로 하는 검술'이라 불리는 토론을 위해

강하게 공격하는 말하기 기술,

더 강하게 반격하는 말하기 기술,

결론을 이끌어내는 말하기 기술을 비롯해

위기에서 탈출하는 말하기 기술 등

다양한 말하기 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다양한 말하기 기술의 스킬에는

상대의 말을 역 이용하는 다양한 방법뿐 아니라

토론을 관찰하는 청중에게 보이는 모습까지도

염두에 둔 자세한 스킬이 묘사되어서

실제로 '말하기 기술'이 필요하고 중요한 이들이나

꼭 업무적으로 말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마주할 수 있는 토론을 상황에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알려주어서 더욱 좋았는데,

무엇보다도 4장 위기에서 탈출하는 말하기 기술은

누구나 토론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상황을

기회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 같아서 더욱 와닿았다.


토론을 하다 보면 어떤 지식적이거나

기술적인 부분에 관계없이 상대의 사술에

어이없이 당하는 경우도 있는데,

상대의 사술에 당하지 않기 위한

기본 능력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어서 좋았다.


저자가 말하는 '이기는 기술'이라는 것은

나의 의견만을 결과로 도출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적절히 방어하고 상대와의 관계도

해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나를 지키기 위한 말하기 기술의 핵심을 비롯해

마지막으로 갈등의 논쟁을 넘어

건강한 토론에 이르기까지

말하기 기술에 대한 기본기부터 활용까지

제대로 다룬 토론 책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쇼펜하우어 열풍이 한참 불며,

그의 이론을 담은 다양한 책들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이후에도 변치 않는 그의 이론은

시대와 시간에 관계없이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있는데,

대화의 기본마저 잊히고 있는 요즘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토론의 기술은

건강한 대화, 진정한 의미의 대화가 무엇인지

잊고 있는 우리들에게 '대화의 기본'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기본서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도출할 수 있는

그런 건강한 대화가 너무 그리웠다.

사술이 넘쳐나고 비방을 하며

주제에서 멀어지는 대화가 아닌

건강한 토론이 가져올 또 다른 변화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기에 딱 맞는 그런 책이었다.


사람은 서로 대화하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산다.

우리가 입과 귀를 가지고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건

이런 토론 속에서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라는 뜻이 아닐까?

'말하기'에만 치중된 것이 아니라

'제대로 듣고 말하기'가 기본이 되는 세상.

그 건강한 세상을 다시 한번 꿈꿔본다.


"이 글은 원앤원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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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래빗홀 YA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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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퍼진 좀비 바이러스로 패닉에 빠진 도시.

그런데 이 좀비 바이러스가 65세 이상인

고령의 노인에게서 나타난다고 하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도시 봉쇄가 이루어진다.


자신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준

할머니를 두고 떠날 수 없어

할머니와 함께 남기로 스스로 선택한 소녀 강하다가

고립된 도시에서 일상을 이어가며

할머니와 자신, 그리고 남겨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달리며 모두를 위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작품

김청귤 작가의 《달리는 강하다》를 만났다.


《해저도시 타코야키》, 《미드나잇 레드카펫》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통해 두터운 팬층을 쌓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보해온 김청귤 작가가

처음으로 낸 청소년 소설로

더욱 주목을 받은 이번 작품은

노인에게만 나타나는 좀비 바이러스로

봉쇄가 된 태전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약자에 대한 차별을 끄집어냈고,

까칠했던 소녀 강하다가 자신과 할머니를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한 용기를 내고 움직이는 실천을 통해

재난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여정을 보여줌으로써

세대를 넘어서는 존중과 연대, 사랑을

책을 읽는 청소년과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전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하다의 곁을 지켜주고 사랑을 주었던 것은

외할머니 '조끝순'여사 였다.

할머니의 보살핌과 식당 일을 하며 쌓아온

할머니 손맛이 담긴 음식들은

하다가 힘든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는데,

부모님의 이혼 이후에 혼란스러움도 잠시

다시 할머니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하다는 힘을 낸다.

낯선 학교, 친해지기 힘든 아이들 사이에서

한 학기만 어떻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고3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동네로 기꺼이 온 하다는

매일을 이겨내듯 '달리기'를 하며

몸의 체력도 마음의 체력도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이상한 사건이 생긴다.

학교에서 일하는 경비원 할아버지가

학생들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고,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듯 아이들을 공격하는

경비원을 피해 아이들은 패닉이 되어 도망을 친다.


위기의 상황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을 챙기며

서로를 밀치며 도망치기 바빴고,

학교에서 머리도 좋고 잘생겨서 인기가 많았던 은우는

다리가 불편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공격받을 위기에 처하는데

그런 은우를 지켜보던 하다는 그를 업고 도망치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이윽고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머무는 태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으며, 이 바이러스는

65세 이상의 노인에게서만 나타난다는 것.

도시는 봉쇄하기로 했고, 65세 미만은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장례식장 참석을 위해 이미 태전을 벗어나있던

엄마를 제외하고 할머니와 단둘이 있던 하다는

이 위험한 도시에 할머니만 남겨둘 수 없다는 생각에,

할머니와 함께 태전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폐쇄된 도시에서 할머니와 함께

이 와중에도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해먹으며

앞으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옮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격리된 65세 이상의 노인들,

낯선 전학생이자 유약한 여학생인 하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진 은우,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보호자도 없는

산모인 지혜와 그녀의 아기 사랑,

바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홀로 집에 남게 된 여덟 살 지민까지

봉쇄된 도시에서 남게 된 이들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약자'라는 이름의 사람들이었다.


물과 전기, 가스는 보급되고 있지만

도시를 오가는 길은 모두 통제되고

한정된 물자와 장소 안에서

돌아다니는 좀비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치료제나 원인은 무엇인지

대책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 그대로 도시에 그대로 남겨지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할머니와 나만을 생각하고 걱정하던 하다는

위층에 사는 은우도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남아있게 됐다는 사실에 함께 보내게 되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은우의 사연도 알게 된다.

다리가 불편해 물자를 구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생각한 은우는

할머니와 함께 요리를 하고 정리를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달리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하다는

모두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가

좀비 사이를 뚫고 필요한 물자를 구하러 가기도 한다.


그들만 있는 줄 알았던 아파트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남아있었고,

그중에서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산모와 아기, 집에 혼자 남은 어린이 등

하다와 할머니, 은우에게는 더 많은 식구들이 늘어난다.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던 '약자'라는 이름의 그들은

서로에게 기꺼이 내어주고 품어주며

새로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것이다.


언제까지 봉쇄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거리에서 마주한 좀비가 된 사람들이

한때는 평범한 동네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에

하다는 어쩐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좀비가 되지 않았어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태전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극히 이기적인 현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가 만약 하다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봉쇄된 도시 안에서 가족 아닌 타인을 위해

이렇게 기꺼이 나설 수 있었을까?

좀비라고 하기엔 공격성도 별로 없고

평소와 비슷한 모습을 한 노인들을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하고 파괴할 수 있는지,

그 '좀비 바이러스'라는 차별이

이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다른 모습'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이 얼마나 가혹한 폭력인지,

진짜 나쁘고 폭력적인 모습은

그들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에게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새로운 구성원으로 맺어진 가족으로

봉쇄된 태전에서의 시간을 이어가는 그들.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특히 부모님의 이혼 앞에서 까칠해진 마음의 하다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하며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두고 일을 하러 나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


꺼리기만 했던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좀비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가득한 사랑과 보호 앞에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는 모습은 뭉클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던 세대가 하나가 되는 것 같아서

조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작아지는 요즘의

아이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 같았다.


위기 상황 앞에서 약자들끼리의 연대는 더욱 강해지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파렴치한 민낯이 드러나며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던

흥미진진한 좀비 소설이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좀비 바이러스, 좀비 세계관을

담았던 김청귤작가만의 진한 색채와 함께

조부모님에 대한 마음까지도 담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소설이었다.


청소년 문학이라고는 하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다.


위기의 태전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서로를 구하고자 하는 약자들의 연대는

그들을 어떻게든 지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손을 내밀 때

그 온기는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은 레뷰를 통해 래빗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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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낙원
김상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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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기반으로 한 이성과 달리

기억이라는 것은 감성의 영역과 깊이 연결된 느낌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기억도 내가 느낀 감정에 따라

때로는 그 기억이 '사실'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왜곡되거나 잘못된 형태로 남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만약 기억을 편집해 주는 기술이 있다면,

그것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고 행복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을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그 기억의 편집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여기 있다.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본질로 연구하는

작가가 쓴 《기억의 낙원》이다.


가상현실, 메타버스, AI 등

전에는 접하지 못했던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이 새로운 기술들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이 실제로 착각할 만큼 정교해지고 있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서비스나 사업이 등장하는 등

앞으로의 전망은 점점 커질 듯하다.

아직까지는 커뮤니티를 즐기거나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등 순기능적인 부분이

도드라지고 있지만,

이것을 활용한 기술이 '사람'에게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직접영향을 주게 되었을 때

그 파장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대학교 졸업 후 변변찮은 스펙 앞에

제대로 된 취업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소개로 다니게 된 작은 회사의 영업부 직원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하람.

언제나 하람의 고민을 들어주던 장도영 교수가

오랜만의 만남을 청하고,

그렇게 마주한 장 교수는 하람에게 함께 일해보자며

'더 컴퍼니'라는 회사의 명함을 내민다.


대학에 다닐 때부터 뇌과학,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하람은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했었던'

그 순수한 마음 하나는 분명하게 있었다.


더 컴퍼니라는 회사가 무엇을 팔고

어디 있는 회사인지도 알지 못한 채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것보다는 이직했다고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하람은 더 컴퍼니의 조 실장을 만난다.


정해진 사무실도 없고,

대학에 다니던 시절 자주 들렀던

교내의 카페 코스모스에서

조 실장을 만난 하람은,

그 자리에서 고객과의 미팅을 바로 진행하는

모습에 당황을 하게 된다.

고객을 함께 만나고

자신들이 어떤 상품을 파는지 알게 될 거라며

그런 다음에 일을 할지 말지 결정하면 된다는 말에

지켜본 상품에 대한 설명은

당황스러우면서도 믿을 수가 없는데...


바로 더 컴퍼니에서 판매하고 있는 것은

고객의 요구에 따라 기억을 편집하는

인공지능의 기술로 고객 혹은 고객이 요청하는 인물에게

원하는 형태의 기억을 주입하는 것이었다.


시한부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가족에게

현실과 달리 번듯하고 성공한 모습으로

행복한 기억만을 심어주려고 한 의뢰인,

식물인간 상태가 된 아들에게

만나지 못한 엄마와의 만남을 기억으로

심어주고자 한 의뢰인,

복수를 위해 복수 상대에게

다른 이의 기억을 주입하고자 한 의뢰인,

특수한 언어능력만을 빼내어 이식하려고 한 의뢰인 등

다양한 사연과 다양한 상품이

고객들에게 맞추어져 제공되고 있었고,

일을 하면서 이를 지켜보고 담당하는 하람은

'편집되고 조작된 기억이 진짜인가?'라는 생각과

'이렇게 조작된 기억으로 얻은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의문 앞에서

스스로에게 반문하고 혼란스러워한다.


정체가 드러날수록 더욱 혼란스러워지는

더 컴퍼니와 회사를 굴러가게 하는 시스템 '발할라'까지

하람은 학부생 시절 장 교수와 함께 배우고

나누었던 수업 시간의 내용과

점점 의심스러워하는 자신의 속마음 속에서

끝없는 고뇌를 한다.


하람의 전 여자친구이자,

패기 넘치는 신입기자인 소이 역시

비슷한 시기에 '더 컴퍼니'에 대한 취재를 시작하는데,

과연 장 교수와 더 컴퍼니, 발할라가 그리는

이 시스템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숨 가쁘게 따라갔던 서스펜스 소설이었다.


인생이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좋고 행복한 기억만으로 살 수는 없다.

감성적인 부분은 워낙 상대적인 것이라서

넘치는 행복 속에서는 그 행복의 소중함을

미처 느낄 수 없고

어쩌면 고통이나 불행이라는 것이 있기에

행복이나 안도라는 감정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편집된 기억이 가져오는 행복이 전부가 아님을,

또 겉으로 보이는 것에 가려진 진실이 있음을

등장하는 의뢰인들의 사연을 통해 다시금 느낀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하람이 있기에 더 컴퍼니도 발할라도

제 자리를 결국엔 찾아가지 않을까?


실제 관련된 연구를 하는 작가의 촘촘한 구성과

현실감 넘치는 묘사가 작품을 더욱 맛깔나게 해주었다.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니

이런 제안과 상품을 쉽게 거절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벗어나고 싶은 현실의 욕망을 제대로 담은 조작,

어쩌면 누군가는 그것을 행복이라 여길 것이고

누군가는 힘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쁨의 망각으로 여길 수도 있겠다.

고통을 감내한 사람만이 얻는 행복이 진짜 행복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에 관계없이

마음이 느끼는 행복만 있으면 되는지

연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는 시간이었다.


조작된 기억이 가져올 파장은

잔잔한 호수를 뒤흔들 만큼 충분히 강력했다.

한 사람의 사연을 통해 들여다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일들도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점점 늘어나다 보면

주체할 수 없는 커다란 덩치의 파장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실제로 먼 훗날 생길 수 있는 일 같아서

마냥 픽션으로만 즐길 수는 없던

씁쓸한 시간이기도 했다.


"이 글은 웅진지식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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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무슨 색인가요? - 전지적 컬러테라피 시점
김규리.서보영 지음 / 이콘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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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색을 만난다.

다채로운 색을 만나면서,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색이 있기도 하고

그 색은 때로는 나를 드러내기도,

혹은 나에게 위로와 힘, 기쁨을 주는 색이 되기도 한다.

그 색상의 옷이나 아이템을 소지하면

유난히 운이 따르는 것 같은 '행운의 색'이 있기도 하고

나를 좀 더 돋보이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나에게 맞는 '퍼스널 컬러'를 찾는 데에도

비용과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기도 하니 말이다.


어떤 사람을 드러내는 색에는 무엇이 있을까?

좁은 범위로 생각하면

연예인들의 팬클럽 공식 색상이 있고,

파워레인저에서 이름을 대신하는

등장인물들의 고유 컬러가 있기도 하다.

각 컬러는 고유한 성격을 드러내기도 하고

아이들은 그걸 보며

'나는 레드 할래, 나는 핑크 할래' 하면서

그 컬러 속에 자신을 투여하기도 한다.


이처럼 색상이 가지는 어떤 의미를 넘어서

거기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색 이야기로 담아낸

재미있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한국컬러테라피협회의 회장과 이사로 활동하는

저자들이 써낸 《당신의 사랑은 무슨 색인가요?》는

레드, 핑크, 오렌지, 옐로우, 그린,

블루, 로얄블루, 바이올렛, 마젠타 등

9가지 색으로 나뉘어

각 감정의 특징을 나눈 사례들과

그들이 처한 문제점을 진단 및 처방을 전함으로써

각각의 색상의 사람들이 나타내는

성격적 특징이나 강점, 약점을 소개하고

내가 만나는 사람의 특징을 파악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데 더욱 도움이 될 수 있고

내가 속한 컬러를 통해 나 자신의 약점을

고침으로써 관계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성격을 나타내는 MBTI나

별자리 특징처럼

색상으로 분류한 타입이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고

각 컬러별 사례로 제시되는 부분은

어느 정도 그 컬러에 대한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극단적인 케이스 일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보편적인 범위 내에서

이런 성격을 가진 사람은 이런 색상에 속하고

이런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 해답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겠다.


가볍게 읽으며, 미처 알지 못했던

컬러테라피를 접하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고,

읽으면서 나는 어떤 타입의 컬러에 속하는지

또 내가 만났던 관계는 어떤 컬러에 있어서

무엇이 그 관계의 문제였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겠다.






책의 부록으로는 설문지를 통해서

나의 사랑이 어떤 컬러에 속하는지

테스트해 볼 수도 있었는데

성격적인 묘사를 살펴보았을 때는

오렌지 타입이라 생각했었는데

설문지를 체크하다 보니

그린 타입과 블루 타입의 성향이 강하다는 결과에

스스로도 조금 의외의 답을 받을 수 있었다.

가볍게 읽으면서 관계에 대한

상처를 얻은 마음에 치유를 얻고

또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싶다면 추천하는 책이다.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옛말이 있는데

깊은 그 한 길 사람 속을 조금이나마

알아갈 수 있는 기회로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이콘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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