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대소동 - 묫자리 사수 궐기 대회
가키야 미우 지음, 김양희 옮김 / 문예춘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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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2년 전이 되었다.

제법 긴 시간을 치매를 앓으며 요양센터에서

보내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정신없이 치러지는 장례절차 중

엄마와 삼촌, 이모를 비롯해

남매들의 가장 큰 화두는

아무래도 할머니를 '어떻게 모실지'였던 것 같다.


원래는 집안의 문중들이 모두 모인

가족묘가 선산에 있었는데

자식들의 나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아이들(후손) 대까지 책임을 물려줄 수 없다'라는

의견 아래 사촌 육촌들이 모두 모여

오래된 조상들을 파묘하여

선산과 가족묘를 정리한 뒤로는

'다 같이 모셔야 할 장소'가 정해진 것이 아니기에

남매들의 뜻을 모았던 것이었다.


그래도 한 번씩 가까이에 두고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한 번에 뿌리기엔 사라지는 게 싫어서

엄마와 삼촌, 이모가 선택한 방법은

집에서도 가까운 시에서 운영하는

연화장에 있는 '자연장' 이었다.

일정 기간 동안에 분골한 후 땅에 묻고

그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완전히

자연으로 돌아가서 그 자리는 다시

비워지게 되는 방식이었는데


곁에 두고 싶어 했던 모두의 의견과

한 번씩 찾아가서 인사하고 기념할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자연장 장소에 모셔진 할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빈틈없이 빼곡하게 늘어나는

할머니의 동료(?) 분들을 보고 있자니

이 작은 땅덩이에서 앞으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은 점점 많아질 텐데

매장 형태의 장례풍습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이제 이혼합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

《결혼상대는 추첨으로》 등

다양한 작품을 통해 사회문제를 다뤄온

가키야 미우는 이번 신작

《파묘 대소동》을 통해 저출산과 노령화,

젠더 이슈까지를 아우르는 묫자리 이야기를 다루었다.


소설은 마쓰오 가문과

나카바야시 가문의 묫자리와 관련된 이야기로

가문의 여러 인물들의 시선에서 펼쳐지고 있다.

작품의 시작은 사쓰키의 시어머니인

요시코가 투병 끝에 사망하기 전

'자신은 가문의 묘가 아닌 수목장으로 해달라'라고

유언을 남기면서 가족들 사이에 벌어지는

의견 차에서부터 시작된다.


남편과의 사이가 나쁘지도 않았고, 큰 문제도 없었는데

죽기 직전 남긴 유언이 '마쓰오 가문의 묘에는

죽어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니 말이다.

어머니의 장례를 준비하던 남매들은

서로 분분한 의견 속에서 어머니가 남긴

유언의 의미를 각기 입장에서 해석하기 시작한다.


사쓰키는 며느리의 입장에서

또 한 사람의 여자의 입장에서

시어머니가 남긴 유언이 공감이 가기도 하는데,

때마침 결혼을 앞둔 딸의 '결혼 후 성 문제'로

인해서도 고민이 더해지며 이 이야기는

단순히 한 사람의 유언이 아닌

세대와 성별에 따른 의견 차이로 그 문제를 확대해간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결혼을 하면 남편의 성으로 바뀐다.

하물며 결혼한 여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성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여권에 본인의 성 옆에 wife of ***라는 식으로

남편의 성을 함께 표기되고 있고 말이다.

아이를 낳고 나면 선택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이 당연하듯 아빠의 성을 따르기도 하며,

엄마의 성을 사용하는 아이를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가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남성중심주의의 제도와 인식 아래에서

소설 속의 일본 사회는 묫자리 문제까지 대두하게 된다.

가문의 묘, 가족묘에 들어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는 관리 주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까지로 다양한 문제들이 펼쳐지며

저출생 고령화와 젠더 문제까지

다채롭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깨어있는 엄마의 모습인 사쓰키도

둘째 딸의 남자친구인 사토루 앞에서는

경우 없는 사람으로 비치기도 한다.

가부장적인 가문의 분위기에서

노후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을 채

절에 구좌당 백만 엔씩도 주저 없이 내어놓으려는

사토루의 아버지도 있다.


아들이 아닌 딸이라서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없다거나,

그것을 공공연하게 말하는 세대의 모습에서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이렇다 하게 말을 하지 못하는

모습은 소극적인 반항 같아 보이기도 했다.

페미니스트인 줄 알았던 남자친구가

사실은 지극히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이로 인해 멀어지는 모습은 꼭 젠더적인 부분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 애초에 맞지 않았던 것이

젠더적인 문제를 계기로 폭발하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오래 지속되온 '그래왔었던' 불편함에 대해서

다시금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단순히 '결혼 후 바꾸는 성에 대한 문제'나

'가족묘에 들어갈지 나 관리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이런 문제들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인

저출생, 노령화에 대해서 찾아가게 하고 있다.


사쓰키의 딸인 마키바와 시호는

가문의 가장 어린 손녀대 인물로

자신들에게 주어진 이 세대와 젠더의 문제들을

자신의 입장에서 지혜롭게 돌파해 나간다.

그들의 세대가 바꾸어갈 모습은

앞으로를 어떻게 만들어갈지 기대하게 했다.


현재는 대두되지 않는 문제들도

지금의 젊은 세대가 나이가 들어 노령세대가 되면

새로이 다른 문제들로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의 '상식'이 먼 시간이 지난 후에도

'상식'일 수 없는 것처럼

그때는 당연했던 것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할이나 의미가 달라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바로 이 포인트를 말하고자 한 것 같다.

마쓰오 가문과 나카바야시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하고 있는 시대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어야 하는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취해야 할 자세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을 떠나서

묫자리에 대한 것도 결국은 '사람의 마음'과

그 '마음의 편안함'을 위한 산 자들의 욕심인 것 같다.

좁아져가는 땅덩이, 점차 늘어나는 망자들의 공간을

어떻게 해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을지

엔딩노트를 나도 지금부터 꾸준히

업데이트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을 했다.


사회문제에 대한 리얼리티 한 묘사와 설정으로

읽을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가키야미우의 작품!

문화가 다르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고 가족들끼리

함께 읽고 의견을 나누면 좋을 것 같은

그런 작품이었다.


"이 글은 문예춘추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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