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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강하다 ㅣ 래빗홀 YA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4년 8월
평점 :

갑자기 퍼진 좀비 바이러스로 패닉에 빠진 도시.
그런데 이 좀비 바이러스가 65세 이상인
고령의 노인에게서 나타난다고 하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도시 봉쇄가 이루어진다.
자신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준
할머니를 두고 떠날 수 없어
할머니와 함께 남기로 스스로 선택한 소녀 강하다가
고립된 도시에서 일상을 이어가며
할머니와 자신, 그리고 남겨진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달리며 모두를 위하는 용기를 보여주는 작품
김청귤 작가의 《달리는 강하다》를 만났다.
《해저도시 타코야키》, 《미드나잇 레드카펫》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을 통해 두터운 팬층을 쌓고,
자신만의 세계관을 확보해온 김청귤 작가가
처음으로 낸 청소년 소설로
더욱 주목을 받은 이번 작품은
노인에게만 나타나는 좀비 바이러스로
봉쇄가 된 태전이라는 가상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일상을 통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약자에 대한 차별을 끄집어냈고,
까칠했던 소녀 강하다가 자신과 할머니를 위함이 아닌
타인을 위한 용기를 내고 움직이는 실천을 통해
재난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여정을 보여줌으로써
세대를 넘어서는 존중과 연대, 사랑을
책을 읽는 청소년과 전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을 전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하다의 곁을 지켜주고 사랑을 주었던 것은
외할머니 '조끝순'여사 였다.
할머니의 보살핌과 식당 일을 하며 쌓아온
할머니 손맛이 담긴 음식들은
하다가 힘든 상황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는데,
부모님의 이혼 이후에 혼란스러움도 잠시
다시 할머니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하다는 힘을 낸다.
낯선 학교, 친해지기 힘든 아이들 사이에서
한 학기만 어떻게 버티면 된다는 생각에
고3임에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동네로 기꺼이 온 하다는
매일을 이겨내듯 '달리기'를 하며
몸의 체력도 마음의 체력도 단단하게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이상한 사건이 생긴다.
학교에서 일하는 경비원 할아버지가
학생들을 공격하는 일이 발생하고,
좀비 바이러스에 걸린 듯 아이들을 공격하는
경비원을 피해 아이들은 패닉이 되어 도망을 친다.
위기의 상황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을 챙기며
서로를 밀치며 도망치기 바빴고,
학교에서 머리도 좋고 잘생겨서 인기가 많았던 은우는
다리가 불편한 상황에서 도움을 받지 못한 채
공격받을 위기에 처하는데
그런 은우를 지켜보던 하다는 그를 업고 도망치며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이윽고 뉴스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그들이 머무는 태전에 원인을 알 수 없는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으며, 이 바이러스는
65세 이상의 노인에게서만 나타난다는 것.
도시는 봉쇄하기로 했고, 65세 미만은
도시를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장례식장 참석을 위해 이미 태전을 벗어나있던
엄마를 제외하고 할머니와 단둘이 있던 하다는
이 위험한 도시에 할머니만 남겨둘 수 없다는 생각에,
할머니와 함께 태전에 남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폐쇄된 도시에서 할머니와 함께
이 와중에도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해먹으며
앞으로를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옮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격리된 65세 이상의 노인들,
낯선 전학생이자 유약한 여학생인 하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진 은우,
아기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보호자도 없는
산모인 지혜와 그녀의 아기 사랑,
바쁜 부모님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홀로 집에 남게 된 여덟 살 지민까지
봉쇄된 도시에서 남게 된 이들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한
'약자'라는 이름의 사람들이었다.
물과 전기, 가스는 보급되고 있지만
도시를 오가는 길은 모두 통제되고
한정된 물자와 장소 안에서
돌아다니는 좀비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치료제나 원인은 무엇인지
대책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말 그대로 도시에 그대로 남겨지게 된 것이었다.
처음에는 할머니와 나만을 생각하고 걱정하던 하다는
위층에 사는 은우도 도시를 벗어나지 못하고
남아있게 됐다는 사실에 함께 보내게 되고,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은우의 사연도 알게 된다.
다리가 불편해 물자를 구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생각한 은우는
할머니와 함께 요리를 하고 정리를 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달리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하다는
모두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가
좀비 사이를 뚫고 필요한 물자를 구하러 가기도 한다.
그들만 있는 줄 알았던 아파트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남아있었고,
그중에서도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산모와 아기, 집에 혼자 남은 어린이 등
하다와 할머니, 은우에게는 더 많은 식구들이 늘어난다.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했던 '약자'라는 이름의 그들은
서로에게 기꺼이 내어주고 품어주며
새로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 것이다.
언제까지 봉쇄될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거리에서 마주한 좀비가 된 사람들이
한때는 평범한 동네의 할머니, 할아버지였다는 사실에
하다는 어쩐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한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좀비가 되지 않았어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혹은 태전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극히 이기적인 현대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내가 만약 하다와 같은 상황이 된다면,
봉쇄된 도시 안에서 가족 아닌 타인을 위해
이렇게 기꺼이 나설 수 있었을까?
좀비라고 하기엔 공격성도 별로 없고
평소와 비슷한 모습을 한 노인들을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하고 파괴할 수 있는지,
그 '좀비 바이러스'라는 차별이
이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하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와 다른 모습'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차별이 얼마나 가혹한 폭력인지,
진짜 나쁘고 폭력적인 모습은
그들이 아니라 사실은 우리에게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새로운 구성원으로 맺어진 가족으로
봉쇄된 태전에서의 시간을 이어가는 그들.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특히 부모님의 이혼 앞에서 까칠해진 마음의 하다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고 함께하며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을 두고 일을 하러 나갈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도 되었다.
꺼리기만 했던 65세 이상의 노인들이
좀비 바이러스를 피할 수 있는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가득한 사랑과 보호 앞에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되는 모습은 뭉클하면서도
멀게만 느껴졌던 세대가 하나가 되는 것 같아서
조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작아지는 요즘의
아이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갈 것 같았다.
위기 상황 앞에서 약자들끼리의 연대는 더욱 강해지고,
이기적인 사람들의 파렴치한 민낯이 드러나며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었던
흥미진진한 좀비 소설이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좀비 바이러스, 좀비 세계관을
담았던 김청귤작가만의 진한 색채와 함께
조부모님에 대한 마음까지도 담고자 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좋았던 소설이었다.
청소년 문학이라고는 하지만,
나이에 관계없이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그런 작품이 아닌가 싶다.
위기의 태전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 속에서 함께 어우러져
서로를 구하고자 하는 약자들의 연대는
그들을 어떻게든 지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손을 내밀 때
그 온기는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이 글은 레뷰를 통해 래빗홀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