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하이드어웨이
후루우치 가즈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인플루엔셜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회색 도시의 빌딩 숲,

푸르름이나 햇빛의 따사로움을 느낄 새도 없이

더 빠르게 더 정확하게

효율성만을 추구해야 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마음속에 하나씩 답답함이 쌓여간다.


나답게 다른 사람의 눈치와 평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하루를 보내고 싶지만,

사회와 타인의 시선 아래서 보이는 모습은

지극히 가공되고 숨겨진, 보기 좋은 모습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나만의 쉼터이자 은신처, 한숨을 돌릴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하나씩 생기기 마련인데,

도쿄에 숨겨둔 자신만의 은신처와

'나만의 은신처'라는 앙케이트를 통해 영감을 받은

작가가 그려낸 휴식 같은 옴니버스 소설을 만났다.


일본 최대 서평 사이트인

독서미터에서 2024년 '가장 읽고 싶은 책 1위'로

선정된 〈도쿄 하이드어웨이〉는

각자의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기만의 '은신처'를 찾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도쿄에 있는 인터넷 종합 쇼핑몰을 운영하는

중견 전자상거래 기업 파라웨이를 중심으로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들, 그리고 그들과 얽힌

주변인들까지 여섯 명의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도심 속에서 각자만의 포인트로 지쳐있는 주인공들이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은신처'를 찾아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문제로부터 씩씩하게

맞서 일어나는 과정들을 담고 있는 작품인데,

영화사에서 오랜 시간 근무한 저자답게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 소설은

각 등장인물들이 각 편에서 주인공과 등장인물로

겹쳐지며 마치 바통터치하듯이 이야기를 이어

크게 소설 전체적으로는 하나의 주제를 그려내고 있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특히나 IT 업계에서는

남들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보다 효율을 내야 하기 때문에

한 명의 '사람'이라기보다는

퍼포먼스를 내는 하나의 구성으로

회사를 이루는 퍼즐 조각의 하나같이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마음으로 공감을 하고 이해하기보다는

일의 능률이나 성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평가를 하기 마련인데

사람이기 때문에 겉으로 보이는 것만으로

그 사람에 대해 100% 안다고 할 수 없고,

그 사이에서 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은

때로는 누군가에게 인생을 뒤흔드는 것 같은

충격을 주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각자 자신이 매일 만나는

도심 속 공간에서 모두에게 특별하진 않지만

나에겐 의미 있는 휴식과 안도를 주는

은신처를 만난다.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방문한

과학관의 플라네타륨, 쓰레기 매립장에 만든 공원,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미술관,

공원 속에 있는 복싱 클래스,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가 있는 수족관 등

자신만의 은신처를 찾아 한숨을 돌리며

주인공들은 자신 앞에 주어진 문제에 맞설

힘을 얻는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서 지친 그들이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낸 시간,

자신만이 찾는 그 공간에서 안도를 맞이하는 것이다.


빡빡하게 채워진 닭장 같은 사무실에서
이쪽 저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결국은 누군가에게 보이고만 마는 장소에서
흔들리는 감정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고민이 많았던 때가 많았다.
그럴 때 내가 은신처로 삼았던 건
당장의 눈앞에 있는 초록.
작은 화분에 있는 식물이 꽉 막힌 사무실 안에서도
조용히 새싹을 틔우는 모습을 보며
나도 이렇게 힘을 내봐야지 싶었다.

그런 점에서 소설 속의
'요네가와 에리코'에게 가장 많은 공감이 갔는데,
결혼한 워킹맘이라는 점에서
나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여성으로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불편한 진실을 그녀의 모습에서 발견하며,
그때의 내 모습을 본 듯 절로 응원을 하게 됐다.

누구나 자기만의 무게와 문제가 있다.
남들의 시선에 드러나지 않을 뿐,
우리 모두는 각자의 문제와 씨름하고
사회의 시선 아래 평가받으며
다들 매일의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소설을 통해 작가는 지친 현대의 우리들에게
한 템포 쉬어갈 수 있는 나만의 은신처를 마련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를
그런 마음을 전하고 있다.
기꺼이 자신이 발견 도쿄의 장소들을
작품 속에 털어놓으며 아끼고 싶었던
휴식을 선물하고야 마는 작가의 진심이
책을 읽는 모두에게 전해지리라고 믿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과 그것과 그리고 전부
스미노 요루 지음, 이소담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소미미디어로부터 서포터즈활동을 위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나이가 든 지금은 잘 모르겠는데 학창 시절에는 유난히

세상을 돋보기를 쓴 것처럼 바라보곤 했다.

무엇이든 과장되고 크게, 그리고 감정적으로 바라보고

조그마한 일에도 요동치게 되었으니 말이다.


집과 학교라는 한정된 공간을 오가며

반복되는 비슷한 하루들을 보내다 보니

작은 사건, 작은 마음 하나에도 요동치게 되는 것이다.

그때의 시간을 하루로 표현하자면

감정의 일교차가 컸던 그런 시기였다.


그때는 매 순간순간이 다르게 다가왔다.

나이에 따라 인생의 시차가 다르게 느껴지듯

지금은 하루를 몇 등분으로 나누고 있다면

한참 예민했던 그때에는 하루를 수십, 수만 가지의

순간으로 나뉘며 초 단위의 시간을 보내는 것만 같았다.


매일 마주하는 가족들이나 친구들,

마주하게 되는 타인의 얼굴들을 비롯해

연예인, 운동선수 등 타인을 좋아하는 감정을 품게 되면

더욱이 그 감정의 조각이

더욱 세밀한 갈래를 가지게 됐다.

그런 감정이 마치 그때에만 주어지는 특권처럼

혼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사랑에 빠져

'삶'이라는 시간과 '타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됐다.


청춘 소설의 대가라 불리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로 잘 알려진

스미노 요루의 10번째 작품이 나왔다.

인물의 감성을 효과적으로 묘사해서

공감과 위로를 이끌어내는 스토리로

모든 연령층의 사랑을 받고 특히나

10~20대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의 신작인데,

여름방학을 맞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짝사랑하는 여학생과 함께 그녀의 할아버지가 있는

고향으로 함께 나흘간의 여행을 떠나며

특별한 시간을 보낸 메메의 이야기를 통해

오롯이 이 순간 '사랑하는 감정'으로 꽉 채운

청춘의 청량한 감성을 담은 소설을 써냈다.


운동을 특기로 고등학교에 진학한 메메는

같은 학교에 다니는 사브레를

반년 전부터 짝사랑하고 있다.

겉으로는 평범한 친구처럼 그녀에게 더 다가가지도,

특별한 말이나 행동을 하지도 않지만

여름방학을 맞이하고 기숙사에 남은 두 사람이

우연히 식당 가는 길에 만나 대화를 나누다가

사브레의 할아버지가 있는 고향에 함께 가기로 하며

펼쳐지는 여정을 담았다.


야간버스와 기차, 도보를 이용해

한적한 시골마을로 향한 두 사람.

처음으로 단둘이 함께하는 여정 앞에

설레는 마음을 애써 감추고 자신의 마음은 숨긴 채

사브레와 함께 하는 순간을 만끽하는 메메.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른 예민하면서도 섬세한 사브레를

나만큼은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메메는

나흘간의 시간을 보내며 몰랐던 사브레에 대한 모습과

그녀의 이런저런 생각들을 알게 되고

그녀의 친척들을 만나며 한결 가까워짐을 느낀다.


이렇다 할 진전이나 고백 없이

지나가 버리는 듯했던 나흘의 마지막 날 밤,

사브레의 할아버지가 갑자기 호흡 발작으로 쓰러지고

할아버지가 병원으로 옮겨진 사이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서로가 숨겨왔던,

그리고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내보이며

서로에게 오롯이 '자유로운 나 자체'를 드러낸다.


이윽고 돌아온 현실 앞에서, 더 이상 물러날 수도 없고

가장 큰마음의 순간이라 생각한 메메는

사브레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데,


운동을 하는 고등학생인 메메의 시선에서 펼쳐지는

여름방학의 특별한 나흘간의 이야기는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사브레의 눈치를 함께 살피듯

두근두근 떨리며 읽게 되었다.

손에 잡히지 않을 것만 같은 사브레의 마음도,

그리고 그녀가 털어 넣은 자신의 이야기도

'이러다 친구 사이마저 망가지는 거 아냐'라는

초조함이 들기도 했고, 풋풋한 십 대만의 감성을 담은

이야기는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순진한 그들의 모습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 순간,

그 사소한 순간의 모습을 작가만의 필체로

감성적으로 묘사한 부분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마치 어떤 사고처럼 다가온 사랑은

그 이후로는 모든 순간이 마치 전부 사랑인 것처럼

이십 대 소년의 일상을 전부 뒤흔들어 놓는데

줄곧 고백하지 않고 지켜만 보던 메메가

이윽고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 과정에서는

그 엄청난 용기와 직진, 그리고 역시 사브레 답게

메메가 친 스매시를 받아치는 당당함에

'역시 십 대 답네'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각자의 자유를 존중하는 그들의 모습은

단순히 한창 어린 시절의 풋풋함보다는

훨씬 진지한 사랑으로 느껴지게 했다.


더욱이 그들을 이 여행으로 이끈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의 차이는

마치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비로소 공감과 이해를 하고

하나의 마음을 가지는 과정을 미루어 보여주는 것 같은

하나의 클리셰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의 감정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순간의 감정에 최선을 다하는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운 그들에게

가장 큰 응원을 보내본다.


청춘 소설의 대가답게, 읽는 것만으로도

내리쬐는 햇빛이 뜨거운 여름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랑하는 감정이 존재하는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이토록 설레는 시작이 있노라고

한껏 사랑을 해보라고 작가는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각의 도약 - 평범함을 뛰어넘는 초효율 사고법
도야마 시게히코 지음, 전경아 옮김 / 페이지2(page2)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평소에 생각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싶은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생각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조바심을 내거나 비관할 때도 있지만

정작 생각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헤아린다는 것과는 어떻게 다르고,

아는 것과는 어떤 관계에 있는지

또 어떤 절차를 밟아서 생각하는 것인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사고학의 대가라고 할 수 있는 저자는

이런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려는 사람에게 좋은 자극을 주기 위해

이 책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던 생각을 하는지 의식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틀에 비추어 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생각하는 방법을 비롯해 스스로 주제를 파악하는 방법,

포괄적이면서도 독창적인 생각을 만들어 내는 방법,

보다 창조적인 재능을 위해 편집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정보를 관리하고 기술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창조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생각의 뿌리를 내리고 보다 다각도로

펼쳐져 나가는 것을 다루는 사고법을 떠올리면

더 많은 정보의 습득이나 그것을 체득하는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바로, '망각'이었다.


잘 잊어야 오히려 기억하기 좋다는 저자는,

우리가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서 잊히는 것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흥미나 관심이 있는 것은

결코 잊어버리지 않기에 '잊는다는 것' 자체가

가치의 구별, 판단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강의나 강연을 들으면서도

부지런히 메모를 하기보다

그저 멍하니 들으면 대부분 잊어버리지만,

정말로 관심이 있는 것은 잊지 않는다면서

중요한 것은 쓰지 않고 절대로 잊어서는 안된다고,

잊으면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에 남겨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지금이야 컴퓨터나 AI 기술 등을 이용해

강의나 강연, 혹은 어떤 책의 내용에 대해서도

직접 읽거나 기록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요약하거나 남겨둘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그것을 보고도 떠올리지 못하는)

메모 같은 기록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작가는 진정한 의미의 체득과 그 정보를 바탕으로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그것을 잊지 않고 기억하라는

원초적인 개념에서 접근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의 풍화 작용을 거친 '시간의 시련'을

이겨낸 고전화를 얘기하고 있으며,

이런 빠른 고전화를 위해서는 빨리 잊기를 통해

망각의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이 효과적인데,

그 방법으로 메모를 통해 안심하고 빨리 잊기를 전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사고의 정리가 되게되고,

시간을 강화하여 머릿속에 만든 고전을 통해

쉽게 사라지지 않는 나만의 것을 만드는 것이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쓰는 방법에 대해서도

보다 자세히 소개하고,

이를 넘어선 발화하기, 담소 나누기 등

대화로 이어지는 발전까지 이르는

사고력에 대한 총체적인 주제를 다룬다.


사고와 지적 활동, 그리고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밀려지게 되는 기계적 인간의 모습까지

진정한 인간을 육성하기에 필요한 교육 자체가

창조적인 일임을 역설한다.

생각한다는 것의 정의에서부터

사고하는 사람이 되기까지

우리가 단순히 지식만을 얻는 단편적인 것에

한정 지어지지 않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고력'에 대한 시야를

더욱 넓혀주는 그런 계기가 되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저서인

〈도쿄대생은 왜 바보가 되었나〉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의 생각을 가졌었는데,

이번에 만나 본 도야마 시게히코의

〈생각의 도약〉을 읽으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교육이란 어떤 교육인지,

그리고 대학에서 가르쳐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그리고 그 생각 한다는 것 자체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라곰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재미를 위해서 또 궁금함에

사주나 점, 타로 등을 통해서

미래를 점쳐보는 사람들이 있다.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고

나와 잘 맞는 사람, 장소 등을 알아서

주어지는 운과 복을 최대로 맞이하고픈 욕망,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잘 살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점술이 좋은 얘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건강이나 사고를 조심하라거나

구설수, 사람을 조심하라는 얘기는

그래도 피하거나 흘려듣고 말 수도 있다.

만약 점쟁이가 하는 얘기가

"당신이 죽을 날짜를 알려줄게요,

당신은 38살 12월 16일에 죽게 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앞으로 19년 후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게 말이 돼?'라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여행을 떠난 열아홉의 커플 넬과 그렉은 친구들과 함께

재미로 찾았던 예언가에게서

그들이 각각 죽게 될 날짜를 듣게 된다.

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거짓말이겠지 하며 함께 예언가를 만난

친구들과 죽을 날짜를 서로 공유하는데,

동갑인 그들은 서로 다른 인생인 만큼

죽을 날짜도 나이도 달랐다.

넬은 서른여덟

헤일리는 마흔 살,

그렉은 무려 백 살,

그리고 말이 없었던 소피는 '다음 달'이라는 것.


믿을 수 없는 예언가의 말에 신경이 쓰이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던 열아홉의 그들.

그들 중 가장 빠르게 죽는 날짜가 다가온 소피는

자신에게 예언된 1월 17일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이 넘친다.

하필 그날에 절벽에 다이빙을 하러 가자는 소피,

"그날은 좀 그렇지 않아?"라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그러니까 가자는 거야. 그 사기꾼이 틀렸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자고." 하며 소피는

예언가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사고로 거짓말처럼 예언처럼

소피는 1월 17일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뒤로 19년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의 날을 준비하며 넬은 인생을 살아간다.

거짓말이라 믿었지만 사실이 되어버린 소피를 보며,

얽매일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한정되게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예언가의 말을 믿고 서른여덟에 죽을 날짜를

기다리며 사는 넬을 보며 연인인 그렉은

생각의 차이를 이기지 못한다.

그렉은 예언에 얽매일 필요 없다고 했고,

넬은 백 살까지 사는 너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어린 연인은

그렇게 그 뒤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고

넬은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이 받게 될

슬픔과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해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을 거리가 되면

가차 없이 그들을 떠나고 철저히 자신을 홀로 두었으며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고는

은행 계좌, 핸드폰을 비롯해 SNS 계정을 정리하고

집안의 물건들도 처분하고는 깔끔한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집안에 있던 침대를 중고로 구매하러 온

코미디언 톰에게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넬,

충동적이라고 해야 할지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자'는 마음이었을지

낯선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마지막 디데이를 하루 앞두고

엄마와 이혼한 아빠, 언니, 전 연인인 그렉,

그리고 하룻밤을 보낸 톰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발송한다.


화려한 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하고,

대여한 멋진 드레스까지 입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 중 고르고 골라

최후의 만찬을 하고 침대에 누워 시계를 바라보는 넬.

시간은 10시 30분, 이제 1시간 30분 후면

나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갑자기 어질한 느낌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의식이 돌아온 넬.

이곳이 저승인 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마주한 세상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인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

소피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강행했던 '사고'로 죽은 것이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다.

넬은 여전히 살아있고,

오로지 삶의 끝을 서른여덟로 맞추어놓고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던 그녀는 멘붕에 빠지게 된다.


돈도, 누구에게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나 핸드폰도

머물 수 있는 집도,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없이

갓 태어난 것처럼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것이다.


영국 언론과 찬사를 받으며 영화화가 확정된

샬럿 버터필드의 소설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예언가가 말한 삶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다음날

새롭게 펼쳐진 인생을 맞이한 넬이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고,

새로운 일상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주변인들까지 변화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기쁨,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떠나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는 막연함을 넬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지켜보며

나 역시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이라는 후회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하게 된다.

하지만 흘러온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매 순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부족했던 노력도, 아쉬웠던 선택도

당시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음을

시간을 지나놓고 알면서도 후회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넬 앞에 남은 것은

새로운 '오늘'이라는 삶,

그리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던져놓은

폭탄 같은 편지들이다.

가족들에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쏟아냈던 말들은

상처와 싸움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전 연인 그렉과

마지막으로 함께 밤을 보낸 톰의 인연은

이상할리 만큼 계속 엮이게 된다.


예언가의 말이 틀렸음을 넬을 통해 보게 된 그렉은

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뒤로 미뤄왔던

자신의 행복과 일상의 즐거움을

그녀와 함께 다시 찾고 싶어 했고,

그를 사랑하지만 예전의 감정이 아닌 넬은

새로운 인연인 톰과 그렉 사이에서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매일매일의 선택과

삶을 다하는 넬을 보며

가족들과 그렉, 톰은 그들에게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여기에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노부인 주노와

그녀의 아들, 며느리까지

넬에게는 새롭게 주어진 인생만큼이나

새로운 인연들이 늘어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조용히 사라지려

감정의 벽을 높이 세우고 있던 넬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새롭게 인생의 길을 닦아나가는 모습은

알 수 없는 나중을 위해 소중한 것을 미루고

'그저 살아내기'만 하는 바쁜 현대사회의 우리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


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이번 생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5일 뒤에 죽는다면 어떨지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마지막 순간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지막 식사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내가 사랑했던 건 무엇이고,

내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고

스스로에게 해주고픈 말은 무엇인지,

내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압축해서 보다 보니

하루 이틀에 걸쳐 고민했던 작은 문제거리들은

이 마지막 앞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넣어 두는 상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고민이 생겼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적은 종이를 상자에 넣어두고

2~3일이 지나놓고 살펴보면

이미 해결이 되었거나 막상 별일이 아닌 것이라는,

우리는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

지금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인생이라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과 사의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가 하루에 수십 개씩 마주하는 문제들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인 줄 알았던 삶의 끝에서

당황스럽게 새 삶을 마주하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넬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라는 매일을

감사하게 느끼고 할 수 있는 최선을,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로 꽉 채워

순간순간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마지막을 아름답게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하고 나답게 만드는 인생,

매일 주어지는 아침을 기쁘고 감사하게 맞이하며

최선을 다하는 시간으로 채워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떤 행동은 나라를 바꾼다 - MZ 세대를 위한 공직 세계
김우호 지음 / 시공사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49년 8월 12일 국가 공무원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공무원 제도.

2023년 12월 31일 기준

공무원 정원은 1,171,070명이다.

100만 명이 넘는 공무원들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의 지위를 가지고,

국민에 대한 책임을 지며

국가 또는 지방의 사무를 맡아보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공무원은

나라의 녹을 받는 국가직으로,

그 어느 직장보다 안정적이고 탄탄하며

제도적으로 많은 보호를 받는 '철밥통'의 이미지가 크다.

하지만 신의 직장, 철밥통이라 불리던

그렇게 경쟁률이 높고 어려운 시험을 통과한

공무직을 내려놓는 이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2023년에만 퇴직 공무원 수가 57,000명을 넘었으며

퇴직률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공무원 퇴직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들도 있고,

아직 퇴직하지는 않았지만 쉽지 않은 '공무원 생활'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나 MZ 공무원은 근속연수가 오래지 않음에도

공직사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시대의 자연스러운 변화로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고여있는 공직 세계의 문제인 것인지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특히나 공무원 업무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 또한

곱지 않은 현재의 공직사회에서

앞으로 더욱 날아오를 대한민국을 위해

제대로 문제를 파악하고 변화가 필요하기도 하다.


이런 공직 사회에 대한 궁금증과 공무원의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보고 앞으로를 위해 어떤

변화를 가져와야 할지 살펴볼 수 있었던

새로운 물결이 담긴 책을 만났다.

대한민국 제5대 인사혁신처 김우호 처장이 쓴

〈어떤 행동은 나라를 바꾼다〉이다.


김 처장은 1993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에 입문했고 이후 행정자치부, 대통령 비서실,

주중한국대사관, 법무부 등 주요 기관을 두루 거치며

30여 년간의 공직생활을 했다.


이 책을 통해서 공직 세계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MZ들에게는 공직 사회에 대한 안내를,

또 변화가 필요함을 느끼는 이들에게는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꼭 공직에 관련된 일을 하거나 꿈을 꾸지 않더라도

'공무원의 일'에 대해서 궁금함이나

믿음을 가지지 못했던 이들에게는

현재 대한민국 공직 사회에 처한 현실을

제대로 알리면서 공직자들에 대한 이해와

제도적인 한계를 드러냄으로써 그들에 대한

공감 또한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사실 한때는 공무원을 꿈꿨던 시간도 있었고,

공무원 시험을 본 적도 있었으며

일상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공무원들을 보며

민원인으로서 느끼는 이런저런 불만도 있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듯 공허한 눈빛으로

기계적인 답변과 업무를 진행하는 이들에게

'왜 이렇게 밖에 일을 할 수 없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기도 했고 말이다.

일반 직장인들과는 다른 연금제도나

어지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직위해제가 되지 않는 공무원 제도에 대해서는

'분명 이상한 문제다'라는 불만도 있었고 말이다.


이 책을 통해서 다양한 공무원 제도와 그들에 대한 평가,

공무원들이 처한 현실 등에 대해서도 몰랐던 부분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무너져가는 한국 공직사회를 되살리기 위해

마주해야 할 변화에 대해서도 함께 생각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이 갔던 부분은

업무의 '전문화'에 대한 내용이었다.

선발을 위한 시험으로 경쟁률은 높아졌지만,

이 시험이 정말 해당 업무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다.


적재적소, 적소적재에 대하여 읽으며

공무원들에게 가장 필요한 '전문화'를 놓쳤고,

선발을 위한 시험, 시험을 위한 과목 등이

제대로 업무에 있어서 개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고, 또 제대로 된 평가 또한

이루어지지 않으며 동기부여로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은

악순환의 연속으로 점점 공직사회를 무너뜨리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 같았다.


잘할 수 있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이

나라를 위해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공무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인력 배치의 조건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가장 기본적인 체계를 갖춘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인가, 그러면 이걸 바꾸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가?라는 고민이 들었다.


또한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세대가

공무원직으로 등장하면서

MZ 세대의 특징과 그들을 고려한

채용과 보상, 정년에 대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특정 세대를 위함이 아니라

이런 변화는 앞으로도 계속 지속적으로

등장해야 할 포인트이지만 말이다.


계급제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물결을 맞이한다면

답답하고 고여있는 것 같은

전혀 바뀔 수 없을 것만 같은

철옹성 같은 이 공직 세계도

변화라는 시간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게 되었다.


공무원, 공직 세계에 대해 가지고 있던 편견을 벗어나

팩트를 마주하며 시선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그들이 속한 공직사회를 바꿈으로써

그들로부터 비롯된 변화가

국민에 대한 봉사로 이어지는 또 다른 변화로

나비효과를 가져오기를 바랐다.


공직사회와 제도라는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다양한 예시와 자신의 경험을 통해 누구나 쉽고

가깝게 느낄 수 있도록 제시한 이 책은

공무원을 꿈꾸는 이 들 뿐 아니라

공직에 대한 관심이 없던 국민들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

나라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변화,

가장 작은 움직임, 가장 작은 시선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은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