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
샬럿 버터필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라곰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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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라곰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재미를 위해서 또 궁금함에

사주나 점, 타로 등을 통해서

미래를 점쳐보는 사람들이 있다.

조심해야 할 것들을 알려주기도 하고

나와 잘 맞는 사람, 장소 등을 알아서

주어지는 운과 복을 최대로 맞이하고픈 욕망,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능적인

'잘 살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점술이 좋은 얘기만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건강이나 사고를 조심하라거나

구설수, 사람을 조심하라는 얘기는

그래도 피하거나 흘려듣고 말 수도 있다.

만약 점쟁이가 하는 얘기가

"당신이 죽을 날짜를 알려줄게요,

당신은 38살 12월 16일에 죽게 됩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이 앞으로 19년 후라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게 말이 돼?'라는 설정에서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여행을 떠난 열아홉의 커플 넬과 그렉은 친구들과 함께

재미로 찾았던 예언가에게서

그들이 각각 죽게 될 날짜를 듣게 된다.

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듣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거짓말이겠지 하며 함께 예언가를 만난

친구들과 죽을 날짜를 서로 공유하는데,

동갑인 그들은 서로 다른 인생인 만큼

죽을 날짜도 나이도 달랐다.

넬은 서른여덟

헤일리는 마흔 살,

그렉은 무려 백 살,

그리고 말이 없었던 소피는 '다음 달'이라는 것.


믿을 수 없는 예언가의 말에 신경이 쓰이면서도

믿고 싶지 않았던 열아홉의 그들.

그들 중 가장 빠르게 죽는 날짜가 다가온 소피는

자신에게 예언된 1월 17일이 다가올수록

자신감이 넘친다.

하필 그날에 절벽에 다이빙을 하러 가자는 소피,

"그날은 좀 그렇지 않아?"라는 친구들의 만류에도

"그러니까 가자는 거야. 그 사기꾼이 틀렸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자고." 하며 소피는

예언가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보여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난 사고로 거짓말처럼 예언처럼

소피는 1월 17일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 뒤로 19년간 자신에게 다가올

죽음의 날을 준비하며 넬은 인생을 살아간다.

거짓말이라 믿었지만 사실이 되어버린 소피를 보며,

얽매일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한정되게 주어진 인생에 최선을 다한 것이다.

예언가의 말을 믿고 서른여덟에 죽을 날짜를

기다리며 사는 넬을 보며 연인인 그렉은

생각의 차이를 이기지 못한다.

그렉은 예언에 얽매일 필요 없다고 했고,

넬은 백 살까지 사는 너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전부였던 어린 연인은

그렇게 그 뒤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고

넬은 자신이 떠난 후 남겨진 이들이 받게 될

슬픔과 아픔을 최소화하기 위해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을 거리가 되면

가차 없이 그들을 떠나고 철저히 자신을 홀로 두었으며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고는

은행 계좌, 핸드폰을 비롯해 SNS 계정을 정리하고

집안의 물건들도 처분하고는 깔끔한 인생의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집안에 있던 침대를 중고로 구매하러 온

코미디언 톰에게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 넬,

충동적이라고 해야 할지 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자'는 마음이었을지

낯선 그와 하룻밤을 보내고

마지막 디데이를 하루 앞두고

엄마와 이혼한 아빠, 언니, 전 연인인 그렉,

그리고 하룻밤을 보낸 톰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마지막 편지를 발송한다.


화려한 호텔의 스위트룸을 예약하고,

대여한 멋진 드레스까지 입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 중 고르고 골라

최후의 만찬을 하고 침대에 누워 시계를 바라보는 넬.

시간은 10시 30분, 이제 1시간 30분 후면

나는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갑자기 어질한 느낌에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의식이 돌아온 넬.

이곳이 저승인 건가 싶었는데, 그녀가 마주한 세상은

어제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인 것이다.

그렇다, 그녀는 죽지 않고 여전히 살아있다.

소피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이 틀렸음을 증명하기 위해

무리하게 강행했던 '사고'로 죽은 것이었고

그것은 그녀에게 정해진 운명이 아니었다.

넬은 여전히 살아있고,

오로지 삶의 끝을 서른여덟로 맞추어놓고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았던 그녀는 멘붕에 빠지게 된다.


돈도, 누구에게 연락할 수 있는 연락처나 핸드폰도

머물 수 있는 집도, 돈을 벌 수 있는 일도 없이

갓 태어난 것처럼 그녀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 것이다.


영국 언론과 찬사를 받으며 영화화가 확정된

샬럿 버터필드의 소설

〈저는 38세에 죽을 예정입니다만〉은

예언가가 말한 삶의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다음날

새롭게 펼쳐진 인생을 맞이한 넬이

자신의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달리하고,

새로운 일상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주변인들까지 변화시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전히 살아있다는 기쁨,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을 떠나서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하는 막연함을 넬이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지 지켜보며

나 역시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꿀 수 있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이라는 후회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시로 하게 된다.

하지만 흘러온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매 순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부족했던 노력도, 아쉬웠던 선택도

당시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치였음을

시간을 지나놓고 알면서도 후회하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잃은 넬 앞에 남은 것은

새로운 '오늘'이라는 삶,

그리고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던져놓은

폭탄 같은 편지들이다.

가족들에게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쏟아냈던 말들은

상처와 싸움이 되기도 하고

인연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전 연인 그렉과

마지막으로 함께 밤을 보낸 톰의 인연은

이상할리 만큼 계속 엮이게 된다.


예언가의 말이 틀렸음을 넬을 통해 보게 된 그렉은

백 살까지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뒤로 미뤄왔던

자신의 행복과 일상의 즐거움을

그녀와 함께 다시 찾고 싶어 했고,

그를 사랑하지만 예전의 감정이 아닌 넬은

새로운 인연인 톰과 그렉 사이에서

무엇이 맞는 선택인지 고민하기에 이른다.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매일매일의 선택과

삶을 다하는 넬을 보며

가족들과 그렉, 톰은 그들에게도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여기에 우연히 버스에서 만난 노부인 주노와

그녀의 아들, 며느리까지

넬에게는 새롭게 주어진 인생만큼이나

새로운 인연들이 늘어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조용히 사라지려

감정의 벽을 높이 세우고 있던 넬이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새롭게 인생의 길을 닦아나가는 모습은

알 수 없는 나중을 위해 소중한 것을 미루고

'그저 살아내기'만 하는 바쁜 현대사회의 우리들에게

무엇이 중요한지 일깨워 주는 역할을 했다.


넬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도 이번 생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5일 뒤에 죽는다면 어떨지 상상을 해보았다.

내가 마지막 순간을 어디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마지막 식사로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내가 사랑했던 건 무엇이고,

내 삶의 원동력은 무엇인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고

스스로에게 해주고픈 말은 무엇인지,

내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해 보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압축해서 보다 보니

하루 이틀에 걸쳐 고민했던 작은 문제거리들은

이 마지막 앞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을 넣어 두는 상자'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고민이 생겼을 때

그 문제에 대해 적은 종이를 상자에 넣어두고

2~3일이 지나놓고 살펴보면

이미 해결이 되었거나 막상 별일이 아닌 것이라는,

우리는 순간의 감정에 치우쳐서

지금 직면한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

인생이라는 것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과 사의 마지막 순간에서

우리가 하루에 수십 개씩 마주하는 문제들은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 것처럼 말이다.


마지막인 줄 알았던 삶의 끝에서

당황스럽게 새 삶을 마주하고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넬의 이야기처럼,

우리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라는 매일을

감사하게 느끼고 할 수 있는 최선을,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로 꽉 채워

순간순간이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마지막을 아름답게 준비할 수 있는 과정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씩씩하고 나답게 만드는 인생,

매일 주어지는 아침을 기쁘고 감사하게 맞이하며

최선을 다하는 시간으로 채워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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