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느실, 외갓집 가는 길 - 202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창작 발간 기금 사업 선정
김경순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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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의 외갓집이야 시골의 느낌이 아닌

어느 도시의 아파트나 멀끔한 주택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외갓집 = 할머니 집으로 일컬어지는 곳은

"시골"이라 불릴법한 그런 이미지였다.


컴퓨터나 인터넷, 다양한 TV프로그램 없이

기껏해야 공중파 채널만 나오는 작은 TV에

푸릇한 풀이 가득한 풍경이 있는

소담한 마을은 심심하기도 했지만,

때로는 시끌시끌했고 누구나 함께 어울렸으며

열심히 뛰어놀며 집에서는 허가되지 않는

많은 것들이 "그래~ 하고 싶은 데로 해"라는

무한한 동의와 함께 펼쳐지는 마법 같은 공간이었다.


그런 할머니의 집에서 보냈던 방학이나 명절날의

기억은 잊은 듯 지내다가도 이따금씩 불쑥 떠올라

'아련한 그리움'을 선사하곤 했는데,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는 아니고 부모님 나이대와

오히려 가깝지만 작가가 전하는 고향에 대한

추억 어린 이야기들은 그때의 할머니 댁을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었다.

《흐느실, 외갓집 가는 길》이다.


충북 음성에서 4남매의 막내로

나고 자란 작가는,

2008년 월간문학 수필로 등단해

다양한 문인 협회 및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오랜 시간 글쓰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책을 통해서 나고 자란 '음성'에 있는

추억이 어린 다양한 장소들에 대한 소개와

음성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풍경,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가족들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꽉 채웠다.


음성하면 떠오르는 건

대학교 OT 때 갔었던 꽃동네와

특산품인 고추이다.

잘 알려진 지역축제 중 하나인

품바축제가 음성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고추의 고장, 꽃동네가 있는 지역이라는

이미지만 있던 이곳, 음성이라는 곳에 얽힌

여러 장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이웃의 고향에 대한 소개를 받는 것 같아

따스한 마음이 들었다.


책 속에서 등장하는 오래된 가게들 중에서는

여전히 성업을 하고 있는 곳들도 있어서

지도 내에서 등록된 정보와 사진을 찾아보며

매칭하며 읽는 재미도 있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취업을 했다가

2년 만에 다시 음성으로 돌아왔다는 작가의 말처럼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은 그 어떤 것보다도

큰 힘과 지지대가 되어주는 것 같다.

'돌아갈 곳이 있다' '나를 기다리는 집이 있다'라는

안락함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는

비로소 나이가 들고 사회의 맛을 겪어봐야만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인 것 같다.


한 지역에서 쭈욱 나고 자란 나 역시

비롯 몇 번의 이사를 했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곳이 주는 안정감에

어딘가 나갔다가 돌아올 때면

내 고향 이름이 있는 표지판만 봐도

안도감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어린 시절 일탈을 즐길 수 있던 공간이었던

외갓집 동네, 할머니의 작은 집.

시간이 지나 그 공간이 이제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고 나니 더욱 그리워진다.

이제는 우리의 추억 속에 기억 속에

공유하고 있는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야만

아련하게 존재할 수 있는 그 공간이

작가처럼 한 권의 책으로 담길 수 있다면

나와 형제들에게도 또 엄마에게도

세상을 떠난 할머니에게도

더욱 의미 있게 다가가지 않을까 싶다.


정수리가 후끈거리게 뜨거웠던

여름 태양빛을 맞으며 뛰고 웃고 놀고

그러다가 뭐든 다 된다고 하는

할머니의 기세를 등에 입고 작은 황제처럼 굴었던

그 시간이 그리워진다.

외갓집 가는 길, 그 시간이

지금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때로는 불편한 부분도 싫은 때도 있었지만

그 불편함마저도 몽글몽글 그리워진다.


"이 글은 바른북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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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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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에서

혹은 그들과 다른 외모, 문화를 가졌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차별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러 디아스포라 문학을 만났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차별 속에서 느꼈던 고립감을

실감 나게 묘사하며 '다수'에 속하지 못한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해서 차분히 쌓아갔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이동이 자유롭고

여러 사람들이 섞여서 지구라는 곳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리타분하게도 다른 피부색, 인종,

어떤 신체적 특징, 문화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인정에 앞서 '다수인 우리와 틀리다'는

옳고 그름으로 비뚤어지는 시선이 여전하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재일은

베트남 사람인 엄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파란 피부를 가진 아이다.

파란 피부와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사실 중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어난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한 엄마 외의 타인,

그리고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재일은 자유롭지 못하고

어울려지지 못했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당시 재일의 아빠가 일하는 가구공장에서는

방글라데시, 몽골, 태국, 스리랑카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아빠는 같은 직장동료임에도

불구하고 계급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서열은 대체로 피부색의 밝기와

출신 국가의 소득수준에 좌우됐는데,

한국 사람들이 사는 한국에 있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가장 높은 지위의 의미를 부여한 아빠는

이곳에 와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권력의 최상위에 군림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다른 피부색이라는 이유로

차별의 시선을 받던 재일은

1년에 한 번씩 엄마를 따라 외할머니 댁이 있는

베트남에 가면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곳에서는 자신을 향한 야릇한 눈빛이 없었고,

메콩강에서 하는 물놀이가 즐거웠던

한 명의 소년 그 자체였던 것.

그곳에서는 다름도 차별도 없는 오롯이

재일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의 계획으로 미국으로 터전을 옮기게 된

재일의 가족은 때마침 건강이 좋지 않았던

외할머니를 걱정하던 엄마의 요청으로

엄마와 동생 재우는 베트남으로,

아빠와 재일은 미국으로 향한다.

비자가 만료되기 전 미국으로 와야 한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그 뒤로 엄마와의 연락은 끊기게 되고

영어가 서투른 아빠와 푸른 피부를 가진 재일,

두 사람은 낯선 미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낯선 미국에서의 생활은 언어장벽을 넘어선

인종 차이, 피부색 차이에서 비롯된 멸시까지

더해져 더욱 그를 고립시킨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점점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숨기는

재일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다.


같은 파란색 피부를 가진 친구를

소개받는 것을 꺼렸던 그가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잠시나마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은

그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사건과 문제들 사이에서도

끝끝내 스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신의 곁을 떠나고

그를 무너지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그가

이만큼 자라나 자신과 같은 블루 멜라닌을

찾아 나서는 그 여정을 지켜보자니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여러 사건들과

정치적인 이슈들이 흘러가는 모습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듯했다.


소속감이라는 것이 인간의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듯 보이는 그가

깊은 물속으로 스스로를 침잠시키며

바닥에 발을 닿으며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은

애처로우면서도 기특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가 무너지지 않아서 좋았다.

그가 쉽게 스러지지 않고 맞서 일어나서 다행이었다.

차별 앞에서 당신들이 틀렸노라고

목소리를 내고 다시 또 일어서는 그라서 좋았다.

그는 이제 자신의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차별로부터 벗어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향한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 증명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피부색이 다른 것이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어떤 문제를 만들지 않음을 말이다.


잔잔한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위로 올라오는 그의 모습이

마치 다수가 정답인 것 같은

지금의 차별 가득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떠오르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금껏 접해왔던 디아스포라 문학의

여느 차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소설 속에서 다른 피부색은 인종이나 국가를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차별 같았다.


언제쯤 이 다름이 그저 다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아직도 갈 길이 먼 이 차별 앞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에

조용히 힘을 실어본다.


"이 글은 한겨레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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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는 습관, 죽이는 습관 - 불안과 욕심으로 소모되지 않는 건강한 인생 수업
조승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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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대 때에는 성공이나 부에 대한 관심이 컸다면

40대를 앞둔 지금 무엇보다도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바로 '건강'이다. 평균수명이 80대를 넘어서

이제 백세시대, 120세를 바라보고 있는 시점에서

'건강히 오래 살고 싶은 바람'은 누구에게나 있을 터.

하지만 길어진 기대수명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10년은 앓다가 떠난다고 하니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욕구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성공이나 부에 대한 자기계발서는 많이 읽어보았지만

건강이나 건강과 관련된 마인드셋 도서는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자연식물식이나 채식, 탄수화물이나 설탕 제한 등

특정 주제에 한정된 건강도서들은 많지만

건강 습관이나 마인드에 대한 책은

쉽게 찾아보기 힘든 와중에 이 책을 만나보게 되었다.


은행원 출신이자 사업가로,

또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 앞에서

이유를 알고 싶어 약대 한약학과에 진학해

몸과 질병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작가는

한약사가 되어 한약 전문 약국은 운영하며

다양한 건강 관련 책들을 출간하였다.

건강 분야 40주 연속 1위의 베스트셀러

《채소 과일식》을 비롯해 《완전 배출》,

《완치 비만》, 《어린이를 위한 채소 과일식》 등이

바로 그의 책들이다.


이번에 읽어보게 된 《나를 살리는 습관, 죽이는 습관》은

작가 자신을 살린 습관과 지금의 행복에 이르기까지

그에게 도움을 준 건강 비결을 담고 있는데

그 뿌리에는 '살아있는 음식을 먹는다'라는

채소과일식을 기준으로, 섭취에 대한 것뿐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마음가짐이나

습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많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

TV나 여러 매체를 통해서 건강 관련 정보들도

쉽게 얻을 수 있고 그러다 보니 그 정보들 사이에서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필터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졌다.


TV 건강 프로그램에서 제시하는

여러 건강기능식품이나 영양제들,

검사 등을 통해 통제하고 나 하는 여러 수치들 등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건강상식 중에서는

사실 진짜 몸이나 건강을 위한 것보다는

제약회사나 어떤 제도적인 부분 때문에

필터링 없이 섭취하게 되는 것이 많다.


'항생제 사용률이 높다'

'암 진단율이 높다'라는 얘기들을 종종 봤었고,

감기 하나만 걸려도 항생제와 더불어

소화제, 위장보호제까지 추가되어

수북하게 먹어야 하는 약들을 보며

'이게 정말 맞나'라는 생각을 한 적도 많고 말이다.


저자는 무조건 약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공되는 정보에 대하여 최종적인 몸에 대한

책임과 결정은 스스로 감당해야 하기에

정보에 대한 필터링을 직접 할 수 있기를,

또 무조건적인 약 섭취보다는 정말 필요한지를

파악하기를 권한다.


또한 먹는 것에 있어서도 자신이 직접 겪었던

채소과일식을 소개하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당 등을 꺼리면서

과일과 채소를 멀리하는데,

정작 섭취하고 있는 가공식품에서 나올 수 있는

부분은 간과하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저자는 직접 자신이 고쳐온 식생활의 방법 중

하나인 채소과일식을 소개하며,

일반식 30% 채소과일식 70% 등

우리가 바꾸어가고 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고

또 나아가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에

대한 부분까지도 소개함으로써

건강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다시 튼튼히 세울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하고 있다.


저자가 책을 통해 소개한 건강의 비결 중

가장 기본이 되는 3가지 요소는 다음과 같다.


살아 있는 음식 먹기와 12시간 공복 유지

(낮 12시~저녁 8시까지 추천)

하루 7시간은 꼭 수면 취하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의 적당한 운동


그리고 음식 먹기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추천한다.


1. 기상 후 미지근한 물(음양탕)을 한 잔 마신다.

2. 배가 고프면 가장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사과나 바나나를 먹는다.

3. 가능하다면 채소·과일 주스를 마신다.

(갈아 마시거나, 착즙 모두 가능.

혹은 시판 무첨가 주스도 가능.)

4. 점심시간 전까지 커피를 포함한

가공식품은 일절 먹지 않는다.


어찌 보면 굉장히 간단하면서도 쉬워 보이는

이 방법들은 우리가 내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

습관으로 가져가야 할 가장 작은 움직임이 아닌가 싶다.


살아있는 음식을 먹음으로써

내 몸에 생기를 더하고,

올바른 마음가짐과 긍정적인 생각

자신의 한계를 스스로 짓지 않고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작가는 욕심과 욕망을 버리고

그 속에서 행복을 찾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을 살아내는 희망을 가득 담아내었다.


건강 관련 책이기는 하지만

어렵지 않게 쉽게 읽을 수 있었고,

어렵게만 생각했던 채소과일식에 대해서는

편견을 없앨 수 있었던 책이었다.


'약 먹으면서 관리하면 되지 뭐'

'의사 선생님이 권하는 건데 나쁜 거겠어?'

하고 어떤 생각도 없이 약을 쉽게 섭취했던

나의 건강생활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책을 읽고 나니 건강의 근본적인 뜻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몸과 마음의 건강, 그 균형.

그리고 행복이란 결국 몸과 마음의 건강에서

시작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점 건강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엄마 아빠에게도 이 책을 선물해 드려야겠다.


"이 글은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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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아내가 차려 준 밥상 매드앤미러 2
구한나리.신진오 지음 / 텍스티(TXTY)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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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은 많이 읽어봤지만

하나의 문장에서 출발한 두 가지 이야기라는

중편 소설집은 처음이었다.

같은 문장에서 각기 다른 이야기가 출발한다니

서로 다른 작가가 한 쌍을 이루어

하나의 문장으로 된 소설을 쓴다는

이 독특한 설정에 '매드앤미러'라는

시리즈물이 궁금하던 찰나에

매드앤미러 시리즈 2권

《사라진 아내가 차려 준 밥상》을 만나볼 수 있었다.


매드앤미러 시리즈는

국내 대표 호러 창작 집단인 매드클럽과

국내 최대 장르 작가 공동체 거울의

'같은 한 줄, 다른 이야기'라는

호러와 판타지의 대격돌을 담고 있다.


공통의 문장을 가지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작가들은

서로의 장면 가져오기 미션을 수행하기도 하고

같은 문장에서 출발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완성해 나가는데,

책 표지 역시 독자들이 직접

채색을 통해서 커스터마이징을 할 수 있어서

본격적인 독서에 들어가기 전

숨겨진 이미지를 찾으며 이야기를 예측하는

과정이 워밍업 같아서 즐겁기도 했다.


이번에 읽어보게 된 시리즈는

'삼인상'과 '매미가 울 때'라는 작품으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사라진 아내가 식사 준비를 하고 있다"

라는 문장을 녹여낸 두 가지 중편소설을 만날 수 있었다.


각 작품의 시간적 배경과 장소가 다른데

같은 문장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역시

방향이 다르게 펼쳐져서 서로 다른 두 이야기를

통해 공통적으로 그려내고자 하는

세계관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매미'의 요소,

또 사라진 아내가 차려준 밥상이라는 것이

각 작품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마치 작가 그룹과

독자 그룹이 서로 기싸움을 하듯

밀고 당기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나 할까.


〈삼인상〉은 묏맡골이라는 마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묏맡골은 다른 지역과 멀리 떨어져

고립되고 폐쇄된 마을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주인공.

사실 그를 임신한 상태에서 외지인이었던 어머니는

걷지 못할 몸으로 사흘을 헤매다가

이 마을에 당도하게 되었고,

마을 사람들은 지켜야 할 많은 규칙들 사이에서

좁은 해석을 하며 그녀와 그녀가 잉태한

아이를 마을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시간이 지나고 마을에서 한 명의 몫을

할 수 있을 법한 나이가 되었을 때,

어렸을 때부터 보아온 '현'에 대한 마음을 들키지만,

죽음을 앞두고도 어머니는 '당골'과 혼인하는 자가

맞이하게 될 운명을 걱정해 평범한 이와

짝을 이루길 당부한다.

하지만 나는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듯

현과의 혼인을 진행하고, 그 이후 조용하기만 했던

마을에 낯선 이들이 등장하고 그들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게 된다.


내내 지켜왔던 '삼인상'과

마을 대대로 이어온 어떤 '믿음' 사이에서

외지인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역귀 취급을 당하면서도

자신이 목숨을 걸고도 지키고자 했던

'현'을 위해 그는 기꺼이 산 아래로 나선다.

과연 그는 현을 구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올 수 있을까?

당골과 혼인하게 되는 이가 맞이하게 된다는

그 운명을 나는 거스를 수 있을까?


반면 〈매미가 울 때〉는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이가 없는 부부인 민규와 승희는

차를 타고 가다가 갑작스레 사고를 맞이한다.

정신이 들고 깨어나고 나서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안개가 가득 찬 길을 걷다가

알 수 없는 괴물 같은 존재(버섯으로 얼굴이 뒤덮인)를

마주하고 도망치다가 발견한 절로 들어가게 되는데,

그곳에는 민규와 승희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맞이한 도암이라는 스님은

그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는지

제대로 된 답도 없이 '매미소리를 따라가라'는 말을 한다.

다 같이 나선 길에서 조금 전까지 있던 절과 똑같이 생긴

절을 마주하고 그곳에는 도암과 똑 닮은 스님이

다시 한번 그들을 맞이한다.

거대한 매미 유충을 가리키며

'기억을 떠올린 자만이 시험에 응할 수 있다'라는 스님은

그들에게 기억을 떠올리고

파락의 심사를 받을 것을 권한다.

잊은 기억 속 숨겨진 사고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리도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 어떤 연관이 있을까?

과연 그들은 되돌아갈 수 있을까?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

또 어떤 묘사할 수 없는 미궁의 신적인 존재 앞에서

각 작품의 주인공들은 선택 앞에 놓인다.

각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처한 현실은

그들에게 넘어야 하는 벽이자

풀어야 하는 진실을 머금고 있는데

각기 다른 시대와 시간적 배경을 가진 이야기가

시작은 하나의 문장이었다는 점,

이토록 작가마다의 다른 문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 매드앤미러 시리즈의 매력임을

읽는 내내 느낄 수 있었다.


연결고리를 찾기 전

각 작품을 그 자체로 즐기고

또다시 한번 읽으며 작품 속 미션을 찾아보고,

하나의 큰 세계관을 발견하는 과정은

하나로 묶인 두 작품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게 해주었고

하나의 소설에 대대해서 이토록 깊이 있게

읽은 적이 있었나 하는 반성도 하게 해주었다.


두 작품 모두 초반에는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막바지에 이르러 격양되는 호흡이

비슷한 패턴처럼 느껴졌고,

마지막에 더해진 작가들의 인터뷰까지 읽으니

비로소 작품에 대한 이해와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것 같아서 더욱 좋았다.


'하나의 문장에서 출발한 두 가지 이야기'라는

설정에 제대로 충실한 매드앤미러시리즈!

아직 나오지 않은 나머지 작품들도 너무나 기대된다.


"이 글은 텍스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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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수성 수업 - 느끼는 법을 잊은 당신에게
정여울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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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해력, 어휘력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요즈음이다.

어떤 사건이나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서

'헐' '대박' '미쳤다'라는 하나의 표현으로

뭉뚱그려 버리는 사람들.

꼭 아이들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고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들과는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고 느낄 때도 있다.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감정과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국민 감성 멘토 작가 정여울이

감수성 근육을 키우기 위해

43번의 감정 연습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바로 《감수성 수업》이다.


외부 세계의 자극을 받아들이고 느끼는 성질이라는

감수성은 타고나는 것일까?

아니면 이것 또한 근육처럼 다듬고 키워갈 수 있는

성장의 아이콘일까?


누군가는 '감수성이 너무 예민한 사람들은 피곤해'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어떤 고통에도

유연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동안 읽고 배우고 경험한 사건들 속에서

비슷한 사례를 찾아내고,

그 모든 순간의 깨달음을 지혜롭게 종합해

영민하게 대처할 수 있다고 말이다.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였지만 유연하고 풍요롭지는

못했던 과거의 나를 '나만의 개성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해준 수많은 깨달음의 컬렉션을

이 책 속에 담음으로써

작가는 자신처럼 가장 나다운 삶의 감각을

깨우고자 하는 이들에게 손을 뻗는다.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에서는 자주 사용하지만

제대로 곱씹어 본 적이 없는 단어들에 대한

사유와 의미를 더하고 자신의 경험을 녹여내었다.

하나하나의 단어에 담긴 뜻을 다시 살피고,

그 의미를 나만의 내용으로 해석하는 것.

그 어떤 사전보다도 더 깊은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나만의 사전 만들기 같은 느낌으로

실천해 본다면 좋겠다.

2부에서는 우리가 매일 드나드는 공간과

사용하는 물건 등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을 제안하고 있다.

와인과 마들렌, 작가의 무덤, 악기 등에

담긴 이야기는 미처 몰랐던 부분도 있어서

작가의 시선을 통해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었다.

3부에서는 고전과 동화 등에 등장하는

인물과 캐릭터를 다루고 있는데,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언제 어디서든

우리를 지지해 줄 뮤즈를 소개한다.

익숙했던 동화와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한 해석을 읽으며 이 속에서

가장 나를 나답게 만들어줄 길을 찾는다.


책을 통해 작가가 말하는 감수성이란

어떤 특별한 기술이나 능력치가 아니다.

'가장 나다운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사소한 발견이나 시선을 일컫는 것으로,

미처 깨닫지 못한 나의 감정들을 촉촉하게

물을 주어 살아나게 해주고

비로소 꽃을 피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때로는 '나는 왜 이렇게 감수성이 예민하지?'

'나는 왜 이렇게 감성지수가 높아서 이렇게 힘들지?'

라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다.

타인과의 감성지수 밸런스가 맞지 않아서

혹은 이런 나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고

정의 내려야 할지 고민스러웠던 사람들에게

나의 그 감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어떻게 가꾸어야 촉촉하고 아름다운

꽃밭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연습할 수 있는

아름다운 감성 연습장 같은 책이었다.


충격적인 사건과 콘텐츠 범람 속에서

어떻게 느끼고 살아가고 이뤄야 할지

그 근본적인 힘을 찾을 수 있는 자구책!

나를 위한 가장 가장 확실한 컬렉션을

책을 읽는 모두가 쌓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이 글은 김영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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