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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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자의 시선에서

혹은 그들과 다른 외모, 문화를 가졌다는 이유로

배척당하고 차별받으며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여러 디아스포라 문학을 만났었다.

그들은 작품을 통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과 차별 속에서 느꼈던 고립감을

실감 나게 묘사하며 '다수'에 속하지 못한 이들이

느낄 수 있는 감정들에 대해서 차분히 쌓아갔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이동이 자유롭고

여러 사람들이 섞여서 지구라는 곳에서의

삶을 영위하고 있지만

여전히 고리타분하게도 다른 피부색, 인종,

어떤 신체적 특징, 문화에 대해서는

다르다는 인정에 앞서 '다수인 우리와 틀리다'는

옳고 그름으로 비뚤어지는 시선이 여전하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재일은

베트남 사람인 엄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파란 피부를 가진 아이다.

파란 피부와 엄마가 베트남 사람인 사실 중

어느 쪽이 더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어난 순간 가장 먼저 마주한 엄마 외의 타인,

그리고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재일은 자유롭지 못하고

어울려지지 못했으며 어디에도 속하지 못했다.


당시 재일의 아빠가 일하는 가구공장에서는

방글라데시, 몽골, 태국, 스리랑카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 사이에서 아빠는 같은 직장동료임에도

불구하고 계급이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서열은 대체로 피부색의 밝기와

출신 국가의 소득수준에 좌우됐는데,

한국 사람들이 사는 한국에 있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스스로에게 가장 높은 지위의 의미를 부여한 아빠는

이곳에 와 있는 다른 나라 사람들 앞에서

권력의 최상위에 군림했던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남들과 다른 피부색이라는 이유로

차별의 시선을 받던 재일은

1년에 한 번씩 엄마를 따라 외할머니 댁이 있는

베트남에 가면 알 수 없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곳에서는 자신을 향한 야릇한 눈빛이 없었고,

메콩강에서 하는 물놀이가 즐거웠던

한 명의 소년 그 자체였던 것.

그곳에서는 다름도 차별도 없는 오롯이

재일 자신으로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의 계획으로 미국으로 터전을 옮기게 된

재일의 가족은 때마침 건강이 좋지 않았던

외할머니를 걱정하던 엄마의 요청으로

엄마와 동생 재우는 베트남으로,

아빠와 재일은 미국으로 향한다.

비자가 만료되기 전 미국으로 와야 한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그 뒤로 엄마와의 연락은 끊기게 되고

영어가 서투른 아빠와 푸른 피부를 가진 재일,

두 사람은 낯선 미국 땅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낯선 미국에서의 생활은 언어장벽을 넘어선

인종 차이, 피부색 차이에서 비롯된 멸시까지

더해져 더욱 그를 고립시킨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점점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숨기는

재일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다.


같은 파란색 피부를 가진 친구를

소개받는 것을 꺼렸던 그가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관계를 맺으며 잠시나마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었던 시간은

그가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사건과 문제들 사이에서도

끝끝내 스러지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끼고 소중히 여기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신의 곁을 떠나고

그를 무너지게 만드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 회복하는 방법을 터득한 그가

이만큼 자라나 자신과 같은 블루 멜라닌을

찾아 나서는 그 여정을 지켜보자니

한편의 성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국과 미국을 넘나드는 여러 사건들과

정치적인 이슈들이 흘러가는 모습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듯했다.


소속감이라는 것이 인간의 최종 목표는 아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듯 보이는 그가

깊은 물속으로 스스로를 침잠시키며

바닥에 발을 닿으며 스스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며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은

애처로우면서도 기특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가 무너지지 않아서 좋았다.

그가 쉽게 스러지지 않고 맞서 일어나서 다행이었다.

차별 앞에서 당신들이 틀렸노라고

목소리를 내고 다시 또 일어서는 그라서 좋았다.

그는 이제 자신의 세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차별로부터 벗어나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을 향한 여정을 계속할 것이다.

그는 스스로 증명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피부색이 다른 것이 어떤 것도 문제가 되지 않음을,

어떤 문제를 만들지 않음을 말이다.


잔잔한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위로 올라오는 그의 모습이

마치 다수가 정답인 것 같은

지금의 차별 가득한 세상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떠오르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지금껏 접해왔던 디아스포라 문학의

여느 차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소설 속에서 다른 피부색은 인종이나 국가를 넘어선

또 다른 차원의 차별 같았다.


언제쯤 이 다름이 그저 다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아직도 갈 길이 먼 이 차별 앞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한 소년의 이야기에

조용히 힘을 실어본다.


"이 글은 한겨레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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