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을 마치 수필을 쓰듯이 담백하게 쓴 글이다

종교적인 색체보다는 마치 한폭의 수채화를 보고 있는 듯한 맑은 느낌을 준다

주님은 우리의 일상생활속에서, 평상시 삶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만 아니라 사무실을 청소하는 대걸레통에서도 선물코너에 있는 인형들 속에서도....

읽고 나면 어디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내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을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내게 말씀하고 계시는 주님의 표시를 찾게 된다....

 

성령은 우리 삶 속에서 예수님의 일을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다. 성령은 세 가지 방향으로 우리를 돕는다. 안으로(우리에게 성령의 열매를 주신다), 위로(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밖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부어주신다)

나는 자비를 선택하겠다
가난한 자들을 친절하게 대해주리라. 왜냐하면 그틀은 외로운 존재들이니까. 부자들을 친절하게 대해주리라. 왜냐하면 그틀은 두려움에 빠져 있으니까. 불친절한 자들을 친절하게 대해주리라.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그렇게 대해주셨으니까.

그분께로 가라. 그분 앞에서 솔직히 다 털어놓으라. 당신에게 해결하지 못한 문제점이 있다고 고백해라. 그분은 그것이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계신다. 단지 당신이 찾아와 도와달라고 말하기만 기다리고 계신다. 당신이 마대자루를 가져와 그분께 넘기기만 기다리고 계신다. 한번 해 보라.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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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정보였다면 하나님은 교육자를 보내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기술이였다면 하나님은 과학자를 보내 주셨을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돈이었다면 하나님은 경젱학자를 보내주셨을 것이디.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구세주를 보내주셨다

재산에 대한 하나님의 첫번째 원칙은 간단하다. 우리의 소유물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관리자일 뿐 소유자가 아니다. 우리의 돈은 우리의 것이 아니라 그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역할은 싸우시는 것이고, 우리의 역할은 믿는 것이다. 그냥 믿으라. 나설 생각도, 질문할 생각도 하지 마라. 우리의 역할은 그저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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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공장 - 복종하는 공부에 지친 이들을 위하여
강명관 지음 / 천년의상상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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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자본과 테크놀로지의 구조라는 괴물에 익숙해지는 동안 말하지 못하고 알면서도 모른척했던 것들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길한다

인문학은 기계처럼 찍어낼 수 없고, 구조에 의해 짜 맞춰질 수도 없다.

그것은 우리가 불온한 손길로 저항성과 비판성을 담아낼 때 가능하다.

우리의 고전문학과 역사는  아이들에게 동화로 읽히뿐이고 중고생에게는 오직 시험을 위한

대상일 뿐이며 어른들에겐 흥미를 줄수 있는 부분만 드라마로 영화로 변형되어 기억될 뿐이다

한문과 한국어로 나누어졌던 계층은 이제 영어를 사용하는 한국사람과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사람으로 또 다른 게층을 만들어 내고 있다

돈에 지배되는 인문학과 역사, 권력에 따라갈수 흔들릴수 밖에 없는 역사와 인문학

그것들의 앞날은 과연 어떻 모습으로 진행될수 있을까

모두가 한번쯤은 생각하고 고민하고 고심해봐야 할것이다

내 자신과 내 후손들을 위해....

 

 

더 웃기는 것은 학진의 연구비를 받기 위해 연구비 신청서를 쓰면서 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주장하였으나, 불행하게도 탈락한 경우, 그 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한순간에 증발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렇게 중요한 연구라면 연구비를 받지 않고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데 연구비를 받지 않으면 그런 연구 주제가 언제 있었냐는듯이 왜 연구를 포기하는가?

전근대 사회에서 구성원의 대다수를 이루는 농민과 어민, 노비는 그 수에 상관없이 소수자였다.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 역시 소수자였다. 소수자인 그들의 입장에서 역사를 쓴다면, 그 역사는 완전히 달리 기술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영웅서사시로서의 한국사는 소수자가 원초적으로 경험할 수 없는 역사를 그들의 역사로 각인시키는 도구가 될 뿐이다.

역사는 읽히지 않으면, 공터에 내버려진 의미 없는 사물일 뿐이다. 역사는, 독자에게 읽혀 자신을 독자의 대뇌에 복제함으로써 그를 진리로 믿게 하는 데 존재 의의가 있다. 학교 교육은 그 과정을 강제화한 것이다.

국문학 연구와 국문학과는 사랄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국가에 의해 강제된 초.중.고등학교 국어 교육의 영역에서 내셔널리즘을 생산하는 주요 수단으로 존재하기에 국어(한국어)와 함께 영원히 존족할 것이다. 하지만 국어 교육의 영역, 좁게는 국어교과서와 대학입시를 벗어나면 국문학은 순식간에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할 것이다 춘향전과 심청전을 민족의 고전으로 칭송하는 것은 국어교과서일 뿐이고, 아무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찾아 읽지 않는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민족의 고전인 국문소설, 예컨대 흥부전과 심청전은 유아나 초등학교 저학년의 독서물로 존재할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영어는 국어보다 훨씬 더 중요한 생존수단이 되고 있다. 아마도 조만간 한국 사회의 귀족들은 한국어로 쓰인 책이나 한국어로 번역된 책을 읽지 않고, 영어원서를 읽을 것이다 한문/한국어로 구분되었던 한국인의 사용 언어는 이제 영어/한국어의 관계로 급속하게 치환되고 있다. 한국어가 제1언어의 자리를 내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지만, 귀족들의 제1언어는 영어가 되고 말것이다.

이제 자본은 인간의 삶 전체를 지배 관리하고 삶 전체를 이윤 추구의 공간으로 삼기에 이윤과 관련되지 않거나 관련성이 희박한 부분에까지 이윤을 낳을 것을 요구한다. 종교와 학교, 의료, 예술은 자본과 관련이 희박한 부분이지만 급속도로 자본에 포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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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큰글자 2016.6 (개역개정판.새찬송가)
생명의삶 편집부 엮음 / 두란노(잡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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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많이 상처를 받는것은 다른사람과의 비교 때문일것이다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듯이 이 별과저 별의 영광이 다르듯이 남과 비교하는 사람은 굉장이 어리석은 사람이다.
나는 내가 받을 영광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 땅에서 무엇을 움켜쥐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많이 전달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걸 알면서도 난 이시간에도 또 다른 사람과 날 비교하며 나에게 없는것만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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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민정 2016-07-02 01: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미 많은 것을 받았음에도 감사하지 못하고 자꾸 남과 비교하며 더 많이 가지려고, 더 높아지려고 그러죠.. 여기에 큐티내용을 올려주셔서 정말 반갑고 감사합니다~ ^^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이종화 지음 / 홍성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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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 책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내용인것 같다

화면을 보며 강의를 듣는다면 이 책 내용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또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주역을 풀이해논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책을 읽다가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많아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했다

 

이 책은 역사추리소설로 그 내용은 (중국고전 속의 기독교 교의)라는 프레마르신부가 1725년에 라틴어로 쓴 책의 내용을 소설로 다시 구성한 것이다

 

경종1년 한 스승 밑에서 역경을 배우던 4친구들 중 2명이 연경을 다녀오게 되고 프랑스 신부를 만나 책을 한권 가져오게 되는데 그 당시 노론과 소론의 대립속에 5명의 사람이 서경에 나오는 오형(코를 베이고 손목과 팔꿈치 베이고......등)을 당하는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펼쳐진다

 

공자가 천주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올 것을 알고 있었고 어떻게 죽는다는 것이 한문(상형문자)에 그대로 표현되어 해석되고 있다면 당사자인 중국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그 반응이 궁금해진다

 

 

 

 

 

사람의 영혼은 육신과 달리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내세의 희망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요. 사람에게 죽음이 무서운 이유는 영혼이 가는 곳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렴풋하게나마 홀로 어두운 골짜기로 들어가는것 같은 생각에, 마음에 깊은 고독감을 느끼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사라미 죽음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그에게 영혼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신부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영원한 생명이 내 영혼 안에 있다면 죽음조차 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소. 나눈 무엇 때문에 세상에 왔는지 몰랐소만, 그 책을 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끼고 있소.

누가 나를 다스리느냐 하는 다스림의 문제이니까욧. 내가 나를다스리지 않고 주님이 나를 다스리게 되면, 내 인생의 주인으로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왔던 예전의 방식이 다시 이어질까 두려워지게 되는 것이지요. 아무 염려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돌아가십시오. 천주께서 지혜의 마음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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