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요시키 형사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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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뭔가 하늘의 의지가 움직인 것 같습니다. 32년 전의 그날 밤 하늘이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것으로 된게 아닐까요."

 

시마다 소지의 이름은 <점성술 살인사건>과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로 장르(추리)소설을 읽는 이들에게 한번은 거쳐야 할 작가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사실 <점성술 살인사건>을 먼저 구매했는데 어떻하다보니 읽게 된 책은 <여름, 19세의 초상>이었어요. 내용이 잘은 기억나지않지만 '시마다 소지'의 이름에 걸맞지않은 작품으로 큰 기대를 가지고 접했는데 끝에는 실망했던 기억만 남습니다. 청개구리 심뽀때문인지 재밌다는 작품은 읽지않고 다른 작품부터 읽고선 멋대로 실망을 해버렸어요. 그러고는 시마다 소지의 작품은 눈길도 주지않다 지난번 이웃님과의 모임에서의 강력 추천에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를 뒤늦게 접하게 되었습니다.

 

사회파에도 속하지만 본격에도 속하는 소설입니다.

눈보라치는 겨울 일어난 열차에서의 자살사건, 시체가 있었던 화장실 문을 30초 뒤에 열어보니 시체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남은 것은 화장실 바닥에 있는 불붙은 양초들뿐이라 분위기가 어쩐지 괴이스럽기도하구요. 이야기는 30여년의 공간을 뛰어넘어 진행됩니다. 1957년의 열차에서의 사건들과 1989년의 고작 소비세 12엔으로 사람을 죽인 노망난 노인이 등장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확연한 살인사건이라 속사정은 어떻든 그냥 지나치려는 상부에 반발하여 요시키라는 형사는 뭔가 석연찮은 점을 느껴 '노망난 노인'에대해 파헤칩니다. 남들이 보기에도 어리둥절한 소비세 12엔 때문에 사건이 일어난 건지, 아니면 그 속 사정엔 무엇이 있을련지 의문점을 가지면서요.

 

추리 소설은 킬링 타임용 소설이 아니냐구요? 그 말에 추천할 다른 책도 많지만, 그 중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는 추천작에 빼놓을 수 없는 작품입니다. 하늘을 움직이다라는 거창한 제목 안에 소비세 12엔으로 상점 여주인을 죽인 노인의 이야기라니요. 일단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작가는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넘기지않고 살펴보게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무심결에 지나쳤던 장면이 나중에는 다 연관이 되니까요. 아니 우선 한국과 일본에 관한 숨길 수 없는 과거사를 적나라하게 소설로 재구성한 점이 놀랍습니다. 그것이 주가 된 내용이 <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였습니다. 아니, 입니다.

 

그들은 오렌지색 셔츠를 입거나 여자와 걷거나 혼자 미국영화를 보러 가는 젊은이를 후렬갈기는 것이 정의로운 행위라고 굳게 믿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진심으로 나라를 위한다기보다,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을 즐긴 것 같다. 요컹대 나라를 위해서라는 이유를 붙여 조직폭력배처럼 폭력을 휘두르는 자신을 정당화할 뿐인 것 같았다.

-p.289

 

"형사님처럼 전후 태생인 분은 모르시겠지만 지독했습니다. 저는 여씨 형제의 일도 있고 해서 관심을 가져 책을 많이 주문해서 읽었습니다. 사할린에는 지금도 일본인이 강제로 보내 노동을 시킨 조선인이 4만 명 이상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짓을 한 일본인은 모르는 척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전쟁 탓이라고 해도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런 도리에 어긋난 일들을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은 진정한 일등 국가가 못 될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화를 내는 일본인도 있지만 저는 정말로 일본인을 위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p.381

 

도대체 어떻게 된 사건이란 말인가!

-p.389

 

요시키는 의자에 앉아 잠시 말없이 노인 여태영을 바라보았다. 늙고 더러운 작은 동물 같았다. 조선 반도에서부터의 기나긴, 그리고 힘들고 고독한 여정을 작고 굽은 등이 말해주고 있었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요시키는 가슴이 꽉 막혔다. 묵묵히 오른쪽으로 돌아 유치장 밖으로 나가고 싶은 기분과 싸웠다. 자신도 여기에 이르기까지 나름대로 긴 여행을 했지만 이 작은 노인에 비하면 그것은 정말로 별 것이 아니었다. 얼마간 고생도 했지만 이 노인을 앞에 두니 보답이 필요하다는 기분은 추호도 솟지 않았다. 성과를 휙 던져버리고 그저 노인 앞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 요시키 앞에 있는 이 노인은 아득한 옛날, 일본인이 범한 죄의 응보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에 대해 일본인인 자신은 설사 경찰관이라 해도, 아니 경찰관이기 때문에 절대로 고압적인 말을 내뱉을 수 없다. 요시키는 마치 자신이 40년 저편의 일본인의 죄를 혼자 짊어진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p.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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