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체는 누구? ㅣ 귀족 탐정 피터 윔지 1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10년 10월
평점 :
시체는 누구?
글쓴이 도로시 L. 세이어즈
옮긴이 박현주
시공사
이번에 셜록 홈즈를 영화로 보고나니 그 시대에 지어진(배경이 아닌) 추리 소설이 읽고싶어졌다. 어떤 책을 읽을지 여러모로 찾고있는데, 눈에 띈 것은 최근에 그 세 번째 시리즈가 출간된 ‘귀족 탐정 피터 윔지경’ 시리즈다. 사실 <맹독>을 먼저 읽었는데, 왠지 이 이야기가 3번째이고 첫 번째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에 책장이 쉬이 넘겨지지가 않았다. 그렇게해서 만나게 된 책이 <시체는 누구>이다.
귀족 탐정 피터 윔지경 시리즈라고해서 생각나는 것은 귀족이니 보기 싫게 거만 떨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이거 웬걸?! 뼛 속부터해서 귀족인 피터경 생각보다 허술한 인간이지 않은가?! 하인 번터의 의견을 존중할 줄도 알고...! 번터는 유능한 인물로 나오는데 애서가인 피터경이 예산보다 육십 파운드나 적게 경매에서 책을 산 번터에게 이 육십 파운드는 자네로 인해 생긴 돈이니 원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사준다고한다. 여기의 웃음 포인트는 번터의 대답니다.
“ㅡ이 육십 파운드는 자네 돈이야. 뭘 하고 싶나? 자네 일하는 데 필요한 물건을 살까?
이 아파트 물건 중에 뭐 바꾸고 싶은 거라도 있나?"
-> 아파트 물건 바꾸는 거는 너꺼잖아?ㅋㅋ
“글쎄요, 주인님. 주인님께서 그런 친절을 다 베풀어 주시니....”
하인은 술잔에 숙성된 브랜디를 따르려고 말을 멈췄다.
“솔직히 털어놓게. 번터. 얌전 뺄 필요없어. 저녁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릴 때와 똑같은 투로 말해 봤자 소용없어.
이런, 브랜디를 좀 흘렸군. 목소리는 야곱의 것이로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자네의 근사한 암실에 필요한 게 대체 뭔가?”
“보조 렌즈가 달린 이중 비점수차 보정렌즈라는 게 있습니다, 도련님.”
-p. 29- |
크크큭. 이렇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는 피터경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하는 천연덕스러움이란-! 정보원의 임무도 충실히 수행하는 유능한 번터-! 번터의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ㅡ
네. 그레이브스 씨. 사는 게 참 힘들어요. 낮에는 주인님 시중을 들고, 밤에는 사진 현상을 한답니다.
여섯시 반부터 열한 시까지 언제든지 원하시면 차를 내 가야하고요. 항상 범죄 수사를 해야 하죠.
정말 놀랍지 않아요? 하릴없는 부자들이 머릿속에 갖고 있는 생각들이란.”
-p.91- |
특히 마지막 문장의 하릴없는 “부자들이 머릿속에 갖고 있는 생각들이란.”에 웃음보가 빵 터져버렸다. 이 뿐 아닌 잠시 집을 떠나 요양차 본가에 있는 피터경에게 보낸 전보의 내용도 기가 막힌다. 이 장면은 번터가 피터경이 생각하는 용의자의 하인을 집에 초대하면서 벌어진 일들이다.
참, 주인님의 술 창고 덕을 많이 봤다는 사실을 덧붙일 수밖에 없겠습니다.
콕번 68년도 산과 1800년도 산 나폴레옹을 둘 다 꽤 마셨는데도 아침에 일어났을 때 두통이나 숙취가 느껴지지 않더군요.
ㅡ
“이런, 가끔 머빈 번터는 나를 놀리는 것 같단 말이지.”
-p.267~268- |
마치 주인과 하인의 관계가 아닌 것 같다. 내용이 전체적으로 심각한 분위기가 아닌 중간 중간 이 둘의 이야기를 보는 것도 재미나게 진행된다.
이렇듯 피터경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꾸밈없고 거만하지않다. 그리고 그의 장광설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정신없게 만드는데 일과견이 있는데, 이는 책을 읽는 이 역시 그렇게 만드는 장점이있다. 어떤 이의 기억을 끄집어 낼때, 빙빙 돌려가면서 말하는 그 장면이란. 본인도 일주일 전의 일은 당연히 기억 못한다며 말했다가 그의 장광설에 휩쓸려 어느새 줄줄 이야기하고있는 것에 놀래 내가 이렇게 기억력이 좋은지 몰랐다, 그런데 왜 xx 관련은 채를 걸러내는 것처럼 다 빠져나가 기억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는 대목을 보고 피터경의 장광설마저 재밌어 보이고 매력있어 보이니 그의 매력은 어디까지일까 생각했다.
책에는 사건이 두가지가 나오는데, 그 첫번째는 벌거벗은 시체에 값비싼 황금 코 외알 안경이 시체에 있던 사건이고, 두 번째는 자산가 루벤 레비경의 실종이다. 여기서 벌거벗은 시체가 건축가 팁스씨의 아파트 욕조에서 발견되는데, 팁스씨는 경찰에 끌려가며 윔지경에게 본인의 누명을 벗겨달라며 사건을 의뢰한다. 뜬금없지만 본론으로 들어가서 피터경의 친한 친구인 경찰 파커가 있다. 파커와의 대화도 번터와 대화만큼이나 웃음을 준다. 피터경은 본인이 추리한 것을 상세히 설명을 해주며 본인의 일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도 말한다. 여기서 재밌는 부분은 사건을 추리하면서 황금 코 외알 안경의 주인을 찾으러 간 대목이다. 이 대목 역시 피터경은 파커를 본인의 장광설에 정신없이 만들어 놓으며 경찰인 너까지 갈 필요없다고 설득하는 장면이다.(파커는 본인이 경찰인걸 말하며 겁에질리게 만들자는 건데 피터는 거부)
“하지만 경시청에서 나왔다고 위협해서 크림플셤(외알안경 주인)에게 겁을 줄 수 있을텐데.”
“다 필요 없네. 그 문제에 관해서라면 내가 자네 이름을 들먹이면서 그 자를 겁줄 수도 있어.
ㅡ
사건 수사할 시간을 여기에 낭비하는 셈이 되지 않겠나. 자네도 할 일이 있을 거 아냐.”
“그럼 뭐.”
파커는 입을 꾹 다물고 가만히 있다가 못마땅하다는 듯 다시 말했다.
“왜 내가 가면 안 되나?”
“무슨 소리!”
피터 경이 펄쩍 뛰었다.
“나는 이 사건을 위임받았네. 깊이 존경하고있는 팁스 부인에게서 말일세.
자네를 이 일에 끼워 준 것은 단지 호의해서 나온 행동일 뿐이야.”
파커는 투덜댔다.
-p.144~145- |
이렇게 귀여울 수 있을까. 엣헴, 나이먹은 어른들을 귀엽다고 표현하면 안되는데, 책을 읽다 이런 깨알같은 장면에 귀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피터경이라는 캐릭터가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공작가 막내 아들로 추리하는걸 좋아하고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며 귀족이지만, 전혀 오만하지않고 본인의 감정 표현에 솔직한 사람이라고. 하지만 스트레스가 쌓이면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피터경은 정신이 없는 둥 여러 가지 장단점이 있지만 그런 인간적인 부분까지 보여줘 매력적인 탐정이라 느껴진다. 20세기 영국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도 있고. 고전 추리 소설을 찾고 있다면 귀족 탐정 피터 윔지경 시리즈 어떨까.
<책 읽었을때 같이 생각난 작품>
<증인이 너무 많다> : 피터 윔지경 시리즈 2
<맹독> : 피터 윔지경 시리즈 3
<프랜차이즈 저택 살인사건> : 고상한 말투로 진행되는 클래식한 추리소설. 글의 분위기와 고상한 말투로 진행되는 서술 방식으로 비슷한 분위기를 풍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