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기에 없었다
안드레아 바츠 지음, 이나경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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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두 여성이 있다.

 단짝인 두 사람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멀어진 장소에 방문한다.

 여행차 캄보디아에 한 번, 칠레에 한 번.

 모든 게 다 좋았다, 그 일을 겪기 전에는.


 그녀들은 여행 마지막 날 살인을 저지른다. 그것도 두 번이나.

 캄보디아에서 만난 남자도, 칠레에서 만난 남자도

 그녀들이 죽였다.


 살인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분노에 휩싸인 남자들이 그녀들에게 잔혹한 폭력을 퍼부었고,

 성폭행으로 이어졌다.

 그녀들은 저항했다. 주변에 보이는 둔탁한 물건을 들어

 그들의 머리를 강타했다.


 그녀들은 신고나 자백 대신 시체 유기를 택했다.

 세바스티안을, 파올로를 땅에 묻었다.

 그렇게 두 여행지에서, 

 두 사람이 그녀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다.

 

 여행지에서 돌아온 그녀들은 

 다시금 일상을 영위하는 듯했다.

 크리스틴은 정말이지 의연해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그녀의 모습에

 나도, 에밀리도 우수수 소름이 돋았다.


 에밀리는 달랐다.

 꽁꽁 숨겨둔 시체가 누군가에게 드러나는 건 아닌지,

 그래서 경찰이 자신들을 체포하고, 

 그녀들이 저지른 살인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건 아닌지

 초조하고, 불안해했다.

 그럴수록 그녀는 단짝이자 우상인 크리스틴에게 지독스레 의존했다.


 에밀리는 자신이 저지른 짓에 묶여 자유롭지 못했다.

 그녀의 두뇌는 기억의 조각을 왜곡하고, 편집하여

 겨우내 그녀가 일상을 이어갈 수 있게 했다. 


 그녀는 분명 위태로워 보였다.

 방송에서 시체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순간,

 그녀가 내보인 두려움은 형용하기 힘들 만큼 상당했다.

 이처럼 살인을 저지른 두 여성이 보인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크리스틴의 의연한 태도와 에밀리의 공포심, 두려움.

 이 모든 게 어우러져 읽는 내내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냈다.


 에밀리의 두려움이 극에 달한 시점,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크리스틴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고,

 에밀리는 자신들이 저지른 일과

 크리스틴의 과거를 연관 지어 바라본다.


 탁월한 심리 묘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

 그리고 반전이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니

 어찌 이 책을 별로라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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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한 번의 계절을 지나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최윤영 옮김 / 모모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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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의에서 비롯된 우연은 이따금 필연을 낳는다.

 그가 그랬다. 

 차에 치일 뻔한 고양이를 구하고 얻은 타임 리프 능력은

 분명 쓰임새가 있을 터였다.

 어쩌면 그것은 

 그에게, 또는 그의 주변에 불행한 일이 생겨

 과거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혹은 돌아가야만 하는 일이 생길 거라는

 불길한 조짐을 나타내기도 했다.


 흔히 안 좋은 예감은 불운한 결과로 이어지곤 한다.

 그 역시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의 아내 미노리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의사는 그녀가 11년 전 당한 사고가

 죽음의 원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보다 소중한 그녀를 살리기 위해

 11년 전 과거로 돌아가리라 다짐한다.

 

 그가 얻은 타임 리프 능력은 

 되돌린 시간의 5배를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11년을 돌이키기 위해 그가 지불한 수명은 55년.

 

 11년 전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마주한 그녀를 보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다.

 자신의 희생은 아랑곳 않고 

 오로지 그녀의 행복만을 바라는 모습은

 한없이 순수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가 내린 선택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녀를 향한 그의 거룩한 마음에

 차마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로맨스와 타임 리프가 어우러져 

 순수하고, 안타까운 사랑을 그린 이 소설은

 가슴 사무치는 반전과

 타임 리프에 대가가 존재한다는 설정으로

 슬픔을 빚어내고, 배가했다. 

 그가 미노리를 향해 내보인 지고지순한 마음이 

 기억 속에 오래 머무르며 쉽사리 사라지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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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지금 그대로 좋다
서미태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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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글은 행복한 기억처럼 

  살며시 내 마음에 스며들어 나를 살살 어루만진다.

  그런 글을 만나길 바랐다.

  

  막연한 위로도 누군가에겐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에 

  차마 고개를 가로저을 수 없었다.

  분명 큰 힘이 될 수도 있을 터였다, 누군가에겐

  하지만 나에겐 아니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의 글은 접착면이 없는 날아가기 쉬운 글이었으니

  사뭇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달리 생각해보면,

  나는 그의 글을 너무도 뾰족하게 바라본 걸지도 모르겠다.

  

  어떤 책이든 나에게 도움이 될, 

  좋은 무언가를 뽑아낼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찾아보았다,

  공감이 된 글 하나를


  분명 어디선가 진실한 순간이 있었기에

  떠난 그가 그립고도 미운 거라고.

  

  그리고 찾아보았다.

  오래도록 간직할 글 하나를


  내가 건넨 말이 어쩌면 누군가의 마음에 평생 남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따듯함과 든든함을 담은 말만 건네려 노력하겠다는 말을,

  쉬이 떠나보내지 못할 듯하다.


  저자의 글이

  자그마한 위로를 바라는 누군가에게

  따듯함으로 자리하기를


  저자의 글이

  포스트잇처럼 

  독자들의 마음에 딱 달라붙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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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사람들 부크크오리지널 7
보루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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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틈 사이로 비죽 얼굴을 내민 아침 햇살이 침대를 비추었다.

게슴츠레한 눈을 겨우내 치켜뜨고 기지개를 켜는 주혁

 

주위를 돌아본다. 아내가 없다.

침대 옆에도, 집 안 곳곳을 뒤져도 아내는 없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없는 번호라는 기계음이 수화기 너머 들려올 뿐이었다.

아내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고 직감했다. 부랴부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내의 행방을 물었다.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외려 나한테 며느리가 어디 있냐?”고 되묻는 어머니.

주혁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에도 아내의 흔적은 없었다.

주혁은 곧장 경찰서로 향했다.

아무도 그가 한 말을 믿지 않았다.

주혁은 당황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아내의 친구 세영을 만났다.

어머니와 같은 반응이다.

그녀 역시 아내의 존재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연달아 터지며 주혁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했다.

감정이 격앙되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세영을 다그쳤다.

그 순간 누군가 주혁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리고, 은밀하게, 주혁을 인파가 없는 조용한 곳으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주혁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을 만난다.

장수는 딸을, 정연은 아들을, 보배는 어머니를 잃었다, 소리 소문도 없이.

 

그들이 사건의 진실에 한 걸음 다가갈수록

상황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작중 방송 패널들이 탁상공론을 펼치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독자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아주 친절하고 티가 나게 말이다.

 

이야기가 결말에 다다랐을 때

피부 위로 우수수 닭살이 솟아났다.

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예상 그대로 들어맞을 거라 생각한 당신의 추리가

약간은 어긋날 거라고

-

소중한 사람이 느닷없이 사라지는 상상을 해본 적 있는가.

그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그를 아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다.

만약 주혁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행동하겠는가.

당신이 한 행동이 또 다른 당신을 만든다면

당신은 도중에 멈출 수 있겠는가, 당신의 소중한 사람을 찾는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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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강의 교유서가 어제의책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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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정의는 지고하신 주를 움직이시어

신의 권능과 최고의 지와

원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지옥편 제3- 지옥문)

 

1. 지옥에 들어오지 않을 자, 희망을 가져라

단테는 지옥을 이야기했고

나는 희망을 봤다

지옥은 어떠한 희망의 바람도 불지 않는 곳

도대체 어떻게 희망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지옥문에 새겨진

희망을 버려야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라는 말에 주목하자.

 

희망을 버리면 지옥에 간다.

모든 희망을 남겨 두고 들어간 곳이 지옥이다.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면

살아있어도 지옥에 머무르는 기분이리라.

이들 눈앞에 펼쳐진 지옥은 다름 아닌 생지옥

 

지옥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 희망도 품지 않고

죽음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

 

죽음을 희망의 영역에 집어넣고

지옥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지옥에 사는 사람을 생각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희망과 함께한다.

 

따라서 희망의 덕을 기르는 행위는

단순히 정신 건강을 위함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존재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옥문을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희망을 버려야 지옥에 들어설 수 있다.

희망을 품어라, 인간으로서 존재하고자 한다면

희망을 보라.

그리고 소망하라, 희망을 가지게 해달라고.

 

2. 어쩌면 지옥문을 당신을 지칭할지도 모른다.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에는 가 다수 등장한다.

 

저자가 말하길

여기서 는 지옥문을 칭하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흠칫 놀라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내가 던진 말이, 내가 한 행동이

상대를 고뇌와 슬픔의 도시로 보내지는 않았는지 생각했다.

 

저자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남에게 좌절을 안겨 준 일은 없었는지

선생이라는 신분으로 잘못된 가르침을 준 일은 없었는지

그는 자문을 거듭했다.

 

이 모든 게 단테가 의도한 바라면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으리.

 

3.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베르질리오를 기다린다.

스승은 내 손을 잡아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환한 표정이었다.

힘을 북돋워 주며 나와 함께 들어섰다

비밀의 장소로.

(지옥편 제3)

 

어둠의 숲에 들어선 단테는

스승 베르질리오를 만난다.

 

덤불로 변해 피를 흘리며 우는 자들에게

다가가길 꺼려하는 단테를 보고

베르질리오는 말했다.

 

너는 여기서 봐야 할 것이 있느니라.”

 

그는 엄격한 말 뒤로 상냥함을 내뿜었다.

머뭇거리는 단테에게

이곳에서 지켜야 할 책임을 요했다.

 

그는 단테에게 무언가 알려주길 원했고

이에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상냥함을 잃지 않았다.

환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저자는 말한다.

돌이켜보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모두 어디에선가

이러한 상냥한 안내를 한두 번은 받지 않았을까라고

누구나 타인에게 작은 베르질리오가 돼 줄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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