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과학 - 우리가 세상을 읽을 때 필요한 21가지
마커스 초운 지음, 이덕환 옮김 / 까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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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초운은 과학계의 발견을 단순명료하게 전달하는 과학 저널리스트이자, 과학에 대한 높은 견식과 안목을 동원해 우리가 평상시에 쉽게 지나치지만, 일상에 완벽하게 스며든 여러 과학적 질서를 그리는 작가로 널리 알려졌다. 이 책은 현대 과학에서도 최신 발견에 속하는 개념(힉스장, 표준모형 등)과 비교적 낯익은 개념을 동시에 풀어내며, 과학에서 중요한 질문인 그 현상이 ‘어떻게 일어났는가’와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쉽고 짧은 답을 제시한다. 과학은 인풋과 동시에 지식이 증발하는 기현상을 보일 만큼 생경하고 멀리하는 분야이나 이렇게 읽기 쉽게 풀어놓은 책을 만날 때면 과학에 대한 재미가 붙어 뉴런 사이의 연결이 조금은 강화되는 것만 같다. 신경 가소성이라는 개념도 결국은 무언가를 이해하고 몸에 익어야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던가. 다윈과 멘델, 그리고 모건으로 이어지는 유전학의 진보가 머릿속에서 몇 개의 쌍으로 연결되고, 사방으로 퍼져 주워 담기를 포기했던 개념들이 한데 모이는 느낌이란 잘 쓰인 책이 짜릿한 성취감을 맛보게 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상기하는 바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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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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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도 꿈꾼 자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가 감옥에서 쓴 소설 “돈키호테”의 정신을 좇아 정의를 위해 열정을 바쳐온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



타칭 돈 아저씨로 불리는 장영수 씨는 대전 선화동에 있는 작은 비디오 가게 주인이었다. ‘돈키호테 비디오’라는 빨간 간판을 내건 그 가게는, 비디오 대여 산업이 몰락의 길로 들어서자 덩달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오랫동안 사람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은 과거의 빈 공간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온 ‘나’에 의해 다시금 꿈과 열정이 들어찬 무대가 된다. 찐산초를 자처하며 돈 아저씨를 찾아 나서는 과정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기로 한 ‘나’. 그 여정에서 그녀가 우연을 긁어 모아 필연이 혼재된 인연을 맺어가는 모습에 한 명의 열렬한 구독자로서 지지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일견 쓸모없는 듯 보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숙원 사업이 될 수도 있다. 특별한 의미가 부여된 그 일을 위해 진지한 마음으로 인생의 여정을 떠나는 한 사람의 모습은 그를 지켜보는 불특정 다수에게 감정의 숲을 마구 헤집는 듯한 고양감을 느끼게 한다. 아아, 불 화산 같은 열정으로 무언가를 분주히 좇는 삶은 얼마나 강렬한가!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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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인생을 위한 짧은 일어 책 - 이것은 외국어 공부로 삶을 바꿀 당신을 위한 이야기 긴 인생을 위한 짧은 책
김미소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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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홀로 발버둥치며 가만히 꿰어온 일본어라는 구슬이 어느 날, 하나의 반짝이는 공예품이 되어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구슬 한 꿰미가 별과 같이 빛날 거라는 확신이 전혀 없을 때에도 무언가를 불태울 것처럼 계속 나아갔고, 아름답고 귀중한 것이 손에 쥐어졌다.

나는 재차 수능을 치르고 일본 문학을 전공하기로 결정했다. 성적과 전공이 기본적으로 이웃하며 등가적으로 존재하길 바라는 작은 기대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한 현실 앞에 오로록 무너졌다. 나는 반수생으로서 개인적인 책임이 있었다. 그 책임을 팽개치고 현실을 마주하지 않을 순 없었다. 학과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이었다. 두 번째 대학 생활, 바쁜 일상에 쫓겨 ‘나는 왜 언어를, 그것도 일본어를 학습하고 있을까?’ 하는 의식은 마음 어느 한 곳에 감춰졌다. 언어를 학습하는 한 사람으로서, 최소한 언어를 통해 나를 단련한다는 의지조차 없었다. 학점과 장학금, 둘의 등가 교환을 굳건히 해나갔을 뿐이다.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러나 달리다보니 꽤나 먼 곳까지 왔다고 생각했다. 2학년을 마무리할 즈음, 나는 일본어능력시험 1급을 치렀다. 학기별로 한 급수씩. 1학년 2학기에 3급을 치르고, 한 급수씩 올리는 식으로. 하지만 청해(듣기) 점수 미달로 1급은 재시험을 치러야 했다.

3학년 1학기가 끝날 무렵, 겨우내 1급 시험에 합격했다. 성취감이 내 머릿속에 홀연히 떠올랐다. 그리고 그것은 나를 허영심의 세계로 끌고 들어갔다. 일본에서 살아보자, 이 정도 실력이면 일상에 지장이 없을 거라는 자만. 한국에서 나의 나날은 별 탈 없이 흘러갔고, 일본에서 나의 나날 역시 별 탈 없이 흘러갈 거라는 확신. 그 마음을 동력 삼아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히로시마로 유학을 결정했다. 한국 사람들이 거의 없는 곳이야말로 일본어를 학습하는 올바른 방향이라 믿었다. 자만과 확신이 어느새 난처한 듯 침묵으로 일관하기까지 채 하루도 걸리지 않았음이다.

유려한 글말이 일상 대화를 보장하지 않는다. 일본어능력시험 1급에 합격했으니 일본에서 생활이 막힘없을 거라는 확고한 예감 같은 것은 불과 하루만에 무너져 내렸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주문할 때였다. 가게 안에서 먹고 갈 건지, 음식을 포장해서 가져갈 건지를 묻는 점원에게 はい!(하이) 만을 외쳐대는 무식용감한 나를 떠올리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부끄러움에 얼굴이 새빨개진다.

은연중에 바라온 생활 일본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나의 모습은 의외로 잦은 술자리에서 단련을 거듭했다. 질문하고, 몰래 구석에 틀어박혀 손에 들린 메모장에 끄적인 소중한 문장들은 어디서도 접하지 못한 생활 언어였다. 당신의 표정마저도 모방하고 말겠다는 강렬하고도 진지한 노력과 일본어를 구사해야 하는 환경에 자주 노출한 덕이었을까. 비록 막힘이 있고, 품이 들어도 소통이 불편함은 없었다. 외려 더욱 자연스러운 일본어를 구사하고 싶다는 생각에 힘이 실렸다고나 할까.

순수하게 일본어를 잘하고 싶다는 감정과 노력은 저자가 한 말처럼 몸에 그대로 새겨지는 듯했다. 더 이상 노력에 대한 성과를 확신하지 못해 그 노력이라는 것을 게을리하는 나는 없었다. 일단 부딪친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수반되어도 괜찮다. 긴장되는 상황 속에 나를 집어넣은 경험만큼은 분명히 남았다. 그것을 한데 모아 묶어놓으면 공부를 지속해나갈 새로운 동기가 되었다.

"새 언어는 내 몸 안에 소복이 눈처럼 쌓이는 거였다. 경험이 쌓이는 만큼 새 언어가 쌓였다. 반대로 경험이 없다면 쌓일 언어도 없었다. '지금-여기'의 세상으로 나가서 부딪치는 만큼, 당황한 만큼, 몸개그를 한 만큼, 학생들에게 웃음을 준 만큼 언어가 쌓이는 거였다."

의도하지 않은 삐걱거림이 외려 우리를 완벽함으로 이끈다. 그 보잘것없는 내 모습을 감당하게 될 때야 비로소 나의 말을 건넬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언어를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로 생각하라는 말이 소중한 기념품을 받은 양 마음에 남아있다. 언어를 더 잘 쓰게 된다는 건 각각의 언어를 100점으로 끌어올리는 게 아닌 언어와 언어 사이를 가로지르는 것이라는 그 말. 한 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언어를 대하는 내 세계를 확장시켰다는 점이다.

@shelter_dybook 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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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주 투자 절대 원칙 - 월가의 전설적 테크 애널리스트 마크 마하니의 투자 수업
마크 S. F. 마하니 지음, 이주영 옮김 / 리더스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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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한 개인 투자자의 입장에서 봐도 한 시대를 선도하는 기술을 가진 혁신 기업들을 향한 저자의 안목은 수준급이다. 이 책의 특징은 반평생을 기술주 분석에 몸 바쳐온, 월가에서 가장 오랜 시간 활동해 온 기술주 분석가인 저자가 세계 총생산 GDP에서 점점 비중을 늘려가는 빅테크 기업들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했다는 데 있다. 훌륭한 펀더멘털리스트를 지향하는 모든 투자자가 단시간에 기술주를 분석하는 높은 견식과 안목을 기르기란 여간하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아무리 건전한 펀더멘털을 지닌 종목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을 수시로 보이는 거대한 시장에서 개인 투자자는 언제든 돈을 잃기 쉬운 처지에 놓여 있다.

좋은 주식이라도 때로 엉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그는 명언한다. 하지만 기업의 펀더멘털은 대체로 주가의 장기적 움직임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수많은 지표를 바탕으로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향후 주식 투자 시에는 투매를 자제하고 관망할 줄 아는 노련한 투자자가 되어 무분별한 거래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을 줄일 참이다. 그 깊고 높은 식견에 받은 가르침의 요지는 대강 이러했다.

1. 투자자는 업계 최고의 기업과 종목을 골랐더라도 상당한 하락을 견뎌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때로는 완전히 회사의 통제 밖에 있는 이유 때문에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2. 분기 실적 발표를 이용한 단기 투자는 잘못되기 쉽다. 단기적 주가 변동성에 현혹되지 말라. 주식 변화는 펀더멘털 변화에 비해 늘 과장된다.
3. 주가는 중장기적으로 펀더멘털을 따른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은 주가는 종종 단기적으로 펀더멘털을 따르지 않기도 하지만, 이런 단기적 움직임 때문에 펀더멘털 개선에 따른 주가 (상승) 잠재력에서 멀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펀더멘털이 좋은 기업에 장기로 투자하고 단기 주가 변동을 무시한다면 높은 수익률을 거둘 가능성이 높다)
4. 기술주 투자자가 집중해야 할 세 가지 재무 지표 – 매출, 매출, 매출
- 일관되게 높은 매출 성장률을 유지하지 못하는 기업은 장기 주식으로서 실패
5. 기술주 투자자는 투자 시 기업의 ‘성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업이 공격적으로 수익성을 높이기 시작할 때 ‘뒤에 투자할 성장 확대 계획은 없는지’를 질문하고, 기업이 배당금을 지급하기 시작할 때 ’사업을 성장시킬 아이디어가 바닥나서 그만 두고 주주들에게 배당을 주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
6. 끈질긴 제품 혁신, 총 도달 가능 시장의 규모, 강력한 고객 가치 제안, 훌륭한 경영진은 높은 매출을 견인한다. 지속적인 높은 매출 성장률은 훌륭한 펀더멘털을 만든다.
- 총 도달 가능 시장 규모가 클 때 얻을 수 있는 이득
-> 경험 곡선 효과(동일 제품의 누적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단위당 제조 비용이 일정 비율로 저하하는 추세를 나타냄)
-> 단위 경제성의 이점 효과
-> 경제적 해자 효과 (경쟁사 진입을 막는 경제적 장벽을 의미)
-> 네트워크 효과(수요자 증대는 공급자 증대를 부르고, 공급자 증대는 다시금 수요자 증대를 부름. 선순환 플라이휠 효과마저 기대)
예) 넷플릭스, 안정적인 수입원이던 DVD 우편 사업을 버리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 이후 자체 콘텐츠를 제작하여 라이선스 비용 절감.
예) 아마존, 아마존 웹 서비스를 통해 수많은 기업들의 IT부서를 아웃소싱하고, 고정비를 상당히 절감시킴. 이외에도 아마존 킨들을 통해 전자책 붐을 일으킴.
예) 스포티파이, 인기 팟캐스터를 영입하기 위해 상당한 돈을 지불. 이에 소비자들은 고품질 팟캐스트를 광고 없이 들을 수 있었고, 나날이 고객 만족도 높아짐.
7. 6번에서 언급한 우량 기업 가운데 주가가 20~30퍼센트 하락했을 때나 PER 배수가 예상 EPS 성장률보다 낮은 경우, 이탈한 우량주 매입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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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4-03-09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핵심 정리가 도움되었어요.
 
데드미트 패러독스
강착원반 지음, 사토 그림 / 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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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좀비들과 공존동생을 하는 새로운 사회, 올랜도 제국에서는 이렇듯 살아 있는 시체와 사람이 더불어 사는 예사스럽지 않은 풍경이 펼쳐진다. 사망 후 최대 30일 이내에 다시금 살아나 좀비가 된다는 익숙한 플롯은, 그러나 좀비가 과연 살아 있는 존재인지 명확한 지침이 없다는 점에서 ‘부활’이라 칭하기에 다소 모호한 부분이 있다. 물론 그 부분은 이내 서브플롯으로 자리해 극의 후반부를 최대치의 흥미로 수놓는다.

한편, 이곳 사회에서 좀비는 값싼 노동력으로 치부되어 전형적인 차별의 온상이 된다. 기형적인 외형과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는 개성적인 면이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돌연변이처럼 보였으리라. 이에 두 개체는 더불어 사는 모양새 안에서 눈에 띄지 않게 서로의 구역을 설정한다. 상대를 향한 혐오로 무장한 각 구역 안에서 그들은 컵 안에 담긴 물과 기름처럼 나뉨을 자처한다.

공존과 차별이 아래위로 맞물린 이곳에서, 변호사 골드는 좀비인 동생 실버, 친좀비파 귀족 가문 출신 릴리와 함께 좀비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인간 우월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인 좀비들의 권리 신장에 앞장서는 그들은, 예상대로 고행의 가시밭길을 걷는다.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길. 그 길을 기어코 걸어간 인간 골드는,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 변호사를 연상시켰다. 백인 변호사 핀치가 인종적 편견이 상식으로 치부되던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비난을 무릅쓰고 흑인 톰을 변호했듯 말이다.

그 노력을, 혹자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낮잡아 보더라도 지금껏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온 건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차별을 깨부수고자 노력한 이들이었다.

깔끔한 작화 아래 탄탄한 구성과 개성적인 인물들이 수놓은 감동적인 이야기.
그 녀석 참 걸작이다.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힌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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