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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 『신곡』 강의 ㅣ 교유서가 어제의책
이마미치 도모노부 지음, 이영미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7월
평점 :
나를 지나는 사람은 슬픔의 도시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영원한 비탄으로
나를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정의는 지고하신 주를 움직이시어
신의 권능과 최고의 지와
원초의 사랑으로 나를 만들었다.
나보다 앞서는 피조물이란 영원한 것뿐이며
나 영원히 서 있으리
여기에 들어오는 자 희망을 버려라.
(지옥편 제3곡 - 지옥문)
1. 지옥에 들어오지 않을 자, 희망을 가져라
단테는 지옥을 이야기했고
나는 희망을 봤다
지옥은 어떠한 희망의 바람도 불지 않는 곳
도대체 어떻게 희망을 볼 수 있다는 말인가.
지옥문에 새겨진
“희망을 버려야 이곳에 들어갈 수 있다”라는 말에 주목하자.
희망을 버리면 지옥에 간다.
모든 희망을 남겨 두고 들어간 곳이 지옥이다.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면
살아있어도 지옥에 머무르는 기분이리라.
이들 눈앞에 펼쳐진 지옥은 다름 아닌 생지옥
지옥에 있는 사람은 어떠한 희망도 품지 않고
죽음의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
죽음을 희망의 영역에 집어넣고
지옥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다.
지옥에 사는 사람을 생각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희망과 함께한다.
따라서 희망의 덕을 기르는 행위는
단순히 정신 건강을 위함이 아니라
인간으로써 존재하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지옥문을 지나는 사람은 망자에 이른다.
희망을 버려야 지옥에 들어설 수 있다.
희망을 품어라, 인간으로서 존재하고자 한다면
희망을 보라.
그리고 소망하라, 희망을 가지게 해달라고.
2. 어쩌면 지옥문을 당신을 지칭할지도 모른다.
지옥문에 새겨진 글귀에는 ‘나’가 다수 등장한다.
저자가 말하길
“여기서 ‘나’는 지옥문을 칭하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흠칫 놀라 소름이 돋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가운데
내가 던진 말이, 내가 한 행동이
상대를 고뇌와 슬픔의 도시로 보내지는 않았는지 생각했다.
저자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남에게 좌절을 안겨 준 일은 없었는지
선생이라는 신분으로 잘못된 가르침을 준 일은 없었는지
그는 자문을 거듭했다.
이 모든 게 단테가 의도한 바라면
위대하다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으리.
3.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베르질리오를 기다린다.
스승은 내 손을 잡아 그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환한 표정이었다.
힘을 북돋워 주며 나와 함께 들어섰다
비밀의 장소로.
(지옥편 제3곡)
어둠의 숲에 들어선 단테는
스승 베르질리오를 만난다.
덤불로 변해 피를 흘리며 우는 자들에게
다가가길 꺼려하는 단테를 보고
베르질리오는 말했다.
“너는 여기서 봐야 할 것이 있느니라.”
그는 엄격한 말 뒤로 상냥함을 내뿜었다.
머뭇거리는 단테에게
이곳에서 지켜야 할 책임을 요했다.
그는 단테에게 무언가 알려주길 원했고
이에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하지만 상냥함을 잃지 않았다.
환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저자는 말한다.
“돌이켜보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우리는 모두 어디에선가
이러한 상냥한 안내를 한두 번은 받지 않았을까“라고
누구나 타인에게 작은 베르질리오가 돼 줄 수 있다
나 역시 마찬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