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인생에 바람을 초대하려면 - 세계적 지성이 들려주는 모험과 발견의 철학
파스칼 브뤼크네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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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부터 추운 날씨 탓에 몸을 움츠리기 시작했다.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행위가 마치 악몽과 사투를 벌이는 것처럼 심한 고통을 참는 일이 되어 버렸다. 날이 추워질수록 침대에 몸을 널브러뜨리고 싶은 욕망은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다는 그것처럼 크기를 키워갔다.

이제 집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시대. 아니, 우리는 자그마한 침대 한구석에 누워 대부분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대를 맞이했다. 침대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욕망은
현대 기술과 장비를 수놓아 기실 우리의 안락에 이바지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도 무엇이든 가능하다니 이 얼마나 멋진 세계인가.

주말이 되면 식구 모두가 자신만의 공간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진풍경은 비단 일부 가정에서만 보이는 모습이 아니리라. 안락을 탐하는 마음은 애초에 제동장치라고는 없었던 것처럼 작동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은 날이 갈수록 편함을 좇아가지만, 어째서 마음은 그것과는 달리 자꾸만 불편한 기색을 뛰는 걸까.

“존재한다는 건 자기를 줄이는 일이 된다.”(p42)
욕망은 영역을 넓혀 더 큰 공간을 차지하라고 주문하지만 되레 우리는 자신을 축소하기에 이른다. 한계가 없는 지식, 발전하는 기술, 그러나 우리의 삶은 줄어들고 있지는 않던가.

“스마트폰은 집으로 세상을 가져다준다. 세상이 내게 오기 때문에 나는 세상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p55)
작고 요란한 짐승은 끊임없이 우리를 매혹하며 우리의 의욕과 열정을 양분 삼고 있다. 고도로 세상을 연결한다는 순기능을 차치하고 우리는 그것 때문에 고도로 피로를 느끼지는 않았던가.

지리멸렬의 꽃이 활짝 핀 작금의 시대에 권태는 나비와 같다. 세상은 이미 내 손 안에 존재하고, 우리는 제자리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다. 권태는 홀로 찾아오지 않고 스트레스라는 동료와 함께 어울려 찾아온다. 나비 집단에 맞서 매번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으로 대항하고 있지만 오히려 이는 그들에게 먹이를 심어주는 꼴이다.

“스트레스와 싸우는 데 필요한 건 차분함이 아니라 진짜 사건, 자신을 벗어나는 경험이다. (중략)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건 현명함이 아니라 가벼운 광기요, 영적인 치료제가 아니라 짜릿한 도취다.”(p79)
혼자 보내는 시간은 회복과 명상의 시간이라 믿어온 나는, 지금 이곳에서 평화를 느끼는 게 인생의 행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면은 시간이 지날수록 갈증을 느끼고, 몸은 나태와 끈끈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구역질이 날 만큼 답답한 하루를 보내는 이유는 힘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벗어날 힘, 안에서 바깥으로 뛰쳐나갈 힘. 무미건조한 일상의 반대편으로 인생을 조타할 힘이, 나는 없었다. “슬리퍼를 벗을 일 없는 삶은 스니커즈를 신고 리듬감 있게 걸어가는 삶만큼 흥미롭지는 않다”라고 했던가. 문을 걸어 잠그고 평온을 누리는 일에 쉬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면 오늘만큼은 문을 활짝 열어젖혀 바람의 감각을 느껴보자.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묘지 위를 스치는 바람을 느끼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던 시인 폴 발레리처럼 우리도 바람을 초대하여 진정한 자유를 들이마셔야 하지 않을까.

- 출판사에서 보내주신 책을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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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으로 있어줘
고니시 마사테루 지음, 김은모 옮김 / 망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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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 또는 진부한 표현을 의미하는 문학용어 클리셰. 어쩌면 그것을 비틀어 깨트리는 일마저 또 다른 클리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작품이 있다. 국내에는 처음 소개된 고니시 마사테루의 작품 명탐정으로 있어줘는 클리셰의 반전을 역이용하는 낯선 반전을 통해 작중 스토리에 재미를 더했다.

 

저자가 차곡차곡 쌓아올린 클리셰는 일견 독자에게 범인을 유추할 수단처럼 보인다. 저자가 설정한 클리셰 범벅을 온몸에 덕지덕지 묻혀가며 저자와의 두뇌싸움에 우위를 점할 찰나 독자는 저자가 날린 충격의 어퍼컷 한 방에 몸의 중심을 잃는다. 그러나 수많은 작품을 통해 맷집을 키운 노련한 독자들은 다시금 중심을 잡고 그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클리셰의 반전이라는 어퍼컷에도 끄덕없던 독자들은, 어쩌면 당신의 어퍼컷을 예상했다는 듯 코웃음을 치지만 저자는 다시 한 번 잽을 날리는 것으로 독자들을 완전히 무력화시킨다.

 

일례로, 수영장의 인간 소실에서는 학생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수영장 내에서 갑자기 증발해 버리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물론 저자는 수많은 클리셰를 깔아두고, 인간 소실 뒤에 살인이 숨어있음을 은근하게 드러낸다. 독자는 저자가 깔아둔 클리셰를 따라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유추해내는 데 성공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범인이라 생각한 인물과 가짜 피해자의 공조라는 반전이 드러난다. 하지만 그러한 반전을 예상한 독자들도 여럿 있으리라. 저자는 클리셰의 반전을 식상하게 여기는 일부 독자들에게 히몬야 할아버지의 대사와 편지를 보여주어 그들을 완전히 넉다운시킨다.

 

한편, 우리는 완벽에 가까운 모습 뒤에 내면의 상처를 지닌 쓸쓸한 탐정에 강한 연민을 느끼곤 한다. 뛰어난 지성을 소유한 히몬야 할아버지는 손녀인 가에데가 고민을 거듭하던 사건도 손쉽게 풀어낼 만큼 탐정으로서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딸을 여위고 사위마저 암으로 떠나보낸 아픔을 지니고 있다. 그가 파킨슨병을 동반한 루이소체 치매에 걸려 환시와 현실의 경계를 수도 없이 옮겨 다니는 건 소중한 이들을 일찍이 떠나보낸 아픔의 크기가 상상도 못할 만큼 크게 자리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쾌복을 응원하는 독자가 비단 나뿐만은 아니리라.

 

히몬야 할아버지의 대사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겠다. 그가 내뱉은 일련의 대사들은 추리소설 장르에 대한 저자의 신조를 대변하는 의도적인 장치처럼 보였다. “주어진 상황을 자기 입맛에 맞춰서 착각하면 안 된다”(p166)라는 할아버지의 대사는 독자들에게 클리셰에 너무 휘둘리지 말 것을 주문하는 말처럼 들리곤 했다. 또한 출제자조차 알아차리지 못한 또 하나의 정답이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p174)라는 대사를 통해 저자는 독자 스스로가 자신이 설정한 것을 넘어 스토리를 재구성해볼 것을 넌지시 권한다. 저자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한 아름답고 뛰어난 스토리를 독자들이 만들어낼 수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겠다.

 

리들 스토리를 클리셰처럼 활용해 마지막까지 스토리에 재미를 더해준 작품. 독자는 저자의 의도대로 마지막까지 기존의 스토리를 자기 나름대로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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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의 전세역전 - 전세 사기 100% 충격 실화, 압류부터 공매까지
홍인혜 지음, 정민경 감수 / 세미콜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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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인혜, "루나의 전세역전"

🖋서론
올해 4월부터 전세 임차인(세입자)들이 임대인(집주인)의 동의 없이도 임대인의 국세 체납액을 열람할 수 있다고 한다. 임대인의 미납 세금은 집에 문제가 생겨 압류될 경우, 임차인 보증금보다 우선 변제 대상이 되므로 자칫 임차인의 보증금이 임대인의 세금을 완납하는 데 쓰일 우려가 있다. 하물며 임대인이 체납한 세금의 가산세마저 임차인의 권리를 앞선다고 하니 임차인 입장에서는 억울해 미칠 노릇이겠다.

그동안 세입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었던 건 일찍이 전입 및 확정 신고를 받아 대항력을 갖추거나 보증 보험에 가입하여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뿐이었다. 이마저도 악랄한 집주인을 만날 경우, 상냥함 뒤에 가려진 공갈과 협박의 칼날에 세입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그런 세입자 중 한 사람이었다.

🖋본론
새로이 전셋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수십 항목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어가며 근저당과 개별 등기 등을 꼼꼼하게 파악하던 저자는, 집주인의 문어발식 부동산 투자로 빚어진 세금 문제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다. 비극은 바닥 아래 지하까지도 얼굴을 들이미는지 그 집에 매겨진 높은 경매 입찰가를 집주인이 거절하며 저자는 보증금을 돌려받을 일말의 희망마저 잃게 된다. 힘겹게 번 돈을 너무도 쉽게 잃을 때면 그 돈을 번 시간과 노력까지도 부정당하는 것 같아 상당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런 시간을 견뎌내고 공매에 직접 참가하여 기어이 그 집을 사고야 만, 그래서 자신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저자의 모습에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저자는 자신에게 경제력이라는 행운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하나 수년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공매에 참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끌어냈을지 생각하면 대단하다고 밖에.

🖋결론
어느덧 그 사건이 과거의 기억 선반에 진열되어 더 이상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기까지 저자가 기울인 노력은 좋은 표본과 같았다.

격변하는 부동산과 이를 규율하는 법규가 그 속도를 맞추지 못하고, 많은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지 못해 일어난 피해를 언제나 힘 없는 사람만이 감당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은 정말이지 씁쓸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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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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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눈이 마주칠 때면 공연히 부루퉁한 표정을 지었을 은유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버지의 요청에 못 이겨 1년 뒤 자신에게 억척스럽게 편지를 써내려가는 은유.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은유의 모습에 나는 생긋 웃으며 15살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가족이 주는 영향력을 서서히 실감하던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스스로를 특별히 불행하다고 여겼다. 이해는 무슨 이해, 관심조차 내가 아닌 다른 곳에 쏟아내는 부모님에게 나는 실망과 분노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했던 것 같다. 거듭된 무심함과 짧은 대화 속에서 그것이 그분들이 할 수 있는 나름의 배려임을 알게 되기까지 얼마나 속앓이를 많이 했던가. 지나친 관심이 부담감이 될까, 말이 거칠어 괜스레 의도가 달리 전달될까 말을 아낀 탓이겠다.

은유도 별반 다르지 않았겠지, 자신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겉으로 표현되지 않았고,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드러나지 않은 그곳에는 아버지를 향한 곡해가, 응어리진 불쾌한 감정만이 남았던 것이리라.

자신이 보낸 편지가 본래의 목적과는 다르게 과거의 은유에게 흘러가고, 그와 주고받은 편지가 쌓이며 은유는 점차 어른이 되어 간다. 시간의 건너편에서 건네는 또 다른 은유의 편지가 현재의 은유에게 닿아 가슴에 들어찬 분노와 원망을 앗아가고 그 자리에 이해와 사랑을 불어넣었다.

아버지가 처음인 아버지와 자식이 처음인 자식, 처음이 주는 미숙함을 상쇄한 건 다름 아닌 서로를 향한 다정한 마음이었다. 다정은 강한 자석이 되어 서로를 끌어들인다는 것을 확인한 시간, 내겐 무척이나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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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하며 기억하는 회계 용어 도감 - 회계 일타강사가 알려 주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입문서
이시카와 가즈오 지음, 오시연 옮김 / 비즈니스랩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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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공부하든 온몸으로 지루함을 견뎌야만 하는 시기가 있다. 위아래로 내리훑고 치훑었지만 좀체 이해되지 않는 어려운 개념들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산을 이뤄 나를 가로막는 수많은 용어들의 향연에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 가운데 비교적 진입 장벽이 높다고 생각한 회계는, 정말이지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나 어려워요'라며 눈을 부라리는 수많은 계정과목에 주눅든 그때를 생각하면 어후, 고개를 몇 번이고 좌우로 흔들게 된다.

그런 시기를 지나 겨우내 회계 용어들이 입에 익었을 무렵 내 손에는 전산세무, TAT 같은 회계 자격증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 자격증만 지니고 있을 뿐이지 여전히 나는 회계에 문외한이었고 실제 그랬다.

회계 용어를 쉬이 익힐 수 있다는 말에 혹해 이 책을 손에 쥐었다. 과연 그랬다. 저자는 이 책에서 혼동하기 어려운 두 용어를 아주 일목요연하게 풀어헤친다. 제품과 상품의 차이, 예금과 저금의 차이 같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들의 다른 점은 물론이고 에누리와 할인, 보통예금과 당좌예금의 차이까지도 똑부러지게 구분한다. 재무제표에서 무엇을 분석해야 하는지, 손익분기점 매출액은 어떻게 계산 하는지 등을 제시해 수치를 분석하는 눈을 기르게 한다.

이 책을 회계에 입문할 당시 접했다면 자격증을 취득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이제서라도 접할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 오류 수정 요망
p106 소제목 외상매출금 -> 외상매입금
p127. 소모품의 기준을 100만 원 이상이라고 제시한 부분이 있는데 100만 원 이하로 정정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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