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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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기계에 불과?

1859년 런던, 그 이름도 유명한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간행됐다. 이후 이 베스트셀러는 몇 번의 개정을 거쳐 1872년 6판을 최종판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이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며 패러다임의 변혁을 일으켰다. 더불어 현재까지도 뜨거운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 불씨를 이어받았는데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비판과 옹호로 엇갈린다. 그중에서도 1976년 첫 출간돼 30주년 기념판에 이른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06)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이하 도킨스)는 후자에 속한다. 그는 철저한 다위니즘 옹호자로 진화라는 불씨의 핵심을 ‘이기적 유전자’로 보고 있다.

이것은 곧 도킨스와 다른 다위니즘 학자들과의 차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반복해서 주지하는 것은 ‘진화의 주체인 유전자’가 그 자체의 생존에만 목적을 두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요컨대 문화를 이루고 유전자를 연구하는 인간조차도 유전자 복제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제 이 조금 불쾌하지만 흥미로운 주장을 조금 엿보기로 하자.

먼저 유전자에 대한 도킨스의 정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유전자는 특정한 구조를 갖고, 신성해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편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다만 도킨스는 ‘여러 세대 동안 존속 가능성이 있는 염색체의 작은 도막’이 유전자라는 기준을 세우고 있다. 여기서 ‘작은 도막’이란 존속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왜 작을수록 존속가능성이 높은 걸까?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하면 이유는 명확해진다.

어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문서파쇄기가 있다. 이 기계는 A4 크기의 종이를 세로로 균등하게 100조각을 낸다. 따라서 작은 종이를 넣을수록 조각의 수는 적어지고 궁극적으로 A4의 100분의 1 이하 길이의 정방향의 종이라면 그대로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유전자도 그렇다. 적당히 작은 크기의 유전자는 복제라는 반복적인 파쇄에서 안전할 수 있다. 반면 그 이상의 크기라면 그만큼 쪼개지기 쉬워 빠르게 본성을 잃을 것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거름망에 남은 것은 찌꺼기에 불과하고 뜨거운 물과 함께 통과해 컵에 부유하는 작은 입자가 커피의 실체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유전자에 대한 작은 크기의 정의는 불멸성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유전자를 담고 있는 개체가 소멸하더라도 안전을 확보한 유전자는 복제를 통해 살아남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조차 절대적인 영원불멸은 아니지만 개체의 수명에 비하면 불멸에 가깝다.

또한 이 불멸성은 진화론의 핵심 논리, 즉 자연선택을 접근하는 그의 기본적인 시각을 의미한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을 유전자의 생존(복제)을 위한 이기적인 방법으로만 파악한다. 반면 반대편의 다위니즘 학자들은 그것을 개체가 모인 그룹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한 무리가 발전된 방향을 향하는 것이 진화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생물계의 우월한 존재로 인간을 생각하는 인식은 타당하다. 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인간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이것을 인식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고로 자신을 유전자의 지배자이자 ‘좋은 것’의 척도로 삼는다. 애완견보다 주인인 인간의 유전자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게 설득력 있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여기에 도킨스가 지적하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는 ‘바라는 것’이 없다. 즉, 진화의 개념은 이상향을 목표로 발전하는 집단의 것이 아닌 유전자의 생존 그 자체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군분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요소가 바로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성’이다. 요컨대 오래 사는 동시에 빠르게 복제해 양적인 우위를 점하고 그 복사본 간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만족하는 것이 이기적 유전자의 승리 요건이고 현재까지 이에 적합한 생존기계가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체이다.

드디어 도킨스가 유전자 앞에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유전자는 인간을 위시한 생존기계를 이용해 복제를 거듭하며 불멸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이기적이다. 생물이 환경과 개체간의 경쟁에 유리하게 진화하는 것은 단지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를 위한 포석에 불과하다.

물론 의문스러운 점도 있다. 집단 안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개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도킨스는 유전자가 택한 이기적인 방법에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포함된다고 말한다. 대략 진화는 특정한 개체와 그것의 군집의 특이한 변화가 아닌 유전자 전체의 생존으로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의구심을 해결할 명쾌한 해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마저 유전자 게임의 ‘말’일 뿐이라는 내용은 자못 허무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자신을 생각해 보라.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인간은 어느새 그 모체를 배반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그것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기계에 불과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또는 진화의 메커니즘 자체가 허상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정답은 없다. 이런 점이 오히려 문화라는 개별적 코드와 역사라는 복제로 생존하는 인간의 미래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렇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꾐에 넘어가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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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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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백만 시대. 청․장년층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소식이 충격을 준다. 스스로 반 이상 남은 삶을 끝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불황과 실업을 주범으로 꼽을 수 있다. 현실을 둘러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이미 대학 도서관은 취업준비생의 전쟁터 혹은 무덤이 되었다. 상아탑의 위용도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 간판에 빛이 바랬다. 일단 넥타이부터 매고 보자는 ‘나몰라 지원’은 취업 자체가 인생 목표가 돼 버린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반면 전통적인 인기 직종도 있다. 철밥통 공공기관, 신이 내린 직장 공기업 등을 선두로 30대 대기업까지 이어지는 거룩한 계보에 이름을 올린 소수의 직장이 이에 속한다. 이중에서도 평균 연봉으로 따지면 1위는 따로 있으니, 바로 금융권 종사직이다. 은행, 투신사, 증권회사 등이 있다.

이러한 현실은 옆 나라 일본도 매한가지인 듯하다. '금융 미스터리’라는 생소한 혼합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2007. media2.0)을 읽어보면 말이다. 저자 이케이도 준은 전직 은행원 경험을 살린 빈틈없는 구성과 생생한 현장 묘사를 무기로 잘 짜인 이야기 한 편을 만들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 소설이 추리물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이를 밝히는 이유는 앞부분만 읽어서는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금융 미스터리’라는 수식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건보다는 한 은행에 근무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그렇다고 추리물로서의 함량미달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끝까지 파고들며 읽어야할 주요 사건의 시작과 전개가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각 장마다 다양한 인물을 내세우는데 흐름에 무리가 없다. 그리고 중반부에 윤곽을 드러내는 ‘니시키씨의 행방’이 그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을 무대하는 이 이야기는 치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른 소리를 하는 부하직원을 때리고도 버젓이 직장에 다니는 이기적인 상사, 실적을 쌓기 위해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직원들. 고발기사를 보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하면 살벌한 전쟁터가 연상된다. 이것은 현실적이라 더 무섭다.

졸업 전엔 취업이 최종목표인 줄 알지만 월급을 받는 순간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되는 현실. 당연히 승자와 패배자가 존재하는데 승자의 자리 역시 영원하지 않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시적인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양심과 법을 어기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일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범죄자가 된다.

물론 범죄를 주로 다루는 추리소설에 사회의 부조리와 그것이 파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눈길을 끌 정도로 특이하지는 않다. 이미 유명한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이 만든 틀이 존재할 정도다. 그런데 이케이도 준은 그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화법의 차이다. 뉴스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는 금융관련 사건, 사고를 소재로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구성해 전체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쪼개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척한 이케이도 준의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은 이렇게 치밀하고 따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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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에게 길을 묻다 2
송정림 지음, 유재형 그림 / 갤리온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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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을 완성하는 데는 아홉 달이 아니라 60년의 긴 세월이 필요한 거다. 그런데 그 인간이 다 만들어졌을 때, 정말 그가 한 인간이 되었을 때, 그 때는 이미 죽는 일밖에 남지 않는 거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에서 아들 기요를 잃은 지조르가 며느리 메이에게 하는 말이다. 삶은 이렇게 뜬 구름 잡듯 흘러가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희미한 깨달음을 얻는 건지도 모른다. 더욱이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 그것만 알고 사는 현대인에게 이런 인생의 비밀은 더욱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럼 어쩌나. 코앞만 보고 살다가 끝난다고 해도 인생은 살아야하는 노릇. 무엇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방송작가에서 소설가로, 글쟁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송정림은 명작에서 길을 물으라 한다.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같은 제목으로 책을 두 권이나 냈으니 전혀 엉뚱한 추측은 아니지 싶다. 즉 <명작에서 길을 묻다2>(갤리온. 2007)는 이를 뒷받침하는 두 번째 증거인 셈이다.

6×7-1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당신의 방엔 41편의 명작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사라도 할라치면 땀 꽤나 흘려야할 판이다. 더구나 모두 읽자면 얼마가 걸릴지 생각만으로 머리가 아프다. 바쁘다는 핑계에 익숙하거나 실제로 그럴 땐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미 인터넷 검색 창을 띄워 줄거리만 대충 훑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 책벌레 친구 한 명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컴퓨터 전원을 넣는 품을 팔 필요 없이 친구가 읽어주는 책에 귀를 기울이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우습게도 지척에 그런 친구가 있다. 비록 생면부지의 타인이지만 책을 통해 만날 때만은 친구라 생각해도 좋다. 그녀는 바로 송정림. 명작을 좋아하다 못해 거기서 길을 찾는다는 못 말리는 독서광이다. 또한 이 친구가 들려주는 명작 이야기는 단순한 요약 정보가 아닌 인생과 함께 느낀 감상이라 귀를 쫑긋 세워 들을만하다.

명작은 올드 패션?

이렇게 반가운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쉽게 만나지지 않을 수도 있다. 넘치는 최신 정보도 버거운데 옛날이야기나 들려주는 친구에게 내는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다. 이는 곧 명작을 읽는 일이 철지난 유행을 좇는 것처럼 어리석게 느껴진다는 뜻과 통한다.

이에 정답은 없다. 엄밀히 개인마다 정답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고전이라 불리는 명작이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기억된다는 사실. 미니스커트 대신 촌스러운 하녀 옷차림을 한 여인(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이나 잘빠진 재킷 대신 지저분한 무명저고리를 걸친 소년(소나기)은 앞으로도 회자될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을 확인하기에 인간의 수명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신유행이나 정보가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지는 죽는 순간까지 알 수 없다. 인생이 그렇다. 상대적으로 보면 일순간이다. 앞만 보고 내달음 쳐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혹시 명작이라 불리는 소설을 낳은 대문호는 이를 일찍 깨달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길을 물어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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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문자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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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바다와 같이 짙은 청록색의 배경. 미모의 여인 뒤로 11명의 그림자가 있다. 서로 친하지는 않은 듯 등을 돌리고 있는데 막상 그 간격은 촘촘하다.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남인 듯 아닌 듯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 이들. 도대체 정체가 궁금하다.

사연은 이렇다. 11개의 그림자는 지난여름 요트 여행의 동반자의 것이다. 이중엔 혈연관계도 있지만 대부분 서로 그리 깊은 관계는 아니다. 그렇다고 어정쩡한 동반자끼리의 여행이 특이할 것은 없다. 그리고 추억할 만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해 여름 이 여행을 잊지 못한다. 11개의 그림자 중 하나가 죽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상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초기작 <11문자 살인사건>(랜덤하우스. 2007)의 표지 디자인과 그에 얽힌 이야기다. 20년의 경력 60편의 작품을 가진 이 유명한 작가는 여류 추리소설 작가를 앞세워 연쇄살인 사건의 열쇠를 찾는다. 그녀는 11개의 그림자 앞에 서있다.

이제 독자와 주인공은 하나가 되어 사건의 전모와 범인을 밝히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내야 한다. 다만 공통된 비밀은 가지고 똘똘 뭉친 나머지 10명의 벽은 상당히 높으니 인내심을 가지는 게 좋겠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이런 영화가 있다. 막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청춘남녀가 해변을 찾는다. 새로운 세계를 맞을 준비에 흥분한 상태의 이들은 운전도 술도 사랑도 서툴다.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중 술과 운전. 결국 음주운전으로 사단이 난다. 누군가를 치고 달아난 것. 끔찍한 여행에서 돌아온 4명을 이에 대해 함구한다.

<11문자 살인사건>도 이와 상당히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11명의 떠난 요트여행에선 분명 사건이 있었다. 그중 한명이 사고로 죽었다고 결론이 났지만 어딘가 석연치 않다. 나머지 10명이 보이는 태도도 그렇다. 잘 숨기고 있지만 어쩐지 냄새가 난다. 거기다 이들 중 몇몇이 죽어나간다. 죽음을 부를만한 비밀과 이를 아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다.

스크린에서 뺑소니의 대가로 목숨을 내놓는 4명의 남녀. 살인이 벌어지기 전엔 어김없이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고 쓰인 쪽지가 도착한다. 소설도 마찬가지. 한 명이 죽고 나면 나머지에게 ‘무인도로부터 살의를 담아…….’라는 내용의 편지가 도착한다. 다음 살인을 예고하는 셈이다.

‘어느 살인자의 독백’

그렇다면 연쇄살인의 범인은 누구일까. 그야 끝에 가서 확실해지겠지만 일단 상상은 해볼 수 있다. 허면 그 상상에서 그자는 악(惡)일까. 살인이라는 중죄를 저지르니 당연히 나쁜 자일까. 분명한 것은 그를 미워할 수는 없는 사실이다. 바로 살인자의 독백 때문이다.

소설은 총 9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마지막은 프롤로그에 해당하니 차치하고 나머지 8장은 2개씩 짝을 지어 묶여 있다. 그리고 각각의 앞에는 ‘monologue1,2,3,4’가 자리한다. 그것도 살인자의 심경을 듬뿍 담아서다.

이는 결국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한 인간 본성을 꿰뚫는듯하다. 피해자가 가해자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는 현실. 그 앞에서 독자는 범인을 동정한다. 최소한 돌을 던질 수는 없다. 되레 살인만 저지르지 않았을 뿐 훨씬 추악한 존재를 확인하고 치를 떨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끝까지 읽고 볼 일이다.

한편, 재미있는 역자후기가 눈길을 끈다. 옮긴이 민경욱씨의 어린 시절 경험담이 그것인데 추리소설과 도둑에 얽힌 이야기다. 자세한 사정은 다음과 같다.

그녀는 중학생시절 한창 추리소설에 빠져있었는데 이날도 시험공부를 미뤄두고 추리소설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범인이 밝혀지는 끝을 보고나자 그에 맞춰 도둑이 들었다. 평소 같으면 이불속에서 숨죽이고 있었을 텐데 어디서 용기가 생겼는지 문을 벌컥 열고 소리를 지른다. 다행히도 도둑은 화들짝 놀라 급히 자리를 떴다.

어린소녀에게 그런 용기를 준 것은 분명 추리소설의 힘이었다. 아마도 그녀는 그 순간 멋지게 사건을 파헤치는 탐정이었을 것이다. 용감무쌍한 여성 작가가 주인공인 <11문자 살인사건>도 독자에게 그런 쾌감과 용기를 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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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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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수촌이라 불리는 오니코베 마을엔 특이한 노래가 있다. 공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로 우리네 식으로 하면 고무줄노래 정도가 되겠다. 노래는 여러 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알 수 있는 것은 그 중 세 수이다. 그나마도 접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을의 촌장 ‘다타라 호안’씨의 정리 때문이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구 막부시대 이 지방을 지배했던 영주는 농민들의 비아냥 거리였다. 사냥, 술, 여자 등 주색잡기에만 빠져있었기 때문인데 특히 여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헌데 우습게도 접근하는 여자마다 퇴짜 놓기 일쑤였다. 술잔 집 아가씨가 그랬고, 저울 집, 자물쇠 집 아가씨가 뒤를 이었다. 명색이 마을을 지배하는 다이묘(大名)에겐 여간 체면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노래의 내용일 뿐 실상을 달랐다. 이를 기록한 다타라 씨의 고증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마을을 지배했던 실제 영주는 폭군으로 예쁜 여자라면 무조건 취하고 싫증나면 명을 끊어 버렸다고 한다. 결국 그의 호색은 퇴짜 맞을 계제의 것이 아니라는 뜻. 따라서 ‘퇴짜 맞았다’는 표현은 달리 해석해야한다. 바로 ‘살해당했다’의 완곡한 표현. 이것이 폭군의 종말을 담은 귀수촌 공놀이 노래의 실체이다.

이상의 그럴싸한 사연은 작가 요코미조 세이지가 <악마의 공놀이 노래>(시공사. 2007)라는 추리소설의 서두에 내놓은 이야기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다. 특이한 점은 이 공놀이 노래가 모든 죽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어쩌면 독자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귀수촌 공놀이 노래가 머릿속을 맴도는 이상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노래에 얽힌 살인사건과 더불어 이를 해결할 인물을 만들어낸다. 이름은 ‘긴다이치 코스케’, 만화 주인공 명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그의 사건해결 방법을 짐작하게 한다. 쉽게 용의자를 쭉 세워놓고 손가락질하던 김전일을 떠올리면 된다. 역시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 아니, 통찰력과 의뭉스러움으로 따지면 할아버지가 단연 우위다.

또한 만화적인 상상력에서도 한참은 앞선 듯, 코스케가 우연히 들린 귀수촌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마침 일본 전역을 술렁이게 한 이 사건을 마주하기 전, 굵직한 살인사건들을 해결한 그는 이미 잘나가는 탐정이다. 이쯤 되면 사건이 그를 부르는지 그 반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점은 현대의 추리소설이 지향하는 바와 어긋나는 점이다. 특히 요즘 국내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일본의 추리소설과도 상당히 다르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범인의 존재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의 내막을 미리 알린 상태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중요한 것은 범인을 찾는 결과가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이유에 있다는 식이다.

그에 반해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끝에 가서야 범인을 밝힌다.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도 살해된 시체가 하나하나가 범인을 지목하는 증거가 되는 까닭이다. 결국 이것이 요코미조 세이지의 스타일이다. 감춰진 내막을 미리 짐작하는 독자와 그것이 다르길 바라는 작가와의 알력 다툼. 이 도전과 응전이 이 소설을 읽는 매력인 셈이다.

물론 그 싸움이 작가의 완승으로 끝났을 때 적잖이 불쾌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명탐정 코스케가 괘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이다. 무시하거나 재도전하거나. 다행스럽게도 후자의 선택을 한 독자에겐 <옥문도>와 <팔묘촌> 살인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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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8-20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취향은 아닌듯 하지만, 친절한 서평에 맘이 끌려서~~꾸욱!

비로그인 2007-08-2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보신 분들의 평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처음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계속 좋은 이야기만 접하게 되니 꼭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