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기적 유전자 - 3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의 생존기계에 불과?
1859년 런던, 그 이름도 유명한 다윈의 <종의 기원>이 간행됐다. 이후 이 베스트셀러는 몇 번의 개정을 거쳐 1872년 6판을 최종판으로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 이론은 생물학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에 영향을 끼치며 패러다임의 변혁을 일으켰다. 더불어 현재까지도 뜨거운 논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이 불씨를 이어받았는데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비판과 옹호로 엇갈린다. 그중에서도 1976년 첫 출간돼 30주년 기념판에 이른 <이기적 유전자>(을유문화사. 2006)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이하 도킨스)는 후자에 속한다. 그는 철저한 다위니즘 옹호자로 진화라는 불씨의 핵심을 ‘이기적 유전자’로 보고 있다.
이것은 곧 도킨스와 다른 다위니즘 학자들과의 차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반복해서 주지하는 것은 ‘진화의 주체인 유전자’가 그 자체의 생존에만 목적을 두는 이기적인 존재라는 점이다. 요컨대 문화를 이루고 유전자를 연구하는 인간조차도 유전자 복제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제 이 조금 불쾌하지만 흥미로운 주장을 조금 엿보기로 하자.
먼저 유전자에 대한 도킨스의 정의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가 말하는 유전자는 특정한 구조를 갖고, 신성해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다. 편의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다만 도킨스는 ‘여러 세대 동안 존속 가능성이 있는 염색체의 작은 도막’이 유전자라는 기준을 세우고 있다. 여기서 ‘작은 도막’이란 존속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왜 작을수록 존속가능성이 높은 걸까? 다음과 같은 비유를 통하면 이유는 명확해진다.
어떤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문서파쇄기가 있다. 이 기계는 A4 크기의 종이를 세로로 균등하게 100조각을 낸다. 따라서 작은 종이를 넣을수록 조각의 수는 적어지고 궁극적으로 A4의 100분의 1 이하 길이의 정방향의 종이라면 그대로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
유전자도 그렇다. 적당히 작은 크기의 유전자는 복제라는 반복적인 파쇄에서 안전할 수 있다. 반면 그 이상의 크기라면 그만큼 쪼개지기 쉬워 빠르게 본성을 잃을 것임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거름망에 남은 것은 찌꺼기에 불과하고 뜨거운 물과 함께 통과해 컵에 부유하는 작은 입자가 커피의 실체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결국 유전자에 대한 작은 크기의 정의는 불멸성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유전자를 담고 있는 개체가 소멸하더라도 안전을 확보한 유전자는 복제를 통해 살아남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조차 절대적인 영원불멸은 아니지만 개체의 수명에 비하면 불멸에 가깝다.
또한 이 불멸성은 진화론의 핵심 논리, 즉 자연선택을 접근하는 그의 기본적인 시각을 의미한다. 도킨스는 자연선택을 유전자의 생존(복제)을 위한 이기적인 방법으로만 파악한다. 반면 반대편의 다위니즘 학자들은 그것을 개체가 모인 그룹을 기준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해 한 무리가 발전된 방향을 향하는 것이 진화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생물계의 우월한 존재로 인간을 생각하는 인식은 타당하다. 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인간은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한다. 이것을 인식이라 표현해도 무방하다. 고로 자신을 유전자의 지배자이자 ‘좋은 것’의 척도로 삼는다. 애완견보다 주인인 인간의 유전자가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게 설득력 있는 것과 비슷한 논리이다.
여기에 도킨스가 지적하는 중대한 오류가 있다. 그에 따르면 유전자에 새겨진 진화는 ‘바라는 것’이 없다. 즉, 진화의 개념은 이상향을 목표로 발전하는 집단의 것이 아닌 유전자의 생존 그 자체인 셈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고군분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안전성’을 보장해주는 요소가 바로 ‘수명, 다산성, 복제의 정확성’이다. 요컨대 오래 사는 동시에 빠르게 복제해 양적인 우위를 점하고 그 복사본 간의 차이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만족하는 것이 이기적 유전자의 승리 요건이고 현재까지 이에 적합한 생존기계가 현재 지구에 존재하는 생물체이다.
드디어 도킨스가 유전자 앞에 ‘이기적’이라는 단어를 붙인 이유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유전자는 인간을 위시한 생존기계를 이용해 복제를 거듭하며 불멸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이기적이다. 생물이 환경과 개체간의 경쟁에 유리하게 진화하는 것은 단지 이기적 유전자의 복제를 위한 포석에 불과하다.
물론 의문스러운 점도 있다. 집단 안에서 자신을 희생하는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개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도킨스는 유전자가 택한 이기적인 방법에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가 포함된다고 말한다. 대략 진화는 특정한 개체와 그것의 군집의 특이한 변화가 아닌 유전자 전체의 생존으로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모든 의구심을 해결할 명쾌한 해답을 이 책에서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인간마저 유전자 게임의 ‘말’일 뿐이라는 내용은 자못 허무하기까지 하다. 그렇다면 자신을 생각해 보라.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인간은 어느새 그 모체를 배반하기에 이르렀다. 나아가 그것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유전자의 생존기계에 불과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또는 진화의 메커니즘 자체가 허상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정답은 없다. 이런 점이 오히려 문화라는 개별적 코드와 역사라는 복제로 생존하는 인간의 미래를 더욱 궁금하게 만들지 않는가? 그렇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꾐에 넘어가보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