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공놀이 노래 시공사 장르문학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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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수촌이라 불리는 오니코베 마을엔 특이한 노래가 있다. 공놀이를 할 때 부르는 노래로 우리네 식으로 하면 고무줄노래 정도가 되겠다. 노래는 여러 수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재 알 수 있는 것은 그 중 세 수이다. 그나마도 접할 수 있는 것은 이 마을의 촌장 ‘다타라 호안’씨의 정리 때문이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다.

구 막부시대 이 지방을 지배했던 영주는 농민들의 비아냥 거리였다. 사냥, 술, 여자 등 주색잡기에만 빠져있었기 때문인데 특히 여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헌데 우습게도 접근하는 여자마다 퇴짜 놓기 일쑤였다. 술잔 집 아가씨가 그랬고, 저울 집, 자물쇠 집 아가씨가 뒤를 이었다. 명색이 마을을 지배하는 다이묘(大名)에겐 여간 체면 구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것은 노래의 내용일 뿐 실상을 달랐다. 이를 기록한 다타라 씨의 고증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마을을 지배했던 실제 영주는 폭군으로 예쁜 여자라면 무조건 취하고 싫증나면 명을 끊어 버렸다고 한다. 결국 그의 호색은 퇴짜 맞을 계제의 것이 아니라는 뜻. 따라서 ‘퇴짜 맞았다’는 표현은 달리 해석해야한다. 바로 ‘살해당했다’의 완곡한 표현. 이것이 폭군의 종말을 담은 귀수촌 공놀이 노래의 실체이다.

이상의 그럴싸한 사연은 작가 요코미조 세이지가 <악마의 공놀이 노래>(시공사. 2007)라는 추리소설의 서두에 내놓은 이야기다. 이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간다. 특이한 점은 이 공놀이 노래가 모든 죽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어쩌면 독자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귀수촌 공놀이 노래가 머릿속을 맴도는 이상한 경험을 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노래에 얽힌 살인사건과 더불어 이를 해결할 인물을 만들어낸다. 이름은 ‘긴다이치 코스케’, 만화 주인공 명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그의 사건해결 방법을 짐작하게 한다. 쉽게 용의자를 쭉 세워놓고 손가락질하던 김전일을 떠올리면 된다. 역시 그 할아버지에 그 손자. 아니, 통찰력과 의뭉스러움으로 따지면 할아버지가 단연 우위다.

또한 만화적인 상상력에서도 한참은 앞선 듯, 코스케가 우연히 들린 귀수촌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난다. 마침 일본 전역을 술렁이게 한 이 사건을 마주하기 전, 굵직한 살인사건들을 해결한 그는 이미 잘나가는 탐정이다. 이쯤 되면 사건이 그를 부르는지 그 반대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점은 현대의 추리소설이 지향하는 바와 어긋나는 점이다. 특히 요즘 국내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일본의 추리소설과도 상당히 다르다. 이미 많은 작가들이 범인의 존재에 무게를 두지 않는다. 오히려 사건의 내막을 미리 알린 상태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중요한 것은 범인을 찾는 결과가 아니라 사건이 벌어진 이유에 있다는 식이다.

그에 반해 <악마의 공놀이 노래>는 끝에 가서야 범인을 밝힌다.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도 살해된 시체가 하나하나가 범인을 지목하는 증거가 되는 까닭이다. 결국 이것이 요코미조 세이지의 스타일이다. 감춰진 내막을 미리 짐작하는 독자와 그것이 다르길 바라는 작가와의 알력 다툼. 이 도전과 응전이 이 소설을 읽는 매력인 셈이다.

물론 그 싸움이 작가의 완승으로 끝났을 때 적잖이 불쾌할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명탐정 코스케가 괘씸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선택은 두 가지이다. 무시하거나 재도전하거나. 다행스럽게도 후자의 선택을 한 독자에겐 <옥문도>와 <팔묘촌> 살인사건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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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8-20 0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취향은 아닌듯 하지만, 친절한 서평에 맘이 끌려서~~꾸욱!

비로그인 2007-08-23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보신 분들의 평이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처음엔 별 관심이 없었는데 계속 좋은 이야기만 접하게 되니 꼭 읽어야 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