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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청년실업 백만 시대. 청․장년층의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소식이 충격을 준다. 스스로 반 이상 남은 삶을 끝낸 이유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불황과 실업을 주범으로 꼽을 수 있다. 현실을 둘러보면 보다 명확해진다.
이미 대학 도서관은 취업준비생의 전쟁터 혹은 무덤이 되었다. 상아탑의 위용도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 간판에 빛이 바랬다. 일단 넥타이부터 매고 보자는 ‘나몰라 지원’은 취업 자체가 인생 목표가 돼 버린 씁쓸한 현실을 반영한다.
반면 전통적인 인기 직종도 있다. 철밥통 공공기관, 신이 내린 직장 공기업 등을 선두로 30대 대기업까지 이어지는 거룩한 계보에 이름을 올린 소수의 직장이 이에 속한다. 이중에서도 평균 연봉으로 따지면 1위는 따로 있으니, 바로 금융권 종사직이다. 은행, 투신사, 증권회사 등이 있다.
이러한 현실은 옆 나라 일본도 매한가지인 듯하다. '금융 미스터리’라는 생소한 혼합 장르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2007. media2.0)을 읽어보면 말이다. 저자 이케이도 준은 전직 은행원 경험을 살린 빈틈없는 구성과 생생한 현장 묘사를 무기로 잘 짜인 이야기 한 편을 만들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 소설이 추리물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이를 밝히는 이유는 앞부분만 읽어서는 추리소설이라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금융 미스터리’라는 수식과 비슷한 맥락으로 사건보다는 한 은행에 근무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현실감 있게 표현하는데 치중하고 있다.
그렇다고 추리물로서의 함량미달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끝까지 파고들며 읽어야할 주요 사건의 시작과 전개가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는 각 장마다 다양한 인물을 내세우는데 흐름에 무리가 없다. 그리고 중반부에 윤곽을 드러내는 ‘니시키씨의 행방’이 그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것이 이 소설의 백미이다.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을 무대하는 이 이야기는 치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바른 소리를 하는 부하직원을 때리고도 버젓이 직장에 다니는 이기적인 상사, 실적을 쌓기 위해 정신적 고통을 감내하는 직원들. 고발기사를 보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하면 살벌한 전쟁터가 연상된다. 이것은 현실적이라 더 무섭다.
졸업 전엔 취업이 최종목표인 줄 알지만 월급을 받는 순간 또 다른 경쟁이 시작되는 현실. 당연히 승자와 패배자가 존재하는데 승자의 자리 역시 영원하지 않다. 사소한 실수 하나로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살얼음판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한시적인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양심과 법을 어기는 짓도 서슴지 않는다. 일부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 범죄자가 된다.
물론 범죄를 주로 다루는 추리소설에 사회의 부조리와 그것이 파생하는 문제를 다루는 것이 눈길을 끌 정도로 특이하지는 않다. 이미 유명한 사회파 추리소설 작가들이 만든 틀이 존재할 정도다. 그런데 이케이도 준은 그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보인다. 화법의 차이다. 뉴스를 통해서도 접할 수 있는 금융관련 사건, 사고를 소재로 사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재구성해 전체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를 쪼개서 자신의 전문분야를 개척한 이케이도 준의 <은행원 니시키씨의 행방>은 이렇게 치밀하고 따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