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에게 길을 묻다 2
송정림 지음, 유재형 그림 / 갤리온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한 인간을 완성하는 데는 아홉 달이 아니라 60년의 긴 세월이 필요한 거다. 그런데 그 인간이 다 만들어졌을 때, 정말 그가 한 인간이 되었을 때, 그 때는 이미 죽는 일밖에 남지 않는 거다.”

앙드레 말로의 <인간의 조건>에서 아들 기요를 잃은 지조르가 며느리 메이에게 하는 말이다. 삶은 이렇게 뜬 구름 잡듯 흘러가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희미한 깨달음을 얻는 건지도 모른다. 더욱이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 그것만 알고 사는 현대인에게 이런 인생의 비밀은 더욱 허무하게 느껴진다.

그럼 어쩌나. 코앞만 보고 살다가 끝난다고 해도 인생은 살아야하는 노릇. 무엇이 삶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방송작가에서 소설가로, 글쟁이란 이름으로 살고 있는 송정림은 명작에서 길을 물으라 한다.

실제로 그녀가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같은 제목으로 책을 두 권이나 냈으니 전혀 엉뚱한 추측은 아니지 싶다. 즉 <명작에서 길을 묻다2>(갤리온. 2007)는 이를 뒷받침하는 두 번째 증거인 셈이다.

6×7-1

이런 상황을 상상해보자. 당신의 방엔 41편의 명작이 책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사라도 할라치면 땀 꽤나 흘려야할 판이다. 더구나 모두 읽자면 얼마가 걸릴지 생각만으로 머리가 아프다. 바쁘다는 핑계에 익숙하거나 실제로 그럴 땐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지레 겁먹고 포기하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미 인터넷 검색 창을 띄워 줄거리만 대충 훑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럴 때 책벌레 친구 한 명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컴퓨터 전원을 넣는 품을 팔 필요 없이 친구가 읽어주는 책에 귀를 기울이면 되니 얼마나 편한가.

우습게도 지척에 그런 친구가 있다. 비록 생면부지의 타인이지만 책을 통해 만날 때만은 친구라 생각해도 좋다. 그녀는 바로 송정림. 명작을 좋아하다 못해 거기서 길을 찾는다는 못 말리는 독서광이다. 또한 이 친구가 들려주는 명작 이야기는 단순한 요약 정보가 아닌 인생과 함께 느낀 감상이라 귀를 쫑긋 세워 들을만하다.

명작은 올드 패션?

이렇게 반가운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음에도 쉽게 만나지지 않을 수도 있다. 넘치는 최신 정보도 버거운데 옛날이야기나 들려주는 친구에게 내는 시간이 아까울 수도 있다. 이는 곧 명작을 읽는 일이 철지난 유행을 좇는 것처럼 어리석게 느껴진다는 뜻과 통한다.

이에 정답은 없다. 엄밀히 개인마다 정답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고전이라 불리는 명작이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외면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남아 기억된다는 사실. 미니스커트 대신 촌스러운 하녀 옷차림을 한 여인(진주귀걸이를 한 소녀)이나 잘빠진 재킷 대신 지저분한 무명저고리를 걸친 소년(소나기)은 앞으로도 회자될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영원을 확인하기에 인간의 수명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신유행이나 정보가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지는 죽는 순간까지 알 수 없다. 인생이 그렇다. 상대적으로 보면 일순간이다. 앞만 보고 내달음 쳐도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혹시 명작이라 불리는 소설을 낳은 대문호는 이를 일찍 깨달은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길을 물어도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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