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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E. W.
김사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8월
평점 :
관능적인 소설은 언제나 흥미롭다.
국내작가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는데, 역시 같은 한국인의 글은 외국인 소설보다 읽는 것 이상의 특별한 감흥이 있다.
차가운 회색도시 필터를 씌운 강남을 배경으로,
재벌2세 남자와 그에 걸맞는 엘리트 집안 미모의 와이프, 그리고 평범한 여캠 인터넷방송bj가 동시에 등장해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인 쓸쓸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초중반부까지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진부함을 풍자하면서도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를 역설해 읽는재미를 만든다.
최근엔 ‘성공 드라마 법칙’에 다양한 세련된 조항들이 더 추가되었다지만(기쁘게도!) 그래도 여전히 다수의 성공 드라마엔 신데렐라 스토리가 빠지지 않는다.
진부한걸 알면서도 대리만족하며 얻는 쾌감의 최강자는 결국 신분상승 이야기니까.
멀고 먼 시대부터 신분과 계급은 존재했고, 모든 전쟁은 결국 개인의 신분상승과 부의축적을 위해 벌어진 비극이다.
인류 전체의 행복을 위해서라는 사기꾼스러운 영웅심을 내세운 전쟁도 결국 개인의 목적을 염두에 둔 것임은 역사를 통해 대충 알 수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근본적으로 편안하고 행복하게 만든 전쟁은 적어도 지구상엔 그 어디에도 없다.
지금 살고 있는 2018년. 신분상승은 그 옛날보다 더 힘들어졌다. 서민은 서민으로, 재벌은 재벌로 대물림 되는 것이 반항할 여지조차 없이 당연하기에 세상은 오히려 평화로워 보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도 넘은 과학의 발전이 있다.
전세계적으로 다양한 계급이 여러가지 매체를 통해 컨택트하는 것은 이제는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라 설명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 되어버렸다.
명절마다 대한민국의 공항 국제선 출국 심사장에 잔뜩 뭉쳐서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사람들을 설명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으로 평범한 고등학생이 어느 엘리트집안 교수의 사생활을 엿볼수도 있고(심지어 좋아요를 누르며 소통도 가능하다!), 반대로 청담동 어느 부잣집 외동딸이 지방에 사는 평범한 서민의 아들을 염탐할 수도 있다.
이게 현시대의 시스템이다.
과거에는 서로에 대해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는, 모르면 죽을때까지 행복했을수도 있는 것들을 너무 가볍고 당연하고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 속에서는 가짜 신분, 가짜 재력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고 부(富)에대한 갈망을 넘어 추종을 하는 추종자들도 있다.
눈만 돌리면 쉽게 체감 가능한 신분의 차이. 나의 계급. 나의 출신. 부자건 서민이건 얼마나 껄끄럽고 쓸쓸한 일인가.
뚱뚱한 사람에게 대놓고 뚱뚱하다고 하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반대로, 날씬하고 예쁜 사람에게 필요 이상으로 머리를 조아려 날씬하고 예쁜 것을 대놓고 입벌리고 침흘리며 추앙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가나 초콜릿이 이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이라고 생각하는 시골 처녀에게 어느 스위스산 수입 초콜릿의 존재를 대놓고 알려주는 것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배려는 시대에 뒤쳐진 선비 취급받고, 뇌를 어디 놔두고 왔나 싶을 정도로 솔직한 사람은 추앙받는 세상.
부자들은 “돈이 많지만 불행하다.”라고 하고 빈곤한 사람들은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하는 세상.
돈만 있으면 신도 될 수 있는 세상.
곧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은 불안한 상태에서 위태롭게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전쟁할, 반항할 기력도 없는 무기력한 사람들.
이 책은 오직 글루미하다. 한줄기의 빛도 없이 갑갑하다.
주인공 이하나는 여캠 유튜브 방송을 하며 먹고 살았던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는 나름대로 튀는 여자였고,
애초에 욕심이 많은 여자는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 재벌2세 유부남 정지용과 우연찮게 엮일 수 있었고 쓸 수 있는 돈이 아주 많아졌다.
더이상 방송을 할 이유가 없었다.
놀고 먹어도 생계가 유지되니 굳이 그런 귀찮은 일을 안해도 상관없었다.
매일 압구정 백화점 명품매장을 제 방처럼 드나 들었고, 강남의 무슨 핫플레이스 카페를 제 부엌처럼 드나 들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근본적으로 행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고, 촌스러운 싸구려 블라우스를 입은 자신의 모습에도 자신감이 넘쳤던 전보다 더 불행했다.
일단 정지용은 유부남이었고, 유부남이라는 마이너스 조건이 없었다면 애초에 자기 같은 여자랑 엮일 일도 없었다는 걸 스스로도 알았고, 막상 돈맛을 알고나니 그리 즐겁지도 않았다.
신분상승은 애초에 가능한 게 아니라는 것을, 그 벽을 더 실감나게 느끼고 불행했다.
평민은 그저 귀족의 쾌락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구나. 넘을 수 없는 높은 벽에 좌절하고만다.
정지용의 와이프 최영주는 교수 부모 아래에서 성장한 전형적인 미모의 엘리트다.
엄마가 밀어붙인 결혼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정지용과 결혼에 성공하지만(결혼에 성공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을 수 없다.) 원룸에 사는 이상한 고졸 여자 이하나와 바람난 남편을 감시하며 이전까진 느껴본적 없는 종류의 분노에 휩싸여 불행함을 느낀다.
더 나아가 불행의 이면에는 외로움과 동반되는 더 큰 불행도 있는데, 여기까지만 쓰기로한다.
이처럼 소설 속 분위기는 그저 끝없는 좌절과 무기력 뿐이다.
이걸 끝까지 읽다가는 눈두덩이는 푹 꺼지고 다크서클은 인중까지 내려올 것만 같은 우중충함이 가득했다.
그치만 그럼에도 다음 페이지를 술술 넘길 수 있었던건 페이지 페이지마다 관능적인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루이비통 원피스, 셀린느 백, 에르메스 스카프, 로라 메르시에 구두 라든지 랍스터 라비올리, 소비뇽 블랑, 크렘브륄레 같은 세련됨의 극치인 음식들이 난무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두문불출, 절치부심, 환상, 오판, 투쟁, 동정, 양육 같은 직선적이고 뚜렷한 언어들이 등장한다.
비싼 물건들이 등장하고 세련된 언어들을 등장시켜서(고전적이고 싶다면 개보수라고 해도 될 말을 리노베이션이라 칭하진 않았을 것이다.)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관능이 사실상 인위적인 관능으로서 책 속에 맴돌았다는건 부정하지 못할 사실이지만 실제 강남의 인위적인, 인공적인 관능을 소설적으로 묘사한 것이라 느껴져 그 표현력 자체가 마음에 들었다. 표현력 자체가 관능적이었다.
고양이가 쥐가 될 수 없듯 당연히 쥐도 고양이가 될 수 없다.
쥐가 고양이 흉내를 내봤자 쥐는 스스로 정신승리할지언정,후하게 나아가 쥐들 사이에서는 고양이로 인정받을지언정 근본적으로 고양이로 타고난 고양이를 이길 수는 없다.
진짜 고양이들의 놀림거리 그 뿐이다.
그치만, 그래도, 아마도, 인간은 인간이지 고양이와 쥐는 아니다.
인간은 똑같이 직립보행을 하고, 비슷한 위치에 눈,코,입,귀,팔,다리,머리통,몸통,머리카락,성기가 달렸다.
인간은 전부 동족이다.
그 안에서 왕이 있고, 노예가 있고, 광대도 있고, 귀족도 있고 인간이 구축해온 세계란 참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