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365일 365일 1
블란카 리핀스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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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도 우리처럼 성에 대해서 폐쇄적인 암막에 가려진 것 같다. 이제껏 성의 노골적인 표현으로 꼽히는 소설이라면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아닐까싶다. 하지만 『365일』, 이 소설도 여기에 비견되리만큼, 아니 더 노골적인 장면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이 책의 작가는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저녁을 준비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적으로 성에 대한 개방성이 지나치게 결여되어 있고 사랑의 다양한 측면에 대해 더욱 많은 사람들이 소통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그 결과로 탄생한 이 작품은 단숨에 전 세계 여성들을 사로잡으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가고 있다.


운명적인 사랑이란 과연 존재한다 말인가.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이, 손짓 하나로 바람이 불면 운명처럼 맞닥트리는 그런 사랑. 『365일』은 호텔에서 일하며 성공가도를 달리다가 휴식이 필요해 여행을 떠난 주인공 라우라가 시칠리아에서 마피아 가문의 젊은 수장인 마시모에게 붙잡혀 자신과 함께 365일을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으면서 숙명처럼 만난 한 연인의 위험천만하고 파격적인 로맨스가 펼쳐진다.


호텔 관리직으로 일하다 번아웃이 온 라우라는 서른 살 생일을 맞아 남자친구와 함께 휴식기를 갖기 위해 시칠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곳에서 라우라를 기다리는 것은 연인과의 달콤한 여행이 아닌, 몇 년 전 죽음의 고비를 넘긴 뒤로 자신의 환상 속에 매일 라우라가 등장한다고 주장하는 시칠리아 마피아 가문의 수장 마시모였다. 라우라는 마시모에게 붙잡혀 그와 사랑에 빠질 수 있도록 다음 해 생일까지 365일의 시간을 달라는 기묘한 조건을 요구받게 된다.


이와 같은 유혹을 받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운명도, 숙명도, 아니 유혹이라도 좋다. 분명한 진리는 떨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을 것이고, 감정이 밀물처럼 불어 닥쳐 잠을 못 이루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소설의 여주인공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라우라는 지금껏 보아온 어떤 여성 캐릭터보다 욕망에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시대착오적이지 않은 여성캐릭터가 표현하는 욕망은 한층 생생하며,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강하게 끌어당길 것이다. 이토록 욕망에 솔직하고 저돌적인 여주인공은 없을 것이다.


운명적인 사랑. 어떻게 보면 서로의 반려자가 된다는 것인 하나의 운명이 아닐까싶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만약 우연히 만났다면 사랑이 너무 허무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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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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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단어와 낯선 문장. 그러나 아름다움을 간직한 문장 속엔 감탄이 숨어있다. 우리말과 한자의 유려함을 넘어 지식의 대혼란이 일어났다. 사전을 뒤져가며 소설을 읽어야 했으니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곱씹으며 글에 스며든 단 맛을 쪽쪽 빼먹는 맛이 별미라면 별미였다. 초판 1쇄를 10년 전에 썼으니 10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를 알고도 남았다. 10년간 15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말이 15만 부이지 어마어마한 숫자다.

 

또한 여자의 일생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옛 조선의 유교적인 가부장적 집안에서, 속에 품은 꿈을 펼치기도 전에, 여자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러나 현실과의 타협에서 끝내 승리한, 한 여자가 바로 허난설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녀의 동생이 홍길동전을 만든 허균이라는 사실이, 왠지 뭔가 딱 들어맞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두 남매가 소중하게 간직한 가치관은 무엇일까. 유교라는 조선사회를 볼 때, 아직도 그 뿌리가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지만, 남존여비 사상은 여성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억압과 천대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양반이라 해도 글을 배우면 안 되었고, 결혼하기 전엔 아버지를, 결혼한 후에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의지하고 따라야만 했던 이 땅위에 모든 여성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유명 시인으로서의 난설원보다 어느 한 여자로서의 난설원을 조명하며,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대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백년도 더 된 1500년도에 살던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세계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야만 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상이나 이념에 파묻힌 사회에서 탈피하려면, 적어도 뜨거운 물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신세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난설원처럼 혁명을 해야 한다. 신흠소리 하나 없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야 사람다운 냄새가 나지 않겠는가. 한 여자로서 국한된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혁명에 가담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문제는 오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원한 숙제일지 모른다. 인간 없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욕망 중에 하나가 타인 위에 서서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권력지향형 인간들이 우리 사회를 좀먹는 벌레가 아닐까싶다. 선과 악으로서 표현하자면, 자유와 평등은 선이고 권력과 지위는 악일 것이다. 우리는 선인이 되려는가, 아니면 악인이 되려는가. 스스로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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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버 드림
사만타 슈웨블린 지음, 조혜진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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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세계 최대 열대우림인 브라질 아마존의 파괴가 보우소나루 대통령 치하에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가운데 산림 벌채가 최근 4개월만에 처음으로 증가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나 경종을 울리고 있다,는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봤다. 그들은 콩을 심기위해 산림을 훼손하고 있었다. 브라질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생산력을 강화시켜야 한다며 목소리를 한층 높이며 말하는 게 아닌가.


코로나19로 인해 지구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에게 불어 닥친 이 재앙의 끝이 어디까지일지, 그 끝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포심은 날로 극대화되고 있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책은 환경재앙을 섬뜩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기후재난과 새로운 인수공통감염병 창궐이라는 위기에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인간이 망쳐놓은 환경의 역습. 기후재난과 팬데믹의 시대에 더욱 섬뜩하게 다가오는 공포. 이 책의 저자인 슈웨블린의 공포가 더욱 서늘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의 소설이 현실의 문제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슈웨블린은 아르헨티나의 무분별한 농약 살포와 그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이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피버 드림』뿐만 아니라 슈웨블린의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일관적인 정서는 ‘두려움’(miedo)이다. 상실에 대한 두려움, 고독에 대한 불안, 고통에 대한 공포, 소통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 등이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된다. 가족 구성원, 특히 부모와 자식 간에 느끼는 두려움 또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 이유를 슈웨블린은 이렇게 설명한다. “가족은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환경이다. 그래서 기묘한 것, 비정상적인 것, 위험한 것이 우리의 가장 작은 사회적 단위인 가족을 덮칠 때 모든 것이 훨씬 더 무시무시해진다.” 두려움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슈웨블린이 공포야말로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내재한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감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가족을 떠올리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난다. 가장으로서, 엄마로서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 하에 어떠한 고통도 이겨내고 살고 있는 이 땅위에 부모들. 그들에게 삶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마찬가지로 가족이 아닐까싶다. 동전의 양면처럼 앞은 뒤를 볼 수 없고, 뒤는 앞을 볼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가족이란 다치기 쉬운 연약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살아가는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끔직한 공포만 남아 우리를 괴롭힐 따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런 주제를 주도면밀하게 다루면서, 코로나19로 인해 인간의 생존에 위협이 되고 있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며, 서둘러야 하는 게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일침을 놓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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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 채광석 서간집
채광석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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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옥중 서간집이다. 시인 채광석은 오둘둘 사건으로 수감된 채 지인과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내용을 엮은 것이 이 서간집이다.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인생의 통찰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서간집은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엄혹한 세월의 풍파를 이겨가며 비록 옥중에서이지만 책을 통해 사색의 지평을 넓히려는 그의 노력과 진념이 그리고 자신의 신념과 생활을 일치시키려는 그의 숭고한 정신이 절절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서간집에는 많은 책들이 나온다. 그 중에 앎과 삶, 일차원적 인간등 수 많은 책들이 나오는데, 이 모든 책들은 그가 옥중에서 읽은 것이라, 그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그의 정보를 인터넷에 검색해서 보니, 그는 시인이었다. 그의 시를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내면세계를 알지 못했기에, 오둘둘 사건을 비롯해서 과거 역사 공부를 하듯 정보를 획득하면서 그의 서간집을 읽으니, 그가 옥중에서 어떤 심정으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는지 어느 정도 실감이 갔다.

 

예술의 최고 경지는 고난에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을 정리한 채 고독을 친구삼아 정신의 수련을 통해서 탄생하는 그 무엇이 아닐까싶다. 코로나로 인해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면서 장소는 다르지만 누군가에게 옥중서신을 보내고 싶은 굴뚝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책을 읽고 사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그것을 글로 적어 익명의 누군가에게 보낸다. 생각만으로도 감정이입이 되고 절로 숙연해지는 복잡한 감정이 든다. 우린 고전이라 불리는 많은 책들을 섭렵하면서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들은 과연 어떤 통찰을 했기에 후대의 우리에게 교감할 수 있는 감정을 일으키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머리끝까지 치밀 때면 옥중서신을 넘어 무한 공간인 상상의 세계로 빠져든다. 마치 어느 시인의 옥중서신을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이십대 풋내기로서, 그의 편지를 거머쥔 채 감동에 겨워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요즘, 미얀마 군사정권의 쿠데타 때문에 온 세계가 시끄럽다. 민주주의가 역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도 군사정권의 군화에 시민들의 인권이 무차별하게 짓밟히는 경험을 했었다. 21세기에 겪는 미얀마 사태가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는 이유이기도하다. 실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정치적인 이유로 유엔이 하나로 결집하지 못하게 하는 실정을 보면서, 과연 인간이 우선인지, 정치가 우선인지, 아니며 국가이기주의가 우선인지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자못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도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감옥소에 갇히고 있다. 기회가 되면 그들에게 이 옥중서신을 보내서 그들이 마음에 위안을 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이 글이 인터넷을 통해 그들에게 전해졌으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그들에게 민중의 한 사람으로서 응원을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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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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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논란을 떠나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라 순수하게 접근해본다. 작가의 정체성이니 도덕성이니 하는 것은 여기에서 논할 얘기가 아님을 밝혀둔다.(이러면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쓸 수 없으므로.)


소설을 읽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봤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비롯해서 어릴 적 동심의 세계로 이끄는 저자의 글 솜씨가 부럽기도 하고 남달랐다. 기억 속 과거여행을 들추며 떠날 수 있게 만드는 문체에 그리움이 샘솟으며 자연스럽게 몰입 할 수 있었다. 한 문장, 한 문단 눈으로 쫓으며 시간에 몸을 맡겼다. 책장을 덮고 자다 깨어 읽곤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30년이 더 되었다. 부자지간에 정이라는 게 남아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책 여백에 내 생각을 적어나가면서 일말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 이런 행위를 하지 않으면 언제 날아갈지 모를 기억이기에 무언가를 잡아놓고 싶었다. 거기엔 어떠한 불순물이나 과장이 없는 순수한 부자지간의 정이 글로 쓰여 있었다. 저자의 글이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그 초췌한 모습이 떠올랐다.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새벽시간에 원인모를 감정이 솟구쳤다. 소용돌이 속에 함몰되면 이런 느낌이 들까. 소설 속 화자인 나는 실연의 맛을 보고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이다. 그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아버지의 눈물을 보고 어찌해야 좋을지 모를 안타까운 마음과 상념에 빠져든다. 구체성을 띈 어떤 말이나 행동으로 보여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정작 그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나 또한 딸 둘을 키우고 있는 아버지로서 과연 그 애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술 먹고 쓰러져 울 때 애들이 나를 보았다면, 하는. 이건 어디까지나 상상이지만 만약 애들이 보았다면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아빠가 왜 저래. 뭐가 힘들어서 술에 취해 평소에 하지 않는 눈물을 보일까, 하는. 이런 질문이 쏟아지겠지. 소설 속, 아버지는 물끄러미 어떤 사물을 보다가 울고, 꿈을 꾸면서 잠결에 또 울고, 눈물이 많은 사람으로 비쳐진다. 삶의 무게를 혼자의 힘으로 짊어지기에는, 겉으로는 가장이기에 남들에게 말 못할 것이 많은, 어떤 한을 지닌 채 살아가는, 이 땅위의 무수히 많은 가장을 대변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 모습에 내 자신을 비춰보니, 놀랍게도 그림자가 겹쳐지면서 하나가 되었다. 나 또한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이런 느낌의 소설이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생각할 때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 말이다. 이 땅위에 모든 아버지들이 읽어야 할 소설이 아닐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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