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설헌 - 제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최문희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선 단어와 낯선 문장. 그러나 아름다움을 간직한 문장 속엔 감탄이 숨어있다. 우리말과 한자의 유려함을 넘어 지식의 대혼란이 일어났다. 사전을 뒤져가며 소설을 읽어야 했으니까.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곱씹으며 글에 스며든 단 맛을 쪽쪽 빼먹는 맛이 별미라면 별미였다. 초판 1쇄를 10년 전에 썼으니 10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이유를 알고도 남았다. 10년간 15만 부가 팔렸다고 한다. 말이 15만 부이지 어마어마한 숫자다.

 

또한 여자의 일생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옛 조선의 유교적인 가부장적 집안에서, 속에 품은 꿈을 펼치기도 전에, 여자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그러나 현실과의 타협에서 끝내 승리한, 한 여자가 바로 허난설원이라 할 수 있겠다. 그녀의 동생이 홍길동전을 만든 허균이라는 사실이, 왠지 뭔가 딱 들어맞는 한 편의 소설과도 같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라 할 수 있는 것처럼.

 

그 두 남매가 소중하게 간직한 가치관은 무엇일까. 유교라는 조선사회를 볼 때, 아직도 그 뿌리가 우리사회 곳곳에 만연되어 있지만, 남존여비 사상은 여성으로서 이루 말할 수 없는 억압과 천대의 대상으로 만들었다. 양반이라 해도 글을 배우면 안 되었고, 결혼하기 전엔 아버지를, 결혼한 후에는 남편을, 남편이 죽으면 아들을 의지하고 따라야만 했던 이 땅위에 모든 여성들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간의 근원적인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유명 시인으로서의 난설원보다 어느 한 여자로서의 난설원을 조명하며,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대명제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00백년도 더 된 1500년도에 살던 인물을 등장시켜 현실세계의 문제점을 질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 스스로 지켜나가야만 한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사상이나 이념에 파묻힌 사회에서 탈피하려면, 적어도 뜨거운 물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개구리 신세는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난설원처럼 혁명을 해야 한다. 신흠소리 하나 없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야 사람다운 냄새가 나지 않겠는가. 한 여자로서 국한된 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혁명에 가담해야 하는 것이다.

 

아마 이 문제는 오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영원한 숙제일지 모른다. 인간 없는 세상이라면 모를까. 인간의 욕망 중에 하나가 타인 위에 서서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타인을 지배하려는 권력지향형 인간들이 우리 사회를 좀먹는 벌레가 아닐까싶다. 선과 악으로서 표현하자면, 자유와 평등은 선이고 권력과 지위는 악일 것이다. 우리는 선인이 되려는가, 아니면 악인이 되려는가. 스스로 답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