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그레이 -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어른을 위한 안티에이징 라이프 플랜
지성언 지음 / 라온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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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중년? 과연 중년의 삶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위대한 삶을 영위하며 살고 있을까. 현주소는 어디쯤에 와 있을까. 서두에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마이너스 경제는 불황의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고(회복조짐은 보이지도 않고) 부정적인 사회 이슈는 끊임없이 터져 나와, 무슨 영화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현실과 상상 속을 오가며 착각하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년의 삶 또한 그리 밝은 것 같지 않다. 떠돌아 다니는 많은 비관적인 통계지표를 보더라도 말이다. 찰스 핸디가 말한 ‘코끼리와 벼룩’에서 벼룩으로 살기 위해 도전하고 몸부림치는 중년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지식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은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것인가. 모든 중년들이 책을 내거나 강의를 하거나 또는 그들만의 전공을 살려 성공하는 벼룩으로 탈바꿈하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이런 의문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안정망이 없는 우리로서는 그 비(질문)를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인 스웨덴처럼 사회 안정망이 갖춰진 나라에서는 중년들이 우리처럼 이런 고민에 쉽게 빠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의 입장에선 다른 고민이 있겠지만. 이런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끌고 가는 현 기득권자들. 우매한 소처럼 고삐에 꿰어 그냥 속수무책으로 끌려만 가는 불쌍한 우리들. 과연 누가 더 문제인가. 둘 다 문제라면,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런 난해하고 골치 아픈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다. 그렇다고 방치하거나 재촉하자는 얘기도 아니다. 단지 답답할 따름이다. 하지만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예전에 비해 벼룩으로 살아가는, 그러면서 인생 2막을 성공리에 입성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 같은 중년으로서(아직 벼룩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벼룩이 될 한 사람으로서) 위안이 되기도 한다. 그들과 소주라고 하면서 그들의 벼룩 성공담을 듣고 싶다. 부럽기도 하고, 아니 정말 부럽다. 이 책의 저자 또한 당당히 자신의 인생 2막을 열고 열정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다. 100세 인생. 중년은 말 그대로 중간에 이르렀거나 중간을 좀 지난 시점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영화나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대부분 후반(결말에 이르기 전 단계)에, 그러니까 사분의 삼 지점에서 발생한다. 우린 아직 클라이맥스를 맛보지도 못했다. 그러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이 책의 저자처럼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금상첨화는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그럼 책에 내용으로 들어가 보자. ‘PART 1 오늘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이다 - Forget Your Age!’에서는 중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 있으며, ‘PART 2 은퇴는 또 다른 현역의 시작이다 - Change Your Frame!’에서는 저자 자신의 성공담을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PART 3 꿈꾸는 자는 영원히 젊다 - Show Your Passion!’에서는 다시 한 번 꿈을 꿔보라고 기회는 언제든지 열려 있다고 진심어린 말을 하고 있으며, 마지막 ‘PART 4 건강해야 장수도 의미 있다 - Keep Your Health!’에서는 무엇보다 건강에 중요성을 말하며, 이 모든 것은 몸이 건강해야 가능함을 살뜰하게 알려주고 있다. 책의 내용대로 나도 한 번 해봐야지, 하는 도전의식과 열정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서두에서 말한 ‘위대한 중년?’이라는 여러 가지 질문들이 ‘위대한 벼룩!’이라는 느낌표로 끝났으면 더 바랄게 없겠다. 그러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무얼 더 바라겠는가. 이 책을 읽고 잠잠하던(알고는 있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아서) 가슴에 다시 불을 활짝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불을 지폈으니 이제부터 시작이다. 목표가 생겼으니 그곳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모든 길의 출발점은 걸음을 떼는 그 순간이다. 이 책을 동반자로 하여, 모든 중년들이 함께 걸어갔으면 한다. 위대한 벼룩이 되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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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세트 - 전2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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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세계인구 1위, 경제대국 2위, 북한과 우호적인 국가, 사회주의국가, 모택동, 대만, 만리장성, 삼국지 등.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생각난다. 그러나 나는 한국전쟁을 꼽았다. 그들의 인해전술로 의해 사면초가에 빠진 우리 국군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역사의 흔적을 뒤져보면 고려인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의 일부였던 중국 땅. 그 만주벌판을 말 위에서 긴 수염을 휘날리는, 그것도 무겁고 예리한 장검을 휘두르는 함성이 들리는 듯하다. 먼지를 일으키며 땅을 울리는 말발굽 소리와 중공군의 수많은 발소리가 뒤섞여 귓속에서 웽웽거린다.



우리와는 가까우면서도 먼, 중국. 그런 중국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유명한 저자가 유쾌하면서 객관적이고 간결한, 거기에다 꾸밈이 없는 그의 문체로 우리를 책 속으로, 아니 답사를 위한 여행길로 재촉한다. 그가 중국 대륙을 향한 장대한 발걸음을 내딛은 첫 기착지는 실크로드 도시 돈황과 그곳으로 가는 경로인 하서주랑이다. 그의 답사에의 로망으로 간직한 땅, 그런 그가 ‘중국 답사 일번지’로 꼽은 곳이기도 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의 지도인 목차와 개요를 숙지한 후 간접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럼 그의 가이드대로 여행을 떠나보자.



먼저, 1권 ‘명사산 명불허전’은 주나라.진나라의 본거지이자 삼국지의 무대인 서안.관중평원에서 시작해 감숙성 하서주랑을 따라가며 만리장성을 만나고 돈황의 명사산에 이르는 여정이다. 먼저 진시왕의 아방궁과 삼국지 무대인 제갈량의 오장원과 읍참마속(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제자인 마속을 참수한)을 지나, 무려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하서주랑(달리는 회랑)을 거쳐 목적지이자 답사의 하이라이트인 돈황(하서사군 중 하나 - 무위, 장액, 주천, 돈황)에 이르는 길이다. 돈황 답사는 사실상 석굴사원의 답사라 할 수 있다. 즉, 서안에서 진시황릉, 병마용을. 천수에서 천년을 두고 조성된 옥외 불상 박물관인 맥적산 석굴을. 난주에서 황화석림과 병령사석굴을. 가용관을 거쳐 돈황에서 막고굴과 명사산, 월아천을. 유원과 선선을 거쳐 투루판에서 쿠우타크사막과 고창고성, 아스타나 고분군까지. 그리고 우루무치에서 천산전지를. 이중에 사람이 다닐 수 없는 벼랑에 선반을 매듯 인공 오솔길을 만들어 절벽 전체를 석굴로 굴착한 맥적산 잔도가 압권이었다. 여기에서 중국의 석굴과 우리의 불국사 석굴암의 차이도 알게 되었다. 거기에 덤으로 이백과 두보, 소동파의 시와 고사, 사마천의 사기와 삼국지의 주인공이 앞 다퉈 등장하며 장쾌한 여정이 이어진다. 돈황 명사산은 말 그대로 명불허전이었다.



2권 ‘오아시스 도시의 숙명’은 중국 불교미술의 축소판이라 할 만한 막고굴 곳곳을 살피는 한편, 그곳에서 발견된 돈황문서의 다난했던 역사를 담았다. 돈황의 도보자들인 오렐 스타인과 폴 펠리오 그리고 오타니 탐험대와 랭던 워너는 돈황문서의 유출에서 벽화의 파괴까지를, 무기징역을 산다는 각오로 들어간 돈황의 수호자들인 장대천, 상서홍, 한락연에서는 그들의 활약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실크로드 답사를 기약하며 옥문관과 양관 등 실크로드의 관문들을 탐사하게 된다. 돈황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곳’이라는 뜻의 타클라마칸사막 동쪽 끝자락에 있는 실크로드(비단길)의 관문이지만 정작 돈황에서 서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양관과 옥문관을 거쳐야 한다. 이곳이 실크로드 여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타클라마칸사막을 에둘러 가는 실크로드 답삿길은 대게 옥문관에서 하미, 투르판, 쿠차, 카슈가르로 이어지는 천산남로를 따라 행해진다. 이 사막에서 카라호토라는 곳을 처음 발굴한 코즐로프의 러시아 탐사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카라호토는 폐허가 말끔히 정비되어 있지만 사막 한가운데의 무너진 성채는 서하의 슬픈 역사를 능히 상상케 하는 대목이다. 투르판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서북쪽에 위치해서 서역으로 가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서두에서 말한 대로, 중국답사에서 로망으로 간직한 땅이란 저자의 말이 괜한 게 아니었구나, 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실감했다. 열망을 가지고 갈구하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평범한 진실과 함께, 광대하고 광활한 미지의 땅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황홀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한 번의 여행으로는 다 알 수 없기에, 다시 한 번 차근차근 여유를 두고 곱씹어볼 요량이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은 감상하고 음미하는 게 중요하다고. 나도 이 책과 같은 답사기를 한 번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끝으로 여행과 답사는 좀 다른 듯하다. 여행은 눈으로 보면 그만이지만 답사는 여행에 목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전을 찾아보니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조사함’이라고 적혀있다. 이말 대로 답사기를 떠날 계획을 세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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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불꽃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7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윤하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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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독특한 소설이다! 첫 문장부터 감탄사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을 구매한 후 몇 페이지 읽다가 바로 덮어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독창적이며, 다면적이고, 낯설고, 생소했기 때문이었다. 소설이 아니라 어떤 시에 대한 평론집 같았다. 논리정연하고 이론으로 무장한, 거기에다 주석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두꺼운 전문서적. 바로 뒤미처 오는 후회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물 건넌 뒤였기 때문에 씁쓸한 마음을 위로할 따름이었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읽은 소설(소설의 구성)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고, 끝까지 읽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책상위에서 먼지만 쌓이는 이 소설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왜 그랬을까. 나한테만 그런 것인가. 나에게만 이렇게 난해한 것이었을까. 이 질문에 함정이 있었음을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다. 아, 내가 덫에 걸려들었구나. 바로 나보코프의 덫에 걸려든 것이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인간의 삶이란 난해한 미완성 시에 붙인 주석 같은 것‘이라고 했다.

나도 이 서평의 주제를 ‘난해한 미완성 시에 붙인 주석의 정체를 밝혀라!’라고 고심 끝에 정했다. 그 이유는 우리가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정체를 밝혀야 하는 운명(너무 거창하다), 적어도 당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독자와 숨바꼭질 놀이와 같은 게임을 즐기고 싶은 모양이다. 바로 독자를 등장인물의 한 사람으로서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술래에게 들킨 아이가 다음 술래가 되는, 끝이 없는 나선형의 구조(하지만 언젠가는 끝이 난다. 그게 나선형 구조다). 여기서 다음 술래는 바로 독자인 우리를 말한다. 미완의 시에 대한 숨은 정체를 밝혀야 하는 주석자로서의 술래 말이다.


그럼, 술래잡기하러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의 저자는 푸시킨의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번역하고 주석을 집필하는 데 많은 시간을 쏟았다. 번역자이자 주석자로서 무려 10년을 꼬박 매진했다. 가히 집념의 산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노력의 결과가 그의 작품 속으로 녹아 들어간 게 이 소설의 배경이다. 존 셰이드의 ‘창백한 불꽃’은 총 네 편으로 구성되어 999행까지 집필된 자전적인 시다. 자신의 출생 배경에서부터 성장 과정, 아내 시빌과의 결혼 및 딸 헤이즐의 자살, 심장 발작으로 잠시 엿본 사후 세계 그리고 삶에 대한 고찰을 담고 있다. 여기서 핵심 인물은 찰스 킨보트의 주석인데, 전혀 신뢰가 가지 않는 인물을 설정한다. 존 셰이드의 시를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또 어떨 때는 엉뚱하게 주석과 색인을 단다. 시인의 외모를 평가하거나, 주해의 객관성을 의심할 독자에게 미리 일침을 놓거나, 도취적인 자평에 더해 선행 주석에 날조한 시행을 담았음을 밝히며 학식과 양심을 운운하는 파렴치한 작태를 비롯해, 엉터리 번역서로 읽는데다 까마득하기까지 한 기억에 의존해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영문학을 다루고 있다. 더구나 색인마저 의도적으로 그 중요도를 축소하거나 전혀 언급된 바 없는 정보를 색인 항목으로 꼽기도 한다. 이렇게 함으로서 킨보트는 본 주석서를 집필하게 된 동기가, 시인 셰이드와 나눈 우정과 무엇보다 자신만이 이 작품이 지닌 인간적인 사실성을 제공할 수 있음을 피력했는데, 그와는 달리 그의 진심에 의심의 금이 가는, 불신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면, 우린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서두에서 말했듯이 이 소설은 숨바꼭질과 같은 게임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우린 시와 주석을 번갈아 가며 그 미로 속을 우리가 밝혀야 한다. 그게 이 소설을 읽는 독자로서의 책임이자 임무다. 나는 킨보드가 주장한 인간적인 사실에 초점을 두었고, 이와 더불어 미완의 시라서 주석을 대충 달아도 된단 말인가, 라는 의문점을 가졌다. 그리고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이 책은 독자가 직접 완성해야 할 소설이므로, 소설의 끝은 없다. 단지 이 시의 주석자가 되어 각기 나름의 결과를 도출해내면 되는 것이다. 숨바꼭질에서, 이 미로 같은 지적게임에서 꼭 승리하길 바란다. 오랜만에 색다른 경험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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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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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지오웰이 말하는 가공의 세계에 갇힌듯하다. 선을 공격하는 위험한 존재들은 눈을 부릅뜨며 그들의 사냥감을 찾아 거리를 배회하고 있고, 그들은 멈출 수 없는 기차처럼 폭주를 하며 악의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우리는 마치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손오공이 된 듯하다. 판에 짜인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며 틀에 갇힌 허약한 인간이 된지 오래다. 우리는 여지없이 그들이 휘두르는 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왜 우린 늘 순한 양처럼 약자로서 살면서 그들이 저지르는 우롱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는 그들의 희생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성차별과 인종차별과 계급사회 그리고 폭력과 불평등으로 얼룩진 우리네 현실. 나는 J.M.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라는 다소 희귀한 제목의 이 책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먼저 이 책에의 주인공을 분석해보면, 앞서 말한 ‘그들’이라는 위험한 존재를 조지오웰은 ‘빅브라더’로 대치하고 있고 J.M. 쿳시는 ‘나’라는 치안판사와 ‘졸 대령’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있다. 그들은 전체주의와 제국주의의 쌍두마차 격이 된다. 단지, 다른 점이라면 전자는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그렸고 후자는 과거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했다. 그러면 공통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폭력과 억압, 통제의 사슬로 드러나는 전체주의와 제국주의의 모순과 허구라는 점이다. 그리고 각각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는 상상의 산물로서 전자는 ‘빅브라더’를 통해 암울한 디스토피아 세계를 그렸고 후자는 인종차별적이면서 불평등을 대변하는 가상의 인물로서 ‘야만인’을 만들어냈다. 둘 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임에는 틀림없다. 단, 전자는 가해자이고 후자는 피해자라는 것뿐이다.


그러면 상상에 의한 공포를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통해 경험한 바 있는 그 끔직하고 잔인한 공포 말이다. 허상 속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그 무엇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지 않았는가. 왜 우리는 알지도 못하는 그 무엇 때문에 반복되는 역사의 딜레마에 빠져있는가. 왜 우리는 약자일 수밖에 없는가. 이 시점에서 우린 철저히 따져볼 때가 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는 알았으니 한 번 따져보자는 얘기다. 이 책은 자연스럽게 나에게 이런 마음이 들도록 부추겼다. 과거에 집착하는 철없는 분노보다는 냉철한 머리로서 예리한 심판의 잣대를 드리우고 미래를 향해 한 발 전진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리며 반면교사로 삼아야겠다.


또 하나의 관점은 우리 안에 잠재된 괴물의 본성을 말하고 싶다. 치안판사인 ‘나’는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가진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어떻게 보면 졸 대령이나 제국주의 군인들보다 더 사악한 인간으로 비춰지기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에게는 야만인들과 내통했다는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하는 피해자로서의 모습도 볼 수 있지만, 실상은 자신의 성적인 욕구를 채우려는 음탕한 가해자로서의 모습이 자주 나타나곤 한다. 즉, 평화주의자면서 인도주의자인척 하지만 여자를 성노리개로 삼아 비열하고 파렴치한 짓을 저지르는, 이것도 모자라 자기 합리화하는 이중인격자의 속물근성에서는, 정말 구역질이 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결국에는 야만인 여자가 자신을 따르지 않겠다는 거절의사를 밝히고 떠나는데, 그녀의 빈자리를 생각하며 반신반의를 하는 대목에선 탄성이 저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점이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측면과 맞닿아 성의 타락으로 온 나라가 출렁이는 우리 현실의 민낯을 떠올리게 한다. 누가 야만인인가? 허의적인 유혹자인 ‘나’, 제국 군인인 ‘졸 대령’, 아니면 ‘우리들’.


마지막으로 긍정적인 측면도 볼 수 있는데, 나는 그걸 문학적인 측면에서 찾고자 한다. J.M 쿳시의 책은 처음 읽었지만 문학적인 취향이 나와 흡사해서 인생 책으로 뽑을 만큼 그의 매력에 흠뻑 빠졌음을 시인한다. 중간 중간 자연 묘사하는 서정적인 글과 주인공 ‘나’의 생각을 그대로 표출하는 내면 묘사는 필사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달콤하면서 유려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작가의 다른 책을 찾아봤는데 다음번에는 그의 자전소설 3부작을 꼭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 한 번 통렬하게 뒤돌아보며 반성하고 점검하는 좋은 시간과 계기가 되었고, 앞선 여러 가지 질문들의 대한 명제가 우리의 숙제로 남았음을 밝히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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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 소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6
앨리스 먼로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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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무엇일까.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행복한 삶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나란 무엇인가.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 한 동안 끙끙 알은 적이 있다. 그렇게 십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고민의 고민이 겹쳐 두터워진 층이 생기고 탄탄해진 무언가를 발견할 때도 있지만 위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풀지 못한 딜레마로 남아있다. 이 책에서도 “넌 도대체 네가 뭐라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이 나오는 대목이 있다. 누구라도 이 질문을 받게 되면 아마 그 자리에서 입이 얼어붙어 바로 대답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늘 철학적인 사고로 무장한 철학자이거나 종교적인 성자라면 모를까. 이 책의 주인공은 위의 질문을 받고 자신의 생을 살아온 붉은 장미 ‘로즈’이다. 로즈는 붉은 색만큼이나 정열적인 여성이었다. 약하거나 무기력한 여자가 아니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온 여성이었다.


요즘은 형형색색의 장미가 여럿 있지만 그녀에게는 붉은 색이 잘 어울릴 것 같다. 왜냐하면 다른 색은 범상치 않는 그녀의 삶을 대신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도 파란만장한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처럼 ‘인생은 고통이다.’라는 명제를 몸소 경험하고 꿋꿋하게 버티며 사는, 험난한 인생의 파도에 굴복하지 않는 여성상을 저자는 인물묘사부터 내면심리묘사까지, 말 그대로 한 여자의 일생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마치 열편의 단편이 원래 의도대로―연작소설을 염두하고―구성한 플롯을 사용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각 단편들의 이어짐이 짧은 단편의 단점(단편은 항상 끝이 애매모호하게 끝이 난다)을 극복해냈다. 마치 저자가 거지소녀가 아니었나싶을 정도로 말이다.


전체 뉘앙스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흡사하다. 그리고 첫 장부터 시작해서 책을 덮을 때까지 로즈의 심리묘사는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보바리 부인’의 그것을 압도할 만큼 강렬했고 인간의 감정을 하나하나 뜯어놓고 찧어놓는 냉철함과 정교함을 보여주었다. 거기에다 반전에 반전을 가하는 서술기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추리소설을 연상케 했고, 그 흡입력은 정말 대단했으며, 순수문학은 재미없다는 통설을 한 칼에 무너뜨렸고, 이 소설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 견인역할을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의 간격이다. 읽다보면 어느새 시간이 뒤로 훌쩍 가 있음을 알게 된다. 갑자기 어린아이였다가 중년이 되고 급기야는 노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단편으로서 장점이 여지없이 보여주는 대목이 여기에 있다. 이는 시점이 과거, 미래, 현재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처럼 울렁증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앞장을 한두 장 뒤적이다 보면 어느새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결국엔 감탄사를 자아내고 저자가 숨겨놓은 장치를 발견하게 된다. 이때 독서의 희열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전편에서 나온 상징들이 후편에서도 계속 나오는데, 가령 버스터미널이라든가 관절염, 양로원, 편지, 연인 등 상징적인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그때, 그 단어를 만나면 익숙한 탓인지 반갑기도 하지만 아 여기에 또 나오네, 하며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그 단어 속에 숨겨져 있는 암시는 우리들이 캐야하는 보석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문체에는 치밀함과 숙련된 노련함이 보이는데, 이는 저자의 다년간 노력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펴보니 줄친 부분이 여백보다 많을 정도였다.


이 책은 열편의 단편들로 엮었는데, 장편처럼 읽혀지는 이유는 주인공이 같다는 데에 있다. 그 내용을 주제중심으로 잠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장엄한 매질’에서는 가정폭력에 대해 다뤘고, ‘특권’에서는 싸움과 섹스 그리고 도둑질로 얼룩진 로즈의 학교생활을. ‘자몽 반 개’에서는 로즈의 자존심을. ‘야생 백조’에서는 성폭행을.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거지 소녀’에서는 패트릭과의 만남과 결혼, 그리고 결국 파경을 겪게 되는 가난한 소녀 로즈에 대해. ‘장난질’에서는 불륜을. ‘섭리’에서는 이혼과 신의 섭리, 못 만날 운명에 대해. ‘사이먼의 행운’에서는 행운, 상실, 행운, 불행이라는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인생을. ‘스펠링’에서는 가족과 양로원을. ‘넌 도대체 뭐라고 생각하니?’에서는 종교, 번역을 통해야 알 수 있는 감정들을 묘사했다. 이 내용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만만한 주제가 하나도 없음을 금방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 종교와 죽음까지 통틀어 다루어졌다. 여기에서 인간의 본질과 희로애락에 대한 저자의 통찰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하나하나의 단편은 금과옥조로서 버릴 게 하나도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스펠링’에서는 가족의 유대감과 한 인간의 말로를 그렸는데, 눈시울을 적시지 않고는 읽을 수 없는 단막극 같았다. 그리고 두 모녀가 양로원에서 나눈 대화는 내 뇌리에 각인되어 시시각각 떠오르는 불청객이 되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의 주제가 사랑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나서 그 증상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것은 사회의 편견과 타인의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내는 용감한 여성으로서, 끝내 가족에 대한 사랑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인간의 욕망에 의해 증오도 했고 빗나간 사랑도 있었지만 결국, 핵심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 문단은 니체의 말로 끝맺음을 해야겠다. ‘삶이라는 것은 심연위에 걸쳐있는 밧줄과 같다. 건너가는 것도 힘들고, 돌아서는 것도 힘들고, 멈춰서 있는 것도 힘들다.’ 이 문장의 울림이 로즈의 울림이고, 나의 울림이다. 그리고 앞서 서두에서 질문한 대답이기를 바란다. 이 책을 통해 긴 터널을 뚫고 지나온 기분이 들지만, 타인의 경험을 간접적으로 느끼며 흥분했고 분노했으며 눈물을 흘렸고 감탄했다. 그리고 놀랐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할 만큼. 그러나 현실에선 이런 일이 일어나질 않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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