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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한입
데이비드 에드먼즈 & 나이절 워버턴 지음, 석기용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철학과 ‘대화’는 궁합이 좋다. 웬만한 철학입문서는 플라톤의 ‘대화편’에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고, 저잣거리에서 아무나 붙들고 지혜에 대해서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철학자의 전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 대화라는 철학교육의 원형을 되살리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다. 특히 철학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 더 그렇다. 소수의 전공자들은 여전히 상아탑 안에서 그 혜택을 일부 누리기도 하겠지만, 대중은 그럴 기회를 얻기 힘들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철학자의 ‘말’이 아니라 정제된 형태의 ‘글’에 더 익숙하고, ‘대화’보다 일방적인 ‘강의’에 더 익숙해져 버렸다. 그래서는 철학의 정수를 과연 느낄 수 있을까?
물론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나이젤 워버턴이 ‘철학 한입(Philosophy Bites)’이라는 팟캐스트를 기획했을 때, 처음부터 철학교육의 원형을 대중화한다는 거창한 목적을 갖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매회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철학자와 대담을 나누는 이 팟캐스트 방송은 200회를 넘었고,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1,200만 회에 이르렀다. 이 팟캐스트 방송 중 인기 있었던 에피소드를 책으로 엮은 『철학 한입』의 서문에서도 저자들은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음처럼 말한다. “철학의 정신, 즉 면밀히 조사하고, 의견을 이끌어내고, 이유와 정당성을 탐구하는 정신은 대화 속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그리고 이 책의 목적이 “철학이 얼마나 흥미진진한 학문인지를 보여주고, 두꺼운 책 속의 논고를 통해서는 소통하기 어려운 이른바 사유를 향한 열정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명확하게 밝힌다.
다시 말하자면, 서평작인 『철학 한입』은 매회 새로운 주제, 새로운 철학자와 15~20분간 대담을 나눴던 팟캐스트 방송을 책으로 엮었다. 결과적으로 글의 형태가 돼버렸지만, 여전히 대화의 흐름과 호흡은 고스란히 남았다. ‘우정’, ‘관용’, ‘무신론’, ‘세계 시민주의’ 등의 다채로운 주제도 눈에 띄지만, 대담에 등장하는 철학자의 면면도 화려하다. 피터 싱어, 마이클 샌델, 알랭 드 보통, 웬디 브라운 등 각 분야를 대표하는 영미 철학자들이 대거 등장한다. 팟캐스트라는 젊고 새로운 매체에 기꺼이 응한 철학자들의 용기, 제작자와 진행자인 에드먼즈와 워버턴의 섭외력에 박수 칠 일이다.
『철학 한입』이라는 제목에서 연상할 수 있듯, 어쨌든 이 책은 다양한 철학적 문제의 맛보기 쯤 해당한다. 물론 한입만으로 배를 채울 수는 없는 노릇. 아직 철학적 사유라는 저 거대한 성찬을 즐기는 일이 남아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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