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반찬가게 인기 레시피 - 핫한 동네에서 매일 불티나게 팔리는 특급 반찬 120 소문난 반찬가게 인기 레시피 1
채움반찬 외 지음 / 비타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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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에 홍두깨살을 1분 데치고, 식힌 뒤에 결대로 찢어?
요리를 안 해보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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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창비세계문학 40
마리오 베네데티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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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일 금요일


나는 일기 쓰는 걸 관둔지 20년도 훨씬 지난 사람이라, 날짜를 적는 걸로 글을 시작하려니 퍽 어색하다. 그러나 마리오 베네데띠의 휴전을 소개하는 이 글 만큼은 이렇게 시작하리라 진작 마음먹은 터였다. 비단 내가 일기 형식의 이 소설에 깊이 매료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을 읽으며 어느새 나는 글 앞에 특정한 시간을 못 박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이 글은 일기는 아닐지라도, 내 일대기(그런 게 있다면)에 지금 이 시간이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터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으로. ‘휴전을 읽고 313일에 이 글을 씀’ (그러고 보니 이게 바로 일기(日記)인 것 아닐까?)


소설 휴전은 이제 퇴직을 6개월여 앞둔 중년 남성, 마르띤 산또메에 관한 이야기이다. 소설 전체가 마르띤 산또메가 쓴 일기로 이루어 졌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인데, 그렇다면 소설의 형식으로써 일기라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그게 그냥 1인칭 시점의 변주 정도는 아닌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나는 이러한 형식이 소설의 서사 뿐 아니라 독자의 태도에 영향을 준다고 믿는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독자는 마르띤 산또메라는 이름의 남자가 쓴 일기로 소설의 서사를 접하게 되는데, 이 서사라는 것은 결국 마르띤 산또메가 무료한 일상을 반복하며 그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기록한 것이다. 타인의 일기는 그냥, 몰래, 훔쳐보듯 읽는 것이지, 진지한 비평의 대상은 못 된다. 그러니 이 소설, 휴전을 읽다 보면, 진지한 독자로서의 태도는 일부 저버리게 되는 것이다. 판단하고, 기대하고, 예측하기보다, 그저 무언가 일어나길 기다리게 된다. 나는 이것이 독특한 독서 경험이라 생각하는데, 게다가 이것은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와도 거의 근사한 것이다.

 

마르띤 산또메는 법정 퇴직연령에 따라 퇴직을 반년 앞둔 남자이다. 또 오래전에 상처하여 홀로 세 남매를 키운 홀아비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그는 젊어서부터 어지간히 세파에 시달릴 대로 시달린 인물로, 이제는 삶에 애착이나 미련도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시점에 이른 것이다. 그런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소설의 전반부는 삶에 대한 권태와 무감각으로 무겁게 침잠해 있다. 만약 이 소설이 그의 젊었던 한 때, 즉 아내를 잃기 전과 후를 다루었다면, 휴전은 인생의 부조리에 관한 아주 뜨거운 이야기가 되었을 법도 하다. 그랬다면 소설의 제목도 휴전이 아닌, ‘전쟁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휴전은 마르띤 산또메가 세파에 정신적·육체적으로 완전히 고갈되길 기다린 다음,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211일 월요일

이제 퇴직까지 6개월 28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 지 어느덧 5년이 넘었다. ()

 

이런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권태와 무료함으로 가득하리라는 것은 지당한 예측이다. 그리고 실제로 소설 전반부는 그렇게 진행된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소설의 분위기는 독자가 전혀 기대 못한 방식으로 반전된다. 우리의 마르띤 산또메 역시 자신의 인생이 이런 식으로 전개될지는 예상하지 못 했다.

 

52일 목요일

() 그전에 도대체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한다. 이 나이에 갑자기 나타난 딱히 예쁘지도 않은 아가씨에게 마음을 빼앗긴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내가 사춘기 소년처럼 안절부절못한다는 것이다. ()

 

이 시점에서 소설은, 다소 부적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사랑 이야기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아주 극적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그렇게 되기까지 마르띤 산또메가 감정을 새로이 쌓아가는 모습을, 그가 쓴 글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이 소설이 일기 형식인 것이 특징이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일기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이라 말해볼 수도 있다. 일기란 매일의 기록이 쌓여서 커다란 일대기를 만들어 내는 글타래이다. 이 일대기의 결말이 어떤 모습일지, 일기 초반이나 중반에는 결코 알 수 없다. 하루라는 시간 단위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형식의 소설은 특별히 시간의 흐름에 강박적으로 매달리지 않는 이상, 소설의 초반과 결말이 쉽게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술자는 넌지시 결말을 암시하기 까지 한다.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마르띤 산또메는 어떤가? 그저 퇴직을 간절히 기다려온 이 남자가 또 다른 사랑과, 행복과, 절망을 과연 꿈꿔보기나 했을까? 또 다시 운명에 휘말릴 걸 알았을까? 그는 몰랐다. 만약 알았으면 그는 결코……. 소설을 다 읽고 덮은 지금에서 나는, 휴전이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의 인생과도 무척 닮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마르띤 산또메에게 동지애마저 느끼는 것이다.


인생이 전쟁과 같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흔한 비유라고 생각되지만, 또 그만큼 적절한 비유도 없다. 마르띤 산또메는 이 전쟁을 꽤 오랫동안 치룬 사람이다.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돌이켜 보면 잠시 허락된 휴전일 뿐이었다. 퇴직으로도 그의 전쟁은 끝나지 않은 듯하다. 그는 계속 불행과 싸울 것이고, 나는 또 나의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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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한 사랑의 실험
신형철 지음 / 마음산책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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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근사한(또는 거의 정확한) 해석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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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
안토니오 알타리바, 킴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 길찾기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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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을 읽고, 문득 이념(이상)의 의미와 쓸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안토니오라는, 한때 아나키스트였다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변절했던 노인이 90세의 나이로 노인 요양원 5층에서 뛰어내리면서 시작되는(끝나는) 이 이야기에, 다음의 질문을 필연적으로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념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그것은 좋은 영향인가, 나쁜 영향인가? 이 질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선 책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이야기는 아버지의 자살을 전하는 작가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작가인 안토니오 알타리바는 20세기 스페인의 현대사를 살았던 아버지의 인생 역경을, 그 자신이 아버지와 융해하여 따라간다. 안토니오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농사일에 애착을 느끼지 못했다. 가난한 농부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기 위해 담을 쌓았고, 폭력을 일삼았다. 결국 안토니오는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지만, 도시에선 가난이라는 시련을 더 혹독하게 겪을 뿐이었다. 운전면허도 따고 재봉틀 외판원으로 자리를 잡아갈 즈음, 스페인에 공화정이 시작된다. 안토니오는 그제서야 사회로 눈을 돌리고,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야만과 폭력이 어디서 비롯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당시 아나키즘의 출현은 시대적 흐름 위에 있었다. 안토니오가 신도, 조국도, 주인도 없는 아나키즘적 삶을 꿈꾸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안토니오가 쉽게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첨예한 이념 대립으로 발발한 스페인 내전, 그리고 이어진 2차 세계대전. 안토니오는 전쟁에서 자신과 같은 이상을 꿈꾸는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하면서 아나키스트로서의 자신의 이념을 확고히 한다. 그러나 납탄 동맹을 맺었던 동지들 중 일부는 전쟁에서 죽고, 일부는 전쟁이 끝난 뒤 변절하여 자본가의 삶을 택한다. 안토니오 역시 전쟁이 끝나도 변하지 않은 사회를 보며 환멸을 느낀다.살아남으려면 체제에 맹목적으로 순응해야만 했다. () 이런 변절은 고백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깊은 곳에 숨겨 둔 개개인의 비극을 배신하는 것이다. 아니, 배신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자살을 의미한다.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선 과거를 묻어야 했고, 육체의 생존을 위해선 마음을 죽여야 했다.” 결국 안토니오는 아나키즘을 버리고 가정을 이룸으로써 위안을 얻기로 한다. 그러나 결혼생활마저 안토니오의 뜻대로 되지 않는데…….


안토니오의 불행은 사회적 불의와 야만에서 비롯되었다. 안토니오는 아나키즘이 그에 저항할 보루라고 믿었지만, 그 이상이 그를 결코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이쯤에서 다시, 서두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이념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이 질문이 이 책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아닐 수 있다. 그럼에도 그렇게 묻는 게 필요하다. 이 이야기가 특정 이념을 선전하거나 비난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이념 따위 쓸모없다고 주장하는 이념의 먹잇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위 질문은 이 책이 오용되는 걸 막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질문을 던지고 나면, 오히려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워진다. 안토니오는 이념 때문에 더 불행해진 것일까? 아니 이념이 없었다면 안토니오는 더 이른 시점에서 무너지지 않았을까? 문제는 이념이 아니라 이념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있지 않나? 이 시대에 이념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이렇게 질문은 지속되게 된다. 전 세대에서 답하지 못한 이 질문은 현세대로 이어지고, 현세대에서도 답하지 못한 이 질문은 다음 세대로 이어질 것이다. 그 다음 세대에도 이어질 것이다. 답을 유예하는 동안 우리는 계속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이상을 추구할 수 있다.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은 아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아버지의 시점으로 이끌어 가는 책이다. 마치 삶에 대한 질문들이 대를 이어 계속되듯이 말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만화라는 매체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책에는 만화라는 매체가 가진 시각적 은유법이 적절히 구사되고 있다. 팔당헤 당원들을 재봉해버리는 전투기, 안토니오의 눈을 쪼는 프랑코 정권의 독수리 문장, 늙은 안토니오의 가슴을 파는 두더지……. 비록 이 책이 유럽 현대사를 관통하는 동시에 한 개인의 무거운 일대기를 조망하고 있지만, 이런 만화적 표현들은 이 일대기가 지닌 정서의 보편성을 성공적으로 전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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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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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늑대가 있지만 신경 쓰지 마세요.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속에 먹을 것이 들었다면 꼭 가방을 잠가 두세요.

 

이 엄청나게 신경 쓰이는 경고문은 철학교수인 마크 롤랜즈가 자신의 수업계획서에 덧붙인 말이다. 철학 강의실에 웬 늑대일까? 뭔가 특별한 철학 수업이라도 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그저 강의실에까지 항상 동행해야 하는 자신의 반려늑대(?) 브레닌의 존재를 학생들에게 미리 경고하는 것뿐이다. 그가 이렇게 강의실에 늑대를 대동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인간 마크와 늑대 브레닌 사이의 제1원칙은 “(혼자 두면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기에) 어디를 가든 동행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로서 늑대라니, 과연 평탄한 일상일 수 있을까? 마크 자신도 “늑대 혹은 늑대의 피가 섞인 늑대개를 누가 키우려한다면 당장 말리고 싶”다고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그러나 어렸을 때 부터 크고 거친 개들과 함께 생활했던 그는 늑대에 대한 거부감이 유달리 없었고, “갈색 털빛의 작은 새끼 사자를 연상하게” 하는 당시 생후 6주였던 브레닌을 기꺼이 키우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때부터 인생이 완전히 달라질 것을 각오”하면서 까지.


『철학자와 늑대』는 철학자 마크가 늑대 브레닌과 11년간 동거했던 기억과 철학의 편린들을 엮은 책이다. 늑대와 동거하면서 겪게 되는 재밌고 신기한 에피소드도 다수 있지만, 사실 이 책은 늑대와의 동거 일기를 빙자한 철학 강의에 가깝다. 이를테면 “어떻게 자연 속에 살던 야생동물을 데려다가 전혀 자연스럽지 못한 생활을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느냐?”는 진보적인 친환경주의자들의 비난에 대해, 마크는 실존주의의 존재론을 빌려 와 반박한다(인간의 실존이 본질에 앞서듯이, 브레닌도 사람과 동거한다는 실존이 늑대라는 본질에 앞선다고). 브레닌의 통제되지 않는 행동을 통해 악의 개념과 사회계약론에 대해서 생각하고, 브레닌과 함께 하는 험난한 일상을 통해 행복론을 말한다.

이런 철학적 사유가 책 전반에 넘쳐 나며, 그 범위가 비단 동물에 관한 것으로 한정된 것도 아니다. 늑대라는 이 낯선 동물을 통해 마크는 인간과 인간 사회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려 한다. “나는 인간이 무엇인지를 늑대에게 배웠다”라는 마크의 직접적인 표현으로 알 수 있듯이, 늑대 브레닌에 의해 촉발된 다양한 철학적 사유는 주로 인간에 대한 것으로 수렴된다. 마크는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인간의 도덕적·이성적 우월성을 부정하지만,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인간이 느끼는 특유의 ‘감정’에 대해서는 다소 ‘인간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는 아마도 책의 후반부는 마크가 브레닌의 죽음을 극복해 가는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철학자와 늑대』는 지금은 고전의 반열에 들어선 로버트 메이너드의 책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닮았다.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이 모터사이클과 여행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로 사고를 넓혀 갔다면, 『철학자와 늑대』는 늑대와 일상을 통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넓혀 간다. 『철학자와 늑대』도 로버트 메이너드의 책만큼이나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철학서의 고전으로 기억될 것이 거의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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