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하는 정신 -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유유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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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리스트도덕가또는 인간성의 탐구자라고 번역되며, 인간의 본성과 정신에 대해 탐구했던 일련의 사상가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그 위상이 여느 사상가들처럼 확고하진 못한 것 같다. 아무래도 이들의 성과가 진리 추구나 이론의 확실성과는 거리가 먼, 인간 행위와 정신에 대한 경험과 단상을 단편적으로 기술하는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몽테뉴의 수상록과 파스칼의 팡세등이 모랄리스트의 대표작을 꼽히는데, 특히 몽테뉴의 책 수상록(엣세)은 수필(에세이)이라는 사적인 글쓰기의 기원이 됐을 만큼, 몽테뉴가 모랄리스트로서 사상사에 남긴 족적이 절대 작지 않다. 하지만 몽테뉴는 오늘날 그렇게 많이 언급되는 사상가는 아니다. 그의 바로 후대 철학자인 데카르트가 유럽의 근대 사상사를 열었다고 칭송받는 것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오스트리아의 저명한 전기 작가인 슈테판 츠바이크의 몽테뉴에 대한 초기 평가도 그리 후하진 않았다. 그가 나이 스무 살에 처음 수상록을 읽었을 때만 해도마음속에 불붙는 정열적인 열광, 영혼에서 영혼으로 전기처럼 전해오는 힘이 없는 책이라 평했다. 하지만 세계대전을 비롯한 유럽의 내전을 겪으며 다시 읽게 된 수상록에서 그는 전혀 다른 느낌을 갖게 되었다. 종교전쟁이 휩쓸었던 16세기 유럽에서 쓰인 이 책이 지금 이 시대에 내 영혼에 가장 내밀한 근심을 만들어내는 일들에 대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그가 더욱 명료하고 뛰어나게 생각하고 말했다는 느낌을받은 것이다. 그러자 고전 문헌이라는 거리감은 사라지고 내가 그를 이해하고 또 그가 나를 이해하는 한 인간이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이것은 츠바이크가 몽테뉴 평전 위로하는 정신을 쓰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위로하는 정신은 츠바이크가 브라질에서 자살하기 직전까지 집필하던 그의 유작이다. 기본적으로 수상록에 기록된 몽테뉴의 일생을 따라가며, 집단 광증의 시대에 자신의 정신을 수호하고자 했던 몽테뉴의 사상을 재조명한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인문 수업을 받았고, 법관과 시장직을 수행했으며, 자신의 서재에 틀어 박혀 글을 썼던 몽테뉴가 여느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긴 힘들다. 그러나 내가 무엇을 아는가로 대표되는 몽테뉴의 저 물음은 언제나 인간의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을 세상에서 규정하려는 이러한 시도가 현대사회에서도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몽테뉴는 이러한 시도는 지금도 충분히 핍진적이다. 그러니 위로라는 매우 현대적인 키워드를 부여해도 그의 정신을 논하는 데 전혀 어색함이 없다.


우리는 위로하는 정신을 통해, 츠바이크의 눈으로 몽테뉴라는 텍스트를 읽게 된다. 츠바이크가 나치의 만행을 참지 못하고 자살한 비운의 작가임을 안다면, 이들의 공명이 다소 치명적이라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츠바이크가 마지막 순간까지 집필하던 위로하는 정신은 그의 유언에 다름없다. 그가 옹호하려던 몽테뉴의 정신이란, 체념할 때는 체념하고 물러설 때는 물러서지만, 고귀한 내면의 자유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그의 유언에 따르자면, 우리에겐 아직 체념하고 다시 시작할 여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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